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4년 9월호 (통권 682호)
오늘의 건축가
‘오늘의 건축가’는 다양한 소재와 방식으로 저마다의 건축을 모색하는 젊은 건축가를 만나기 위해 기획됐다. 그들은 무엇을 좋아하고, 탐색하고, 고민하고 있을까? 「SPACE(공간)」는 젊은 건축가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기보다는 각자의 개별적인 특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인터뷰는 대화에 참여한 건축가가 다음 순서의 건축가를 지목하면서 이어진다.

소와요 건축사사무소 사무실 내부 전경 ©Lee Jinhyuk
인터뷰 이진혁 소와요 건축사사무소 대표 × 김보경 기자
소(逍)와 요(遙)
김보경(김): 효창공원역 근처의 골목길에 사무실을 마련했네요. 이곳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이진혁(이): 어렸을 때부터 독립하기 전까지 북한산 밑에서 자랐어요. 그때부터 숲이나 나무가 많은 걸 좋아했어요. 경의선 숲길도 옆에 있고 또 사무실 창문으로 나무도 많이 보여서 이곳을 선택하게 됐어요. 장소를 찾고 보니 우연인지 필연인지 옆 건물이 본적 주소더라고요. 그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어서 계약했죠.
김: 엄청난 우연이네요! 소와요 건축사사무소(이하 소와요)라는 이름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이: 좀 고리타분한 이야기일 수도 있어요. 『장자』 중에 ‘소요유(逍遙遊)’라는 편이 있어요. 정처 없이 거닌다는 뜻인데, 그 형상이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그 말을 따서 소(逍) 그리고 요(遙)라는 뜻의 소와요라는 이름을 짓게 됐어요. 어감도 예쁘지 않나요? (웃음)
김: 그러네요. 소요유라는 개념이 이 사무실과 참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요. 『장자』를 읽게 된 계기도 궁금해요.
이: 독립을 하고서 제대로 자리 잡지 않았던 시기에 마음이 좀 힘든 때가 있었어요.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해서 마땅한 책을 찾다가 본가의 서재에 꽂혀 있던 『장자』를 꺼내 읽게 된 거죠. 평소에 이런 책을 잘 읽진 않는데 읽다 보니 장자의 담대함과 평온함이 참 매력적이더라고요.
김: 우연히 읽게 된 책에서 영감을 받아서 이름까지 짓게 되셨군요. 원오원아키텍스에서 3~4년의 실무 후에 바로 사무소를 개소하셨어요. 어떻게 개소를 결심하게 됐나요?
이: 개소를 결심할 때쯤 지금 아내를 만났어요. 결혼을 하면 독립할 용기가 나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 몸이 조금이라도 더 가벼울 때 독립을 하고 싶다고 생각해 개소를 하게 됐어요. 그런데 결혼에 그렇게 좋은 영향을 준 것 같지는 않아요. 제가 너무 힘들었거든요. 여차저차 공모전을 했던 게 운이 좋게 당선되면서 아직까지는 사무소도 결혼 생활도 잘 유지하고 있어요. (웃음)
김: 사무소 개소 초기의 힘든 상황을 어떻게 이겨냈나요?
이: 사무소 초기의 작업들을 보면 규모가 작은 인테리어 프로젝트 위주였어요. 이제는 저희의 작업 영역이 공공 건축에 많이 치중돼 있는데요. 지금처럼 작업하는 공공 건축이 생기기까지 많은 공모전에 도전했고, 많이 떨어지기도 했죠. 연달아 낙선의 경험을 겪으면서 그 과정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덕분에 지금은 어느 정도 규모 있는 프로젝트들을 하게 됐죠. 개소한 지 3~4년이 지난 지금도 힘들긴 매한가지예요. 개소하기 전에는 좀 더 자유로웠던 것 같은데, 개소한 후로는 계속 사무소와 작업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거든요. (웃음)
직장에 있을 때는 그래도 어느 정도 농땡이도 부리고 약간 책임감이 덜했다고 하면, 지금은 제 뒤에 아무것도 없잖아요.

이진혁

소와요 건축사사무소 사무실 내부 전경
자연을 들여 위안을 주는
김: “위안을 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간다”는 소와요의 소개 글이 인상적이었어요. 이름이 지어진 계기를 듣고 나니 이 소개 글이 어떻게 나왔는지 조금 짐작이 가네요.
이: 사무소 이름의 의미까지 고려하면서 쓴 표현은 아닌데, 그렇게 느껴지기도 하는군요. 개소를 하면서 이 사무소가 어떻게든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역할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건축이 미술이나 철학, 종교처럼 삶의 어떤 부분에서 위안을 줄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막상 그런 건축물을 만나기 쉽지 않고 또 만들어내기도 쉽지 않잖아요. 그런 점에서 이 사무소는 위안을 줄 수 있는 건축을 지향하자는 생각에 그런 글을 썼어요. 위안을 주는 건축이 조금 더 보편화되고 그런 경험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죠.
김: 구체적으로는 위안을 줄 수 있는 공간을 어떻게 만들어가고 있나요?
이: 아직 프로젝트 수가 적다 보니 고민을 많이 해보지는 않았어요. (웃음) 그래도 지금까지를 생각해보면 프로젝트마다 상황이 다른 것 같지만, 사무실을 고르면서 자연과의 접점을 첫 번째로 생각했던 것처럼 프로젝트를 계획할 때도 그 점을 계속 고려하게 되더라고요. 내수면 관상어 비즈니스 센터(2024)에서는 특히 대지가 좋았어요. 도심 속에서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지만,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의 넓은 대지였기 때문에 조경 쪽으로 접근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죠. 옥상을 정원으로 만들었고, 옥상정원으로 사람들이 많이 진입할 수 있도록 동선을 계획했어요. 또 구조적인 시도를 좋아하는데, 보 없이 15m 정도의 천창을 만들어서 공간에 빛을 많이 들이는 등 이런저런 시도를 할 수 있었어요. 운이 좋았죠. (웃음) 각각 더_시스템 랩, 원오원아키텍스에서 실무를 했던 배홍철(필필 공동대표), 최윤주 건축가와 함께 1년 남짓 씨름했어요. 덕분에 완성도 있게 설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가장 애정하는 프로젝트예요.
김: 조경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내수면 관상어 비즈니스 센터에서 옥상정원의 조경은 어떻게 진행했나요?
이: 사실 조경 분야를 굉장히 좋아하긴 하는데 조경 또한 전문적인 영역이라 조경상회의 이대영 소장님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이 프로젝트의 건축계획은 정적인 선을 가지고 있는 데 반해 조경은 아주 자유롭게 선을 썼어요. 처음엔 낯설었는데, 직접 현장에 가서 보니까 굉장히 잘 어우러지더라고요. 이런 점이 조경의 매력인 것 같아요. 나중에 기회가 생기면 공부를 더 해보고 싶어요.
김: 개소 초기의 인테리어 작업을 보면 가구디자인에도 참여했어요.
이: 가구도 가구 자체가 서 있기 위한 구조체가 필요하고, 또 그 위에 마감재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건축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아요. 그래서 가구를 디자인할 때 공간과 맞닿아 있는 부분을 찾으려고 노력해요. 그리고 건축가가 가구까지 계획한 공간에 비해 그렇지 않은 공간은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이걸 이토 도요가 설계한 타마미술대학교 부속도서관(2007)에서 느꼈어요. 여기서는 건축의 구조체가 인테리어 요소로도 쓰이고, 그 안의 텍스타일도 구조의 요소를 본떠서 계획돼 있어요. 건물의 구조, 인테리어, 텍스타일이 같은 요소로 통일된 공간의 경험이 너무 좋게 남아 있어서 그런 방향으로 작업하려 한 것 같아요.

성수 와인 픽스 내부 ©Lee Jinhyuk
무위(無爲)의 리노베이션
김: 공공 건축과 인테리어 작업 외에 리노베이션 작업도 많아요. 어떤 계기로 리노베이션에 관심을 가지게 됐나요?
이: 먼저, 리노베이션 자체가 저와 같은 세대 건축가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해요. 이전에 친구가 했던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유독 찬밥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어요. 그래서 이유를 물어봤는데, 찬밥도 일종의 요리라고 하더라고요. 따뜻한 밥에서 한 김 식히는 과정이 있어야 찬밥이 되는 거니까요. 그때 당시에는 좀 의아했는데, 볶음밥도 찬밥으로 해야 맛있다고 하잖아요. 확실히 차가운 밥이 주는 매력이 있죠. 어떻게 보면 리노베이션도 마찬가지예요. 이제 갓 지어진 따끈따끈한 건축이 점점 사라지는 시기에 시간이 지나며 새로운 가치를 지닌, 오래된 건축이 좋은 요리 재료로 부상했고, 이걸 가지고 하는 좋은 요리가 리노베이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기존에 건물이 가지고 있었지만 지나쳤던 매력을 다시 부각시켜줄 수 있는 재미있는 작업이죠. 우연찮게도 원오원아키텍스에 있을 때 마지막으로 담당했던 프로젝트가 아모레퍼시픽 설록향실, 제주(2020)라고, 제주도에 있는 가옥을 고쳐 다실로 만드는 프로젝트였어요. 제주도에서 5개월간 머물며 이전 건물이 철거되고 다시 새 건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죠. 회사를 나와서 처음 진행한 리노베이션은 성수 와인 픽스(2021)였어요. 원애프터의 마준혁, 안미륵 소장님이 미국에 있을 때 한국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함께 하게 됐어요. 디자인에도 참여하고, 현장에서의 소통을 담당하며 다양한 갈등을 직접 풀어내기도 했어요. 회사를 나와 본격적으로 직원을 들이기 전 자유도가 높아진 상황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라서 즐겁게 했던 기억이 나네요.
김: 소장님을 ‘오늘의 건축가’ 인터뷰 다음 타자로 추천한 민성휘 님과는 <중간지점 증축 계획안>(2022)이라는 ‘중간지점 하나’에서 열린 전시에서 인연이 있었어요.
이: 맞아요. 노한수 큐레이터의 기획으로 건축가 세 명에게 글이라는 매체로 증축 계획안을 받는 굉장히 신선한 전시였어요. 당시에 1년간 내수면 관상어 비즈니스 센터 설계를 진행 중이었는데, 아무리 설계를 해도 결과물이 보이지 않는 굉장히 지지부진한 상태였어요. 설계 자체의 특성도 있겠지만 민간 건축 같은 경우에는 건축주의 확인만 거치면 진행을 할 수 있지만, 공공 건축의 경우에는 여러 주체가 참여하다 보니까 진행이 더뎠어요. 그런데 글이라는 매체는 내가 글을 쓰기만 하면 완성이 되더라고요. 설계보다 빠른 속도감이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당시에는 대안공간의 증축에서 증축에 더 집중해 ‘욕망의 고름’이라는 제목으로 팩션을 써냈어요. 증축이라는 게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기존의 건축가가 의도한 바가 있는데 거기에 어떤 걸 더 하고 싶다는 의도를 가지고 하는 행위잖아요. 그렇게 기존의 계획과는 다른 걸 만드는 거고요. 고름이라는 단어가 그러한 욕망을 잘 표현해준다고 생각했어요.
김: 최근 지속가능성의 측면에서 신축과 대비되는 증축의 긍정적인 면을 주로 떠올렸는데, 사실 뭔가를 덧붙이려 한다는 것 자체가 욕망이라는 의외의 관점이네요. 이 지점에서 다시금 장자가 떠오르네요. (웃음) 장자의 무위 개념처럼 소와요가 참여한 리노베이션 작업은 대체로 기존의 건축물을 최대한 존중하는 느낌이에요.
이: 기존 건물의 매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새로 덧대는 부분이 기존의 구조 질서를 뭉개지 않도록 유의해요. 성수 와인 픽스를 예로 들자면, 기존에 기둥이 있는 상황에 새로 마감을 덧붙여야 하는 상황이라면, 새로 설치하는 마감재는 기둥과 같은 레이어에 설치하기보다 다른 레이어에 설치해서 기존 기둥이 좀 더 기둥답게 보이도록 하죠. 기존 건물의 매력을 파악하고, 그걸 가리지 않고 이런 요소를 덧대면 이 둘이 잘 어울리겠다는 걸 상상하면서 진행해요. 마치 옷 입을 때도 이런 스타일과 저런 스타일을 매치하면 정말 재밌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처럼요. 어떻게 보면 기존의 건축가와 협업을 한다는 느낌도 들어요. 또 한편으로는 예산이 아주 많았다면 그렇게 존중하는 제스처가 안 나왔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웃음) 어쨌든 기존의 것에 무언가를 덧붙이는 입장이고, 최대한 덧붙여 이익을 만들어야 하는 건축주의 요구를 받아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언가를 덜어내는 게 참 어렵거든요. 그래도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좀 잘 덜어내고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적절한 지점을 찾는 게 재미죠.

내수면 관상어 비스니스 센터 ©PHSG

성수 와인 픽스. 소와요 건축사사무소와 원애프터가 공동 설계했다. ©Lee Jinhyuk
진정한 소요유를 찾아
김: 건축설계 이외에 관심사가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이: 사실 대부분의 시간을 사무실에서 보내기 때문에 딱히 취미랄 건 없어요. 이전에 직장에 소속되어 있을 때는 나의 것을 만들어내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던 것 같아요. 집에서 혼자 선반도 만들고, 화실도 다니곤 했는데, 개소하고 나서는 오히려 건축 이외의 취미들이 확 줄어들고, 일과 관련된 것만 남아 있네요. 아직 인원이 많이 없기도 하고, 건축물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실무에 많이 관여하는 편이기도 하고요. 그래도 일하는 중간중간 사무실의 식물에 물을 주거나, 경의선 숲길을 산책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환기를 하곤 해요. 그래도 일 말고 신경 쓰는 게 있다면, 곧 아기가 태어나거든요. 그 소식이 지금 사무소의 생존 이외에 가장 큰 관심사예요.
김: 축하드려요! 사무실의 생존을 고려하지 않고 마냥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을 가장 먼저 하고 싶나요?
이: 감사합니다. (웃음) 사무소 운영의 책임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인터넷과 핸드폰이 없는 외딴 숲으로 가서 책을 읽는다거나 하면서 세상사를 떠나 어딘가에 푹 빠져 있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렇게 산책도 많이 하는 삶을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진혁은 2024년 10월호에서 박태원(아룹 시니어 건축가)의 오늘을 듣고 싶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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