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4년 5월호 (통권 678호)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이 1986년 과천으로 신축 이전됐고, 그 전후로 아르코 미술관(전 미술회관, 1979), 환기미술관(1992), 부산시립미술관(1998), 아트선재센터(1998) 등이 완공되며 미술관이 양적으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이로부터 30~4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오래된 미술관들은 건물의 노후화로 인해 리노베이션에 직면했다. 개보수의 필요에 더해 미술관에 요구되는 역할과 공간 또한 변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오래된 미술관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이번 리포트에서는 리노베이션을 맞이한 국내 미술관들의 움직임과 함께, 우리의 참조점이 될 만한 서구의 사례를 살펴본다.
①국내의 오래된 미술관, 관람객을 향해 열리다
②모더니즘 이후 서구 미술관, 소장에서 발화로 나아가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1986) 외부 전경 Image courtesy of MMCA / ©Park Junghoon
미술관 건축의 변화
25년의 간격을 두고 신축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이하 과천관)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이하 서울관)의 설계 배경은 각 시대가 요청한 미술관의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과천관은 1986 서울 아시안 게임과 1988 서울올림픽이 개최된 시기와 맞물려 완공됐다. 청계천 자락에 위치하고 운영 주체가 전혀 다른 서울대공원 부지를 통과해야 하는 등 접근성이 취약한 대지에 과천관이 자리 잡은 이유는 신축 당시 무엇보다 ‘세계적 규모’를 우선했기 때문이다. 부산시립미술관 또한 한국의 정치사회적 맥락과 밀접하게 연관된 작업으로, 과천관 개관과 1988 서울올림픽 개최 이후 국가 주도에서 지자체 주도로 문화 부흥의 단위가 변화해나가는 와중에 건립됐다. 2013년에는 서울관이 완공(「SPACE(공간)」 551호 참고)됐는데 설계공모 심사 당시 민현준(홍익대학교 교수)의 발언을 살펴보면, 미술관의 역할이 모뉴멘트에서도, 또 미술품을 담는 화이트 큐브에서도 더 나아갔음을 알 수 있다. 민현준은 지난 시대의 미술관 이데올로기가 ‘화이트 큐브’라면 미래의 이데올로기는 ‘장소특정성’이라고 말했는데,▼1 그 장소에서만 성립하는 체험을 제공한다는 의미인 장소특정성은 이소자키 아라타가 1991년경에 언급한 ‘3세대 미술관’ 개념과 연결된다. 이에 더해 민현준은 “인터넷을 통해 많은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하나의 이미지를 전 세계가 쉽게 공유하는 ‘스펙터클의 시대’에 미술관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니콜라 부리오의 주장과 같이 관객과 작가가 직접 조우하는 ‘작은 관계’들이 강조되어야”▼2 한다고 말했다. 최종적으로 엠피아트 시아플랜 컨소시엄의 서울관은 ‘공원 같은 건축, 풍경 같은 미술관’을 표방하며 전시 관람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편안하게 미술관을 방문할 수 있도록 고려됐고, 선형 동선이 아닌, 관람객이 직접 전시장을 선택할 수 있도록 꾸려졌다. 관람객 친화적인 미술관으로 변화하는 흐름과 연관해 시각문화 연구자 윤원화는 “20세기 후반에 미술관의 양적 팽창과 질적 변화가 병행되면서 미술관 건축은 (…) 대중적 관광 명소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3고 언급했고, 사회학자 카트린 발레는 ‘미술관의 종합문화공간화’라고 표현했다. 더 나아간 논의로 비평가 클레어 비숍은 “스마트폰 촬영과 소셜 미디어를 통한 사진 및 동영상의 공유가 확산되면서, 미술관에서의 작품이 춤과 같은 이벤트적 장르로 변화”한 것에 주목했고, “이러한 작품은 기존의 공연과 달리 미술관 구석구석에서 장시간 가동되고 관람객은 지나치듯 산만하게 관람”▼4 한다고 말했다. 이는 카페 건축처럼 미술관 건축 또한 관람 경험을 넘어 소셜 미디어상에서 어떻게 보이고 공유되는지가 중점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2002 리노베이션) 외부 전경 Image courtesy of Seoul Museum of Art / ©Kim Yongkwan
앞서 윤원화가 언급한 미술관의 ‘질적 변화’는 각 미술관이 마주한 상황에 대응하며 진행됐다. 일례로, 1997년 과천관은 조각 전시장으로 쓰이던 원형전시실 2층을 어린이 미술관으로 변모시켰는데 이는 당시 미술관이 수행하던 수집, 보존이라는 일차적 기능에서 벗어나 대중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을 수용하기 위해서였다. 1998년 아트선재센터는 영화제 외에는 영화 기획 프로그램을 선보일 자리가 없었던 때 지하를 영화관으로 계획하며 개관했다. 21세기에 들어서며 서울시립미술관은 적극적으로 분관 체제를 도입해 대안 공간 성격의 SeMA 벙커(2017), 백남준 기념관(2017) 등을 조성해 문화예술 시설이 빈약한 각 지역에 문화예술의 거점을 만들었고 최근에는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2023), 서리풀 개방형 수장고(건립 예정)를 계획하며 소장품 증가에 따른 공간의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아카이브를 새롭게 보여줄 수 있는 방식을 선보였다. 대중성, 공공성, 효율성 등 미술관의 역할과 공간이 밀접하게 연관되며 변화한 가운데, 전시 형식과 공간 간의 상호 연관성에 대한 논의는 비교적 미미했다. 이러한 담론이 외국과 비교해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은 점에 대해 임근혜(당시 국립현대미술관 전시2팀장)는 “국립현대미술관이 1969년, 서울시립미술관이 1988년에 개관했지만 학예실이 설치된 것은 각각 1986년과 2002년 전후이므로 (…) 실제 큐레이터십의 역사는 오랜 기간 전문가 없이 행정직이 기관장과 직원의 역할까지 담당”▼5했기 때문이라 해석하기도 했다.

환기미술관(1992) 외부 전경 Image courtesy of Whanki Foundation ·Whanki Museum

부산시립미술관(1998) 외부 전경 Image courtesy of Busan Museum of Art
리노베이션을 앞둔 미술관의 움직임
리노베이션을 앞둔 우리나라의 미술관들은 미술관 공간을 주제로 삼은 전시를 다수 열면서 오래된 미술관과 현재를 연결 짓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먼저, 과천관과 아트선재센터는 기존 공간에 파빌리온과 같은 건축적 개입으로 공간 다시보기를 시도했다. 과천관에서는
공간에 대한 건축적 개입은 없었지만 미술관 공간을 주제로 다룬 전시도 다수 있었다. 아르코미술관은

조호건축의 시간의 정원(2022)은 옥상정원에 자리한 열린 캐노피 구조의 대형 설치작이다. 수많은 파이프로 구성된 설치작에 계절과 날씨에 따라 매일 다르게 투영되는 빛과 그림자의 변화는 순간의 연속성, 시간의 흐름을 시각화하며, 자연의 감각과 예술이 공명하는 시공간을 펼쳐낸다. Image courtesy of MMCA / ©sugarsaltpepper

다이아거날 써츠의 쓸모없는 건축과 유용한 조각에 대하여(2021)는 미술관에 도달하기 전 기대와 호기심이 담긴 기다림의 미학을 주제로 한다. Image courtesy of MMCA / ©Park Swan
리노베이션에 관한 건축적 논의
2023년 8월 리노베이션을 마친 아르코미술관과 현시점 리노베이션을 진행하고 있는 부산시립미술관은 단순한 개보수를 넘어 관람객에게 열린 미술관을 만들고자 했다. 아르코미술관은 전시장 조명 교체, 노후 바닥 및 벽면 보수 등 전시장을 개보수하는 동시에 프론트스페이스 및 라운지 공간을 리노베이션했다. 전이 공간과 같은 라운지 공간의 리노베이션을 맡은 소수건축사사무소(공동대표 고성홍, 김미희)는 관람객들의 쉼을 위한 역할은 물론이고 필요한 경우 전시, 강연 등이 열릴 수 있는 다목적 공간으로 구성해 달라는 미술관 측의 요청에 맞춰 기존의 간결한 평면의 형태는 살리고, 유닛 가구들을 배치하는 방법을 택했다. 부산시립미술관은 시설 개보수, 연면적 약 2만 2,000m2에 달하는 전시 공간 및 수장고 확충과 더불어 외부로의 개방감 확보, 지하 선큰가든과의 연결을 위한 주 출입구 계획과 입구, 로비, 카페테리아를 잇는 서비스 공간 증설을 설계공모에서 요청했다. 이를 통해 박스형 전시 공간에서 탈피해 평면, 입체, 미디어 등 모든 장르의 융합이 가능한 공간을 확보하고, 미술관 내외부의 시각적 경계를 허물어 각 공간 간의 관계를 유연하게 하면서 리미널 스페이스에 대한 경험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기존의 건축 틀 안에서, 늘어나는 프로그램, 전시, 관람객 수 등을 수용하기 위한 전략으로 유동적인 공간에 주목한 리노베이션이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건축적 가치가 있는 오래된 미술관을 어떻게 리노베이션할지에 대한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의 경우 1920년대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옛 대법원 건물을 2002년 미술관 용도로 리노베이션한 건물로,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동시에 정동문화역사지구에 속해 있다. 이에 기존의 파사드를 유지하고자 지상층 대신 지하층에 전시장, 수장고, 편의시설을 연면적 3,000m2로 규모로 증축할 계획이다. 김종성(서울건축 명예사장)이 설계한 아트선재센터는 2016년에는 로비 개선을, 2022년에는 내부 계단 확장과 옥상정원을 조성했고 그때마다 서울건축과의 긴밀한 협의 아래 진행했으며, 향후 전면적인 리노베이션이 이루어지더라도 이러한 태도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 전했다. 현재 리노베이션을 진행 중인 환기미술관 또한 외형적인 증축 없이 일부 오래된 시설들을 순차적으로 교체하고 있으며, 이러한 보수적 차원의 단계에서도 설계자인 우규승(우규승 아키텍츠 대표)과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다. 과천관의 경우, 과거 과천관 완공 30년 특별전으로 ‘공간 변형’을 제목에 내건 전시 <공간 변형 프로젝트-상상의 항해>(2016)를 개최했는데, 여기서 황두진(황두진건축사사무소 대표)은 전시 제목과 상반된 의미를 가진 ‘공간 사수’라는 작업을 선보였다. 과천관은 꾸준히 현대적인 미디어아트 등을 전시하기 위한 기본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왔고 황두진은 이에 주목해 현대를 ‘탈-배관 시대’라 정의내리며 자동차 배터리를 활용해 전자 기기를 구동하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건축의 핵심이 되는 기본 조형 및 배치, 공간과 구조의 얼개 등을 유지하면서 최신 기술을 동원해 현실적으로 필요한 요구를 수용하는 방안을 모색”▼6한 것이다. 실제로 과천관은 과거 리노베이션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고, 이 논의에서 황두진은 “과천관은 언젠가는 문화재로 지정될 가능성이 있는데, 이때 원형이 손상되었다는 이유로 지정이 무산되지 않을 범위 내에서의 변화만을 수용”▼7하자고 주장했다. 이처럼 김태수, 김종성, 우규승 등 우리 근현대 건축에 영향을 미친 건축가들이 설계한 미술관들은 등록문화재 등록 조건인 완공 50년을 앞두고, “미술 작품을 전시하기 위한 배경이면서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8인 미술관 건축을 어떻게 변경할지에 대한 논의로 나아가는 듯 보인다.

아트선재센터(1988) 외부 전경 Image courtesy of Art Sonje Center / ©CJYART STUDIO (Cho Junyong)

준양의 패럴랙스 한옥(2016)은 본관 옆 별관처럼 사용해오던 한옥 건물을 카페 겸 바로 전환한 작업이다. 준양은 이를 통해 카페나 바가 예술 기관 내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질문을 던졌다. Image courtesy of Art Sonje Center / ©Kim Sangtae

최춘웅의 출구전략(2014)은 아트선재센터의 1층 라운지 공간을 가로질러 두 개의 피난경로를 연결하는 새로운 복도다. 길이 15m, 폭 180cm의 복도는 미술관 공간 구조에서 지극히 낯선 40도 각도로 배치되어 있고, 최소한의 노력으로 라운지 공간을 5개로 나누고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Image courtesy of Art Sonje Center / ©Kim Jong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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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민현준, ‘전시공간으로 건축물의 용도를 변경하고 리모델링을 진행할 때’, 「월간미술」 469(2024. 2.), 89쪽.
2. 민현준, 위의 글, 89쪽.
3. 윤원화, ‘건축과 미술 사이에서: 미술관 건축을 전시하기’, 「건축신문」, 2019년 8월 29일, http://architecture-newspaper.com/v23-c06-museum/, 2024년 4월 15일 접근.
4. 클레어 비숍 외 12인, 『미술관은 무엇을 움직이는가: 미술과 민주주의』,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2020, 9쪽.
5. 임근혜 외 28인, 『큐레이팅을 말하다』, 파주: 미메시스, 2019, 245쪽.
6. 황두진 외 11인, 『국립현대미술관 연구: 위기를 생각하는 미술』,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2020, 263쪽.
7. 황두진, ‘건축가 황두진의 레거시 플레이스 ⑮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SPI」, 2023년 1월 13일, https://seoulpi.io/article/99972, 2024년 4월 15일 접근.
8. 황두진 외 11인, 『국립현대미술관 연구: 위기를 생각하는 미술』,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2020, 261쪽.
9. 1996년 함부르거 반호프 현대미술관이 개관하면서 베를린 신국립미술관은 20세기 초부터 1960년대까지의 유럽 회화와 조각 작품을 소장하는 미술관으로 바뀌었다. 1968년 이후의 현대미술 작품들은 함부르거 반호프 현대미술관으로 옮겨갔다.
10. 모마는 오래도록 회화 및 조각 분과, 판화 및 드로잉 분과, 건축 및 디자인 분과 등이 각각 따로 소장선 전시를 제시해왔는데, 2015년 처음으로 1960년대 소장품 섹션에서 통합 큐레이팅을 시도했다. 임근준, ‘미술관 소장선을(이) 형성하는 비평적 역사관: 미술사의 헤게모니를 직조 및 추동하는 소장선을 구축하고 업데이트하기’, 「세마 코랄」, 2021년 9월 18일, http://semacoral.org/features/chungwoolee-limguenjun-collection-critical-historiography/, 2024년 4월 19일 접근.
11. 임근준, 위의 글.
12. 개관한 지 20년이 지난 1997년, 퐁피두센터는 전시 공간 확장 및 리셉션 시설 개선을 목표로 한 리노베이션을 원 설계자인 리처드 로저스, 렌조 피아노와 진행했다.
13. 공동 설계자인 리처드 로저스는 2021년 12월 18일 작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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