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4년 3월호 (통권 676호)
올해 1월, 2024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의 설계자로 매스스터디스(대표 조민석)가 선정됐다. 이로써 조민석은 2014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 수상에 이어 10년 만에 다시 한번 세계 건축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이번 프레임은 개소 20주년을 지나 중요한 분기점을 맞은 매스스터디스의 작업 목록을 기존의 다이어그램적 시각에서 벗어나 ‘파빌리온’이라는 틀 안에서 새롭게 조명한다. 이 여정에 함께한 박정현 (건축비평가)과 존홍(서울대학교 교수)은 대지와 맥락에 뿌리내리면서도 텅 빈 중심(보이드)을 통해 연결과 장면 전환을 이끌어내는 작업들 사이의 연관성과 차이점을 밝히며, 이번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 ‘군도의 여백’으로 수렴되는 건축의 계보와 징후들을 추적해나간다.
2024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 군도의 여백(2024) 렌더링 이미지 ⓒMASS STUDIES / Image courtesy of Serpentine
DIALOGUE 박정현 건축비평가 × 조민석 매스스터디스 대표 × 존홍 서울대학교 교수
대화를 시작하며: 파빌리온과 안티-파빌리온
조민석(매스스터디스 대표)의 작품에 대한 논의를 ‘파빌리온’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구성하는 시도는 흥미로운 출발점이다. 이번 프레임에서 소개할 매스스터디스(이하 매스)의 프로젝트는 ‘파빌리온’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참조하려고 한다. 『미리엄 웹스터 사전』에서는 파빌리온을 “정원, 공원 또는 레크리에이션 장소에서 오락이나 쉼터로 사용되는 일반적으로 개방된 때로는 장식적인 구조물”로 정의하고 있지만, 실제 건축에서 파빌리온은 이론적 비중이 더 크다. 건축 담론에서 봤을 때 ‘파빌리온 건축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은 건축의 잠재적 가능성을 다루는 근본적인 정의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 파빌리온은 건축적 선언, 새로운 기술, 새로운 사회문화적 조건을 구현하고 시험하는 장으로 기능해왔다.
일례로 1914년 브루노 타우트의 유리 파빌리온을 떠올려보자. 쾰른에서 열린 제1회 독일공작연맹 전시회를 위해 제작된 프리즘 형태의 유리 돔은 새로운 형태의 유리 사용에 대한 지형학적, 기술적 명상일 뿐만 아니라 예술과 건축이 기능을 초월하여 정신적 자유를 불러일으키기를 촉구하는 유토피아적 표현주의 선언이기도 했다. 그 이후 건축 역사를 살펴보면, 파빌리온은 항상 건축적 선언을 담는 새로운 역할을 수행했다. 브루노 타우트의 유리 파빌리온은 전시가 끝나자마자 해체됐지만, 건축가의 사고가 가장 잘 드러난 작품으로 여전히 제일 많이 회자되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조민석 버전’의 유리 파빌리온이라 할 수 있는 ‘군도의 여백(Archipelagic Void)’은 그의 건축 사상을 어떻게 드러내는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잠시 숨을 고르고 그의 파빌리온을 주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다. 그의 작업은 ‘오브제’가 아니다. 건축 파빌리온이 공간적, 지형적 선언을 정의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대개 그것을 하나의 사물로 압축하게 만든다. 브루노 타우트가 자신의 생각을 문자적, 은유적으로 결정화해 개념을 명확히 전달한 것처럼,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이하 서펜타인 파빌리온)을 포함해 건축 파빌리온의 역사 역시 작가라는 개념(authorship)을 하나의 그릇에 담아 증류시켜 공표하려는 시도로 점철되어 있다.
그러나 ‘군도’와 ‘여백(보이드)’은 ‘특이성(singularity)’과 ‘객관적 실재성(thingness)’에 반대된다. 이러한 개념적 구도를 따라 파빌리온을 만들어냄으로써 조민석은 본질적인 ‘안티-파빌리온’을 창조해내고 있다. 게다가 군도의 여백의 반객체성은 물리적-현재적인 동시에 개념적-일시적이다. 후자의 의미에서, 이 파빌리온은 문화적 산물인 서펜타인 파빌리온의 역사가 중첩된 공간이다. 중심을 채우는 것으로 이 선언을 종결하는 대신, 보이드의 형태로 이어나가는 프로세스다. 보이드는 공간과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데, 보이드는 그곳에 머물며 일어날 활동과 그것을 이끌어내기 위해 만들어진 선언적 중심을 잉태하고 있다. 전자의 관점에서 파빌리온의 물리적-현재적 특성은 다섯 개의 서로 다른 구조물(섬)로 이루어진 군도의 위상으로 정의될 수 있다. 파빌리온 내부의 공간은 외부에 정의된 공간 못지않게 중요하며, 파빌리온은 그 자체로 순환적 흐름, 다양한 용도, 주변 맥락과의 관계 등 보다 현장의 특성에 대응하며 객체(오브제)가 되기를 거부한다.
다행히도 파빌리온이란 단어가 지닌 포용성은 새로운 개념의 매개체로서 안티-파빌리온을 끌어안는다. ‘테제’와 ‘반테제’라는 개념이 동전의 양면처럼 중요한 의미를 지니듯, 안티-파빌리온의 역할은 건축 담론의 흐름에 중요한 아이디어를 불어넣는다. 그렇다면 조민석의 안티-파빌리온은 그의 작품에서 어떻게 구현되는 것일까? 이어지는 대화를 통해 군도의 여백이 개별 프로젝트를 통해 뻗어나가는 개념적 스펙트럼을 포착하고자 한다. (글 존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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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국의 2024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의 건축가로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