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4년 11월호 (통권 684호)

오피니언에서는 대한민국에서 공공 문화시설의 설계자와 설계안을 선정하는 주된 방식인 설계공모를 중심으로 건축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구했다. 답변은 의도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일부 발췌 및 편집하여 수록했다.
참여자
김아연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김현수 이소우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
남상문 날곳건축사사무소 대표
맹필수 서울대학교 교수
윤근주 일구구공도시건축 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 이정훈 조호건축사사무소 대표
이치훈 건축사사무소 에스오에이 파트너 임동우 홍익대학교 교수
임성훈 동명대학교 교수
조남호 솔토지빈건축사사무소 대표 조재원 공일스튜디오 대표
조항만 서울대학교 교수
황두진 황두진건축사사무소 대표Q1.
공공 문화 공간의 생산과 향유 주체는 누구인가? 오늘날 우리 사회가 만들어내는 공공 문화 공간은 누구를 포함하거나 배제하고 있는가?
임동우 한국 건축에서 절대 ‘선’으로 인식되는 단어 두 가지를 사용했다. ‘공공’과 ‘문화’는 내가 학생들에게도 신중하게 사용하라고 하는 단어다. 이 단어를 사용한 건축은 ‘좋은 건축’ 혹은 ‘착한 건축’이라는 환상이 있는 듯하다. 문화는 말할 것도 없고 공공이라는 단어 역시 특정 계층을 포함하거나 배제한다는 사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뉴욕의 센트럴파크가 그랬고, 서울의 청계천 복원이 그러했다. 성공한 공공 프로젝트라고 여겨지는 이 프로젝트들에서 배제된 계층이 없었을까 반문한다. 결국 어떠한 계층을 타깃으로 한 공공성, 문화 공간이냐 하는 문제다.
이치훈 공적 문화 공간은 모두를 위한 것이지만 의사결정과 생산의 기술은 행정과 일부 도시 건축 전문가들에게 독점되어 있다. 공공을 위한 문화 공간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향유자들이 배제되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남상문 지방의 문화 공간의 경우 정부 주도 아래 단기간에 일방적으로 공급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시민들이 향유하는 문화생활은 이런 고급문화에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하위문화를 구성하는 콘텐츠와 문화 공간을 포함한다. 도시와 시골의 문화적 격차는 여기서 발생한다. 이 공급마저 대형 고급 문화시설에 편중되어 있기 때문에 다양한 사회 구성원을 포용하지 못하는 배제와 소외, 경직된 관료제로 인한 생산성 저하, 부조리 등의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공공을 위한 문화 공간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향유자들이 배제되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임성훈 지역, 특히 부산의 경우 공공 문화 공간의 생산 주체는 지자체장이나 국회의원이다. 공공을 위한 문화 공간이 아니라 ‘유치’로 홍보되는 정치적 성과였다. 부산현대미술관, 부산도서관, 부산오페라하우스에서 공통된 문제는 입지였다. 영화의전당도 마찬가지다. 부산국제영화제를 개최하는 영화의전당은 설계공모 과정에서 영화제의 중심이었던 구도심에서 당시 신규 개발지였던 센텀시티로 대지가 변경됐다. 개발 정책의 성과를 얻으려는 의도에 따라 영화제의 중심 지역도 바뀌게 된 것이다. 서울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청계천 복원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정치적 의도가 없었을까? 아직도 가장 중요한 공간은 권력자 차지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장소가 되어 이제는 시민이 향유 주체라 하더라도 그 생산 과정을 극복하지 못하면 가장 중요한 지점에서 시민이 배제될 것이다.
맹필수 사회가 발전할수록 문화 생산과 향유의 주체는 시민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 공공 문화 공간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결정권자의 시각이 지역 구성원보다는 외부의 관광객에게 더 집중되고, 일상적인 향유보다는 외관으로 강한 인상을 주는 랜드마크를 지향하는 경향이 있다.
Q2.
관광객을 위한 랜드마크와 시민이 느끼는 랜드마크는 동일한가?
임동우 전 세계 어디에서든 역사적으로 어느 시기였든 내국인이나 외국인의 관광을 위한 랜드마크는 존재해왔다. 랜드마크도 도시에 필요한 다양한 요소들 중 하나다. 결국 질문은 공공 프로젝트를 하는 데 있어서 과연 어느 정도의 비중을 랜드마크에 부여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되어야 한다. 또 21세기 후반을 향해 가는 이 시점의 랜드마크가 무엇일지도 질문해야 한다.
남상문 서울 서베이에 따르면 대다수 시민들은 여전히 서울의 랜드마크로 고궁과 구도심을 에워싸고 있는 자연환경을 꼽는다. 반면 서울시는 관광 인프라의 성격이 큰 노들섬, 서울링, 제2세종문화회관 같은 대규모 랜드마크를 개발 중이다. 대다수 관료들은 랜드마크를 시각적 흥미거리나 이슈가 될 만한 이색 체험 정도로 치부한다. 또 이들은 랜드마크가 도시 경쟁력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말하지만 무엇이 랜드마크고 누구를 위한 도시 경쟁력인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랜드마크가 시민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충분한 논의와 공론화 없이 너무 많은 개발 사업이 동시다발적으로 부실하게 진행되고 있다.
조항만 흥미를 끌고 관심을 모은다는 점에서 관광객을 위한 랜드마크와 시민을 위한 랜드마크는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랜드마크가 시민들에게는 지루한 일상의 가벼운 탈출구라면, 관광객들에게는 인생에 한번 있을 이국적이고 특별한 경험의 기회다. 그리고 시민과 달리 관광객들에게는 그것을 보존하고 유지할 책임도 없다. 이에 관광객을 위한 랜드마크는 시민들의 삶을 무너뜨리는 요소가 되기 쉽다. 관광객과 시민의 삶이 상생하는 모델은 흔치 않은데 대부분이 인위적으로 단시간에 기획된 랜드마크보다는 문화와 전통에 기반해 오랜 기간 자연스럽게 형성된 장소가 많다.
조남호 공공이 만드는 문화 공간은 온전한 일상 공간이 아니라는 관점에서 일종의 헤테로토피아적 도시 공간이다. 더구나 아이코닉하거나 기념성을 강조하는 문화 공간은 더더욱 일상의 삶과 구별된다. 이러한 시설은 시민 참여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특정 계층에 한하기 마련이고, 관광객을 위한 시설이 되기 쉽다. DDP는 자하 하디드의 역작 중 하나로 기획의 취지가 잘 작동되는 시설이지만, 좋은 도시의 덕목을 ‘공정한 도시’라고 전제할 때, DDP는 그 자리를 일상적으로 활용하던 수많은 시민들의 권리를 대신한 곳이라는 부정적인 측면도 가지고 있다. 역설적으로 헤테로토피아 안에서는 새로운 건축이 탄생할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게 마련이다. 기념성을 가진 문화 공간이 일상의 삶과 공존하는 공정한 건축은 높은 수준의 기획과 설계 과정을 전제로 한다.
Q3.
공공 문화 공간에 민의는 어떻게 반영될 수 있는가?
임동우 시민 의견 수렴의 부재에 집중해 비판하는 것은 매우 선택적 비판처럼 보인다. 다양한 시민 의견의 수렴 방식과, 그 부재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자유지만, 정작 과연 프로젝트가 꼭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적다. 한국의 공공과 건축계가 긴밀히 상생하는 구조여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시민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어 있는지, 불확실한 공공도서관 프로젝트에 건축계가 반발하는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다. 우리의 먹거리이기 때문이다. (민의를 반영하기 위해서는) 뻔한 이야기지만 의견 수렴에 있어서는 결정을 천천히 내리면 된다. 프로젝트를 하기로 먼저 결정해놓고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수년이 걸릴 수도 있는 과정임을 인정해야 한다. 먹거리가 없어지더라도.
남상문 민주주의 사회에서 민의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민의가 전부는 아니다. 정부, 시민사회, 전문가가 각자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상호존중, 협력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시민사회에서도 다양한 요구와 의견이 표출되고 있고 전문가 간에도 이견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부 정책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손바닥 뒤집듯 너무 쉽게 바뀐다. 지금은 민의도 전문가도 무력하다. 단순히 소통 부족이라기보다 공공사업에서 전문가와 시민의 역할이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고 이를 판단할 사회적 규범 역시 아직 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는 건축가를 용역으로 보지만 건축가는 본인이 사회에 재능기부를 한 것이라 주장하는 극단적 대립 상태다. 보통 정부와 시민단체가 대립할 때 전문가 집단이 이를 중재하지만 우리나라는 전문가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낮아 갈등이 더욱 증폭되는 경우가 있다. 민원과 민의를 구분할 필요도 있지만, 건축가들 역시 공공성 담론을 예전처럼 도덕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호혜적 재능기부도 거부해야 한다. 전문가는 정당한 보수를 받고 하는 직능을 통해 사회에 기여해야 직업적 기반을 유지할 수 있고 그래야만 시민 대 시민으로 대화할 수 있다.
김현수 공공 문화 공간 조성 과정에서 설계공모의 심사위원과 심사 과정을 공개해 시민들의 관심과 신뢰를 높이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전체 설계공모 과정에서의 의견 수렴 및 반영에 관한 시스템은 미흡하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무분별한 민원으로 인해 일정 지연과 설계의도 훼손으로 민의를 수용하는 데 주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일례로 순천부읍성남문터광장(「SPACE(공간)」 669호 참고)은 주민공청회와 현장 민원을 수렴해 주차장을 추가 확보하고, 인근 지하상가와 연결하는 엘리베이터를 추가 설치하는 등 시민의 의견을 반영했다. 하지만 마지막 준공 단계에서 카페 설치에 대한 민원이 있었고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못한 채 대안 없이 카페와 편의시설이 다목적 교육실로 변경되었다. 이로 인해 공원과 광장의 일상적 활성화에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설계공모 사업은 공식적인 행정 절차에 따라 진행된다. 이 행정 절차에 따라 단계별로 진행 상황을 공개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친다면, 다양한 민원을 시의적절하게 수렴해 협의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한 결과에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맹필수 먼저 공공 문화 공간에서 민의를 충분히 반영하기 위해서는 기획과 완공 이후 운영 과정에서의 의견 수렴, 보완을 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치적 성장을 위해 임기 내 착공을 목표로 정해진 일정 내에서 신속하게 공공 문화 공간 건립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민의 수렴은 요식 행위로 치부된다. 임기 내에 보이는 성과를 이뤄야 한다는 유혹을 참고 사업을 절차대로 진행하며, 후임자는 전임자의 사업을 부정하기보다는 이어받아서 완성해가는 선순환이 순진하고 요원한 상상일지 모르겠다.
이정훈 실질적인 공공성을 구현하기 위한 프로젝트는 좀 더 많은 공청회와 설문조사 등 민의를 반영해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복합적인 프로젝트의 경우는 전문가들의 심도 높은 의견이 중요할 수 있다. 프로젝트의 방향성과 목적성에 맞게 보편적, 전문적 의견을 수용할 수 있는 탄력성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오히려 공공이라는 틀 안에서 하나의 규정으로 모든 프로젝트의 프로세스를 일원화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이치훈 민의의 반영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기술적 측면의 기획 바깥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공청회는 이미 확정된 기획에 대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수단인 경우가 많은데, 이 담론의 장이 공동체가 도시와 건축에 부여하는 지향점, 가치를 논의하고 생산적인 담론의 장으로 활용된다면 이상적일 것이다. 시민과 전문가 사이의 역할 분담 같은 것이다. 임성훈 민의는 그 자체로는 실존하지 않는다. 이를 묶어내는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없는 것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민의의 반영을 말하기 이전에 건축가들은 민의를 가치로서 창조해야 한다. 부산 감천문화마을을 보자. 이곳은 사실 인위적인 계획으로 만들어진 장소다. 정말 소중한 장소였냐면 꼭 그렇지는 않다. 살아갈 곳이 없어 무덤 옆에 텃밭을 가꾸며 살아왔던 비석마을과 같은 장소는 재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지만, 감천은 남았다. 이유는 단순하다. 예술가들이 터를 잡아 가꾸는 과정에서 민의가 실체화되면서 부산에 오면 누구나 찾는 공간이 된 것이다.
조남호 민의 수렴은 동기, 절차, 기간의 적절성에 따라 성과가 좌우된다. 시민 자치 플랫폼 위에서 정해진 설문이나 틀에 답하는 소극적 형식의 의견 수렴뿐만 아니라 시민 스스로의 정책 제안까지 이어지는 수준 높은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은 정치인으로부터 시민의 권리를 가져오는 데서 시작된다. 또한 다양한 관점을 존중하는 논의를 시작하고, 미래를 바라보는 결론에 이르기까지 때로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조항만 공적 자금을 이용하는 톱다운 방식의 공공 문화 공간 생산 과정에 민의가 반영되긴 어렵다. 공적 자금은 사용 기간과 범위가 정해져 있다. 회계연도 내 사용되지 못하면 예산 회수와 담당자 문책이 있는 한 한가롭게 민의를 모으고 연구할 공무원은 드물다. 또한 공공 프로젝트에 기부를 받는 행위가 자치단체장의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엮이기도 하는 한국에서는 예산조차도 여유가없기에 민의는 당연히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송현동의 ‘이건희 기증관(가칭)’을 보자. 서울시와 문화체육관광부는 부지를 두고 주도권 경쟁을, 정치인과 지자체장은 지지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콘텐츠가 무엇인지에 관심을 기울인다. 시민의 참여를 위한 행정적, 정책적 지원이 좀 더 세밀하게 개발돼야 한다. 지금까지의 공청회, 설문조사, 아이디어 공모는 대부분 형식적이었다. 공적 영역에서 이것을 담당하기 어렵다면 시민 주도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이 많아져야 한다. 누구를 꼭 집어 탓할 수는 없다. 천천히 하나하나 바꾸어나가면 된다. 빠른 개선을 위한 현실적인 방법으로는 시민이 먼저 나서는 것뿐이다. 그러나 보통 시민들의 삶에선 항상 먹고 사는 문제가 앞선다. 일상의 삶이 점점 더 팍팍해지고 있는 한국에서 공공 문화 공간에 민의 반영은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이다.
황두진 장기적으로는 도시와 건축 분야에도 공공기관과 시민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존재로서 다양한 싱크탱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전에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같은 시민단체에서도 그런 역할을 일부 했는데, 지금은 경제, 정치, 사회 분야에 집중하는 듯하다. 학계나 건축단체는 구성원의 특성상 그 자체만으로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으며, 일반 시민들만으로도 역시 가능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즉 폭 넓은 거버넌스 개념에 기초한 새로운 조직이 우리 분야에 필요할 것이다. 정치적 편향성을 배제할 수 있다면 시민단체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본다.
Q4.
설계공모 단계 이전에 명확한 기획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김아연 기획은 원초적인 설계 행위다. 기획자의 기여를 인정해 줄 수 있는 방식이 제도적으로 보완되어야 한다. 최근 완공 작품 시상 공모전에 지원할 기회가 있었는데 발주처, 설계자, 시공자만 쓰게 되어 있는 참가 서식에 별도 칸을 만들어 기획자 정보를 함께 제출했다가 제출 양식에 위배된다며 반려됐다. 기획자의 크레딧을 밝힐 수 있는 기회가 드물다. 좋은 공간은 좋은 생각에서 시작된다. 프로젝트를 탄생시키는 좋은 생각의 가치를 정당하게 인정해주면 좋겠다.
맹필수 「건축기본법」, 「건축서비스산업 진흥법」 등을 바탕으로 명확한 기획을 위한 업무 기준과 제도는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운영 과정에서 발주처의 미이해와 조바심, 순환 근무로 인한 책임자의 수시 교체 등으로 그 의도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막아야 할 것이다. 최근에도 모 기관에서 예산을 먼저 배정받은 사업에 대해 자문을 구해왔는데, 기획설계를 불필요한 과정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서로의 인식 사이에 괴리가 있음을 확인했다.
조항만 건축가의 뛰어난 설계가 기획의 부족함을 보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획 이전의 기획, ‘무엇을 어디에’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 원판 불변의 법칙이 괜한 말은 아니다. 세계 최초, 최대를 추구하는 ‘광화문의 100미터 국기 게양대’나 ‘난지도 인근의 더블링 전망대’를 디자인으로 뭘 더 보충하겠는가? ‘됐고 돈이나 벌자’는 실용적 태도의 건축가들이 생산하는 이미지와 대안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임성훈 건축 기획에 있어 우리 사회는 명확한 ‘가치’보다도 돈과 면적이라는 부족한 자원을 두고, 이를 누구에게 얼마나 ‘분배’해야 하는지를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 이런 구조에서 다툼의 승자가 권력자가 되면 돈과 면적을 자신의 정치적 성과를 위한 아이코닉한 건축으로 배분하는 일이 나타나며, 시민들은 시설 유치에 따른 집값 상승을 이유로 이를 추종한다. 건축가들이 분배의 사회적 문제를 깊이 다루어야 한다. 이런 상황을 파고들어 제대로 기획하고 생산하기 위한 급진적인 대안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오피니언 : 공공 문화 공간을 생산하는 방식으로서 설계공모 ② (바로 가기)
월간 「SPACE(공간)」 684호(2024년 11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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