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완성을 위해 덧대는: 미완의 청사진
글 조범희(경희대학교 호텔경영학과, 주거환경학과)
작년 5월, 엔비디아는 미국 나스닥 시장에서 장중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돌파했다. 이로써 엔비디아는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메타, 테슬라에 이어 시총 1조 달러를 달성한 민간기업이 되었다. ‘1조 달러 클럽’이라는 용어가 빈번하게 사용될 정도로 ‘1조 달러’가 미국 증시에서 지니는 상징성은 상당하다. 역사적으로 시총 1조 달러 기업은 새로운 변곡점마다 등장했다. 스마트폰 시대를 연 애플부터 전기차로의 전환을 가져온 테슬라까지. 그렇다면 엔비디아의 등장은 무엇을 의미할까? 챗GPT 등장 이후, AI는 SF영화 속 상상에서 현실이 되었다. 엔비디아는 AI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근저에서, 데이터센터와 함께 이 전환을 가능케 하는 대체 불가한 기업이다. 전 세계 데이터센터는 엔비디아의 기술력을 통해 전환 중이며, 그 결과 엔비디아는 인텔을 넘어 데이터센터 부문 매출 1위에 올랐다. 데이터센터의 왕좌를 군림해 온 인텔이 그 자리를 내준 이 상징적 사건은 현시대의 기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데이터센터’라는 새로운 건축 유형 정립의 과정과 결과가 「SPACE(공간)」 12월호 프레임에 담기게 된 것은, 시대의 흐름에 비추어 보았을 때 예정된 미래였다. IT기업 네이버는 오랜 시간 기록을 지켜온 ‘해인사 장경각’을 모티브로, 대한민국의 현재를 미래에 전달하고자 데이터센터 ‘각(閣)’을 가동 중이다. 이번 프레임에서는 이들의 두 번째 데이터센터인 ‘각 세종’을 조명한다. 각 세종의 준공까지 타임라인을 보면, 비슷하게 수렴하는 국내 설계 프로세스들과는 궤를 달리한 점을 살펴볼 수 있다. 건축프로젝트에는 설계자, 발주자, 시공자 등의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한다. 그중 설계자는 관계 속에서 과정을 주도하고,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발주자의 요구를 해결·조율하는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각 세종 설계에서 이러한 전통적 역할 관계는 전복되었다. 발주자인 네이버는 설계자를 설계하는, ‘설계자로서의 발주자’의 태도를 보였다. 각 세종 탄생에 가장 중요했던 것은 건축 전문가들이 대지 위에 쌓아온 경험과 지식이 아니었다. 각에 담겨야 할 시스템, IT기술, 데이터센터를 구현한 이전의 경험 등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네이버 스스로가 가장 중요한 주체였다. 3차에 걸친 공모 동안 당선작(팀)이 뚜렷하지 않았던 점, 빈번하게 교체된 팀, 패스트트랙으로 진행된 과정을 보면 네이버는 결국 그들의 필요에 의한, 각의 기능과 시스템을 위한 새로운 청사진을 계획하고 구현함이 목표였던 것이다. “최종 결정은 건축 전문가보다는 네이버가 했다고 생각된다. 결론적으로 자기들이 함께 일할 팀들을 스스로 골랐다.”라는 심사위원의 총평이 이를 방증한다.
눈앞에 잔상처럼 남은 건 ‘또 다른 완성’이다. 개척해야 하는 건축 유형이기에 급진적 시도는 어려웠을 것이 가늠된다. 하지만 그렇기에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프로젝트의 궤적을 톺아보며 ‘만약’에 대한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이 아쉬움은, 지난한 과정 속에 끝마친 매스스터디스(대표 조민석)의 숙소동, 환경을 고려한 결과, 이 두 가지를 마주했을 때 더욱 고조되었다.
매스스터디스는 ‘mass(대중)’을 새로운 가능성을 내포한 탐구 대상으로 정의하고, “‘대중(mass)’이 욕망하는 건축적 ‘덩어리(mass)’를 연구하고 대안을 찾겠다는 의도”로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매스 매트릭스 스터디스, 매스 무브먼트 스터디스, 매스 토포그라피 스터디스 등, 매스스터디스가 현실 세계를 탐구하며 축적하는 다중의 큰 맥은 급변하는 건축 환경에 대응한 파훼적 해법들이다. 자신의 건축 작업을 ‘바둑 두기’에 비유해 온 조민석이, 하나의 작업 방식에 고착되지 않고 오히려 조건에 따라 폭넓은 전략으로 반응할 수 있게끔 포석해 둔 이 바둑돌들은, 변화무쌍한 건축을 가능하게 만든다. 매스스터디스의 유연함은 이번 각 세종 숙소동 프로젝트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부띠크 모나코(「SPACE」 455호 참고)의 실종된 매트릭스와 더불어 쪼개진/어긋난/침식 등 다양한 형식의 축적된 매트릭스 중, 체커보드 매트릭스를 변용하여 2층 구성의 단위 공간 군집 방식 숙소동을 계획했다. 이는 모든 맥락을 도외시하고 채택한 해법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맥락에 부합하는 그들의 ‘준비된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운영동·서버동에 비해 상대적으로 IT기술/시스템적 제약이 적어 설계의 자유도가 어느 정도 있었을 것이 짐작된다. 하지만 그런 자유도보다, 큰 틀을 벗어나지 않으며 프로젝트에 녹아들고 매스스터디스가 꾸준하게 취해온 태도 속으로 작업을 편입시키는 유연함은, 이들이 “‘피상적인’ 아이덴티티에 함몰되지 않으면서 전략적으로 다양한 입장을 점유하는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라는 한 논평을 납득하게 만든다. 이 결과로써의 숙소동과 운영동·서버동의 병치는, 가능성으로 남은 또 다른 완성에 대한 궁금증과 아쉬움을 심화시킨다. 매스스터디스뿐만 아니라 운영동·서버동을 설계한 ‘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프론트’, 마스터플랜 기초를 세운 ‘원오원아키텍스’ 등, 모두가 건축 전반에서 뛰어난 역량을 보여온 구성원들이고, 유연한 전략을 펼칠 수 있는 전문가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전문성과 창의성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운영동·서버동은 어떤 모습으로 구현되었을지 궁금하다. 환경을 고려한 결과로써도 이 궁금증은 연장된다. 네이버가 각 세종에 담고자 한 IT기술, 하이브리드 쿨링 시스템 및 자원 재활용과 같은 친환경 설비의 중요도에 관해서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일련의 요소를 담을 각 세종이 자연을 고려한 형태보다는, 그저 ‘담기 위한’ 형태로 보이는 점은 아쉽다. 치열하게 고민한 환경에 관한 솔루션들이 무색하게, 조항만(서울대학교 교수)이 크리틱 ‘태도가 건축이 될 때’에서 언급한 슈퍼스튜디오의 ‘연속적 기념비’와 같은 거대한 스트럭처가 그저 자연을 비집고 자리한 것처럼 대중이 인식하게 되는 건 아닐지에 대한 불안이 인다.
조민석은 ‘유토피아와 현실 그 사이 어디쯤’에서 “건축은 오랜 시간을 들여 사람의 힘으로 만드는 둔중한 산 같은 거다.”라고 말했다. 바꿔 말하면, 한 번 형성되면 쉬이 변화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자연, 데이터 등 기존 건축의 고려 범위 이상을 생각해야 하는 시대이다. ‘각 세종’이 이후 데이터센터들의 형태적 논리를 고착하지는 않을지에 대한 개인적인 우려가 있다. 그러지 않기 위해, 모두가 지금을 과도기로서 명확히 인지하고, 이 결과 위에 무수한 팔림세스트(palimpsest)를 덧대어 나가며 또 다른 완성을 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 역시도 새로운 건축과 태도의 발현을 의식하며, 커다란 파도를 맞을 준비를 서둘러야겠다.
다른 데이터센터 사례를 통해 본 각 세종
글 박민정(영남대학교 건축학과)
「SPACE(공간)」 12월호에서 소개된 네이버 데이터센터 각 세종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위한 인프라 설비로써 네이버의 데이터를 저장하고 네이버의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비대면 산업이 발전하며 이제 막 IT 인프라가 중요해진 시대에서 ‘데이터센터’라는 새로운 유형의 건축은 아직 건축업계에서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가지고 있으며 시도적인 단계에 놓여져 있다고 생각한다. 보통의 공간과 건축물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며, 내부에서 일어나는 인간들의 행위를 고려한 형태로 만들어진다. 반면 데이터센터라는 공간 내에서는 인간이 아닌 ‘서버’가 중심이 되어 데이터를 저장, 관리, 보호하는 데 목적을 가지고 있기에 기존 건축이 고수해 온 방식과는 다르게 접근하는 건축가들의 의견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항만(서울대학교 교수)의 원고 ‘태도가 건축이 될 때’에서는 각 세종은 전문 건축인들의 지식과 경험보다도 각의 본질에 대한 네이버의 명확한 태도를 기반으로 하여 지어졌고, 새로운 건축 유형을 대비한 과하게 안전하고 단조로운 형태에 대해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을 볼 수 있었다. 이에 각 세종을 제외한 우리나라의 다른 데이터센터의 건축에서는 새로운 건축 유형을 어떻게 풀어나갔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국민은행 통합 IT 센터 설계를 담당한 간삼건축은 데이터센터를 위한 한정적인 고객을 고려한 전문화된 설계팀이 조직되어 참여해야 한다고 밝혔다. 일반적인 건축물과는 달리 시스템 작동을 위한 기능적인 디자인에 초점을 둬야 하는 점에서 차별성과 부동산 가치가 아닌 데이터 인프라 설비로써의 가치에 주목하여 안정적으로 장비를 운영하는 데 목적을 둔 건축을 한 듯하다. 삼성 SDS 춘천 데이터센터는 도심 주거 지역에 지어진 센터로 접근성이 좋다는 장점을 가지지만 소음과 진동, 그리고 경관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건축가의 고민이 드러나는 작업이다. 주변에 주거지역이 있는 위치적 특성을 고려하여 외장재를 선정하고 랜드마크적인 역할을 위한 입면 패턴이 있다는 점에서 이전의 다른 데이터센터들에 비해 도심이라는 입지적인 조건에 맞춰진 결과물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데이터센터에 머무는 사람을 배려한 편의시설의 부족을 지적하며 건축가들의 새로운 제안이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두 가지 사례를 통해 다시 본 데이터센터 각 세종은 지속가능한 건축을 위해 제안된 파사드와 외장재는 잘 고려된 듯하지만, 데이터센터라는 새로운 건축 유형에서 기념비적인 형태를 제안하며 건축적인 의미를 갖기엔 기능에 치중된 조금은 단조로운 건축물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쉽게 다가오는 것 같다.
α+인간의 공존
글 박재아(서울대학교 조소과)
나의 고향은 춘천이다. 네이버의 첫 번째 데이터센터인 각 춘천은 본가의
뒷산인 구봉산에 위치해, 창문을 열면 뒷산에 심어진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언뜻 보일 때도 있다. 도보로 20분, 차로는
5분이면 도착하는 구봉산은 춘천 시내를 한눈에 보기에 매우 괜찮은 시야를 가져, 각 춘천 인근에는 카페들이 즐비해 있다. 덕분에 본가에 방문해 오랜만에
구봉산 중턱의 카페를 갈 때면 각 춘천을 자연스럽게 스쳐 지나곤 한다. 차를 타고 오갈 때 창문 너머로
빠르게 지나가는 각 춘천은 거대하고 압도적이지만, 그저 그 뿐이다. 담장
너머로 존재하는 각 춘천은 늘 오가는 사람 없이 황량하게 존재한다. 건축보단 하나의 큰 구조체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어떤 장애물이 이 데이터센터를 건축물로 인식하는 데에 있어 어려움을 주는가는 오랜 시간
해소되지 않는 궁금증이었다.
건축의 근원에 관한 이론은 오랜 시간 동안 논의되었다. 유럽 최초의
건축 이론가 중 하나인 앙투안 로지에는 ‘건축에 관한 에세이’에서
원시 오두막의 형태가 건축의 본질이라고 주장하며 건축의 기능성을 강조한다. 로지에의 이론을 시작으로
브루노 체비나 켄고 쿠마 같은 건축가들이 이 담론을 이어받아 계속해서 서로 다른 의견들을 글로 비춰왔다. 사실
언뜻 보기엔 이들이 서로 다른 각양각색의 주장을 하는 듯 보이지만, 이 많은 담론들은 모두 암묵적으로
그 주체를 인간, 정확히 말하면 백인 성인 남성으로 상정한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로지에는 인류가 동굴에서 나와 스스로를 외부환경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지은 원시 오두막이 건축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이 이론에 의거한다면, 건축의 가장 첫 목적은 ‘인간’ 보호이다. 오랜
시간 건축의 주체이자 객체는 인간이었다. 이 목적에 맞춰 인간은 인간을 위해 더 단단한 재료를, 그리고 더 확실한 방음과 방수를 찾아 지금까지도 무던히 노력한다. 하지만
최근 지질학계에서 시작되었던 인류세에 대한 논의와 함께 건축계에서도 이런 인간 중심적인 건축에 대한 비판적 흐름이 시작되었다. 그 단적인 예로, 정림학생건축상 2024의
주제인 ‘모두의 집: 내일의 지구를 위한 오늘의 건축’은 인간 중심적이었던 건축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주체인 ‘모두’를 설정하고 더 확장된 시야에서 기존의 건축에 대한 성찰적 바라보기를 시도한다.
필자는 이처럼 타 생명종과의 공존을 고민하며 기존의 휴먼 스케일을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은 분명 필수적이고 긍정적인 노력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인간+α의
공존’이라는 키워드가 실제 현실의 흐름과 비교했을 때 비슷한 속도로 발맞춰 가고 있는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현대기술은 우리의 이러한 시도보다 더 빠른 발걸음으로 앞서고 있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든다.
SPACE 12월호의 프레임은 각 춘천 이후 10년만에 완공되었던 네이버의
데이터센터 각 세종 프로젝트에 집중한다. 데이터센터가 제시하는 ‘서버라는
사물을 위한 건축’, 다시 말하면 ‘인간이 필요조건이 아닌
건축’은 기존의 건축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아예 전복시킨다. 이제
건축은 ‘모두’의 범위를 생물종을 넘어 기계까지 확장해야
하는 대전환의 시점에 와있다. 네이버의 데이터센터 각은 비생물종과의 공존, 그리고 그 공존의 공간적 해석에 관한 굉장히 중요한 파장이자 선례로 남을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조항만(서울대학교 교수)의
리뷰에서도 언급되듯 각 세종에는 역설적인 부분이 많이 등장한다. 글에서 언급되는 발주자와 건축가의 관계나
형태적 역설 등을 차치하고도 충분히 소화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본문에는 ‘쓰임을 다한 뒤 재활용되거나 생분해되어 흙으로 돌아가는 재료’를 우선적으로
사용하는 원칙을 세운 후 이를 고수하고자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인공적으로 삭제되지 않는 이상 자연적인
죽음은 없는 데이터를 위한 건축에게 ‘쓰임을 다하는 순간’이라는
표현이 붙는 것, 데이터 센터라는 필연적으로 환경에 유해한 존재가 친환경을 이야기하는 점 등은 꽤 상충되는
지점이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필자는 이 모든 고민들이 결국 건축을 짓는 인간과 건축의 사용
주체에 대한 혼동에서 일어나는 충돌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젠 지금까지 논의되었던 인간이 중심이되
고려대상이 더 확장된 개념의 ‘인간+α의
공존’이 아닌, 아예 인간이 아닌 비인간, 비생물종이 중심에 서는 ‘α+인간의 공존’ 건축에 대해 고민하며,
지금까지의 건축 형태를 아예 전복시켜야 해결되는 문제가 아닐까 고민해본다.
필자는 각 춘천이 인간이 중심이 되지 못하는 건축이라는 느낌에서 건축이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앞으로의 건축은 분명 ‘인간을 위한’이라는 암묵적 수식어를 버리는 것에서부터 새롭게 시작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갑론을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프레임의 제목에서도 언급되듯, 이번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는 그 자체로 선례가 되는 도전이었고, 이
도전으로 인해 파생되는 질문들은 후의 건축의 새로운 국면을 위한 준비운동이 되어줄 것이다. 네이버의
데이터센터 각 세종이 곧 도래할 인공지능의 시대에서 아노미 상태로 휩쓸리지 않기 위한 닻이 되어주지 않을까 희망하며 글을 마무리해본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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