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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학생기자] 인터뷰 시리즈: 설계를 벗어난 건축인, 건축의 다양한 길을 걷다 ②박유나 변호사

18기 SPACE 학생기자
자료제공
박유나
진행
박지윤 기자

우리는 건축을 공부할수록 설계는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절실히 경험하고, 설계 프로세스를 밟으면서 설계 역시 건축이라는 커다란 세계를 이루는 역사, 공학, 예술과 같은 요소 중 하나임을 깨닫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바라본 ‘탈건’이라는 용어는 앞선 건축의 복잡다양한 영역은 흐리고 단순히 설계를 관두면 건축을 떠난다는, 설계 중심의 이해를 공공연히 드러낸다. 이번 기사는 이 설계 중심의 이해에서 벗어나고자 박유나(DL이앤씨 법무지원팀), 윤준환(어반레코드 대표), 이지회(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데이비드 바술토(아크데일리 창립자)를 만나 건축의 다른 매력을 발견하여 설계를 떠난 ‘탈설계’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인터뷰 진행 과정 ©Kim Bokyoung

 

박유나(DL이앤씨 법무지원팀) × 18기 SPACE 학생기자(김보경, 박민정, 박재아, 조범희)

 

 

​학생기자: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 로스쿨을 나와 현재 8년간 건설, 부동산 분야를 전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건설분쟁, 아파트 하자담보 사건 등 건설에 관련된 사건을 주로 맡고 있는데, 어떤 방식으로 사건을 담당 및 변호하게 되는지, 소송이나 재판 이외의 업무도 있는지 등 업무의 큰 틀에 대해 듣고 싶다.
박유나(박): 흔히 변호사의 업무라고 하면 재판에 출석하고 사건을 다루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러나 변호사의 업무는 크게 소송 업무와 자문 업무로 나뉘며, 자문 업무도 소송 업무 못지않게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소송 업무의 경우, 어떤 분쟁이 발생했을 때 원고 측에서 소송을 진행하고 싶거나, 피소를 당해서 응소해야 할 때, 조력을 받기 위해 변호사를 찾아오면 그 사안에 대해서 듣고 법적으로 법관을 설득하는 업무이다. 다시 말해, 의뢰인의 유리한 판단을 얻기 위해서 그것을 법적인 언어로 재판에서 설득하는 업무이다.
자문 업무는 쉽게 말해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의뢰인에게 ‘사업에 있어 A 행위가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가?’, ‘계약상 B를 해도 되는가?‘ 혹은 ‘상대방이 C와 같은 행위를 하는데, 이를 우리가 문제 삼을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을 전달받으면 이를 법적으로 검토한 후, 각 행위가 가능한지, 처벌을 받을 수 있는지, 계약적으로 문제가 될지 등에 관해 조언한다. 어떻게 보면 위법 행위를 미리 인지하도록 해 분쟁을 예방하는 업무라고 할 수 있다. 건설회사 사내 변호사로 업무를 하면서부터는 로펌에서 업무를 진행할 때보다 자문 업무의 비율이 늘어났다.

학생기자: 건설 영역의 법률 자문 중 빈번한 질의가 있는지 궁금하다.
박: 법이 어느 정도는 추상적일 수밖에 없는 반면, 현실에서 발생하는 사안들은 굉장히 구체적이다. 그래서 특정 법이 특정 사안에 적용되는지, 또는 특정 법의 해석 방식이 맞는지 등의 질의와 계약서상의 조항 해석에 관한 질의 등 다양한 질의를 받는다.
특정한 종류의 질의가 다수를 차지하지는 않는다. 건설 사업에는 주택, 토목, 플랜트 등 사업이 포함되어 있고, 그 안에서도 다양한 사업방식이 있기 때문에 사업을 진행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가 정말 다양하기 때문이다. 다만, 시공사에 있다 보니 설계와 직접 관련이 있는 쟁점은 상대적으로 적게 접한다. 하지만, 예를 들어 설계에 오류가 있어 보이는 사업에 참여할지 여부나 극복할 방법, 어떠한 하자가 설계상 하자인지 시공상 하자인지 등과 관련하여 설계 관련 질의는 받기도 한다.

학생기자: 다른 법과는 구별되는 건축건설 관련 법의 특징도 있는가?
박: 관련 법의 다양성 자체가 큰 특징 중 하나이다. 건설 산업 전반에 관련된 법은 「건축법」뿐만 아니라 「국토계획법」​, 「건설산업기본법」, 「건설기술진흥법」​, 「하도급법」, 「주택법」, 「공동주택관리법」,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도시개발법」, 「공공주택특별법」​ 등 매우 많다. 다른 민·형사, 회사법, 공정거래법, 보험법 등 분야는 주로 살펴볼 법이 대체로 정해져 있는 편이다. 그런데 건설 분야는 여러 사업방식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법들과 함께 구체적인 사업에 적용되는  특별법까지 정말 다양하다.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복잡하여 전문가의 자문이 중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행정과 민사가 결부되어 있는 점도 특징이다. 건축을 하려면 인허가부터 착공 신고, 준공 승인 등 행정적인 과정이 필수적이다. 조합 사업일 경우, 사업시행 인가와 관리 처분 인가 등의 과정이 추가되고, 모든 과정에서 관(官)과의 연계가 불가피하다. 하지만 실제 공사계약은 사인 간의 계약이기 때문에 행정법과 민사법의 접점이 두드러지는 영역이라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민사법과 행정법에 두루 지식이 필요하다.

학생기자: 건설 전문 분야의 법적 분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다른 분야의 사건과 건설 전문 분쟁 사건 간 특히 다른 점이 있는가?
박: 건설 소송에서는 ‘감정(鑑定)’이 큰 영향을 주는 요소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어느 정도 진행된 공사가 중단된 경우 공사비를 얼마큼 지급해야 하는지 따져야 할 때가 있다. 공사가 얼마나 진행됐는지를 법관이 법원에서 알 수는 없다. 이때 정확한 공사 진행률을 감정하기 위해 전문가가 필요하다. 보통 감정인은 건축 분야 종사자다. 감정 결과가 바로 확정이 되는 것은 아니고, 이를 두고 공방 후 최종 판단은 재판장이 한다. 이러한 건설 사건에서는 재판장이 감정 결과를 완전히 배척하기 힘들기 때문에 감정의 영향이 크다. 특정 사례가 하자에 해당하는지, 하자라면 보수비는 얼마인지도 결국 감정을 거쳐 결정된다. 결국 건설 소송은 변호사가 법리적인 주장을 하는 동시에 감정을 두고 공방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감정서를 볼 때, 공사 진행 과정이나 건축 자재에 대한 이해 등 건축적인 배경지식이 큰 도움이 된다.
자문의 측면에서는 먼저 건설 산업의 특징을 이해해야 한다. 건설 산업은 일반 민간/공공 발주 사업뿐 아니라 도시정비사업, 도시개발사업, PF사업, 신탁사업 등 개발 방식이 다양하고, 사업 시행자 혹은 조합, 은행, 보증사, 설계사, 시공사, 하도급사, 건축주, 수분양자 등 관련된 당사자가 많다. 이해 당사자가 많은 만큼, 설계용역계약, 공사도급계약, 하도급계약, 대출약정, 사업약정 등 그에 수반하는 계약도 많다. 이 때문에 다양한 사업 방식을 이해하고 계약과 법령을 검토해야 하는데, 이때에도 건축적 지식이 큰 도움이 된다.

학생기자: 선급금 정산방식 관련 사건이 담당했던 대표적인 건설 분쟁 사건 중 하나일 것 같다. 선급금 정산 방식에 혼란이 있던 때에 대법원의 “선급금 자체의 지급방식에 대한 규정을 ‘정산’ 방식에도 적용할 수는 없다”는 판결을 이끌어내며 건설 산업 내에 유의미한 판결로 남게 되었다. 관련된 내용을 들어볼 수 있는가?
박: 당시는 ‘노무비 구분 관리제▼1’가 공공 발주 사업에 먼저 적용되기 시작하며 아직 제대로 자리 잡지는 않은 때였다. 맡은 사건은 ‘노무비 구분 관리제’의 적용에 따라 선급금 정산 방식에서 보증사와 회사 간 이견이 발생한 사안이다. 보통, 공사 시작에 필요한 금액을 선급금으로 주면 기성금을 받을 때 본래 지급한 선급금을 조금씩 정산한다. 당시 선급금을 받은 업체가 더 이상 공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지급 당사자는 더 많이 준 선급금을 돌려받지 못할 상황에 대비해 선급금을 보전받는 채권에 대해 들어둔 보험을 통해 보증사에 이를 청구했다. 이 금액의 정산 방식에서, 보증사 측은 ‘노무비 구분 관리제’를 적용해 선급금의 정산도 노무비와 구분해 산정하는 것이 맞다는 주장이었다. 우리 측은 선급금 지급 당시는 노무비와 구분해서 줬지만 정산 방식은 기성대가 비율대로 정산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어느 한 주장만이 맞다고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사안이었다. 재판부에서 1, 2심은 지급할 때도 노무비를 구분해서 나머지 비율에 따라 선급금을 지급했으니, 정산할 때도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보았다. 어떻게 보면 타당할 수 있다. 하지만 계약상 ‘기성 비율대로 한다’라고 정산 방식이 명시되어 있었기에, 우리는 약정을 한 부분에서는 선급금 지급 방식과 정산 방식이 꼭 같아야 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거기에 더해 건설업의 업무 및 사업 관행을 자세히 설명하였고, 결국 우리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됐다.

1 ‘노무비 구분 관리제는 사업체가 경영난 등의 문제 발생 시에 노무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노무비는 따로 구분하여 관리 및 지급하도록 제도화한 것이다. 



대법원 판결 요지 일부 (출처: 대한민국 법원 웹사이트)



학생기자: 변호한 사건처럼, 사건 발생 및 사건에 대한 판결과 처분 등이 건설업계에 많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생각된다.
박: 몇 년 전까지 상당한 이슈였던 간접비 관련 사건을 예시로 들어보겠다. 당시 공공건축 계약에서 ‘장기계속공사에서의 간접비’에 대해 재판부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는 업계 내에서 대다수가 주목하고 있는 사안이었다. 공공건축은 사인 간 계약처럼 임의로 계약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계약법」, 「지방자치단체 계약법」 등에 따라 대다수가 비슷한 형태로 계약이 체결된다. 그 때문에 만약 특정 현장에서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다른 현장도 전부 문제가 된다. 특정 현장에서 계약이 유리하게 해석이 되면 다른 현장들도 계약이 거의 동일하니, 이에 이의를 제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번 소송이 일어나게 되면, 전체가 촉발된다.

당시 주목하고 있던 재판의 주요 쟁점은 장기계속공사에서 전체 공사기간이 연장됨에 따라 증가된 간접비에 대하여 계약금액을 증액받을 수 있는지였다. 시공사 측은 증액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고, 관 쪽에서는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는 상황이었다. 결국에는 대법원까지 가서 정리가 되었는데, ‘장기계속공사의 총공사기간에는 법적 구속력이 없기에 간접비 증액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라는 것이 판결의 요지였다.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굉장히 치열하게 다툰 문제였고, 많은 유사사건이 건설 재판부에 계류되어 있었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 결과가 나오게 되면서, 관련된 유사 하급심 사건들이 정리됐다.

학생기자: 사건과 판결 결과의 영향성에 대한 연장선상에서, 최근 건축계에서 가장 큰 이슈로 오르내렸던 웨이브온 건축저작권 침해 소송과 그 판결 결과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듣고 싶다. 표절 건축물의 철거 명령은 이번이 첫 사례라고 들었는데, 이번 판결로 인해 법조계에도 파장이 클 것으로 생각한다. 법조계에서는 이 판결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박:「SPACE(공간)」의 기사를 통해 처음 이 사건을 접했는데, 철거 명령이 나왔다고 해서 정말 놀랐다. 건물을 철거하라는 판결은 정말 나오기 쉽지 않다. 일례로 일조권 관련해서도 살 수 없을 정도로 일조권을 침해한 게 아닌 이상, 보통은 그에 상응하는 금전적 배상을 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번 사건에서 철거 명령이 나왔다는 건, 정말 명백한 사안이라는 거다.
법조계에서도 이러한 지식재산권, 저작권 관련 판결들이 그동안 보수적이었다는 평이 어느 정도 있다. 점점 이 영역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고 본다. 저작권 전담 재판부를 만드는 등의 법조계의 노력과 연관해 이런 결과가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철거 명령은 1심의 결과이다. 보통 하급심에서는 개별 사안에 대해 판단한다. 아직 확정된 사건이 아니고 2심, 3심까지 갈 수도 있는데, 대법원은 이 대법원판결로 인해 영향을 받는 다른 하급심들을 고려해서 판결하고, 기준이 되는 법리를 정립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 사건과 같이 주목받을 만하고, 새로운 쟁점이 되는 소송 건에 대해서는 기준이 되는 판단 요소를 나열해 줄 것이다. 만약 대법원까지 간다면 후속 소송의 기준이 되는 사례로, 법조계에서도 큰 기점이 될 거다.

학생기자: 건축저작물의 창작성을 입증해야만 표절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데, 법적으로 건축의 창작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적확하다고 보는가? 덧붙여, 건축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더욱 자리 잡기 위해선 법조계와 건축계의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는지 궁금하다.
박: 사실 건축 저작물의 창작성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정립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큰 틀에서의 기준은 있지만, 구체적인 적용에 있어서는 개별 재판부의 판단에 따르기 때문이다. 또한 건축은 도면으로 생각을 표현하고, 이를 통해 건축물을 완성한다. 그런데 이 결과물이 표절이냐 아니냐에 대해서는, 글로 적힌 판결로써 판단된다. 여기서 간극이 발생한다. 이 건물은 명백하게 표절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그것을 글로 설득하기도 쉽지 않고 재판부가 이를 판단하기도 쉽지 않다. 상대방이 어떻게 원 건축물이 창작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반박하며 그와 유사한 다른 건축물 예시를 무수히 제시하게 되면, 어떻게 표절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겠나.
그러므로 도면으로 그린 저작물의 창작성에 대해서, 언어로 기준을 정립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온전히 법조계에만 맡겨둘 것은 아니다. 법조계도 건축계의 의견을 들을 것인데, 건축계가 법조계에 건축의 창작성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언어가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건축계에서도 저작권을 법리적으로 판단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하고 건축 저작물에 대한 창작성 판단에 대해서 어떤 기준을 둘 수 있을지 지속적으로 연구해 법조계에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건축계와 법조계가 협업한다면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 생각한다.


학생기자: 건축법은 필연적으로 한국의 전후 복구 및 성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활동을 시작한 이후 경험하였던 주목할 만한, 또는 체감이 큰 건축 관련법의 변화가 있는가?
박: 건축, 건설과 관련된 법들이 다양한 이유 중 하나는, 건설 산업을 경제적인 부양책으로 생각하면서 그 기조가 법에 반영되어 왔기 때문이다. 주택건설 사업을 통해 경제를 부양시키고자 「주택건설 촉진법」이 제정됐다. 그전까지는 많은 조건을 충족해야 주택 건설 사업을 할 수 있었다면, 「주택건설 촉진법」은 조건과 과정 등을 더 쉽게 하여 많이 짓게끔 유도하고자 제정된 법이었다. 하지만 이로 인한 난개발을 제한하기 위해서 다시 법을 개정했고, 경기가 다시 침체되면 또다시 개정하는 것의 반복이었다. ‘분양가 상한제’는 그것을 다시 제한하기 위한 대책이었다. 「임대주택 특별법」, 「공공주택 특별법」, 「도시개발법」 등의 특별법도 모두 주택의 원활한 공급, 지역의 균형개발 등의 정책 기조에 따라 법의 제·개정과 폐지의 역사가 쌓여왔다.
기본법을 변호사 실무에서 체감하기는 어렵지만 「건축기본법」이 대학 졸업쯤 제정된 것을 기억한다. 체감하기 어려운 이유는, 기본법은 정책 전반에 관련된 법으로 추상적이기 때문에 해당 법을 직접 원인으로 분쟁화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법은, 건축을 단순한 부양 사업이 아니라, 문화로 여기는 시각을 마련해준 법으로 의미가 크다고 본다. 우리가 다른 시각에서의 정책을 요구할 수 있는 틀이 마련된 것이다.
최근에 「공동주택 관리법」이 새로 제정됐다. 본래 「주택법」에 있던 공동주택 관리에 대한 부분을 떼어내서 좀 더 촘촘하게 규정해 하나의 법으로 따로 만든 것이다. 아직 ‘짓기’에 집중하는 측면은 계속해서 있지만, 이 제정은 이미 지어진 건축물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도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는 인식 변화의 시작이라고 본다. 앞으로는 주거의 질도 신경을 쓰는 시대가 왔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는 제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학생기자: 건축학 전공 출신의 변호사가 더 늘어난다면 건설업계에 어떤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을 것 같은가?
박: 건설 관련 분야는 법조계에서도 큰 분야 중 하나이다. 이해 당사자가 매우 많고 또 사건에 관련된 금액의 규모도 큰 편이기 때문이다. 그런 반면에 건축학을 전공한 법조인들이 많지는 않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특히 지금의 로스쿨 제도로 개편되기 전인 사법시험 제도 때는 법조계로의 접근이 비교적 어려웠다는 이유도 있다고 생각한다. 바뀐 제도 역시 어렵지만 나 역시도 로스쿨 제도로 변화가 되면서 도전을 해보자는 마음이 생겼고, 최근에는 건축학과 출신 변호사 후배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아직은 건축 전공 변호사는 건설 관련 분쟁을 더 잘 이해하여 소송과 자문 업무를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다는 정도의 간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이는 본래 법학을 전공해 건축, 건설 소송을 많이 경험하며 건설업계를 잘 이해하고 있는 실무자들도 어느 정도 가능한 부분이다.
초창기 로펌이나 회사에 지원할 때 자기소개서에 ‘건축과 법의 가교 역할을 하겠다’라는 말을 썼었다. 시간이 지나면 건축을 잘 아는 법조인뿐 아니라 법을 잘 아는 건축가가 많아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동안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며 단념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앞으로 분야를 넘나드는 변호사, 건축가들이 늘어난다면 건축과 법 사이에서 더욱 원활한 소통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커리어 엑스포 강연 / Image courtesy of Park Yuna

 

학생기자: 건설 전문 분야의 소송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건축 역사 이론, 건축 디지털 교육, 건축 디자인 교육, 건축법 등 어떤 학문이,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가?

박: 건축법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은데, 의외로 설계 스튜디오 수업이 지금의 나에게 굉장한 자양분이 됐다. (웃음) 설계 스튜디오 수업은 대지 분석부터 시작해 어떤 제약이 있는지, 그래서 어떤 디자인이 필요하고 어떤 프로그램이 필요한지와 같은 논리 전개를 위한 요소들을 쌓아나간다. 그리고 결국은 건축주를 설득해야 한다. 수업 때는 교수님을 설득하는 것이고, 설득을 위한 발표를 한다. 일련의 과정이 논리적으로 잘 정립되어 그 끝에 구현된 건물에 대해 발표하게 되면 굉장히 힘이 있지 않나. 물론 디자인 자체에서 오는 힘도 있지만, 처음부터 시작해서 쌓아온 논리의 힘도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건축주를 설득하고 교수님을 설득하는 그 과정이 지금 변호사 업무를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지금은 글로 설득하지만, 법조문에서 시작하여 현재의 상황, 관련한 판례 등을 설명하고 논증을 이어나가 재판장이 최종 판결을 어떻게 내려주어야 하는지 설득하는 변론의 과정이 스튜디오 수업과 굉장히 닮았기 때문이다.

또, 지금 회사 사내 변호사로 근무하면서는 법무만 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일원으로서 기획 업무도 병행한다. 우리가 어떻게 법무를 더 잘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기획인데, 이 역시도 스튜디오 수업과 연관이 있다. 아이디어를 내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것을 잘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내고, 회사를 설득하는 것도 스튜디오 수업과 굉장히 맞닿아 있다. 학생 때 밤을 새워가며, 내 체력을 갉아먹으면서 했던 그 수업들이 지금의 자양분이 됐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지금 후배들에게는 너무 체력을 갉아먹지는 말라고 조언한다.

 

 

변호사 초년 당시 업무 모습 / Image courtesy of Park Y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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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나
박유나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여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법무법인 산하와 법무법인 현, 법무법인 동인을 거쳐, 현재는 DL이앤씨(주) 법무지원팀에서 건축/건설, 부동산 분야 전반의 소송 및 자문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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