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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TIQUE] 유쾌한 ‘bus’의 진솔한 운행

조정구
사진
노경(별도표기 외)
자료제공
비유에스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진행
윤예림 기자

「SPACE(공간)」 2024년 9월호 (통권 682호)


유쾌한 ‘bus’의 진솔한 운행

 

글을 쓰다 문득 지난 답사에서 나눈 대화가 생각났다. 

“이번에 보지 않은 작업 중 저에게 더 보여주고 싶은 작업이 있나요?” 

“일월일지요!”, “아, 저는 제주의 소규모식탁이요.” 

 

제주도 공항에서 택시를 달려 서광리에 도착했다. 동네 집들이 한가히 늘어선 길가 돌담 안쪽에 노란색 콘크리트 덩어리가 눈에 들어왔다. 두 채의 건물 뒤로 한여름 땡볕 아래 짙고 푸른 녹음의 귤밭이 펼쳐졌다. 유로폼이 정연히 줄을 맞춘 투박하고 단순한 매스와 얇은 탓에 판처럼 보이는 금속 지붕, 안으로 들어서면 한여름 무더위가 가시는 밝고 시원한 내부 공간. 초록의 풍경과 빛이 넘쳐나는 공간에 우연히도 핫피 엔도의 ‘夏なんです(여름입니다)’가 흘러나온다. 나의 유학 시절 가장 즐겨 듣던 노래⋯. 시원한 바람이 드는 공간에 앉아 바깥을 바라보며 듣기에 딱 맞는 노래란 걸 이제야 알게 된다. ‘여름이구나!’ 가로로 찢어진 낮은 창으로 이름 모르는 풀들이 펼쳐져 있고 맞은편에는 ㄱ자로 꺾인 창으로 조금 전 지나온 마당이 보인다. 공간이 높아 그 높이만큼 빛과 바람이 그 사이로 들어오는 느낌이다. 30평 남짓 되는 ㄱ자 공간은 부드러운 톤의 목재 마감 천장 사이로 한쪽 벽면 길게 빛이 들어온다. 그 아래 천장을 가리지 않게 놓여 있는 낮은 카운터에는 얇은 목재 지붕이 달려 있고, 하얀 쇠기둥이 그 끝을 병목처럼 받치고 있다. 이제까지 본 비유에스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이하 비유에스)의 작업 중 가장 정교하고 세련된 공간이다. 건축은 단순한 매스에 열 곳은 열고, 닫을 곳은 닫아둔 모습이다. 마당으로 진입할 때는 높아 보였던 건물이, 식물이 무성한 정원을 가로질러 너븐숭이에서 뒤돌아보니 지붕만 조용히 떠 있다. 원래부터 낮은 땅에 지은 덕분이다. 서광리 석양을 받으면 노란 귤처럼 된다는 콘크리트 면과 거친 인방이 제주 돌창고처럼 자연스러웠다. 이러한 조형과 공간을 비유에스는 어디서 찾아내는 것일까. 

 

 

소규모식탁

 

회현리 

회현리 주택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길의 건축’이라 하겠다. 밖에서부터 만들어온 시퀀스가 안으로 들어와서는 마치 상자에 밀어 넣은 길고 굵은 줄처럼 이리저리 접혀 있다. 외부 진입로에서 현관까지의 흐름은 자연스럽고 짜임이 좋으나, 이후의 동선은 조금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마음에 드는 점은 현관에서 중문 틈으로 신비하게 모습을 드러낸 반원형의 계단참이다. 잘 정리된 형태와 치밀한 배치가 그 존재감을 만들고 있었다. 다만 1층 서비스 공간을 가운데 배치해 내골격의 평면 구성을 한 것이 과연 공간의 개방감에 도움이 되었는지 의문이다. 

 

별내 

별내 토라진 집은 빽빽한 밀도의 주택단지에 들어선 3층 집이다. 우아한 선을 그리며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과 이어진 복도가 이 집의 심장이자 동맥이다. 미로, 아지트, 채광이라는 건축주의 세 가지 요구 사항은 마당과 대각선으로 면한 나선형 계단을 통해 입체적으로 구체화되었다. 둔각의 벽을 타고 오르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은 묘각형주택(「SPACE(공간)」 650호 참고)에서 익혀온 것이라고 건축가는 설명했다. 외벽 재료로 쓴 백고벽돌은 오래된 건축의 원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백고벽돌의 ‘무른 입면’보다는 새 벽돌로 만든 ‘정연한 입면’이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토라진 형태란 주변의 존재에 반응해 나중에 등장한 오래되지 않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중략)

 

수평적 서사

별내 토라진 집, 회현리 주택을 포함해 답사 첫날 양평과 남양주에서 보았던 세 개의 작업 중 두 건축가가 살고 있는 이우집이 가장 좋았다. 한정된 예산 속에서 두 건축가가 자신과 가족의 삶을 담으려는 궁리가 만들어낸 진솔한 공간이었다. 이웃한 두 집에는 마치 삼원색처럼 비유에스의 결을 드러내는 ‘밝고 유려한 양명함’과 ‘깊고 차분한 고요함’이 나란히 담겨 있었다. 이번 프레임에서 소개될 작업은 아니어서 잠시 구경만 한다고 들른 것인데, 두 집을 보고 나니 비유에스가 1층 집이라는 ‘수평적 서사’에 강점을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관심의 연장에서 찾아간 소규모식탁은 동네 속에서 귤밭의 풍경과 풍부한 빛을 머금은 비유에스의 새로운 수평적 서사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이우집, 지현네 내부 Image Courtesy of bus architects

 

이우집, 성학네 내부 ⓒYoun Yaerim

 

(중략)

 

유쾌한 건축가 

실무도 얼마 익히지 않은 청년들은 독립해 사무실에서 같이 살며 건축을 했다. 한옥에서는 처마를 배우고, 이사한 후암동에서는 남산을 산책하고 가끔 백범김구기념관 옆에서 공차기도 하면서 “매일같이 사소하게 건축 얘기를 하며” 살았다. 그 대화가 10년이 쌓여 비유에스의 태도와 결이 되었다. 둘러보고 나니 허세가 없이 진솔하고, 새롭고 아름답다. 무엇보다 자신만의 느낌과 기억에서 출발해, 건축의 언어를 만들고 새로운 건축으로 나아가는 두 사람의 유쾌한 열정과 창의력이 놀랍다. 누군들 비유에스의 팬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일월일지를 가보지 못해 아쉽지만 다음의 즐거움으로 남겨두기로 하고 글을 마친다.

 

※기사 원문은 월간 「SPACE(공간)」 682호(2024년 09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와 함께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회현리 주택 ⓒChin Hyos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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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구
조정구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거쳤다. 2000년 구가도시건축을 설립하고 ‘우리 삶과 가까운 보편적인 건축’에 주제를 두고 지속적인 답사와 설계 작업을 하고 있다. 20년간 진행한 ‘수요답사’를 통하여 서울의 수많은 동네와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찬찬히 관찰하고 기록해왔다. 그 속에서 발견한 다양한 삶의 형상을 바탕으로 ‘우리 시대의 건축’을 찾는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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