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5년 3월호 (통권 688호)
미칼론 자전거
하이브리드 폴딩 방식으로 접힌 상태
인터뷰 노일훈 스튜디오 노일훈 대표 × 이소운 기자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노일훈은 자연이 스스로 최적의 형태를 만들어나가는 현상을 탐구하고, 건축적 조형물로 재현함으로써 그 탁월함과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실험적인 디자인의 가구와 설치 작업을 선보여왔다. 그간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노일훈은 2018년부터 미칼론(MIKALON)이라는 이름의 자전거 프로젝트를 준비해왔다. 그가 10년 이상 연구해온 구조적 아이디어를 자전거라는 형식에 담아낸 것이다. ‘움직이는 전시, 매일 사용할 수 있는 예술품’이라는 기치 아래 시작된 미칼론은 오랜 준비 과정을 마치고 올해 4월 해외에서 정식 출시를 앞두고 있다.
이소운(이): 건축설계를 그만두고 작품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노일훈(노): 건축을 공부할 때나 실무를 할 때나 실험을 굉장히 많이 했다. 그 실험은 어떤 모형 제작이 아니라 구조적 아이디어 내지 미학적 목표를 형상화하기 위한 실험이었다. 나는 그게 가장 순수한 건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건물이 실제로 지어지는 데에는 비용이나 기술적 한계가 있다. 만약 특수한 구조 방식을 그대로 실현하기 위해 10억 원이 필요한데, 콘크리트로 하게 되면 1억 원으로 할 수 있다고 하면 경제적인 방식을 택해야 한다. 그러면 처음에 순수했던 것이 희석된다. 당연하고 어쩌면 현실화되는 과정일 수 있지만 그게 괴롭다고 느꼈다. 나는 파도, 물결, 번개, 지구 자기장의 패턴 등 자연현상에서 발견되는 형태를 좋아한다. 벌써 15년 정도 된 것 같은데, 자연이 만드는 완벽한 형태를 이용하는 구조에 관한 아이디어가 많았다. 이를 가장 순수한 상태로 표현하기 위해 건축적 조형물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데 사고파는 거래가 가능한 포맷이어야 선순환이 된다고 생각해서 가구를 선택했다. 맨 처음 시작이 천을 잡아당겨서 만든 ‘패브릭 테이블 R’(2007)이었다. 하고 나서 보니까 그런 수요와 시장, 장르가 이미 디자인 아트라는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패브릭 테이블 R(2007) ©Kim Junghan
이: 가구에 이어, 자전거라는 특수한 형식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
노: 작품 활동을 8년 정도 하면서 전시도 여러 번 했다. 그런데 전시는 공간을 필요로 하고 한정된 기간 내에만 이루어진다. 어떻게 하면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관객들과 더 많은 접점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됐다. 아키그램의 ‘워킹 시티’(1964)는 계속 돌아다니면서 전시를 한다. 어딘가에 멈추면 그곳이 전시장이 되고, 또 페스티벌이 된다. 그런 유사한 포맷이 무엇일지 고민하다가 자전거를 떠올렸다. 그간 내가 선보여온 작품들은 자연에서 발견되는 조화와 힘을 모방해 물리적 실체로 구현한 것이다. 자연에는 처음부터 정답인 형태가 정해져 있는 게 아니고 규칙에 의해 점진적으로 형태가 만들어지면서 최적의 구조에 도달한다. 사람의 핏줄을 보면 교차하면서 마디가 생기고 퍼져나가는 형태로 되어 있다. 이러한 현상이 뼈의 내부 구조, 강줄기, 번개와 같이 갈라지는 모든 자연현상에서 나타난다. 최소한의 재료를 가지고 가장 효율적으로 힘을 분산시키는 방식으로 조직화되는 것이다. 이를 모방한 것이 ‘라미 벤치’(2013)다. 탄소섬유를 꼬아 만든 가느다란 실들이 서로 교차할 때마다 각도가 미세하게 조정되는데, 조정된 각도 자체가 힘의 전달에 가장 효율적인 형태이기 때문에 그렇게 변하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한 건데, 관객에게는 잘 전달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전시장에 가구를 놓고 여기에 자연의 어떤 형태와 원리가 적용되었는지를 설명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오늘 좋은 문화생활을 경험해봤다’는 정도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건 관객과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시 공간을 나가는 순간 잊혀진다. 엄밀히 말하면 가구라는 포맷으로 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가구가 굳이 그 정도의 강도를 가지면서 가벼울 필요가 없다. 그런데 자전거라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자전거는 무게와 강도가 전부다. 자연이 가진 아름다움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자전거라는 포맷에 적용을 한다면, 심지어 기존의 자전거 제작자들이 끊임없이 노력해온 것을 내가 새로운 방식으로 해낸다면 일종의 증명이 되는 거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가면 그 길 자체가 전시장이 되고, 보는 사람들은 다 관객이 된다. 그래서 이게 말이 되는 포맷이라고 생각했다.
이: 미칼론은 라미 시리즈의 자매 프로젝트다. 라미의 구조적 아이디어가 자전거 프레임에 어떻게 적용됐나?
노: 라미의 핵심은 낭창낭창한 상태의 실들이 서로 교차해서 당겨질 때 그 각도가 스스로 조절되면서 최적의 구조를 찾아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전거 프레임은 마디 개수가 적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훨씬 단순하다. 처음에는 정말로 실을 잡아당겨서 실험을 했고, 그다음에 가상 환경에서 테스트를 했다. 라미와 같은 방식으로 구조계산을 하는 알테어 사의 인스파이어라는 소프트웨어가 있다. 힘이 많이 가해지는 부분에는 재료를 남기고, 덜 가해지는 부분에는 제거하는 과정을 수학적으로 계산해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라미에서 실이 서로 교차하고 당겨지면서 최적의 각도를 찾듯이, 인스파이어도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면서 자연스럽게 갈라지고 퍼지는 구조를 찾는다. 시뮬레이션을 통해 힘의 흐름에 대응하는 최적화된 프레임 형태를 정했고, 이후에 실제 제작이 가능한 방식으로 변환했다. 이러한 접근은 일반적으로 최적화라고 말하는 방식과 반대되는 것이다. 어떤 일본 대학의 토목공학과에서 했던 실험이 있는데, 지진에 대응하는 최적화된 구조를 설계하기 위해 정육면체에서 시작해서 지진 상황을 시뮬레이션하고 취약한 부분을 보강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러니까 몇 세대 후에는 결국 벌집 같은 구조가 되더라. 미칼론은 정반대의 방법론이다. 처음부터 최적화된 형상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걸 현실화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다. 전자의 방법을 사용하더라도 50세대 정도 지나면 비슷한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말하자면 숏컷을 썼다. 건축에서 이런 접근을 사용한 사례가 안토니오 가우디와 프라이 오토다.
기존에 자전거 산업에서 강도를 높이면서 가볍게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다이아몬드 프레임이라고 하는 삼각형으로 이루어진 구조를 사용해왔다. 그러면 특정 부분에 더 큰 스트레스가 작용하게 되는데 그 부분은 보강하고, 동시에 어떤 부분은 덜어내서 무게를 줄인다. 이런 작업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점진적으로 구조를 최적화한다. 이걸 수십 년 동안 해왔다. 반면 미칼론은 삼각형 구조라는 전제를 두지 않고 어디가 갈라져야 하는지부터 계산했기 때문에 구조적인 혁신이 가능했다.
비스포크 티타늄 파츠 ©Roh Ilhoon
자전거 제작 지그 ©Roh Ilhoon
이: 디자인 초기 단계에서 이미 최적화된 프레임 형태를 도출했다면 단순히 3D 프린터로 출력하는 방식도 가능했을 것 같다.
노: 처음에는 3D 프린팅을 해서 만드는 것도 고려했다. 그런데 3D 프린팅 방식은 비용이 너무 높기 때문에 접근성이 떨어진다. 미술관에서 가만히 서 있는 전시 형식을 탈피하고자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건데, 그러려면 이 자전거가 실제로 거리에서 돌아다녀야 한다. 시제품이 아니라 실제로 양산이 가능해야 했다. 나는 처음부터 확고하게 ‘콘셉트 바이크’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존의 자전거 생산업체와 엔지니어들이 하는 수준까지 올라가야만 했다. 그리고 캐리어에 들어가는 크기로 작아진다는 기능을 추가한 것이다. 접이식으로 출시된 이유는 법규와도 관련이 있는데, 국제사이클연맹의 UCI 인증이라고 하는 자전거 관리 감독 규정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원래라면 프레임에 마디가 있으면 안 되는데 접이식 자전거는 상관없다. 라미의 구조적 아이디어를 순수하게 유지하면서도 기존의 자전거 업계에서 ‘진짜’로 인정받기 위한 전략이었다. 수천 번의 시뮬레이션과 자체 설계 및 제조 과정을 거쳐 실제 양산이 가능하게 됐다. 미칼론이 9kg 미만인데 싱글 기어라고 했을 때는 7.8kg으로 동급에서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가볍다. 심지어 더 가벼워질 수 있다. 작년 7월에 독일에서 열린 유로바이크라는 자전거 박람회에 참여했는데 미칼론의 무게에 굉장히 놀라워했다. 이 자전거를 통해 내 메시지가 전달이 된다는 거다.
이: 미칼론이 일반적인 접이식이 아닌, 분리형과 접이식을 합친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출시된 이유가 프레임 형태와 관련이 있나?
노: 미칼론 프로젝트의 핵심은 최적화된 프레임 구조를 찾는 데 있었고 콤팩트하게 만드는 건 그다음 단계였다. 접이식 자전거의 경우 접는 방법을 개발한 뒤에 사후적으로 구조보강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미칼론은 자전거의 형상을 어느 정도 만들어놓은 상태에서 ‘어떻게 하면 더 콤팩트하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나중에 한 거다. 나중에 접이식으로 바꾸려고 하니까 처음의 아이디어가 유지가 안 됐다. 그 해법으로 프레임을 완전히 분리하는 방식을 새로 고안했다. 그리고 나서 한 번 더 접을 수 있는 방법을 추가했다.
인스파이어 시뮬레이션 ©Roh Ilhoon
제작 가능한 방식으로 변환하기 위한 초기 스케치 ©Roh Ilhoon
이: 미칼론이 출시되기까지 8년이 걸렸다.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
노: 처음에는 길어 봐야 1년이라고 생각했는데, 8년이나 걸렸다. 기존에 라미 시리즈를 준비했을 때에도 처음에는 탄소섬유를 다루는 업체를 찾아가서 만들어 달라고 했다. 이러한 형상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되게 많이 들었다. 결국 재료부터 시작해서 실을 고정하는 틀까지 개발했다. 아이디어가 있어도 그걸 현실화하기 위한 방법이 없으니 만드는 방법 자체를 찾아낼 수밖에 없었다. 자전거도 같은 상황에 직면했다. 미칼론은 마디가 굉장히 많아서 기존 방법으로는 제작할 수 없는 형상이었다. 일반적인 다이아몬드 프레임은 앞쪽과 뒤쪽에 삼각형 두 개만 있다. 건축이 12mm 정도의 오차를 허용한다면, 자전거는 스케일이 훨씬 작기 때문에 요구하는 정밀도의 수준이 다르다. 일부 부품의 공차가 0.02mm를 넘어가면 자전거가 뒤틀린다. 해외 자전거 제조업체 세 군데를 만나보고, 이탈리아와 중국에서도 시제품을 제작했는데 다 실패했다. 결국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자전거 업체와 미팅을 하면서 노하우도 알게 됐다. 주로 용접할 때의 열팽창을 제어하기 위한 것들이었다. 한번 이해하고 나니까 적용할 수 있었다. 3년 전에 용접 학원을 등록해서 3개월 정도 연습을 했다. 용접을 할 때 뒤틀리지 않게끔 하는 지그도 직접 만들었다. 지그, 몰드, 결국 모든 게 틀이다. 사실 라미 시리즈의 핵심 아이디어도 결과물 자체보다는 오히려 그 틀에 있다. 왜냐하면 모든 파라메터 제어는 틀에서 이루어진다. 자전거도 마찬가지다. 실패했던 이유들을 분석해 보니 결국 틀의 문제였다. 내가 직접 붙잡고 하면서부터 정밀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 실제 제작이 가능한 수준이 됐다.
이: 건축 교육을 받고 건축 실무를 했던 경험이 현재의 작업 방식과 어떤 관련이 있나?
노: 내가 포스터 앤 파트너스에서 실무를 했을 때 섀도우 갭, 문고리, 엘리베이터 버튼, 그리고 욕조까지 모든 걸 다 디자인했다. 물론 모든 걸 다 제어할 수는 없으니까 스페셜리스트의 도움을 받았다. 재미있는 건, 자전거는 디테일이 많은 게 오히려 장점이다. 거의 모든 자전거 회사들이 각자 규격의 볼트 디테일이 있다. 어떤 프레임에 대응하는 가장 최적화된 디테일과 솔루션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어떤 경우에는 특허를 내서 다른 회사는 못 쓰게 한다. 미칼론의 볼트와 너트, 거의 모든 부품들이 새로 설계가 된 거고 최적화 과정을 거쳐 가공성까지 고려해서 주문 제작했다. 100% 비스포크다. 건축을 했을 때 소화전의 커버까지도 디자인했던 디테일 작업들, 그 프로세스가 지금 자전거에도 적용이 되고 있다.
라미 벤치 실험 ©Roh Ilhoon
라미 벤치(2013) ©Kim Junghan
이: 현재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나?
노: 확실하게 나의 정체성은 건축가라고 말할 수 있다. 내가 확신하는 건, 건축이 건물일 필요는 없다는 거다. 건축은 포용적이고 확장성이 많다. 미켈란젤로가 건축가인가? 건축은 예술의 한 장르였고, 그때는 건축가라는 직업도 없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고도의 엔지니어링과 전문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게 됐고 건축가라는 업역이 생긴 것 같다. 재미있는 점은, 기술이 더욱 발전하다 보니까 엔지니어조차 계산을 하지 못하게 됐다.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컴퓨터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게 되고, 최근에는 인공지능까지 왔다. 오히려 쓰기 쉽게 되면서 모든 사람에게 길이 열린 것이다. 복잡도가 증가하면서 세분화되고 전문화되었다가, 복잡도가 더 증가하면서 어느 시점에서 다시 창조라는 이름의 직업으로 합쳐지는 추세가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현대건축에 와서는 건축의 경계와 정의가 더욱 불분명해졌다. 아키그램이 한 게 건축인가? 사막에 텐트를 짓는 행위가 건축인가? 나는 굳이 그 정의를 내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건축에서 배웠던 것들이 건물을 설계하고 짓는 행위에 갇혀 있을 필요는 없다. 나는 지금 자전거를 하고 있는데 건축에서 배웠던 기술과 노하우가 현재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내가 하는 건 다 건축이라고 생각한다.
이: 다음 단계로 무엇을 생각하나?
노: 미칼론이 시작점이다. 중장기적인 계획으로 미칼론 랩을 만들려고 한다. 자전거 전시회를 가면 신발부터 안경, 헬멧 등 관련 제품이 정말 많다. 이게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다. 미칼론 랩에서 그것들을 다 미칼론화하고 싶다. 건축 디테일이 그렇듯, 자전거도 끝이 없다. 신소재, 신기능, 신기술이 들어오면 계속 발전할 수밖에 없다. 가구와 설치 작품 활동도 계속될 것이다. 최근 자전거에 초점을 맞춰왔지만 작품도 준비하고 있었다. 올해 6월에 프랑스의 오뷔송이라는 곳에서 태피스트리 장인들과 콜라보한 작품이 전시될 예정이다.
분리된 프레임
특허받은 케이블 분리 장치. 브레이크 케이블을 몇 초 안에 분리하고 다시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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