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4년 9월호 (통권 682호)
별내 토라진 집은 남양주시 별내신도시의 주택단지에 위치하고 있다. 주택단지가 조성되고 4~5년 정도 시간이 지난 때라, 50곳 필지 중 몇 곳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땅은 이미 집이 들어서 있었다. 처음 대지를 방문했을 때 땅 주변을 둘러보고 느낀 점은 ‘완전히 에워싸여 있다’는 것이다. 집집마다 최소한의 공지만 남겨두고 집들이 들어서 있었고, 사방으로 먼저 들어선 이웃집들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환경 속에서는 주변을 바라보는 것보다 당장 마주한 이웃 집의 배치와 창문 등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가 더 중요한 과제였다. 대지 주변으로 별달리 볼 만한 풍경이 없었고 이웃집의 촘촘한 창문들과 마주 보고 있었기 때문에 조망을 고려하기보다는 주변으로부터 집 내부가 적절히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해야 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집은 ㄷ자와 ㄴ자의 중간쯤 되는 모양을 하고 있다. 우리는 이 모양을 ‘토라진 상태’라고 표현했다. 토라짐이란 상대가 화해의 손을 내밀어주길 기다리는 귀여운 상태다. 이웃집들에게 슬쩍 등을 돌리고 있지만 완전히 뒤돌아서지는 않았다. 토라진 배치는 집 내부의 사생활을 보호함과 동시에 남향의 채광이 가능하도록 한다. 집의 1층에는 거실과 주방이 위치하며 각각 뒷마당과 전면 마당으로 연결된다. 거실 한쪽에는 집의 세 개 층을 연결하는 둥근 계단이 있다. 이 계단은 별내신도시의 건축 규제들이 그대로 집의 형태가 되는 것, 계단이 단순히 층을 이동하는 수동적 장치로 자리 잡는 것에 대한 거부감에서 비롯됐다. 완만하고 부드러운 곡선을 따라 집을 이동하는 기분은 마치 작은 마을의 골목을 지나는 것과 같은 아늑함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마당을 향해 열린 창과 함께 매시간 다른 표정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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