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MSPACE는 국내 최고의 건축 포털 매거진입니다. 회원가입을 하시면 보다 편리하게 정보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Login 회원가입
Naver 로그인


[ESSAY] 사소하고 사사로운 것으로부터

글
박지현, 조성학
사진
비유에스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별도표기 외)
자료제공
비유에스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진행
윤예림 기자

「SPACE(공간)」 2024년 9월호 (통권 682호) 

 

 

집의 기억

우리가 처음 만난 곳은 18년 전 대학교 2학년 설계 스튜디오 수업이었다. 스튜디오 내에서 서로가 유일한 동갑내기였던 우리는 금세 친해졌다. 친구로 지내는 것과 건축을 함께 하는 것은 분명히 다른 일이지만, 사무소를 개소한 지 10년째인 지금도 우리는 친구와 협업자를 넘나드는 유연한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다. 건축가가 주장하는 형식은 흔히 건축가 고유의 사유와 비장함을 근거로 한다. 그렇기에 아무리 막역한 사이의 건축가라 해도, 막역함과 동일함은 동의어가 아니기에, 건축의 협업은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다. 이는 주변인들이 친구이자 건축 협업자로 꽤 오랜 기간 유지되어온 우리의 관계에 대해 궁금해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이 궁금증에 대한 답은 우리가 건축을 대하는 태도를 설명하는 단초가 된다. 친구 관계에서 시작해 협업 건축가 관계로 발전했기에, 업무로서 건축을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도 사소하고 개인적인 대화가 자주 등장한다. 대화의 대부분은 시시하고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나 돌이켜보면 대화 도중 때때로 스쳐 지나가는 어린 시절의 장면과 그 배경이 되어주었던 시골집에서의 에피소드들이 우리의 건축을 전개하는 데 유용한 단서가 될 때가 많았다. 그래서 우리 건축의 기원은 각자가 가진 집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믿는다. 이번 프레임을 준비하며 우리는 점차 희미해지는 기억을 좇아 각자가 유년기에 지냈던 집부터 둘이서 함께 거쳐온 집들을 깊게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대학교 4학년 스페인으로 떠난 워크숍 스튜디오에서 지현과 성학(2011)

 

(왼쪽부터) 대학교 5학년 스쿠터를 빌려 떠났던 제주도 건축여행에서(2012), 가파도 건축답사에서(2016), ‘APMAP 2019 Jeju’ 프로젝트를 위한 파빌리온을 실험, 설치하는(2019) 지현과 성학​

 

성학, 첫 기억의 집: 광주 백운동 집

광주 백운동 집은 남향의 마당과 큰 감나무를 품은 단층 양옥이었다. 마당은 자전거를 타고 놀 수 있을 정도로 컸는데, 할머니가 마루에 앉아 화투를 치시며 마당에서 노는 우리를 내려다보곤 했다. 도깨비가 나온다며 들어가지 말라고 했던 ‘상하방’은 사실 대학생 형에게 세를 준 방으로, 내(성학)가 허락 없이 들어갈까봐 할머니께서 궁여지책으로 꺼내셨던 이야기였다. 마루는 정월에 부럼을 까서 먹거나, 추석에 송편을 만들던 포근한 공간이었다. 처마에 걸려 있던 곶감을 보며 언제 익을지 기대하던 기억이 난다. 마루에 맞닿은 장지문은 한지로 발라져 있었고, 구멍을 여러 번 덧댄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었다. 얇은 한지 한 장으로 마루와 방은 쉽게 구분되고 또 연결되었다. 그때에 비하면 요즘의 삼중유리 창호가 종종 야속하기도 하다. 가족이 서울로 이사를 하고 여러 유형의 주거 공간을 경험했지만 어릴 적 광주 백운동 집은 나의 기억에 가장 진하게 남아 있다. 

 

(왼쪽) 광주 백운동 집 마루. 왼쪽부터 성학의 할머니, 형, 성학, 막내 고모, (오른쪽) 광주 백운동 집 평면 스케치​

 

(왼쪽) 지현의 할머니 댁 평면 스케치, (오른쪽) 삼천포 용강동 집 ​

 

지현, 모험을 위한 아지트: 삼천포 용강동 집

초등학교 저학년에 이사간 남해 연안의 삼천포 용강동 집은 부모님이 운영하던 식당에 딸린 주택이었다. 식당 건물과 주택 건물 모두 단층이었으며 꽤 널찍한 마당을 가지고 있었다. 집 내부의 정확한 공간구성에 대한 기억은 흐릿하나 30년이 지난 지금도 뚜렷이 떠오르는 몇몇 장면들이 있다. 건물과 건물 사이 70cm 정도의 틈에서 어린 몸집의 나(지현)는 좁다기보다 아늑한 아지트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틈에서 한쪽 벽에 등을 대고 반대쪽 벽으로 다리를 펴 스스로를 꽉 끼워 넣으며 공중부양을 하곤 했는데, 이때 등을 통해 전해지던 외벽의 질감이 등에 새겨진 듯 선명하다. 마당의 연못 앞으로 수풀을 가르며 지나가는 큰 구렁이를 맞닥뜨리곤 여러 밤 동안 구렁이에게 삼켜지는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다. 우리 가족은 삼천포 용강동 집에서 4년을 지내고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이곳에서 보낸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기억은 강력하게 남아, 이후 나에게 ‘집’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되었다. 

 

체부동 한옥의 삶(2016~2019) 

 

모성적 아틀리에: 체부동 한옥

체부동 한옥이 우리의 아틀리에가 된 것은 행운이었다. 사무실이자 집인 이곳에서 3년간 밀도 높은 시간을 보냈다. 마당과 건물의 적정 비례에 대한 나름의 기준을 얻기도 했고, 처마의 위대함을 깨닫기도 했다. 처마는 강한 햇빛과 비를 막아주고 제비가 집을 짓게 허락해주는 등 거친 자연을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온화한 장면으로 순화시켜주었다. 이 순간 처마 밑의 마루는 집의 공간 중 가장 상주하고 싶어지는 공간이 되었다. 집 밖으로 눈을 돌리면 오래된 민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덧대어지거나 수선된 흔적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덧댐의 방식은 사람 한두 명이 어렵지 않게 다룰 수 있는 무게, 높이, 재료 그리고 단순한 디테일을 기반으로 한다. 어수선하게 덧대어도 이런 장면들이 친숙한 이유는 동네의 풍경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처마를 가벼운 슬레이트로 확장하고 얇은 철 기둥으로 지지한 모습, 벽돌로 쌓은 화단과 텃밭, 줄눈을 생략한 벽돌 담장, 도로 창가에 덧댄 방범창의 신기한 패턴 등이 그런 모습들이다. 체부동  한옥에 머무는 동안 이런 사사로운 풍경들이 우리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우리 사이에 깊은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이는 곧 우리 건축의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

 

후아미(2020) ©Roh Kyung 

 

후아미 평면 스케치


후아미의 삶(2019~2022) 

 

건축수도원: 후아미의 삶

2020년 12월 체부동 한옥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사무실과 거주지를 후암동으로 옮기게 되었다. 후아미는 우리가 설계한 건물이다. 설계 단계에서 이미 입주자들이 정해져 있었으며 공간들은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추어 계획되었다. 우리는 후아미의 1층과 2층을 사무실로 사용하며 한 켠에 각각 1.7평의 공간을 방으로 구획해 거주했다. 두 개의 방은 방음 기능이 없는 합판으로 구분되어 각자의 공간에서도 서로 대화를 나누는 데 무리가 없었다. 아침에는 다섯 발짝 거리의 사무실로 출근하고 밤에는 각자의 방에 누워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날들이 3년간 이어졌다. 우리는 이곳을 건축수도원이라 불렀다. 싱글 사이즈 침대 하나와 작은 옷장 하나로 꽉 차는 공간은 물론 협소했지만 불편하지 않았다. 물리적인 공간은 넓지 않았으나 입주민들 간의 연결된 관계는 서로에게 속한 독립된 공간들도 연결시켰다. 개인에게 허락된 공간보다 훨씬 넓은 공간이 활동 영역에 포함되었던 것이다.

 

(왼쪽) 이우집 모형. 지현과 성학이 각자의 집을 지어 살고 있다. 각 집은 처마, 툇마루, 대청마루, 서까래 등에 대해 오랫동안 축적한 좋았던 경험의 집합체다. (오른쪽) 이우집 마당 조경을 함께 하던 날, 처마 아래에서 잠시 쉬는 모습(2023) 

 

(왼쪽)이우집, 성학네(2023), (오른쪽) 이우집, 지현네(2023)​ 

 

사소함으로 만든 집: 이우집

체부동 한옥에서 후암동의 건축수도원까지, 협업자이자 동거인의 관계는 6년 넘게 이어졌다. 주변인들은 종종 결혼하고도 이웃집에 사는 거 아니냐며 웃었다. 우스갯소리는 현실이 되어 현재 우리는 경기도 양평에 각자의 집을 지어 이웃으로 살고 있다. 각자 집을 설계하며, 우리는 함께 일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독립된 건축가로서 서로의 작업을 바라보았다. 두 주택은 모두 마치 서로 합의를 본마냥 긴 처마 아래 툇마루를 만들어 마당을 중심으로 한 단층의 모습이다. 서로의 어린 시절 집에 대한 기억이 뒤섞이고 그 동안 함께 거쳐온 거주 경험이 버무려진 결과, 이제는 닮은 모습을 한 집을 지어 살고 있다. 직접 설계한 집에서 우리는 이웃이라는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또다시 우리 건축에 대한 새로운 근거를 마련해나가고 있다.

 

여름날 체부동 한옥의 시원한 처마 아래(2017). 체부동에서 우리나라 기후환경으로부터 비롯된 한옥 형식을 경험한 이후, 처마는 필수 건축요소가 되었다.​

 

소규모식탁 외벽의 으깬 질감(2020). 지현은 어린 시절 삼천포 용강동 집 외벽에서 느꼈던 오돌토돌한 질감을 여전히 뚜렷하게 기억한다. ©Roh Kyung​​

 

극단적 소실점(2022). 경량목구조를 활용해 처마의 깊은 공간감을 강조한  파빌리온 프로젝트다. ©Roh Kyung​​

 

사사로운 기억으로부터

유년 시절 집에서부터 체부동 한옥, 후아미, 지금의 이우집까지 우리 삶의 배경이 되었던 거주 공간에 대한 기억은 우리 건축의 기원이 되었다. 건축의 기점이 되는 순간들이 작업을 통해서라기보다 거주하는 공간을 통해 빚어졌다니. 우리에게 경험적 서사란 이토록 중요하다. 당연해서 언급하기조차 사사로운 기억들은 심오하고도 핵심이 되는 주제에 실마리가 되어준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마다 그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본다. 이 기억의 형상과 분위기를 건축에 어떻게 대입할지 사유하면서 비유에스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의 건축은 시작된다.​

 

묘각형주택의 처마 아래 툇마루(2023). 어린 시절 집 현관 높이와 같은 35cm로, 앉기에는 조금 낮고 가뿐히 넘기에는 살짝 버겁다. 괜히 주저앉아 안으로 들어가길 망설이게 된다. 이 높이의 툇마루에 걸터앉으면 외부에 있기도, 내부에 있기도 한 듯하다. 

 

후아미의 3층 집 현관(2020). 현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좁작한 마당이 보인다. 최소한의 마당을 거실과 방이 둘러싸고 있는데, 이는 체부동 한옥의 마당 풍경과 닮았다. ©Roh Kyung​

 

일월일지의 진입로(2022). 체부동에 살던 시절 종종 탐험하던 마을 골목길을 떠오르게 한다. 골목길은 구불구불해 그 끝이 보이지 않지만 어디론가 연결된다는 호기심과 상상만으로 기분을 들뜨게 한다. ©Roh Kyung​

월간 「SPACE(공간)」 682호(2024년 09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 VMSPAC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지현, 조성학
박지현과 조성학은 숭실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각각 매니페스토 아키텍처 & 디자인 랩과 스튜디오 케이웍스에서 실무를 했다. 2014년 비유에스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해, 일상의 사소한 사건들을 탐구하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2020년 젊은건축가상, 2022년 서울특별시 건축상 우수상 및 대한민국목조건축대전 최우수상, 2023년 경상남도 건축상 특별상 등을 받았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