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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과 경험으로 직조된 또 다른 낙원: 아난티와 에스케이엠 건축사사무소: 당신을 위한, 또는 우리를 위한

김정은 편집장
진행
방유경 기자

「SPACE(공간)」 2023년 11월호 (통권 672호)

 

©Namgoong Sun 

 

[REVIEW] 당신을 위한, 또는 우리를 위한​

 

도시의 이미지는 경험으로 기록된다. 5년 전, 부산으로 직장을 옮긴 지 채 몇 달이 되지 않은 지인을 만나러 갔다. 우리는 부산의 새로 생긴 건축물들을 보러 다녔고, 답사 루트에는 2017년 문을 연 아난티 코브도 있었다. 정확히는 바다를 바라보며 잔디로 덮인 산책로를 거닐었고, 이미 명소가 된 대형 북카페를 구경했다. 프라이빗 리조트 단지의 극히 일부만 경험했지만, 이후 부산 답사지를 알려 달라는 사람들에게 “가 보니 좋았다”며 건네는 추천 목록에서 아난티 코브는 빠지지 않았다. 투숙객이 아닌 이들에게 개방된 일부 공간만으로도 장소 자체를 경험했다고 느끼게 했으니 해안을 독점하지 않으면서 팬층을 확대하는 영리한 전략이 아닐 수 없다.

 

올해 7월 빌라쥬 드 아난티가 문을 열었다. 대지면적은 아난티 코브(약 2만 2천 평)의 두 배 규모(약 4만 8천 평)지만, 연면적은 비슷한 규모로 밀도는 훨씬 낮은 셈이다. 아난티 코브가 해변에 맞닿은 리조트 단지였다면, 400m가량 떨어진 산속에 들어선 빌라쥬 드 아난티는 그 이름처럼 숲과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일종의 마을이다. 민성진(에스케이엠 건축사사무소 대표)이 아난티 코브 설계를 2011년에 시작했으니 12년가량의 대장정이 일단락된 셈이다.

 

©Namgoong Sun ​ 

 

기장 아난티 프로젝트의 출발 계기를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99년부터 부산시가 추진해온 오시리아 관광단지 계획이 있다. 기장군 기장읍 남부에 조성되고 있는 366만 2,725m2(약 110만 평) 규모의 관광단지로, 아난티 프로젝트는 부산시와 민간 디벨로퍼가 해안을 따라 개발하는 오시리아 관광단지 사업의 일부다. 기장 일대는 송정해수욕장, 해동용궁사, 대변항까지 연간 300만 명이 찾는 관광지로, 부산시는 전체 해변을 관통하는 보행자 동선을 중요시했다고 한다.

 

기장 해변의 산책로는 아난티 코브에서도 끊김없이 이어지는데 바닷가에서 산책로, 건물의 기단부와 상부의 정원, 그리고 테라스형 객실로 이어지며 점점 투숙객들을 위한 공간으로 전이된다. 자연(바다)과 인공(건물)이 만나는 방식이자 공적인 공간에서 사적인 공간으로 서서히 이어지는 시퀀스다. 

 

©Namgoong Sun 

 

아난티 코브는 회원제로 운영되는 아난티 펜트하우스 해운대와 일반 투숙객들이 머무는 힐튼 부산, 그리고 다양한 식당과 서점, 소매점 등이 모여 있는 아난티 타운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 종류의 고객과 일반 산책객들의 동선과 프로그램 접근 범위를 조율해야 하는 과제 앞에서 건축가는 과감하게 아난티 타운까지 공공에 개방한다.

 

빌라쥬 드 아난티에서는 아난티 코브의 산책로가 대형 잔디광장으로, 아난티 타운은 내부화되어 편의점과 마켓, 합리적 가격의 푸드코트, 북카페 등을 갖춘 복합문화시설(엘.피.크리스탈)로 변주된다. 각기 다른 이용자들의 혼선을 막기 위해 아난티 코브에서는 각 건물의 로비를 최상층으로 올리면서 저층부를 일반 대중에게 개방했다면, 빌라쥬 드 아난티에서는 모든 타워동 1층에 어메니티를 두고 로비를 뒤편으로 배치했다. 개방된 잔디광장에서는 각종 공연이나 플리마켓이 열리면서 부산이나 울산 시민들을 맞이하고 있다. 사적 공간 안에 유사 공공 공간이 중첩되어 있는 셈인데, 이러한 풍경은 유럽 도시에서 광장과 광장을 둘러싼 카페, 혹은 공원이나 소매점이 빼곡한 골목길을 연상시킨다. 사실 도시의 매력은 이런 경계가 흐려진 회색지대에 존재하기 마련이다.

민성진은 이윤만을 고려했다면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공공 프로그램의 면적을 대폭 줄였을 것이라 설명한다. 공중을 위한 공간은 우선 ‘과연 들어가도 되는 공간인가’ 의문시하는 심리적인 장벽을 물리적 디자인으로 허물어야 한다.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확보된 민간 건축물의 공개공지가 여전히 빌딩 이용자만의 공간으로 여겨지는 경우를 떠올려보자.) 또한 여러 번 방문하고 싶을 만큼 충분히 매력적인 공간이 되어야 한다. (만들어 놓았지만 잘 쓰이지 않는 공공건축물 역시 떠올려보자.) 결국 공공건물인지 상업시설인지의 문제가 아니라 공간의 매력 자체가 여러 사람들의 기억을 만드는 도시의 일부, 장소의 조건이 된다. 민성진은 유행이나 취향은 빠르게 변화하니 건축이 긴 생명력을 가지려면 사람들의 좀 더 본질적인 욕구에 주목해 경험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Namgoong Sun 

빌라쥬 드 아난티에서는 공적 공간에서 사적 공간으로의 전이, 공용 공간과 개인 공간의 조합과 전환이 도시적 스케일에서 객실까지 다양한 차원에서 반복된다. 일례로 타워형 호텔/콘도미니엄의 객실은 대부분 복층형 스위트룸으로 계획됐는데, 그 안에서 사람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행태를 고려해 침실과 공용 공간인 거실을 분리하고, 짐을 놓고 객실을 구경하는 행동패턴을 반영해 실들이 배치된다. 중정을 중심으로 저층 단독 빌라가 모여 클러스터를 이루는 단지의 형태, 재료, 치수 그리고 시퀀스의 조합에서는 마치 오래된 단독주택지의 정서가 느껴진다.

 

도시에서 건축물로의 전이 수법은 아난티 앳 강남에도 적용된다. 고층빌딩이 늘어선 논현로에 접하는 호텔 전면에는 석재와 금속 루버가 장착된 11층 규모의 매스가 현대적 도시의 이미지를 만든다. 반면 후면은 저층의 벽돌 매스가 배치되어 강남의 좁은 골목과 만난다. 골목에 비해 규모가 큰 볼륨을 분절하고, 대지경계선에서 한 발 물러나 조경과 공개공지(포켓 공원)를 통해 자연스럽게 방문객과 시민들을 이끈다. 아난티 앳 강남이 시작한 변화는 트렌디한 레스토랑이나 카페를 끌어들이며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던 좁은 골목을 걷기 좋은 아기자기한 동네길로 변모시켰다. 지하주차장에서부터 만날 수 있는 적벽돌은 주변 근린생활시설이나 다세대주택에 흔히 쓰인 벽돌의 연장선에 있지만, 고전적인 대형 아치를 곳곳에 배치해 수도원 같은 고요한 공간감을 연출하는 반전을 꾀한다. 높은 층고로 계획된 객실은 도심에 부족한 자연을 개별 테라스를 통해 확보하며 가족이나 모임 단위의 놀이와 휴식 패턴을 반영한다.

 

휴양지란 일종의 낙원, 즉 일상을 영위하는 곳이 아닌 ‘어딘가 다른 곳’을 환기한다. ‘어딘가 다른 곳’으로서 빌라쥬 드 아난티와 아난티 앳 강남은 도시와 전원 사이 어딘가 존재할 법한, 혹은 (상상 속의) 추억에 기반한 것들을 조합하고 병치하면서 공동의 원초적 기억을 자극한다.​ (글 김정은 편집장 / 진행 방유경 기자)

 

 

©Namgoong 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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