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4년 5월호 (통권 678호)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이 1986년 과천으로 신축 이전됐고, 그 전후로 아르코 미술관(전 미술회관, 1979), 환기미술관(1992), 부산시립미술관(1998), 아트선재센터(1998) 등이 완공되며 미술관이 양적으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이로부터 30~4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오래된 미술관들은 건물의 노후화로 인해 리노베이션에 직면했다. 개보수의 필요에 더해 미술관에 요구되는 역할과 공간 또한 변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오래된 미술관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이번 리포트에서는 리노베이션을 맞이한 국내 미술관들의 움직임과 함께, 우리의 참조점이 될 만한 서구의 사례를 살펴본다.
①국내의 오래된 미술관, 관람객을 향해 열리다
②모더니즘 이후 서구 미술관, 소장에서 발화로 나아가다

뉴욕현대미술관(이하 모마, 2019) 외부 전경 Image courtesy of Diller Scofidio + Renfro / ©Brett Beyer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현대미술관은 20세기 후반 미술관의 양적 팽창과 질적 변화의 흐름 속에 생겨났다. 현대미술의 발전과 궤를 같이하는 미술관은, 그 역할과 확장에 대한 논의가 변화를 선두에서 이끈 서구에서 우리보다 한발 앞선 시기에 진행됐다. 시대를 거듭하며 미술관을 향한 요구와 기능이 점차 확대되면서 미술관 공간도 변화에 대응해야 했던 것이다. 다만 미술관이 건립되고 발전하기까지 태생부터 다른 조건과 환경을 가진 서구 미술관의 변화는, 국내 상황과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이번 장에서는 20세기에 건립되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리노베이션을 거듭하며 미술관의 외연을 넓히는 동시에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주력해온 네 곳의 미술관 - 뉴욕현대미술관(1929), 베를린 신국립미술관(1968), 퐁피두센터(1977), 테이트모던(2000) - 을 살펴본다.

모마의 뮤지엄 숍 내부 전경 Image courtesy of Diller Scofidio + Renfro / ©Brett Beyer
현대미술을 수용하는 건축
뉴욕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 MoMA, 이하 모마)은 1929년 현대미술에만 전념하는 기관의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예술 후원가 세 명에 의해 설립됐다. 19세기 유럽을 중심으로 전개된 모더니즘 미술은 20세기에 이르러 서서히 판도가 바뀌는데, 그 중심에는 미국이 있었다. 일찍이 이러한 흐름을 포착한 록펠러 가문을 비롯한 후원가들은, 뉴욕 맨해튼 5번가의 핵셔 빌딩 12층을 임대해 갤러리 여섯 개를 갖춘 미술관을 개관한다. 후원자들은 무엇보다 상업 화랑이나 갤러리가 아닌, 대중들에게 열린 미술관을 마련하고자 했다. 대중에게 새로운 문화를 전달하는 미술관으로서의 역할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개관 초기에는 주로 유럽 모더니즘 미술을 수용해 전시하는 데 집중했다. 동시에 그동안 지엽적으로 받아들여진 미국 미술을 국제적인 흐름 속에서 알리고자 했다.
모더니즘을 향한 미국 사회 내 열의는 모마 개관과 함께 계속되었고, 소장품 및 방문객 수 증가로 규모 확장이 필요해지면서 1939년 필립 굿윈과 애드워드 듀렐 스톤, 필립 존슨이 맨해튼 53번가에 설계한 국제 양식(International Style)의 미술관이 개관한다. 4년에 걸쳐 지어진 미술관은 매끈한 흰색 대리석 마감에, 당대 새롭게 개발된 단열유리(Thermolux)를 사용한 외관으로 구성됐다. 6층 규모의 건물은 이전보다 세 배 이상의 전시 공간을 수용하면서 동시에 영화 프로그램을 위한 강당, 도서관, 사무실 공간도 두 개 층에 갖추게 된다. 이러한 확장은 모마의 초대 관장인 알프레드 바가 회화와 조각뿐 아니라 상업미술과 영화, 뉴미디어, 사진, 책 등 다양한 매체를 현대미술의 작품이자, 현대미술관의 소장품으로 보는 관점에서 비롯됐다. 또한 국제 양식으로 구현된 모마의 외관은 인근 브라운스톤 및 보자르 양식의 타운하우스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모더니즘 건축으로의 전환을 보여주었다.

퐁피두센터(1977) 외부 전경 Image courtresy of RSHP

퐁피두센터는 건물의 기능적 요소인 구조와 기계, 동선이 외부에 그대로 노출된다. Image courtresy of RSHP / ©David Noble
이러한 상황은 유럽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현대미술의 발전과 함께 미술관의 역할을 재고하면서 기존과는 다른 미술관을 필요로 하게 된 것이다. 1969년 당시 프랑스 대통령인 조르주 퐁피두는 파리의 중심지에 예술과 문화가 공존하는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프랑스에는 1793년 개관한 루브르박물관이 있었지만, 변화하는 현대미술을 수용하는 공간은 고전적인 미술관과 다른 성격을 가져야 했다. 무엇보다 파리 내 대규모 공공도서관이 필요하다는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도서관과 현대미술이 복합된 기관을 건립한다. 1971년 진행된 국제설계공모에 당선한 리처드 로저스와 렌조 피아노는 2만m2 규모 부지의 절반을 미술관 건물로, 나머지 절반을 광장으로 구성한다. 유리와 강철로 이루어진 건물은 기능적 요소인 구조와 기계, 동선이 외부에 그대로 노출되는 외관을 특징으로 하는데, 렌조 피아노는 “단일한 건물이 아니라 그 자체로 미술과 책, 음악 등 다종다양한 예술을 발견할 수 있는 도시”를 염두에 두고 디자인했다고 밝혔다. 1977년 완공된 퐁피두센터는 6층 규모에서 총 1만 2,210m2를 전시 공간에, 1만 400m2를 도서관에 할애하고 있으며 영화관 두 개와 공연장, 회의실, 미술 자료 보존 및 열람실을 갖추고 있다.
1968년 개관한 베를린 신국립미술관의 건립에는 예술의 흐름과 더불어 정치적, 역사적 상황이 큰 영향을 미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인해 기존의 국립미술관이 파괴되고, 전쟁 후 베를린이 동서로 나뉘면서 소장품과 미술을 수용하는 기관 또한 분리되어야 했다. 기존 국립미술관은 동독 지역에 위치해 손상된 부분을 수리해 사용할 수 있었다면, 서독 지역에는 별도의 기관이 없었기에 서베를린 당국은 1962년, 미스 반 데어 로에에게 새로운 미술을 담을 공간을 의뢰한다. 대부분 미술관이 신고전주의 형식으로 지어지던 시절, 미스는 유리와 철로 구성된 정사각형의 미니멀한 외관을 구현해 현대미술관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건축을 완성한다. 철골 기둥 여덟 개가 1.8m 두께의 정사각형 강철 지붕을 떠받치는 가운데, 유리 벽으로 둘러싸인 이 공간은 ‘거대한 열린 공간과 구조적 투명함이 갖는 의미의 논리적 집대성’을 표현하여 현대미술관으로서의 잠재력을 보여준다. 다만 이 독특한 건축 구조로 인해 유리 벽으로 둘러싸인 1층을 전시장으로 사용할 때는 내부를 칸막이로 막아야 했으며, 수집과 연구를 위한 공간, 도서관, 뮤지엄 숍 등 주요 프로그램은 지하 층에 배치됐다.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베를린 신국립미술관은 20세기 초에서 1960년대까지의 유럽 회화와 조각 작품을 소장하는 현대미술관으로 자리매김한다.▼9

베를린 신국립미술관(2021) 외부 전경 Image courtesy of David Chipperfield Architects / ©Simon Menges
21세기 미술관을 위한 변화와 시도
영국 테이트모던의 전신은 1897년 개관한 테이트갤러리다. 하지만 20세기에 소장품 포화 상태에 이르렀을 뿐 아니라, 주변 국가인 프랑스와 독일을 의식해 현대미술에 특화된 랜드마크 격 미술관을 건립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테이트모던은 세계 근현대미술 컬렉션을 소장하는 영국의 공립 미술관으로, 규모나 성격 면에서 모마, 퐁피두센터와 일견 구분되나 도시의 심장부에서 문화적 역할을 염두에 두고 계획됐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1995년 건축가로 초청된 헤르조그&드 뫼롱은 옛 공장 건물인 뱅크사이드 발전소를 개조해 2000년 테이트모던을 완공한다. 테이트갤러리는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 현대미술관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1917년부터 컬렉션을 준비 중이었고,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갤러리’에서 ‘미술관’으로 규모를 확장한 것이다. 기존 공장 건물의 구조를 살려 리노베이션한 미술관은 종래의 미술관처럼 절제된 형식이 아니라는 점에서 건축 그 자체로 21세기의 미술관을 암시한다. 가령 기계가 가동되던 터빈 홀은 테이트모던의 입구이자 높이 35m에 달하는 대규모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이외 각 층에 흩어져 있는 전시 공간도 5m에서 12m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높이와 크기, 비율로 계획해 규모에 구애받지 않고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한편 1939년 개관으로부터 약 50년이 지난 시점에 모마는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준비한다. 1990년대에 이르러 소장품 및 관람객 수 증가와 더불어 관람객과의 소통, 일상을 위한 미술관, 교육 기관으로서의 역할 등이 강조되면서 ‘21세기 미래의 미술관’으로 새로운 도약을 꾀한다. 1950년대 중반부터 미국 현대미술이 국제 미술계에서 주요한 흐름을 차지하게 되면서, 모마의 소장품도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동시에 소장품을 연구, 관리, 전시 기획하는 부서의 역할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 다다른다. 이에 모마는 재개관과 함께 회화, 조각, 영화, 영상, 사진, 건축, 디자인, 판화, 삽화, 드로잉 등 총 열 개 부서를 세분화해 모더니즘 이후 독자적 컬렉션을 구축하도록 계획한다.
이러한 미술관 운영 방식과 전략 변화에 따라 1997년 모마 리노베이션 설계공모가 열렸고, 일본의 모더니즘 건축가 다니구치 요시오가 당선된다. 다니구치는 ‘화이트 박스’를 콘셉트로 건물 자체는 간결하고 단순하며 절제된 형식을 제안한다. 그러면서도 5만 9,000m2 규모의 광범위한 리노베이션 프로젝트인 점을 고려해 맨해튼이라는 도시와 적극적으로 연결되는 미술관을 목표로 했다. 기존 미술관이 작품 소장과 전시를 위한 기능에 방점을 두었다면, 리노베이션된 미술관은 21세기 미술관이 요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수용하도록 계획했다. 기존에 하나였던 출입구를 두 개로 늘려 관객 분산 및 교통문제 해소를 꾀했고, 로비가 자리했던 1층은 중앙 아트리움으로 구성해 미술 서적과 기념품을 구입할 수 있는 매장을 배치했다. 전시 공간의 경우, 6층에 기획 전시나 특별 전시를 위한 공간을 마련해 고층에서 저층으로 내려오면서 관람하는 동선을 계획했으며, 특히 6층의 전시 공간은 전시 주제와 작품 형식에 따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속이 빈 가변 공간으로 구성했다. 한편 극장, 강의실, 사무실, 도서관 및 기록 보관소를 갖춘 새로운 교육 및 연구 단지를 기존 미술관 맞은편에 증축했다.


베를린 신국립미술관 내부 전경 Images courtesy of David Chipperfield Architects / ©Simon Menges / Ludwig Mies van der Rohe / VG Bild-Kunst, Bonn 2021
동시대 미술관으로 나아가기 위한 움직임
새로운 프로그램에 대응해 형식을 탈바꿈하기 위해 진행된 모마의 리노베이션은 2004년 재개관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현대미술관의 참조점이 되고 있다. 그러나 모마의 성장이 거듭 이어지면서, 2014년 모마는 설계공모에 당선된 딜러 스코피디오+렌프로, 겐슬러와 또 한차례 리노베이션을 진행한다. 방점은 분과별 큐레이팅의 통합▼10과 미술관에서의 예술 경험을 확장하는 데 있었다. 모마 측은 이 리노베이션이 면적이나 전시 공간을 개조하려는 목적보다, 예술 경험에 대한 사고방식의 전환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한다. 미술관은 더 이상 전시 관람만을 위해 방문하는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예술 경험이 일어나는 장소다. 이에 따라 전시 공간뿐 아니라 미술관 전체를 경험을 위한 공간으로 조직한다. 방문객 접근성 및 편의성을 증진하기 위해 메인 로비를 기존보다 두 배 높이로 확장하고, 1층에는 다양한 미디어에 반응하는 프로젝트 갤러리를 설치하는 한편 미술관 곳곳에 방문객이 잠시 멈춰 사색할 수 있는 라운지 공간과 동선을 계획했다. 또한 미술관 부지 서측에 있는 53W53 빌딩의 2, 4, 5층을 별관으로 사용하며 갤러리 공간을 30% 확장해 본관과 연결했고, 본관의 2층에는 크리에이티브 랩을 만들어 아이디어와 질문을 공유하는 등 교육 프로그램을 수용하도록 했다. 4층과 5층에는 공연, 무용, 음악, 사운드 작품을 상영할 수 있는 면적 185m2, 150석 규모의 스튜디오를 조성했으며, 6층 카페에는 야외 테라스를 설치해 53번가 거리와의 접점을 넓혔다.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총 3단계에 걸쳐 새롭게 개관한 모마는 내외부 간 유연한 소통을 꾀하는 다양한 제스처로 “모더니즘의 다원적, 다층적 역사를 포괄하는 ‘뉴 모마’를 추구한다며, 더 다양한 관점과 목소리를 반영하는 미술관으로 거듭나겠다고 공언”▼11했다.
테이트모던은 2000년 5월 개관 직후 4천만 명 이상의 관객을 맞이하면서 다시금 헤르조그&드 뫼롱과 증축을 계획한다. 개관 이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이 방문하는 근현대미술관으로 자리매김한 테이트모던은, 미술관과 지역, 도시 간 연결 강화에 주안점을 두고 기존 건물의 북쪽에 있던 보일러실, 서쪽에 있던 스위치 하우스, 그리고 터빈 홀 남쪽의 지하 탱크까지 미술관의 일부로 통합하면서 2016년 2단계 리노베이션을 마쳤다. 이렇게 확장된 공간은 도시의 공공 공간으로 기능하면서, 동시에 변화하는 미술관 컬렉션을 수용하고 전시하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특히 유럽과 미국 미술뿐 아니라 남아메리카, 아시아를 포함한 전 세계 도시의 예술가를 연결하는 기관을 자처하는데, 이들이 소장한 방대한 컬렉션을 기반으로 전시 외에도 교육 프로그램, 디지털 아카이브 연계 서비스 등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한편 개관한 지 50년이 지난 퐁피두센터는 건물 노후화에 따른 유지보수 문제로 2025년부터 2030년까지 리노베이션▼12이 진행될 예정이다. 퐁피두센터 측은 건물의 뼈대를 이루는 배관 파이프들의 부식과 마모가 심한 상태라며 전면적인 개보수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더해 화재 안전, 에너지 사용 최적화, 이동 약자를 위한 접근성 개선 등이 리노베이션의 주된 목표로 언급됐다. 프로그램 측면에서는 크게 네 가지 변화를 계획하고 있다. 지하의 버스 주차장을 영화관과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것, 1층 갤러리 공간을 남쪽 광장과 연계되는 새로운 레스토랑으로 계획하는 것, 4층과 5층에 걸친 전시 공간을 개조하는 것, 7층 미술관의 야외 테라스를 공개하는 것이다. 2023년 진행된 설계공모에서는 총 여섯 팀이 결선에 올랐으며, 올해 봄 당선작이 발표될 예정이다. 원 설계자인 렌조 피아노는 2022년 초▼13 퐁피두센터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리노베이션에 대한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세월의 흐름이 묻어나는 퐁피두센터를 좋아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리노베이션은 필수적이다. 1900년대에 지어진 건물이든 2000년대에 지어진 건물이든 그 정신은 그대로 유지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사반세기마다 건물을 당대 문화에 맞게 조정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본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그 자체로 남을 수 있는 건물을 만들었다는 점이, 나에게는 중요하다.”

테이트모던(2016) 외부 전경 Images courtesy of Herzog & de Meuron / ©Iwan Baan

테이트모던 내부 전경 Images courtesy of Herzog & de Meuron / ©Iwan Baan
베를린 신국립미술관은 개관 후 약 50년이 지난 시점에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진행했다. 미스가 미국으로 이주한 후 유럽에 설계한 유일한 건물이자, 20세기 건축의 정수로 꼽히는 이 건물은 베를린 주정부의 보호 기념물(문화재)로 지정된 바 있다. 2012년 리노베이션 설계를 의뢰받은 데이비드 치퍼필드는 기념비적 유산과 현대미술관으로서의 건물 활용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것이 목표였다고 말한다. 퐁피두센터와 마찬가지로 리노베이션의 일차적인 목표는 건물 노후화에 대응하는 것이었고, 그 외 에어컨, 안전, 조명, 보관소, 카페, 서점, 숍 등 방문객 서비스에 대한 현대미술관의 요구 사항을 충족시키는 일이 필요했다. 이에 치퍼필드는 원형 보존에 중점을 둔 리노베이션을 진행한다. 설계에 앞서 선행된 약 1년간의 아카이브 연구 작업에서는 기존 건물에 대한 수천 개의 문서를 수집, 열람, 분석하는 과정을 거쳐 리노베이션의 가이드라인을 세운다.
기존 건물을 이루는 약 3만 5,000개의 구성 요소를 해체한 후 수리 및 복원을 거쳐 원래 위치에 다시 설치하는 방법이었다. 개입과 변경을 최소화하되, 사용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전시 준비 공간 및 수장고를 지하에 추가로 설치하고, 서점과 숍, 전시 공간을 재배치했다. 평면의 재구성 또한 초기 건립 당시 공공 공간에 대한 이상적인 배치를 기반으로 했다. 이에 더해 인테리어 요소도 정비를 거쳤다. 전시품 보존 기준에 맞춰 조명과 커튼을 설치하고 냉난방, 단열, 환기 등 설비 시스템을 개선해 건물의 지속가능성을 높였다. 이러한 세심한 접근 방식을 토대로 베를린 신국립미술관은 2015년 공사에 착수해 6년간 작업 끝에 2021년 재개관했다.
이렇듯 미술관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왔다. 시간이 축적된 건물의 변화를 모색하는 일은 자연스럽지만, 미술관 공간의 변화가 단순하지만은 않은 이유는 예술이 우리 삶과 어떻게 관계 맺을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2022년 국제박물관협의회(ICOM)는 ‘과거와 미래에 관한 비판적 대화를 위한 민주적이고 포괄적이며 다성적인 공간’을 미술관의 새로운 정의로 제안했다. 그렇다면 다변화하는 가치관을 담기 위한 미술관은 어떤 공간이어야 할까? 즉 지금까지 존재해왔던 미술관들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또 그 과정에서 건축의 역할은 무엇일까? 미술관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 한국의 미술관들은, 이러한 동시대의 질문에 직면해 그 답을 찾아가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서구 미술관과 환경과 조건이 다른 우리나라의 미술관들은, 바깥의 사례들을 참조하면서 저마다의 맥락을 만들어가야 한다. 리노베이션이라는 과제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미술관 건축의 사례가 국내에 거의 없다시피 한 때 지어진 건물들은 면밀히 돌아보고, 가능성을 타진하고, 흘러온 과거 위로 필요한 새로운 언어를 덧대어야 한다. 그러한 여정 속에서 건축은 별개의 오브제가 아닌, 미술관의 과거와 현재를 진단하고 그다음을 고민하며 새롭게 엮어내는 주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기계가 가동되던 터빈 홀은 테이트모던의 입구이자 높이 35m에 달하는 대규모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Image courtesy of Tate Modern / ©Margherita Spilutt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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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996년 함부르거 반호프 현대미술관이 개관하면서 베를린 신국립미술관은 20세기 초부터 1960년대까지의 유럽 회화와 조각 작품을 소장하는 미술관으로 바뀌었다. 1968년 이후의 현대미술 작품들은 함부르거 반호프 현대미술관으로 옮겨갔다.
10. 모마는 오래도록 회화 및 조각 분과, 판화 및 드로잉 분과, 건축 및 디자인 분과 등이 각각 따로 소장선 전시를 제시해왔는데, 2015년 처음으로 1960년대 소장품 섹션에서 통합 큐레이팅을 시도했다. 임근준, ‘미술관 소장선을(이) 형성하는 비평적 역사관: 미술사의 헤게모니를 직조 및 추동하는 소장선을 구축하고 업데이트하기’, 「세마 코랄」, 2021년 9월 18일, http://semacoral.org/features/chungwoolee-limguenjun-collection-critical-historiography/,2024년 4월 19일 접근.
11. 임근준, 위의 글 .
12. 개관한 지 20년이 지난 1997년, 퐁피두센터는 전시 공간 확장 및 리셉션 시설 개선을 목표로 한 리노베이션을 원 설계자인 리처드 로저스, 렌조 피아노와 진행했다.
13. 공동 설계자인 리처드 로저스는 2021년 12월 18일 작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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