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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건축가] 익숙함과 낯섦 사이를 넘나드는: 박태원

사진
박태원(별도표기 외)
진행
김보경 기자

「SPACE(공간)」 2024년 10월호 (통권 683호) 

 

영국왕립예술대학원(RCA)에서 작업한 엔드리스 룸 

 

인터뷰 박태원 아룹 시니어 건축가 × 김보경 기자

 

더 넓은 세상으로

 

김보경(김): 요즘 런던 생활은 어떤가요?

박태원(박): 7월에 개장한 서펜타인 갤러리에 지인과 몇 번 다녀오기도 했고, 최근에는 자연사 박물관 공원이 개장해 가족과 함께 가려고 해요. 사실 9년째 런던에서 살고 있는데, 여전히 적응 중이에요. 그중에서도 날씨가 제일 만만치 않아요. (웃음) 날씨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거든요. 아무래도 런던에서 글로벌 프로젝트를 주로 하고 있다 보니 계속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요. 요즘에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게 가장 즐거워요. 얼마 전에 아이가 막 두 살 생일을 맞아 생일파티를 하기도 했고요.

 

김: 영국으로 유학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박: 학부를 졸업하고, 건축 디자인 실무를 하면서 내가 맞다고 믿었던 건축, 디자인 방향에 대해 의문이 생기더라고요. 구체적으로 왜 내가 이런 부분에 집중하는지, 어떤 디자인을 좋아하는지를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이 성찰을 여러 나라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었고요. 그러기 위해서는 글로벌한 건축가나 아티스트가 많이 모인 런던이 좋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결혼하자마자 런던으로 신혼여행을 가서 정말 그런 곳인지 확인도 하고, 학교도 찾아가봤어요. 그때에도 런던은 날씨 빼고 다 좋았어요. (웃음)

 

김: 런던에는 AA 스쿨이나 바틀렛 건축학교 등 건축으로 유명한 학교들이 많죠. 그중에서 특별히 영국 왕립예술대학원(RCA)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박: 물론 세 학교 모두 지원했고, 입학 허가도 받았지만, 최종적으로는 RCA를 선택했어요. 한국에서 건축 공부, 실무를 하며 건축가에게는 인맥, 그들과의 경험이 중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더불어 건축가들 간의 교류도 중요하지만, 반대로 건축을 하지 않는 사람과의 교류도 아주 중요하다는 것도요. 그러기 위해서는 건축학교보다는 아트 스쿨인 RCA가 더 적합하겠다 싶었죠. RCA는 특히 기술적, 시각적 표현이나 결과물보다는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 역사적인 방법론을 강조해요. 그래서 학부에서 건축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도 입학이 가능하죠. 자연스레 졸업 후에 건축가가 아닌 큐레이터, 예술가, 비평가의 길을 선택하는 학생들도 많았고요. 일반화할 순 없지만 여타 건축학교에 비해서 상당히 열려 있는 다른 환경이었던 것 같아요. RCA를 다니면서부터 많은 아티스트와 콜라보레이션을 할 수 있었어요. 지금까지도 그 인연이 이어지고 있고요. 그 협업의 결과물 중 하나가 학생 때부터 의견이 잘 맞았던 아티스트, 조아오 빌라와 함께 브라질에 지은 ‘카자 나 바히냐: 아티스트 스튜디오 하우스’예요. 학생 시절부터 디자인을 진행해서 결국 실제로 완공까지 할 수 있었죠. 

 

아룹 런던 본사에서의 미팅 모습, 박태원(중앙) ©ARUP 

 

엔지니어링 회사의 건축가

 

김: 런던의 아룹(ARUP) 본사에서 유일한 한국인 건축가라구요. 

박: 본사 내에 한국인이 거의 없긴 하지만 유일하지는 않아요. 다만, 한국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한국에서 졸업한 한국인은 제가 유일하고, 또 한국인 ‘건축가’도 저뿐이죠.

 

김: 아룹은 엔지니어링으로 유명한 회사잖아요. 그런 회사에서 건축가로서 어떤 업무를 하고 있나요?

박: 맞아요. 아룹은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파리 퐁피두센터,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등 스타 건축가가 만들어낸 디자인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콜라보레이션으로 들어가 진행한 작업으로 더 알려져 있는 경우가 많죠. 저는 여기서 좀 더 나가서 아룹이라는 회사의 디자인적 측면을 보여주기 위한 일을 해요. 아룹 안에 건축 부서가 따로 있는데, 그 안에서 시니어 건축가로 일을 하고 있어요.

 

김: 아트 스쿨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영국의 로컬 아틀리에나 스타 건축가의 사무실이 아니라 엔지니어링으로 유명한 회사에서 건축 실무를 하기로 결심한 이유가 무엇인지도 궁금해요.

박: 아룹 입사 전 스튜어트 포브스 어소시에이츠라는 아틀리에에서 잠깐 근무한 적이 있어요. 스튜어트 포브스는 RCA를 졸업하고, 리처드 로저스 작고 전 RSHP에서 수석 소장으로 있으면서 리처드 로저스와 함께 일했던 건축가예요. 저를 좋게 보셨는지, 운 좋게도 소장님 옆에서 디자인과 클라이언트 미팅 등에 직접 참여할 수 있었어요. 그 과정에서 오히려 확신을 얻었어요. 영국에서는 건축의 역사와 전통이 깊은 만큼 새로운 디자인의 건축물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거든요. 새로운 건축물을 짓는 것 자체도 정말 큰 일이에요. 그래서 내가 원하는 디자인을 하며, 능력을 발휘하려면 영국의 로컬 시장을 넘어야겠다는 생각이었죠. 그렇게 글로벌한 작업을 할 수 있는 규모의 회사로 가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중에서도 스타 건축가들의 사무실은 규모 있는 작업을 할 수 있고, 제가 무언가를 배워갈 수도 있겠지만, 내가 리드하며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기는 어려운 환경이잖아요. 반면 아룹은 엔지니어링 전문회사라는 기존 이미지에서 보다 나아가 아룹만의 건축 디자인 능력을 강조하고자 했기 때문에 디자인을 좋아하고 열정 있는 건축가가 필요했거든요. 그래서 조금 더 능동적으로 프로젝트를 대할 수 있고, 디자인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구조적인 챌린징이 생겼을 때 더 빨리 소통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죠. 이런 점이 엔지니어링 회사인데도 불구하고 건축가로서 이곳을 선택해 활동하고 있는 큰 이유 중 하나인 것 같아요.

 

김: 최근 뉴 무라바 경기장을 담당하게 됐어요. 한국에서도 기사가 났더라고요. 축하드려요.

박: 감사합니다. 뉴 무라바 경기장은 아룹 외에도 유명한 스타 건축가 회사가 참여한 지명 설계공모를 통해 디자인을 선정했어요. 이를 위해 회사 내부적으로도 공모를 진행했죠. 매기 왕 수니가라는 건축가와 함께 협업해서 낸 아이디어가 회사 내 공모에서 그리고 외부 공모에서도 당선됐어요. 뉴 무라바 프로젝트 같은 경우는 저희 팀에서도 야망을 가지고 진행했던 프로젝트라 더욱 기쁘네요. 아룹 내에서는 이렇게 공모가 있을 때, 팀을 꾸리는 게 굉장히 자유로워요. 개인이 하나의 팀에 속해 있더라도 시간을 할애할 의지가 있고, 도전을 하고 싶다면 충분히 다른 프로젝트를 가져와서 리드하거나 운영할 수 있어요. 심지어는 스페인 지부에 있는 구조 전문가가 너무 잘하더라, 이번에도 같이 하고 싶다고 하면 당장 이메일을 보내거나 전화를 해서 함께하자고 할 수 있거든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를 겪으며 그런 협업이 더 용이해지기도 했죠. 이게 아룹의 아주 흥미로운 장점인 것 같아요. 실제로 2020년에는 입사 동기들과 함께 유리 회사에서 제안한 파빌리온 공모에 글래스 파빌리온이라는 디자인을 제안해 당선되기도 했어요. 다만 아쉽게도 코로나19로 인해 실제로 지어지지는 못했지만요.

 

한글 파빌리온, 이음 ©Lee Eunyong 

 

무령 파빌리온 O ©Lee Eunyong 

 

교류와 탐구를 향한 욕망

 

김: 아룹에서의 업무 이외에도 하시는 활동이 많죠. 이러한 활동들은 어떤 계기로 시작했나요?

박: 여전히 물음을 던지고,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것 같아요. 회사 일은 결국 클라이언트의 의뢰를 받아 진행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요구에 맞춰야 하는 부분이 생기죠. 물론 그게 전문가로서의 업역이긴 하지만, 요구 사항에 맞춘 제안을 넘어 근본적인 방법론, 건축의 본질에 대해 더 탐구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어요. 이를 탐구하기 위해서는 다른 건축가들, 예술가들과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2021년, RCA에서 인연이 있었던 건축가 김일환, 큐레이터 김승민과 함께 제로링궐(Zero Lingual)이라는 집단을 만들었어요. 여전히 함께 공모전을 준비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하면서 소통을 이어가고 있어요. 제로링궐이 0개 국어라는 뜻이잖아요. 오히려 그런 경계인으로서의 특징이 다른 나라의 문화나 건축, 예술이 가진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해줄 수 있다는 의미를 담은 이름이에요. 제로링궐 소속이었던 건축가 네티와의 인연으로, 니 스페이스에서 리서치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어요. RCA에서 같은 스튜디오 수업을 들었는데, 그때 함께 중국의 주택을 하나 설계했고 그게 실제로 지어지고 있어요. 네티의 부모님 건물을 고치기 위한 프로젝트였거든요. 그분들이 가지고 있던 건물이 중국 전통식 건물을 획일적으로 찍어내 아파트처럼 파는 신중국식 주택이었어요. 우리는 양식이나 형식을 그대로 복사해서 공간을 생산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며 프로젝트를 시작했죠. 중국 사람들의 생활에서 묻어나는 문화적 관습, 그것이 반영된 가정 공간은 어떠한가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을 기반으로, 양식을 드러내는 장식적인 요소를 다 빼버리고 그들의 문화적 관습이 양식이나 형식, 겉치레에 있지 않다는 걸 보여주려고 했어요. 이외에도 한국에서 무령 파빌리온 O과 한글 파빌리온, 이음을 디자인하기도 했어요. 제로링궐에서 전시 공간을 디자인하며 인연이 있었던 팀서화(공동대표 도연희, 김성우)와 함께 공모전을 준비해 당선됐던 프로젝트였죠.

 

김: 회사에서의 작업과 개인 작업의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박: 아무래도 금액과 시간적인 면에서 차이가 나죠. 예를 들어 파빌리온 프로젝트들의 경우 공공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예산이 빠듯했는데, 심지어 그 예산 안에서 설치부터 철거까지 처리해야 했어요. 부담감이 컸죠.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오히려 신중하게 건축 요소를 정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무라바 경기장처럼 화려하고, 수용해야 하는 프로그램이 많은 경우에는 건축 요소가 많아질 수밖에 없거든요. 또 대중과 더 가깝게 소통할 수 있는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어요.

 

김: 여기서 말하는 건축 요소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박: 무령 파빌리온 O는 복도라는 요소를 탐구하고, 반영했던 프로젝트예요. RCA 때부터 복도 공간의 가능성에 대해 관심이 많았거든요. 복도 공간 자체가 단순히 방과 방을 이어주는 통로일 뿐 아니라, 그 자체가 기능을 가진 무한한 공간일 수 있다는 거죠. 무령 파빌리온 O에서는 공원의 동선에서 격리되어 무령왕릉이라는 유물을 숙고하고, 동시에 스스로 성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복도 공간을 자연 능선에 따라 배치하고, 원형으로 만들어 계속 이어지게 하고, 천장이나 바닥에서 빛이 아주 조금씩 스며들게 해서 걷는 동안 땅이나 하늘을 쳐다보도록 만들었죠. 한글 파빌리온, 이음에서는 기둥이라는 요소를 탐구했어요. 기둥이 왜 꼭 일자 기둥이어야 할까, 기둥이 본래의 구조적인 역할을 하는 동시에 한글의 기하학적 의미를 담는 파사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담아냈죠. 저는 언제나 형태보다도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구성을 먼저 생각해요. 이러한 요소에 대한 관심은 RCA에서부터 시작됐는데요. 그때의 작업이 파빌리온에서는 모티브가 되어주기도 했죠. 

 

뉴 무라바 경기장 렌더링 이미지 ©New Murabba & PIF 

 

운루 하우스 ©NIII SPACE 

 

낯섦 속에서 본질을 찾는

 

김: 앞으로 어떤 활동을 이어가게 될까요?

박: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최대한 여러 나라에서 작업을 해 보는 거예요. 지역의 기후와 문화에 따라 만들 수 있는 공간은 달라져요. 다양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양질의 공간과 건축을 결정하는 본질적인 요소는 무엇일까 궁금하지 않나요? 여러 나라의 환경, 건축을 경험하며 그들의 공통점이나 연계성을 찾아내보고 싶어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프로그램에 국한되지 않는 건축 디자인 전문가가 되고 싶어요. 예를 들어 경기장을 설계할 때 경기장의 특수한 환경에 대해 잘 모른다면, 제너럴리스트로서 경기장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전문가와 협업을 할 때에 오히려 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당장은 아룹에서 글로벌한 프로젝트를 맡으며 좋은 작업을 최대한 많이 해보는 게 목표예요. 동시에 아룹 밖에서 협업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면 언제든 제 작업을 할 거고요. 그러다 언젠가는 우리나라로 돌아와 작업을 하게 되겠죠? 

 

김: 건축가로서 궁극적인 목표나 꿈이 있다면요?

박: 제 꿈은 제가 설계한 집에서 살아보는 거예요. 건축의 본질을 탐구하고, 요소 중심의 디자인 방법을 통해 설계하고, 이를 실현하는 것도 의미 있는 여정이지만, 또 그렇게 도출된 건축물 안에서 살고, 느껴보는 것도 중요한 경험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 경험 이후에는 작업도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도 있고요. 말하고 보니 궁극적인 목표는 아닐 수 있겠네요. (웃음)

 

박태원은 2024년 12월호에서 한지영, 황수용(라이프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의 오늘을 듣고 싶어 했다.​​

 

박태원 

월간 「SPACE(공간)」 683호(2024년 10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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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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