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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천공 | 소멸의 가능성, 중소도시포럼 03

글
이장환
자료제공
중소도시포럼
진행
윤예림 기자
데이터
이상현

「SPACE(공간)」 2024년 7월호 (통권 680호) 

 

급격한 인구 감소로 중소도시의 체계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이에 대해 도시·건축계는 충분히 알고 있나? 중소도시의 재건을 위해서는 이제껏 답습해온 재생과 활성화의 관성에서 벗어나 변화를 직시하고 받아들이는 시각이 필요하다. 중소도시포럼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공적 연구 대상에서 쉬이 배제되어온 수도권 밖의 현상을 주시하고, 위기를 대신할 도시·건축적 대안을 찾는다. ​

 

[Series] 소멸의 가능성, 중소도시포럼 

01 수도권 밖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나

02 도시 농도

03 도시 천공

04 소거 계획

05 덧대기 건축

06 세계적 중소도시

07 탄력적 중소도시

08 환상적 중소도시

09 중소도시의 밖​​ 

 

중소도시의 빈집 발생과 소멸 그 이후를 따라가보자. 숱한 빈집이 소멸의 운명을 거스르지 못하고 빈 땅이 되어 중소도시의 지도에 구멍을 내고 있다. 구멍 난 자리에는 자동차가 빈번히 지나다니는 도로와 씨 뿌리는 노인이 한 폭에 존재한다. 일견 수상한 그림에서 일정한 패턴을 감지한 중소도시포럼이 이를 중소도시 특유의 도시 구조로 설명하고, 피할 수 없는 현상을 딛고 갈 묘안을 찾아 나선다.

 

항공사진으로 파악한 중소도시 천공현상 

 

빈집 문제는 이제 전국적인 현상이다. 부산 같은 대도시부터 제주도 같은 섬 지역에 이르기까지 도시의 위치와 규모를 가리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한 2010년 이후에 대두된 빈집 문제는 각종 언론 매체에서 이를 사회문제와 연관해 소개하면서 본격적으로 이슈화되었다. 그 당시 빈집은 길고양이, 쓰레기 등과 같은 위생 문제, 건물 노후화, 범죄 위험 등과 같은 안전 문제와 함께 언급되었고, 이에 대한 해결 방법을 재생사업에서 찾았다. 이러한 빈집 문제로 인한 현상이 사람들의 이목을 모은 지도 시간이 흘러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동안 빈집 현상은 도시를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빈집 현상의 다음 단계에는 무엇이 나타날까? 

중소도시에서 빈집 발생 이후에 나타나는 양상은 대도시에서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중소도시는 대도시와 달리 아파트 비중이 낮고 단독주택 비중이 매우 높은 특성을 갖는다. 또한 중소도시는 외부로부터의 인구 유입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대도시와 같이 개발압력이 높지도 않다. 이러한 배경에서 중소도시 내 빈집은 대부분 단독주택에서 발생하고, 빈집이 된 단독주택은 개발압력이 낮은 중소도시의 특성상 일정 시간이 흐르면 결국 소멸의 과정을 겪는다. 

빈집이 발생하고 시간이 지나 소멸하는 일련의 과정은 결과적으로 도시 형태 전반의 변화를 유발한다. 이전까지는 중소도시가 조밀한 건축물의 배치로 응집도 높은 단일한 도시 형태를 가졌다면, 이제는 도시 중간중간에 발생하는 공지들로 인해 도시 공간에 구멍이 나기 시작하면서 도시 형태의 응집성이 분해되고 있다. 

이는 비단 한국에서만 발생하는 특수한 현상이 아니다. 인구 감소를 앞서 경험한 미국, 유럽,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는 전 세계적 현상이다. 특히 일본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도시 스펀지화’라고 이름 붙였다. 그들이 말하는 스펀지화란 인구 감소가 도시 규모 자체를 축소시키기보다, 도시 내부에 빈집과 공지를 무작위적으로 발생시킴을 의미한다. 이처럼 예측 불가능한 스펀지화와 달리 우리나라 중소도시의 빈집 소멸 과정에서는 일정한 패턴이 감지된다. 그리고 그 패턴은 우리나라 중소도시의 도시 구조에 기인한다. 이번 호에서는 빈집 현상과 그 후에 나타나는 일련의 과정이 우리 중소도시의 도시 구조와 어떤 관계를 맺으면서 진화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주요 중소도시의 단독주택 분포. 중소도시의 건축 유형에서 단독주택이 차지하는 비율은 매우 높다. 

 

중소도시와 단독주택

중소도시의 건축 유형에서 단독주택이 차지하는 비율은 매우 높다. 이는 대도시에서 단독주택이 차지하는 비율과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 서울의 전체 건물 유형에서 단독주택의 비율은 2% 미만이다. 반면 남원, 정읍, 상주, 논산, 밀양, 김제, 문경, 영천과 같은 중소도시의 경우 단독주택 비율이 52.7%, 49.6%, 62.1%, 50.9%, 51.3%, 60.1%, 54.9%, 46%로 대부분의 도시에서 50% 이상으로 나타난다. 

통계를 분석해보면 우리나라 도시의 건물 유형에서 단독주택이 차지하는 비율과 인구수 사이의 상관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 인구가 10만 명 이하인 도시에서 단독주택이 차지하는 비율은 대부분 59% 이상으로 매우 높은 반면 인구가 30만 명 이상인 도시에서는 도시 내 아파트 비중이 증가하면서 단독주택 비중이 크게 줄어든다. 다시 말해 규모가 작은 도시일수록 단독주택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인구 규모가 작은 중소도시에서 단독주택 유형이 도시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은 커진다. 따라서 중소도시에서 단독주택 유형의 변화 양상을 관찰하는 것은 도시 전체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게 하는 유용한 이정표가 된다.

단독주택은 소유 관계가 아파트, 연립주택, 다세대주택과 같이 집단적이지 않고 단순하다. 이러한 소유 관계의 단순성으로 인해 단독주택은 다른 건축 유형에 비해 건물 전체가 빈집이 될 확률이 높고, 빈집이 되고 나서도 방치되어 관리되지 않을 개연성이 높다. 그러므로 소멸압력을 받고 있는 중소도시에서 단독주택의 변화 양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주택 소유자의 연령대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주택 소유자가 고령으로 사망하거나 다른 곳으로 이주할 경우 도시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소유자가 그곳으로 이주해올 가능성은 아주 낮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중소도시에서 단독주택 소유자의 연령대는 높게 나타난다. 남원, 정읍, 상주, 밀양, 나주, 김제, 영천에서 단독주택 소유자 중 60세 이상의 비율은 각각 39.5%, 30%, 36.9%, 36%, 38%, 31.6%, 40%로 대부분이 30% 이상인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시에 새로운 인구가 추가적으로 유입되거나 도시의 출생자 수가 사망자 수보다 많아지지 않는 이상 앞으로 20~30년 뒤에는 많은 수의 단독주택이 빈집으로 남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앞선 ‘도시 농도’(「SPACE(공간)」 677호 참고) 편에서 살펴봤듯이 대부분의 수도권 밖 중소도시에서는 인구 유입보다 인구 유출이 높게 나타나며 고령화로 인해 출생자 수보다 사망자 수가 높게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중소도시에서의 단독주택 빈집화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며, 관리되지 않고 방치된 빈집 또한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다. 

 

인구 30만 이하 중소도시의 단독주택 비율(위)과 빈집 수(아래). 규모가 작은 도시일수록 단독주택의 비중이 높아지는데, 소멸압력을 받는 중소도시에서 단독주택은 다른 건축 유형에 비해 빈집이 될 확률이 높다. 

 

천공현상

통계에 의하면 빈집의 상당수가 지어진 지 30년 이상 된 노후주택이다. 남원의 경우 1999년 이전에 지어진 단독주택 2,142채가 빈집으로 남아 있는데, 그중 1,842채가 노후주택이다. 노후한 빈집은 비단 남원에서만 나타나는 특수한 현상이 아니라 중소도시 전반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정읍, 상주, 논산, 밀양, 나주, 김제, 문경에서 단독주택 빈집 수는 각각 3,377채, 3,971채, 2,547채, 3,901채, 3,817채, 3,409채, 2,314채로 집계되는데, 그중 30년 이상 된 노후주택의 비율은 51.1%, 64.9%, 44.9%, 50.4%, 41.7%, 55.9%, 62.9%로 나타난다. 

노후도가 높은 빈집은 안전·위생·경관상의 이유로 점진적 철거의 수순을 밟게 된다. 이와 관련된 법제도도 이미 제정된 상태다. 그렇지만 빈집의 철거 과정은 생각보다 그리 간단치 않다. 거기에는 복잡한 이해관계가 뒤엉켜 있다. 빈집의 철거로 인해 발생하는 각종 세금 상승분, 철거 비용 등 건물 소유자가 부담해야 하는 부분과 안전 및 위생상의 이유로 빈집과 이웃한 주민이 겪는 불편 사항이 서로 대립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공공에서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빈집을 점진적으로 소거해나가고 있다. 이러한 소거의 노력이 누적된 결과 중소도시에는 이전에 볼 수 없던 다수의 공지들이 등장한다. 

중소도시에 방문하면 건물들 사이로 많은 공지들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구도심 가로를 걷다 보면 블록의 안쪽으로 넓은 주차장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주택가 바로 옆에 작물을 재배하는 작은 텃밭이 보이는가 하면, 아무것도 없이 잡초만 무성한 나대지가 주택가 한복판에 펼쳐 있기도 하다. 이들은 대부분 빈집이 철거되면서 만들어진 공간이다. 이러한 공간은 도시 형태의 관점에서 볼 때 마치 도시 공간에 구멍이 난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천공현상’이라 부르기로 했다.

중소도시에서 천공현상은 빠르게 진행 중이다. 과거와 최근의 항공사진을 비교해보면 중소도시 구도심에서 얼마나 많은 천공이 발생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일례로 남원 구도심에는 최근 20년 사이에 구도심 전체 면적의 약 16.5%에서 천공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 밖에 중소도시에서도 도시 공간에 적지 않은 비율로 천공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최근 20년간 정읍, 논산, 문경에서는 구도심 면적의 약 9.3%, 10.3%, 7.2%에서 천공이 발생했다. 이를 철거된 건물 개수로 환산하면 2000년대 초 대비 남원에서 572채, 정읍에서 312채, 논산에서 291채, 문경에서 177채가 사라진 것이고, 이들이 차지하는 면적은 각각 190,328m2, 71,601m2, 55,636m2, 36,357m2이다.

 

(왼쪽) 최근 20년간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발생한 도시 천공, (오른쪽) 도시 블록의 변화 다이어그램(1994~2024) 

 

전용적 사용 방식

천공현상으로 생겨난 공지는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중 주차장 용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1990년대 이후 도시 면적의 확장과 인구밀도의 옅어짐 현상, 그리고 그로 인한 대중교통 체계의 약화는 중소도시의 교통체계를 자가용 중심으로 변화시켰다. 이에 따라 도시에서 주차 수요는 증가했으나 현행 법체계 이전에 형성된 구도심의 도시 구조와 건축물은 이러한 수요를 감당해내기 어렵게 한다. 구도심에 위치한 건축물들은 주차장 설치 의무가 부재한 상태에서 지어졌고, 대지는 4m 폭 이상 도로와 접하지 않는 상태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 아래 도시 공간에 새롭게 생겨난 공지들은 대부분 주차장 용도로 활용되고 만다.

주차장으로 바뀌는 공지는 토지 소유주와 지역 커뮤니티 모두의 이해에 부합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토지 소유주는 빈집 철거로 발생하는 세금을 경감받을 수 있고, 지역 커뮤니티는 늘어나는 주차 수요와 빈집으로 인해 발생하는 안전·위생·경관 문제를 한번에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맞아떨어진 이해관계는 천공으로 발생한 다수의 공지를 주차장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천공현상으로 생겨난 공지의 또 다른 일부는 생산녹지로 활용되고 있다. 중소도시를 걷다 보면 주택가 한복판에 텃밭이 경작되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유심히 관찰해보면 텃밭들이 상당히 신중하고 전문적으로 경작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항공사진을 통해 중소도시에 나타나는 생산녹지의 경작 면적을 분석해본 결과, 그것이 구도심에서 차지하는 면적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남원의 경우 구도심에 위치한 생산녹지의 경작 면적은 12,227m2인데, 그중 3분의 1 이상이 최근 20년간 새로 생긴 경작 면적이다. 

도시 공간에서 생산녹지의 출현은 도시계획이 본래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금까지 중소도시는 도시 공간을 용도에 의해 세분화하고 그것을 조닝으로 구분하는 방식으로 계획했고, 그것이 정해진 목표에 맞춰 실행되도록 관리했다. 그런데 인구 감소로 인해 정해진 용도에 맞는 시설이 들어오지도, 필요하지도 않게 되자 애초에 도시계획 용도로 규정되지 않은 텃밭 등의 생산녹지가 임기응변적으로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산녹지는 구도심 한복판의 주택가와 접하기도 하고 근린생활시설과 맞닿은 대지에서 발생하기도 한다. 즉 기존 도시계획 틀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용도 간 병치가 일어나고 있다.

중소도시에서 나타나고 있는 생산녹지는 대부분 토지 지목상 ‘대지’에서 경작되고 있다. 다시 말해 지정된 용도와 다른 용도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전용적 이용 방식은 중소도시의 고령인구 증가와 무관하지 않다. 고용된 형태의 유급 노동시간이 적어 하루 일과 중 여유 시간은 많지만(생활시간조사, 통계청, 2019), 노후의 경제적 부담은 가중되는 고령자에게 이를 보완해줄 수 있는 소규모 경작 행위는 그들에게 대안적 생산성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은 고령화 추세에 비추어볼 때 중소도시 내 생산녹지 면적은 앞으로도 계속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이 지속된다면 중소도시의 도시 개념은 점진적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도시는 더 이상 용도지역·지구에 따라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용도와 생산녹지가 급작스럽게 만나는 이질적인 부분들의 집합으로 구성될지 모른다. 그것이 자아내는 풍경을 상상해보자. 차량이 빈번하게 지나치는 도시 지역 한복판에 밀짚모자를 쓴 노인이 농기계를 활용해 작물을 경작하는 모습. 자못 초현실적이다. 어쩌면 이질적인 요소가 병치해 만들어내는 이러한 풍경이 앞으로 중소도시의 새로운 미학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남원(위)과 상주(아래)의 도시 천공 모습. 천공현상으로 생겨난 중소도시의 빈 공간들이 주차장이나 생산녹지로 활용되고 있다. 

 

두꺼운 블록

많은 중소도시는 지금의 「건축법」이 제정되기 이전부터 이 땅에 존재했다. 1962년에 제정된 「건축법」은 건축물을 지을 수 있는 대지의 기본 요건을 규정한다. 건축물을 건축하기 위해서는 대지가 폭 4m 이상의 도로와 2m 이상 접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이하 접도의무). 그러나 「건축법」 제정 이전에 만들어진 도시들에는 이러한 접도의무를 따르지 않는 필지가 아직까지 많이 남아있다. 이러한 필지들은 중소도시 내 구도심 지역에서 특히 더 발견되는데, 이들은 큰 블록의 안쪽에 위치하면서 차량이 접근할 수 없는 좁은 골목길로 연결되어 있는 특성을 갖는다. 우리는 이러한 필지를 품은 큰 블록을 ‘두꺼운 블록’이라 이름 붙였다. 두꺼운 블록은 크기가 일정 규모 이상으로 커서 블록 바깥쪽에 위치하는 대지만 4m 폭 이상의 도로와 접하고, 안쪽의 대지는 그러한 도로와 접하지 않는 구조를 갖는다. 

두꺼운 블록은 대도시와 중소도시를 가리지 않고 근대 이전에 형성된 도시 구역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일례로 남원의 경우 이러한 블록 유형이 가장 명확하게 나타난다. 남원의 도시 블록은 그 기원이 통일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방리구획(坊里區畫)을 토대로 160×160m의 거대한 격자 형태로 만들어진 블록 안쪽에는 4m 폭 이상 도로와 접하지 않는 대지가 다수 존재하고 있다. 그들이 블록의 전체 필지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상당하다. 남원 구도심에 위치한 블록의 필지 구성을 조사해본 결과 블록 내 필지 수의 약 37%가 접도의무를 따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꺼운 블록은 남원뿐 아니라 오랜 역사를 갖는 대부분의 중소도시 구도심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들 도시에서도 두꺼운 블록 안쪽에 위치한 필지 가운데 접도의무를 따르지 않는 땅의 비율은 높게 나타난다. 논산, 김제, 나주, 문경, 상주, 영천, 밀양 구도심의 두꺼운 블록에서 약 40%, 23%, 28%, 23%, 23%, 30%, 25%의 필지가 접도의무를 따르지 않고 있다. 이렇듯 접도의무를 따르지 않는 필지와 그것을 품고 있는 두꺼운 블록은 중소도시 구도심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비록 모든 중소도시가 남원처럼 정형화되고 규모가 큰 블록 형태를 갖지는 않더라도, 두꺼운 블록은 형태와 규모를 달리해 가며 중소도시 구도심에 반복되어 나타난다.

 

최근 20년간 중소도시에서 발생한 도시 천공. 중소도시에서 천공현상은 빠르게 진행 중이다.  

 

패턴

두꺼운 블록은 중소도시에서만이 아니라 오랜 역사를 갖는 대도시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대도시의 경우 개발압력이 강하기 때문에 극히 일부만이 보존되고, 대부분은 재개발로 인해 사라진다. 반면 중소도시에서 두꺼운 블록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경로를 통해 진화한다. 하나는 도시에 추가적인 도시계획시설도로를 지정하면서 두꺼운 블록이 그보다 작은 블록으로 분화하는 경우다. 이러한 분화는 도시계획시설도로가 기존 도시 조직을 절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 결과 구도심을 걷다 보면 건물의 앞마당, 담벼락, 심지어 건축물 자체가 자로 잰 듯 잘려 나간 독특한 도시경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도시계획시설도로를 많이 지정하더라도 두꺼운 블록 내 모든 필지가 도로와 만나도록 촘촘하게 만들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도시계획시설도로가 사유지를 관통해 지나갈 수밖에 없다 보니 보상 문제를 비롯한 다양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도시계획시설도로가 추가되더라도 블록의 크기가 줄어들 뿐, 도로와 접하지 않는 모든 필지를 없애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두꺼운 블록의 또 다른 진화 경로는 접도의무를 따르지 않는 대지의 건물 소유자가 사망하거나 다른 곳으로 이주해 그곳이 빈집으로 남게 되는 경우다. 접도의무를 따르지 않는 대지는 「건축법」 상 신축과 증축이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도로에 면한 대지에 비해 새로운 개발 행위로 이어질 확률이 대단히 낮다. 그러므로 그러한 대지의 건물은 건축 소유자와 함께 나이들어가면서 소멸의 과정을 겪게 될 개연성이 높다. 그 결과 중소도시의 구도심에서는 도로와 접한 블록 바깥쪽 대지보다 도로와 접하지 않은 블록 안쪽 대지에서 소멸의 과정이 집중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시간이 경과할수록 이러한 현상이 누적되면서 블록 안쪽은 점차 비워지고, 도로변의 블록 바깥쪽 건물은 남는 형태로 블록의 형태가 진화하게 된다. 이러한 중심이 빈 블록 형태로의 진화는 인구감소가 진행 중인 대부분의 중소도시 구도심에서 관찰된다. 앞서 설명한 남원의 160×160m 격자 블록 역시 차량 접근이 어려운 블록 안쪽 필지를 중심으로 천공현상이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블록 바깥 도로변 대지는 상대적으로 천공현상이 적게 발생하고 있다. 이와 같은 천공 발생 패턴은 남원뿐 아니라 논산, 김제, 정읍, 나주, 문경, 상주, 영천, 밀양 등에 있는 대부분의 두꺼운 블록에서 유사하게 나타난다. 

이렇듯 천공현상은 인구가 감소하는 구도심에서 무작위적으로 나타나기보다, 천공 발생 확률이 높은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구별하여 나타난다. 이러한 패턴이 중소도시 전반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이자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이러한 패턴을 긍정하고 이를 활용해 쇠퇴하는 중소도시의 새로운 미래를 그려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와 관련해 다음 호에서는 소멸압력으로 인해 발생하는 천공현상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패턴을 계획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전략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고자 한다.​​

 

중소도시의 두꺼운 블록 다이어그램. 접도의무를 따르지 않는 필지와 그것을 품고 있는 두꺼운 블록은 형태와 규모를 달리해가며 중소도시 구도심에 반복되어 나타난다.

월간 「SPACE(공간)」 680호(2024년 07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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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환, 이상현
이장환과 이상현이 결성한 중소도시포럼은 대도시권역 밖의 변화를 관찰하고 잠재된 가능성을 탐색하는 연구 그룹이다. 이장환은 어반오퍼레이션즈 대표로 도시, 문화, 건축 전반에 관심을 두고 작업하고 있으며 홍익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홍익대학교 건축학과와 서울건축학교(SA)를 졸업했고 델프트 공과대학교 건축대학원을 우수 졸업했다. OMA에서 건축가로 활동하며 카타르 국립중앙도서관 설계와 더불어 다수의 아시아, 유럽, 중동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상현은 대구광역시 도시디자인과 주무관이자 독립 도시연구가이다. 한양대학교 도시공학과와 델프트 공과대학교 도시대학원을 졸업했고, 이후 팜보트 어반 랜드스케이프에서 도시 디자이너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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