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4년 2월호 (통권 675호)

©Chun Euiyoung
프롤로그
한국 건축에서 일반적으로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근대건축적 사고가 지배적이다. 형태는 종속변수이고 공간과 구조의 결과물이지 지나치게 형태 중심적 건축을 추구하는 것은 공허하다고 여겨지는 편이다. 학생 시절 일본에서 인턴을 하며 건축가 신 다카마츠의 작품이 흥미로워 이를 보기 위해 1990년경 일본 오사카의 난바 지역과 교토 등을 돌아다니며 그가 만든 기린플라자 오사카와 옥상층의 작은 바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호기롭게 현대건축에 대해 이야기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은빛 금속과 어두운 색 계열의 재료 마감을 주로 사용했던 그는 과감한 형태 사용과 장식적 재료 마감 등으로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이 유행하던 당시 형태와 표면의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디자인을 보여주었다. 우리 건축에서도 김중업의 주한 프랑스대사관(1961), 차운기(아꼴건축연구소 대표)의 택형이네 집(1996), 우혁이네 집(1998) 등이 한국적 형태 요소를 기반으로 한 독특한 형태의 건축 작업으로 당시 건축가들은 물론 대중들의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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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형태를 통한 대중 건축시장의 생성 가능성
물론 형태는 로마의 비트루비우스 『건축십서』 이래 미, 구조, 기능이라는 건축의 3대 요소 중 핵심 요소이다. 그렇다면 새삼 오늘에 이르러 건축 형태 요소가 보다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언뜻 생각해보면 우선 인스타그램 등 SNS에 친숙한 MZ세대들이 미장센 위주의 이미지 사진을 검색하면서 이를 공유하고 애호가나, 인플루언서 그리고 미래의 건축주들이 사진을 보며 재검색과 재공유가 이루어지는 ‘시각 중심’의 시대가 원인인 듯하다. 실제로 최근 많은 건축가들이 이미지와 웹페이지의 검색을 확인한 건축주로부터 연락을 받는다는 것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최신 건축 작업들 중 한국건축가협회 건축상의 베스트7을 비롯한 다른 건축상을 살펴보면 카페나 스테이 건축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특히 스테이의 경우 아파트 거주 비율이 50%를 넘어서면서 평천장 공간에서 일상을 보내던 많은 가족들이 모처럼 여행과 같은 비일상의 체험을 위해 혹은 주변의 소문난 카페나 테마 명소를 찾아다니며 머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팬데믹 시기를 거치면서 전국적으로 전망 좋은 카페와 스테이가 자동차라는 이동의 자유와 결합되어, 사람들이 평소 궁금했던 장소를 사진과 후기 등을 통해 검증하고 직접 찾아가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궁금하면 돈이 된다”는 업주들의 속설이 과감한 건축 형태를 통해 ‘궁금증’을 유발하는 외관을 만들어내면, “이게 집이야?” 하는 부정적 반응도 불러일으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특별함을 체험하려는 욕구가 상업적 매출로 이어지고 있다. 이 ‘집 같지 않은 집’을 체험하거나 숙박하기 위해 예약이 몰리고 건축은 비일상의 특별함을 체험하는 공간이 된다. 이미 전 세계 프리츠커상 수상자들의 건축을 무수히 체험한 재벌 그룹의 오너 일가나 고위 공무원들의 눈높이인 명품 건축시장과는 결이 다른 한국의 대중 건축시장을 잉태하고, 쇠퇴하는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는 새로운 ‘K-건축’ 현상을 만들어낼 가능성도 보인다.
스테이는 ‘낯설음’을 유발하는 비일상의 공간 체험을 통한 ‘매출 중심의 형태 건축’이라는 새로운 조형적 풍경의 공간 기계가 되고 있는 셈이다. 이는 백화점이나, 대형 쇼핑몰 등 대형 상업시설 등에서 보여주는 형태와는 또 다른 건축 장치다. 포머티브 건축사사무소(이하 포머티브)의 두 건축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미팅 자리에서 건축주들이 “소장님이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라고 하거나, “설계비 좀 더 주고, 좀 싼 재료로 특화 디자인을 하죠”라고 이야기한다고 한다. 특히 포머티브는 건축주와 설계 과정에서 의견 충돌이 생겨도, 결과적으로 스테이나 식당의 매출로 건축가의 주장을 입증하면서 제주도의 뿌리 깊은 ‘섬사람 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지난 10년간 제주도에서 약 30여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때로 건축주 설득이 잘 안 될 경우 “우리와는 잘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건축주를 거절할 수 있을 만큼 나름의 경쟁력과 건축상품 생산 이력을 확보한 전문 건축가로 발전해온 셈이다. 이는 초기 자본주의 단계를 벗어난 한국 건축산업의 새로운 변화와 잠재성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단서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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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는 조망을 따른다
1980~1990년대에 서울 인근에서 대학 시절을 보냈던 대다수의 사람들은 대성리나 강촌으로 떠난 신입생 MT를 기억할 것이다. 신입생들이 대학에 입학했다는 설렘과 함께 처음으로 동아리원이나 선배들과 함께 학교라는 형식적 공간을 벗어나 교외에서 1박 하는 명소였기에 많은 이들이 대학 시절의 추억으로 이 지역을 떠올린다. 그때는 대개 펜션이나 콘도가 많지 않은 시기여서 민박집을 활용해 대형 숙소 한두 개를 빌려 무박에 가까운 1박을 한 뒤, 다음 날 보트를 타거나 족구를 하고 오후에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한때 펜션이 독채를 빌려서 10~20명 전후의 사람들이 함께 숙박하면서 야외 바베큐 파티가 가능한 공간으로 특화되며 전국적으로 붐을 이뤘지만 숙박시설이라는 프로그램 이외에 별다른 건축적 특성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반면 근래에 등장한 숙박 공간인 (‘머무는 곳’이라는 뜻의) 스테이는 풍광이 유사한 우리나라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특이한 공간을 찾는 이들에게 대안으로 주목받았다. 이들에게는 조망과 체험을 제공하는 건축 공간도 일종의 공유 콘텐츠인 셈이다. 인스타그래머블 공간(Instagrammable space)을 찾아 비일상적 체험을 진행하고 이를 SNS를 통해 공유하고 조회수를 검색하는 일종의 ‘뷰 건축’을 추구하는 것이다. 포머티브의 제주 스테이 작업인 트믐(2022)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곳의 2층에서 볼 수 있듯, 텐트 안에서 바다 풍경을 조망하는 뷰를 위해 건물 내부의 중앙계단은 물론, 침대, 욕실, 내부 계단, 외부 창호 등 여러 요소들이 전부 세심하게 조직되어 있다. 이 곳의 사진을 보거나 직접 방문하면 폐쇄적 외관부터 궁금증을 유발하며 하루쯤 머무르고 싶다는 욕망이 생긴다. 내부 천장과 외관의 주요 인자가 되는 특유의 텐트 뷰 삼각지붕이 비일상 체험의 핵심 도구로 자리 잡은 것이다. 포머티브는 제주에서 보이는 귤밭 뷰, 돌담 뷰, 능선 뷰, 바다 뷰 등 농어촌 풍경의 재발견을 가능케 하는 다양한 높이의 조망과 입체적인 공간 해석을 통해 조망 중심의 건축 형태와 내부 공간 그리고 적절한 재료와 디테일로 완성도 있는 건축을 만들어내고 있다. 또한 포머티브의 스테이나 주택에서 보이는 흥미로운 특징 중 하나는 ‘문 없는 건축’의 등장이다. 충주 마당집(2022)처럼, 삼각지붕이 이어지는 2층 침실로 향하는 위치에 문을 만들면 호수 조망으로 펼쳐진 침실과 2층 브리지의 연결성이 깨지거나, 제주 청수곶(2023)처럼 망루형 침실이 조망과 함께 수직 공간의 확장성이 하나의 공간 안에서 읽혀야 하는 경우 문을 달지 않는다. 야외 공간으로의 확장이나 별채 공간 분리를 위해 접이문이나, 폴리카보네이트 문 등도 설치하며 담장으로 둘러진 외부 조망과 함께 최대한 시각적 연결과 공간 확장 가능성을 마련하려 한다. 때로는 화담재(2023)처럼 담장에도 문을 달아 필요시 외부 자연과 적극적으로 연결할 수 있게 공간의 유동적 활용을 배려하고 있다. 또한 최근 준공된 행원리 스테이(2023)의 경우 툇마루나 마루형 침대, 실내 나무 등을 적극 활용해 스테이 내부에서 별채 두 채가 옥외 공간을 중심으로 마주 보고 있는 듯한 새로운 공간 경험을 선사하기도 한다. 특히 제주 영평동 주택&카페(2023)는 호기심을 자아내는 삼각지붕과 포물선 지붕의 서로 다른 형태적 메시지가 흥미롭다. 건축주가 운영하는 여행사 오피스를 겸한 카페 공간은 전면에 꺾인 포물선형 지붕의 우아한 처마선을 모티브로 삼고 있어 상층부로 올라가 쉬고 싶은 욕망을 자아낸다. 반면 경사진 마당 너머로 높은 위치에 자리한 단독 주택은 거실에서 보면 아래로는 녹색 마당과 구운 대나무 틈새로 보이는 주차장이 내려다보인다.위로는 2층의 다락방과 수직 계단으로 연결되며 레벨을 살짝 낮춘 거실 바닥부터 삼각지붕의 다락까지 이어진 멀티 레벨의 다층적 공간 체험을 선사한다.
현재 제주도에서는 서울의 디자인 업체인 이룩(2look), 지랩(Z-Lab) 등이 스테이나 카페 설계의 강자들로 알려져 있다. 이전의 콘도, 펜션이나 호텔은 워크숍, 친교 모임, 운동 등 다른 주요 액티비티를 마친 후 휴식하는 숙박이 주 기능이었다. 하지만 스테이는 규격화된 여행이 아닌 특별한 스테이 공간을 먼저 선정하고, 그곳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힐링과 휴식이 된다는 점에서 그 자체가 목적형 공간이 된다. 공간 큐레이션 플랫폼인 스테이폴리오의 공동대표 임정욱의 말처럼 스테이는 “머무름만으로도 여행이 되는” 독창적 경험을 제공한다. 그런데 이 ‘스테이’라는 용어는 언제부터 건축적인 용어로 쓰였을까?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템플 스테이’라고 명명된 프로그램이 공식 도입됐다고 한다. 템플 스테이는 특정 종교시설에서의 숙박으로 체험형, 휴식형 등의 옵션이 있기는 하지만 일반 숙박과는 차이가 크다. 포머티브와의 대담에 따르면, 지난 2013년 돌집 프로젝트를 계기로 제주와 인연을 맺었고, 이 시기 토리코티지 스테이를 연이어 설계하면서 마케팅과 브랜딩 분야에 몸담았던 건축주가 스테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2014년 신라호텔에서 ‘신라스테이’라는 법인을 별도로 설립한 것을 감안하면 대략 2010년대 초반에 이 용어가 쓰이기 시작해 이후 보편화된 것으로 짐작된다. 호텔과 스테이의 차이는 공동주택과 단독주택의 차이만큼 크다. 보통 별채로 구성되는 스테이는 아이가 뛰고 싶을 때 뛰어도 되는 등 소리나 활동의 자유도가 크고 호텔처럼 규격화되어 있지 않아 독립성을 가진다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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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 욕망의 건축적 가능성
보편적으로 욕망은 부정적인 인식이 강한 단어로, 사회화된 제도권에서는 일상적으로 쓰이지 않는 표현이다. 형태적 욕망 또한 다소 보수적인 한국 건축에서는 금기시되는 경향이 있었다. 철학자 자크 라캉은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명제를 통해 진짜 주체인 나의 욕망이 아니라 타인으로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기 위해 언어를 배우는데 그 언어가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의 담론이자 욕망이라고 이야기한다. 욕망은 결핍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라캉의 주장과 달리, 탈구조주의 철학자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는 욕망을 생산적인 힘으로 여긴다. 이들은 자본주의가 단순히 경제적인 시스템이 아니라 우리의 욕망과 열망을 형성하는 시스템이라고 여기며 욕망과 정치의 관계에 대한 탐구를 통해 욕망이 사회적 변화를 창출하는 정치적인 힘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건축에 적용해 보면, ‘건축 형태에 대한 욕망’도 자본주의에서 등장하는 욕망 충족을 위한 공간상품의 일종이라고 생각된다. 스테이는 공동주택이라는 규격화된 상품에서 벗어나 사회적 변화를 분출하는 힘이 되어 하나의 비일상 체험의 건축장치로 등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소위 자하 하디드의 작업이나 프랭크 게리의 작업은 일반적 건축이라기보다는 아티스트적 건축의 예외적 성격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포머티브의 작업은 하디드나 게리와는 다르게 한국 건축 설계 방식의 제도적 틀에 속하면서도 일반적 건축설계 과정에서 보다 더 강한 형태적 가능성을 추구하고 있다. ‘포머티브’라는 이름처럼 조형적 욕망과 기호가 이들의 작업에 강하게 남아 있기도 하지만 이들이 주로 설계하는 스테이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의 현대건축적 특성과도 관련이 있다. 원래 영어 포머티브(formative)는 조형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사람이나 어떤 대상이 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하는 시기와 관련이 있다. 즉 형성적 체험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지는 형성기와도 관련이 크다. 포머티브의 이름을 통해 유추해보면 이런 두 가지 의미를 함축적으로 차용하면서 건축적으로 자신들의 작업에서 형태적 조형성은 물론 이를 형성해가는 “프로그램과 구조를 포함하는 건축적 개입”을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으려는 의도가 보인다. 금기시되던 조형성 중심의 형태 욕망을 건강하게 자신들의 과업으로 받아들이고 자연 조망과 적절한 차폐, 건축 재료의 특화, 내부 공간의 특별한 천장과 시각적 장면성 등을 토대로 자신들의 건축적 특질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건축적 특성들이 머지않아 형성될 ‘K-건축’의 특별한 독자성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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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서구 건축가들의 훌륭한 작품을 보자. 가령 노먼 포스터의 애플 사옥(애플 파크)이나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제임스-사이먼 갤러리만 보더라도 미니멀한 형태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 작업들이었다. 우리나라에 지어진 것을 생각하면 한국타이어 테크노 돔이나 아모레퍼시픽 사옥과 같은 극소수의 초고가 프로젝트, 즉 명품 건축시장의 작업만 눈에 띌 뿐이다. 하지만 포머티브의 작업은 아직 소규모 프로젝트에 국한되어 있지만 한국 건축설계 산업에서 미니멀리즘 중심이 아닌 형태 중심 건축의 다양성을 제공하고, 대중 중심의 ‘매스티지 건축시장’을 만들어낼 수 있는 담대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지도에 없는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어려움이 있겠지만 이들의 혁신과 노력에 갈채를 보내며, 이들의 새로운 작업에 큰 기대를 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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