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4년 8월호 (통권 681호)
오늘의 건축가
‘오늘의 건축가’는 다양한 소재와 방식으로 저마다의 건축을 모색하는 젊은 건축가를 만나기 위해 기획됐다. 그들은 무엇을 좋아하고, 탐색하고, 고민하고 있을까? 「SPACE(공간)」는 젊은 건축가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기보다는 각자의 개별적인 특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인터뷰는 대화에 참여한 건축가가 다음 순서의 건축가를 지목하면서 이어진다.

인터뷰 민성휘 × 김보경 기자
어린 시절 동경으로부터
김보경(김): 홍익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한 뒤 일본에 건너가기로 결정했어요. 원래부터 일본 문화에 관심이 있었나요?
민성휘(민): 어렸을 때 좋아했던 것들이 나중에 보니 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거 더라구요. 1990년대 초반의 애니메이션 대부분이 수입되어 로컬라이징 된 것이다 보니 다 한국에서 만들어졌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초등학교 시절을 지나면서 그게 다 일본에서 만들었다는 걸 알고 되게 많이 놀랐어요. 1980년대 일본의 버블경제 시대에 만들어진 매체를 접하며 갖게 된 어린 시절의 동경 같은 거였죠. 일본어를 공부할 정도로 열정적이진 않았는데, 대학 진학하고 건축을 배울 때도 유럽이나 미국의 건축보다는 일본 건축에 흥미가 생기더라고요. 특히 이토 도요를 좋아했어요. 그러다가 졸업한 후 진로를 좀 고민하는데 1년만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나라에서 살아보자는 마음과, 이토 도요의 건축사무소에서 인턴을 해보자는 일념으로 일본행을 결심했습니다.
김: 굉장히 용기 있는 선택을 했네요. 이토 도요의 어떤 점에서 매력을 느꼈나요?
민: 처음에는 딱히 좋아하는 건축가랄 게 없었어요. 그러다 대학교 3학년 때 건축가를 조사하는 수업에서 우연히 이토 도요를 담당하게 됐죠. 과제를 하면서 바람의 탑(1986)이라는 작품을 알게 됐는데, 지하철 요코하마역의 노후된 환기탑을 가리기 위한 설치물이에요. 알루미늄 타공판으로 파사드를 만들어서 낮에는 면으로 보이고, 밤에 조명이 켜지면 내부가 보여요. 이 밤의 이미지가 제가 동경했던 1980년대 일본의 이미지와 중첩돼 보여서 너무 멋있게 느껴졌어요. 좋은 건축을 떠나서 뭔가 너무 멋있었어요. 이토 도요를 좋아했다기보다는 바람의 탑을 좋아했던 것 같네요. (웃음)
김: 일본에서 지내면서 바람의 탑을 직접 보기도 했나요?
민: 보러 간 적이 있는데, 낮의 모습만 봤어요. 유지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제 밤에 조명을 켜지 않는다고 해요. 한 번이라도 켤 수 없냐고 요코하마 시 관계자에게 메일을 보내기도 했는데,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김: 실제로 보면 더 인상적일 것 같은데 너무 아쉽네요.
민: 그렇죠? 그런데, 일본인 친구들한테 바람의 탑을 좋아한다고 하면 도대체 이게 왜 좋냐는 반응이에요. 저만의 이상한 고집 같은 느낌이죠. 도쿄 모리미술관에서 열린 <건축의 일본>(2018, 「SPACE(공간)」 613호 참고) 전시에서 이토 도요를 직접 만난 적이 있어요. 오프닝에 참가하셨거든요. 일본 건축을 대표하는 다양한 키워드로 전시가 구성되어 있지만, 제 생각에는 버블경제라는 사회적인 맥락이야말로 일본에만 있는 특성이고, 급격한 소비사회를 맞이하게 되면서 일본 건축은 어떻게 변화했나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는 질문을 했죠. 이토 도요는 건축가들이 주택 작업을 하지 않을 때 주택 작업을 하고, 상업시설의 건축은 건축가의 영역이 아니라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팽배했을 때 소비사회의 흐름에 따라 상업 건축 작업을 한 건축가예요. 그런 점에서 본인도 1980년대 일본의 분위기를 좋아한다고 대답해주었어요. 좋아하는 건축가와 직접 말을 나눌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죠. 그렇게 이토 도요를 지금도 계속 좋아하고 있어요.

민성휘

바람의 탑(1986) 전경
경험하고 싶었던 것
김: 일본에서는 어떻게 지냈나요?
민: 워킹 홀리데이로 도쿄에 거주하게 되면서 이토 도요 사무소에서 인턴을 하지는 못했지만, 상업시설의 인테리어 작업을 많이 하는 토라프 아키텍츠라는 곳에서 인턴을 했어요. 일본에서는 인턴을 오픈데스크라고 부르는데, 급여가 없어요.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서 3개월간 오픈데스크를 했죠. 1년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는 국내 건축설계사무소에서 잠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국내에서 건축을 해야 할지 일본에 가야 할지 많이 고민한 끝에 ‘한국에서 하지 못하는 것, 일본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 다시 일본에 갔어요. 아르바이트를 통해 모은 돈으로 생활하며 일본의 작은 건축사무소인 아라키+사사키 아키텍츠(공동대표 아라키 모토키, 사사키 다카유키, 사사키 다마호)와 스타 건축가가 이끄는 유명 아틀리에인 고 하세가와 앤드 어소시에이츠(대표 하세가와 고)에서 오픈데스크로 있었어요. 당시 제가 경험하고 싶었던 건축 실무는 설계 초기 단계부터 설계감리, 준공까지 모든 프로세스를 포괄할 수 있는 일이었던지라, 아라키+사사키 아키텍츠에서 실무를 시작했어요. 직접 현장에 방문해서 현장 아저씨들과 대화하는 등 다양한 관계자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었던 이곳에서의 경험이 가장 즐겁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저라는 사람이 쉽게 대체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컸어요. 유명한 사무소에서 일할수록 뭔가 쉽게 대체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거든요.
김: 일본에서만 경험할 수 있었던 게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민: 주거와 리노베이션 작업이 특히 매력적이었어요. 편협한 생각일 수 있는데, 상업시설은 5년만 지나도 촌스러워지는 데 반해, 주거는 시간이 갈수록 쌓이는 삶의 흔적이랄까 그런 아름다움이 있잖아요. 상업시설의 주된 목적은 수익 발생이지만, 주거는 개인의 행복을 위한 일이고요. 좋은 사회가 되려면 개인이 행복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주거가 아주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도 있었죠. 아무튼 상업이나 오피스 관련 프로젝트는 저한테 크게 매력적이지 않았어요. 또 앞서 언급한 아라키+사사키 아키텍츠에서의 경험이 굉장한 터닝 포인트가 됐어요. 당시에는 재생 건축, 리노베이션 작업이 한국에 많이 없었던 때인데, 일본에는 이미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거든요. 또 한국은 집 하면 아파트지만, 일본은 주택 등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이 좀 있고요. 주거, 그리고 리노베이션. 이거라면 일본에서밖에 할 수 없는 일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김: 일본에서 실무를 하면서 인상 깊었던, 흥미로웠던 리노베이션 작업이 있다면요?
민: 아사카 3동 재정비 계획(朝霞の3棟再整備計画, 2018~2019) 이라고 90년 전에 지어진 창고 건물을 리노베이션하며 창고 겸 주택을 신축하는 프로젝트였어요. 클라이언트가 할아버지인데, 어릴 때부터 여기서 살았고, 이 창고와 함께한 기억이 너무 좋아서 창고를 메인으로 남기고 싶다고 했어요. 신축을 포함해서 총 3개 동이 결합된 프로젝트예요. 창고를 중심으로 건물과 건물은 보행 데크로 연결되어 있고요. 리노베이션한 창고는 지인들이나 주민에게 열어놓고 사용할 거라고 해요.


아사카 3동 재정비 계획(2018~2019) 전경 ©Nao Takahashi
클라이언트 워크로서의 건축
김: 이후, 부동산 회사의 건축 부서로 이직했어요. 어떤 계기로 옮기게 됐나요?
민: 도시 개발에 참여하는 디벨로퍼 회사로 이직한 건 아니에요. 스마사가 부동산이라고 집을 구매하려고 하는 클라이언트에게 알맞은 주택 매물과 설계 혹은 인테리어 안을 함께 제안하는 부동산과 인테리어 디자인 사무소가 결합된 회사죠. 단순히 멋진 디자인을 제안하는 일이 아닌 클라이언트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동네를 좋아하는지 등 타인의 경험을 알아가는 프로세스가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작품을 만드는 건축가가 아닌, 일본에서 경험한 ‘클라이언트 워크’로서의 건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경험하고 싶어서 잠시 탈선을 했죠. (웃음)
김: 클라이언트 워크로서의 건축은 구체적으로 어떤 걸 말하나요?
민: 구체적으로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는 아직 찾아가는 중이에요. 당연하지만 클라이언트 워크란 클라이언트가 해달라는 대로 하면 된다는 개념은 아니에요. 그것보다는 건축에 개개인만의 경험담을 담아내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의 경험담을 토대로 더 만족할 수 있는 건축을 만드는 거요. 그런 경험담들이 전파되면 좀 더 다양한 건축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지금은 개인의 경험담이 얼마든지 미디어를 통해 전파될 수 있는 사회잖아요. 그리고 그 경험은 내가 가구를 고르고, 디자인을 선택하는, 단순히 고르고 지휘하는 일을 넘어 벽지를 직접 바르거나, 가구를 만드는 등 짓는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행위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자는 백지상태의 공간을 경험하는 데 반해, 후자는 어쨌든 이미 애착을 담은 공간을 경험하게 되는 거잖아요. 온전히 깔끔한 상태의 건축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낡은 것이 되어버리죠.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클라이언트 워크로서의 건축에서는 그런 초기 경험이 무척 중요한 것 같아요.
김: 지금은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계신가요?
민: 당시 우연히 읽게 된 책 『도쿄R부동산, 이렇게 일 합니다』(2020)를 계기로 이직해, 2022년부터는 도쿄R부동산이 소속되어 있는 스피크(SPEAC)라는 회사의 건축설계 부서에서 일하고 있어요. 당시 개인적인 번역 활동과 한국과의 접점을 만들 수 있는 환경으로 옮기고 싶기도 했고요. 여기서는, 우리나라로 치면 1970년대에 양산된 4~5층 규모의 주공아파트와 비슷한 철도회사의 사택을 리노베이션하는 ‘소카 사택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에요. 2~3인 가족을 대상으로 육아하기 쉬운 커뮤니티 만들기가 콘셉트인 공동주택 리노베이션 프로젝트죠. 마당에는 커뮤니티 농원, 1층에는 점포나 식당, 탁아소, DIY 공방 등을 두고 사람들이 모여서 교류할 수 있도록 했어요. 아직 공사 중이긴 한데, 밭에서 야채를 수확해 피자를 만들어 먹는 아이들을 위한 체험 프로그램이나 강연 등을 계획하고 있어요. 설계뿐 아니라 이런 공동주택의 운영과 수익성을 따지는 등 공동주택의 지속을 위한 일도 함께하고 있죠.

소카 사택 리노베이션(2024) 전경

소카 사택 리노베이션 이후 열린 행사 모습
건축가계의 중간층을 두텁게 만드는
김: 사실, 민성휘 하면 일본에서의 건축 실무보다도 탄파쿠나(@tanpakuna)라는 인스타그램 계정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 이 계정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민: 탄파쿠나는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일본의 건축 담론을 소개하는 인스타그램의 번역 계정이에요. 실무를 시작한 후, 일본어 공부를 위해 출근 시간보다 두 시간 먼저 출근해 건축 관련 책을 읽으며 공부할 겸 번역을 하던 것이 탄파쿠나 활동의 시초예요. 처음에는 블로그에 번역한 글을 올렸어요. 그러다 한 권을 다 번역하고 나면 출판 기획서를 출판사에 보냈는데, 답장이 없더라고요. (웃음) 그러다 보니 너무 허탈한 거예요.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다른 매체를 고민했죠. 왜 인스타그램에 동기부여 문구를 소개하는 계정들 있잖아요. 번역하는 책의 내용을 건축가들을 대상으로 한 동기부여 문구처럼 소개할 수 있으면 좋겠더라고요. 그렇게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게 됐어요. 인스타그램은 블로그보다 접근성이 좋으니까 일일이 기획서를 보내지 않고도 출판사 등의 연락을 받을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고요.
김: 한국 건축가계에 일본 건축의 어떤 부분을 알리고 싶었나요?
민: 처음에는 건축 실무와 관련된 책을 읽었어요. 당시의 부족한 일본어 실력으로도 책의 내용들이 쉽게 이해가 되더라고요. 프로세스가 아주 간단했어요.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한국에서 건축을 말할 때는 사이트의 회귀성 같은 거창한 철학적 담론에서부터 시작했던 것 같거든요. 그래서 한국어인데도 잘 이해가 안 되는 말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일본에서는 유명한 건축가인데도 현학적인 표현 없이 ‘클라이언트는 이런 걸 하고 싶었고, 대지는 이랬다. 그래서 뭔가를 어떻게 하려고 했다. 그러려면 시공에 문제가 있어서 시공사와 협의를 해서 이렇게 지었다.’ 이런 식으로 설명하더라고요. 충격을 받았죠. 건축을 쉽게 말하는 방식이 한국에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건축에 철학을 담는 방법도 분명 필요하지만, 다양한 말하기 방식이 존재하는 환경이 중요하니까요.
김: 그러면 성휘 님에게는 번역 활동이 건축의 연장선일 수 있겠네요.
민: 학창 시절 니시자와 류에가 하루도 빼먹지 않고 건축에 대해 고민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당시에는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하고 생각했어요. 건축을 고민하기 위해서는 시대를 간파하는 철학적인 주제를 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이제와서는 니시자와 류에가 매일 고민했다는 건축은 어떻게 하면 지붕을, 기둥을 얇게 만들 수 있을지의 차원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에게 번역은 그렇게 매일 건축을 생각하는 일인 것 같아요. 어떻게 번역을 해야 할까 매일 고민하고, 책에서 말하는 건축을 때로는 긍정하고 때로는 부정하면서 다양한 건축을 고민하는 것.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나가는 근거가 되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김: 결국 기획, 번역하신 『건축하지 않는 건축가』(2024)가 출간됐어요. 축하드려요. 앞으로도 번역, 출판을 지속하게 될까요?
민: 감사합니다. 출판사를 차리거나 전업 번역가가 되는 게 궁극적인 목적은 아니지만, 한국의 건축가계에 이바지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번역은 계속할 것 같아요. 솔직히 이 일의 시작에는 과연 건축만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함도 없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당시에는 번역 활동이 부수적인 수입 활동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죠. 그런데 약 5년간 번역 활동을 계속 하고 있는 나를 보고 나서 내가 이걸 좋아하는구나를 깨달았어요. 제가 이렇게 끈기 있는 사람은 아닌데 말이에요. (웃음) 더불어 제 게시물을 보고 힘을 얻었다, 고맙다고 전해주는 분들의 마음도 굉장히 큰 원동력이 되고 있죠.
김: 앞으로 번역하는 건축가로서 어떤 활동을 지속하게 될까요?
민: 저는 스스로를 번역하는 건축가라고 소개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러면 앞으로 번역과 건축만을 해야 하는 사람이 되는 것 같잖아요. (웃음) 어딘가에 속박되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게 제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거든요. 언젠가는 한국으로 돌아가 일본에서 배운 걸 바탕으로 한국의 건축업계에 기여하고 싶어요. 일본에서 건축가가 현장에 뛰어들어 사회현상을 바라보고, 다양한 건축적 해법을 내놓을 수 있다는 점이 특히 배우고 싶은 부분이에요. 지금은 당장 건축사사무소를 차리기보다는 사회의 건축적 환경을 구축하고 개선하는 일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이미 한국에는 훌륭한 건축가들이 많지만 그들의 디자인이 구현되지 못하는 이유는 사회적 원인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항상 조심스러운 부분은 『건축하지 않는 건축가』의 번역이나 건축사사무소를 차리지 않겠다는 발언이 건축의 정통성에 대한 부정으로 받아들여지면 어떡하나 하는 거예요. 전통을 계승하는 일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죠. 오히려 건축밖에 모르는 바보야말로 세상을 더 좋게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건축 하나만을 추구하는 사람이 좀 더 자유롭게 일하기 위해서는 그 옆에서 지원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슨 일을 하든지 건축가계의 중간층을 두텁게 만드는 일을, 건축가계의 외연을 넓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민성휘는 2024년 9월호에서 이진혁(소와요 건축사사무소 대표)의 오늘을 듣고 싶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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