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MSPACE는 국내 최고의 건축 포털 매거진입니다. 회원가입을 하시면 보다 편리하게 정보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Login 회원가입
Naver 로그인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30주년 기념 인터뷰 5: 2014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큐레이터, 배형민

진행
방유경 기자

「SPACE(공간)」 2025년 5월호 (통권 690호) 

 

「SPACE(공간)」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KO)가 계획한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30주년 건축전 아카이브 연구’의 일환으로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1996~2025』를 준비하고 있다. 2025년 5월에 출간될 이 책에는 한국관 초창기 전시의 커미셔너 인터뷰가 수록될 예정이다. 출간에 앞서 이 인터뷰를 「SPACE」에 연속 기획으로 선공개한다. 이를 통해 베니스비엔날레를 중심으로 한국 건축 전시사의 초창기 서사를 재구성하고, 3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관의 의미를 짚어보고자 한다. 

 

[​Venice Biennale Interview​]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30주년 기념 인터뷰 

1 초대 커미셔너, 강석원 

2 세 번째 커미셔너, 김종성 

3 다섯 번째 커미셔너, 조성룡 

4 여섯 번째 커미셔너, 승효상 

5 2014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큐레이터, 배형민​

 

 

 

 

베니스비엔날레와 한국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앞서 4회차에 걸쳐 강석원, 김종성, 조성룡, 승효상 초기 커미셔너들을 만나, 베니스비엔날레라는 세계 무대에서 한국관 전시가 조직되고 소개된 과정을 생생한 목소리로 들어보았다. 한국관 30주년을 기념해 진행된 이번 인터뷰의 마지막 순서로 배형민(서울시립대학교 교수)을 만났다. 승효상이 커미셔너를 맡았던 2008년 한국관의 도큐멘터로 베니스비엔날레에 처음 참여한 그는, 이후 현재까지 역할을 달리하며 베니스비엔날레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해왔다. 2008년 당시 건축 역사학자와 비평가로서 활동하던 배형민은 2012년 주제전을 비롯해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2014년 한국관 전시에 큐레이터로 참여하며 ‘건축 큐레이터’로서 확고한 기반을 다진 인물이다. 이번 인터뷰에서 그는 역사가로서의 비판적 시각에 더해 내부자로의 구체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건축이 전시되는 무대로서 베니스비엔날레의 의미와 역할을 살펴보는 한편, 지난 30년간 한국관 전시의 변화가 시사하는 바를 짚었다. 또한 달라진 국제 정세와 상황 속에서 베니스비엔날레와 한국관에 요청되는 미래 모습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눴다.

 

 

2008 베니스비엔날레 당시 베니스 현지에서 배포된 한국관의 리플릿 앞장 펼침면 Front spread of the leaflet of the Korean Pavilion at the Venice Biennale 2008, distributed in Venice 

 

 

2008년 한국관 〈Critical Topic: Pajubookcity as Culturescape(크리티컬 토픽: 컬처스케이프, 여기 파주출판도시)〉

방유경: 베니스비엔날레에 처음 참여하신 건 승효상 선생이 커미셔너를 맡았던 2008년 전시였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전까지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이하 건축전)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으셨나요? 

 

배형민: 건축전에 참여한 건 2008년이 처음이었죠. 그때까지도 국내에서는 베니스비엔날레를 세계 건축의 풍향계처럼 인식했던 것 같아요. 우리는 세계 건축의 중심이 아니라 변방에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유명 건축가들이 올림픽 나가듯 대표 작품 들고 모여서 경연하는 서구 중심의 무대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고. 그런 와중에 베니스비엔날레를 인식하기 시작한 게 정기용 선생의 2004년 〈City of the Bang(방의 도시)〉이었어요. 선진국이 주최하는 베니스비엔날레라는 글로벌 무대에서 우리를 어떻게 내보일 것인지를 보여주었던 전시였어요. 건축가가 자기 작품을 보여주는 것 이상의 전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상상하기 어려웠는데, 한국의 도시적 상황을 건축가들을 통해서 보여주겠다는 기획이 그 자체로 신선했어요. 그런 면에서 2008년에 파주출판도시에 대한 접근 방식도 건물 중심의 전시를 벗어나려고 했던 시도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2008년 베니스 경험이 큐레이터로서 내가 성장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됐죠. 

 

방유경: 승효상 선생께 건축전 도큐멘터로 참여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는 어떠셨어요? 큐레이터였던 최문규 선생과의 협업은 어땠는지도 궁금하고요. 

 

배형민: 도큐멘터라는 역할이 원래 비엔날레 조직에 없는 명칭이잖아요. 실상 큐레이터 역할을 한 거죠. 개인적으로는 첫 큐레이팅이었는데 ‘도큐멘터’라고 부르니까 사람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잘 모르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아쉽기는 했어요. 최문규 선생은 전시 공간 디자인을 맡았고, 저는 내용을 만들었으니까 그 구도는 명확했어요. 그때 최문규 소장 사무소인 가아건축과 우리 집이 불과 100m 거리였는데 사무소에 모여 전시 준비를 많이 했어요. 분위기도 좋았고 서로 뜻이 잘 맞았죠. 

 

방유경: 승효상 선생 개인전을 포함해, 파주출판도시와 그 안에 지어진 건축을 소개하는 전시들이 국내외에서 여러 차례 열리기도 했는데요. 도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한 건 베니스비엔날레가 처음이었죠? 

 

배형민: 2005년에 베를린 에데스 갤러리에서도 파주출판도시를 다룬 전시가 열렸죠.▼1 당시 제가 관여하지는 않았는데 파주출판도시와 관련된 기존 전시들은 주로 건축물을 소개했어요. 반면 베니스비엔날레에서는 사람들이 파주출판도시라는 장소를 만든 역사가 주제니까 내용이 훨씬 방대했죠.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폭넓게 담으려고 하니까 영상 외에는 감당이 안되겠더라고요. 출판계에서 산업단지를 조성하게 된 역사가 198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거든요. 출판사 대표, 편집자, 디자이너 등 출판인부터 직접 건축가, 인근 마을 주민, 출판도시 안에 거주하는 주민까지 내가 다 인터뷰했어요. 2008년 자료를 다시 보니까 젊었을 때라 정말 열심히 쫓아다녔어요. (웃음) 인터뷰하는 과정이 저한테는 중요한 의미가 있었어요. 

 

방유경: 전시 매체와 구성에 대해 최문규 선생과 어떻게 상의하셨는지도 궁금했어요. 

 

배형민: 영상 중심으로 전시하는 건 최문규 선생 아이디어였어요. 그래서 전시실을 (한국관 공간에 맞춰) 세 개로 나눠서 ‘THE PLACE’, ‘THE BOOKS’, ‘THE VOICES’로 섹션을 구성했죠. 그런 구조도 같이 짰어요. 파주출판도시 관련 사진 자료를 모아서 조성 과정의 역사를 영상으로 보여주자는 취지였고, 그와 관련된 소리를 연대별로 보여주는 멀티스크린 영상으로 풀자고 했죠. 우리 나름대로는 스펙터클한 전시를 만들자는 생각이었어요. ‘THE PLACE’에서는 ㄷ자 공간의 바닥에 파주출판도시 항공사진을 깔고, ㄷ자 벽에 수평선처럼 길게 화면을 설치해 영상이 변하도록 했어요. 벽면의 영상과 연동돼서 멀티스크린 쇼가 펼쳐지는 거죠. 멀티미디어를 적용한 새로운 시도였는데 기술적으로 구현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어요. 화면을 고정해놓은 가벽 뒤로 컴퓨터를 일일이 설치했는데, 들어가서 계속 고쳐야 했거든요. 지금이야 컨트롤이 간단하지만 그때는 버벅거리고 멈추고 영상 타이밍도 안 맞고. (웃음) ‘THE PLACE’ 다음은 ‘THE BOOKS’인데, 파주출판도시에서 만든 책들을 걸어서 설치했어요. 한국관 입구 부분까지 긴 면이 하나 있고 동그란 면이 있잖아요. 그래서 동그란 쪽을 ‘THE BOOKS’로, 안쪽 벽돌방을 ‘THE VOICES’로 만들었어요. ‘THE VOICES’ 섹션은 세 개로 나눠서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들이 연동되는 식으로 구성했고요. 

 

방유경: 당시로선 획기적인 시도였네요. 실제 영상 작업은 누가 맡았나요? 

 

배형민: 지인한테 소개 받아서 영상 촬영을 맡긴 분들이 지금의 기린그림이에요. 김종신, 정다운 선생이 영국에서 공부하고 한국 들어와서 거의 처음 작업한 프로젝트로 알고 있어요.▼2 

 

방유경: 그래서 나중에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2022) 같은 영화도 제작할 수 있었던 거군요. 

 

배형민: 맞아요. 베니스비엔날레 작업이 토대가 됐을 거라고 생각해요. 방유경: 승효상 선생께 리셉션(저녁 만찬)도 대단했다고 들었어요. 배형민: 카를로 스카르파가 리모델링한 퀘리니 스탐팔리아 재단 정원에서 했어요. 리셉션이 인상적이었어요. 공간이 워낙 아름답잖아요. 전시 개막식은 한국관 앞에서 했습니다. 개막식 사진을 보니 당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 김정헌 위원장의 연설을 내가 통역하는 장면도 있네요.(본지 114쪽 참고) 최문규, 나, 승효상 선생, 김정헌 위원장. 위원장님이 목천문화재단의 창립자인 김정식 선생 동생이에요. 그 집안 삼형제가 유명하잖아요. 첫째 김정철과 둘째 김정식이 정림건축을 함께 설립했고, 막내는 화가이자 미술계 중요한 인사였고요. 

 

방유경: 전시 때 타이포그래피를 활용한 포스터와 리플릿만 배포했다고 들었어요. 그래픽디자인은 누가 맡았나요? 배형민: 홍동원 선생이 했을 거예요. 

 

방유경: 전시 도록이 따로 제작되지 않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배형민: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파주출판도시를 다룬 책▼3이 기문당에서 발간될 예정이었어요. 그 책이 있으니까 굳이 만들지 않았던 것 같아요. 도록이나 그 책 내용에 큰 차이가 없을 테니까요. 그때 전시 예산도 부족했지요. 

 

2012 베니스비엔날레 주제전의 일환으로 열린 〈Common Pavilions〉에서 소개된 한국관 전경 사진. 사진작가 가브리엘르 바실리코가 촬영한 이 사진은 2014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도록(10~11쪽)에 실렸다. 출처: Crow’s Eye View: The Korean Peninsula, Archilife, 2014, pp. 10~11. ​

 

2012년 주제전 〈Common Pavilions〉

 

방유경: 2008년 이후 베니스비엔날레에 참여하신 일이 또 있었나요? 

 

배형민: 2012년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Common Ground(공통의 기반)’라는 주제로 총감독을 맡았을 때 주제전에 작가로 초대를 받았어요. 자르디니에 있는 국가관을 자국 사람이 해석하고 설명해주는 〈Common Pavilions〉 전시였죠. 국가관을 흑백으로 촬영한 사진과 함께, 국가관 건축에 대한 해석을 영어와 자국어로 내레이션하는 오디오를 같이 제작했어요. 사진을 촬영한 가브리엘르 바실리코도 그렇고, 큐레이터였던 디너 앤 디너 아키텍츠 역시 데이비드 치퍼필드와 같은 모더니스트라 전시 공간이나 구성도 아주 깔끔했죠. 그때 집중적으로 글을 쓰면서 한국관에 대한 관심과 해석을 확장하게 됐어요. 당시 전시 도록도 큰 판형으로 멋지게 발간됐는데, 그때 썼던 글이 이듬해 한국관 미술전 도록에도 그대로 실렸어요. 김수자 선생 작업 자체가 한국관을 해석하는 거였잖아요.▼4 

 

방유경: 당시에는 한국관을 어떻게 해석하셨나요? 

 

배형민: 자르디니 안에 초기 국가관들은 제국주의 시절에 만든 전시관들이라 그 모습이 조금 이상해요. 특히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국가관들은 고전주의 양식, 권위주의적으로 설계됐어요. 건물 규모는 작은데 큰 건물처럼 만들어놨어요. 그래서 그런 전시관들이 서양의 무덤 집, 마우셀리움처럼 다가왔어요. 서양 부호들이 개인 묘지를 만드는 방식처럼 고전 양식을 따라 박공지붕을 넣고 오더를 넣은 거죠. 그런데 한국관은 그와 대비되는 ‘살림집’ 같다고 느껴지더라고요. 한국관을 다음과 같이 서술했어요. 

 

“자르디니는 일종의 도시다. 바쁜 전시 기간 중에는 작은 박물관들로 채워진 전원도시다. 하지만 전시가 없는 긴 시간 동안은 숲 속에 커다란 추모관들이 늘어선 네크로폴리스와 같은 곳이다. 이 이상한 도시에 박물관도 추모관도 아닌 전시관이 있다. 한국관은 집이다. 스케일이 집과 같고, 집이 가져야 할 프라이버시도 있다. 러시아, 일본, 독일관 뒤에 숨어, 자르디니 축선에서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기존의 벽돌 집, 계단식 원통 공간, 가벼운 철제 프레임의 입구 등, 밖에서 볼 때 다양한 집의 기능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집에는 앞마당과 후정이 있고 옥상 테라스도 있다. 현관을 통해 여유로운 직사각형의 전시홀에 들어선다. 여기는 밝은 “거실”이다. 천창을 통해 빛이 내려오고 나무 스크린이 달린 넓은 유리창을 통해 빛이 스며들어온다. 한옥처럼 나무 스크린을 접어 켄틸레버 차양에 매달면 거실은 정원과 산마르코 운하로 열린다. 전시 홀의 끝에 산마르코의 물을 바라볼 수 있는 베란다가 마련되어 있다. (…) 김석철은 강한 조각적인 건축으로 알려져 있지만 한국적인 집을 만들려는 과정에서 포용력이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집의 스케일을 유지하면서 전시에 따라 유연하게 변하는 건축을 창출하였다. 인접한 독일관에서는 한스 하크가 히틀러의 지시로 갈렸던 대리석 바닥을 부숴버린 적이 있었다. 무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무거운 건축과는 달리 한국관에는 편안함이 있다. 짧은 역사 속에서도 한국관의 전시들은 그 건축에 다양하게 대응하고 이를 편하게 변형하였다. 한국관의 스케일과 현장감에 기대어 집의 풍경을 흡수하고 재연하였다.” 

_배형민, ‘한국관에 머물다’, 『Common Pavilions』, Scheidegger & Spiess, 2012, 263~265쪽에서 발췌 

 

서양의 국가관이 ‘음택’이라면, 한국관은 ‘양택’인 거죠. 여러 이유 때문에 밖으로 열려 있고, 원래 화장실로 쓰이던 벽돌 건물을 포섭하면서 유일하게 화장실이 있는 국가관이 됐고요. 그런 속성을 나는 긍정적으로 봤어요. 미술계에서는 전시 공간으로서 한국관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잖아요. 억지로 화이트 큐브로 만드는 게 아니라, 건물 자체를 내 작품의 주어진 조건으로 인식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게 현대 예술가의 태도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2013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김수자 선생이 보여줬던 태도처럼. 

 

방유경: 다양한 계기와 사건을 통해 한국관을 입체적으로 경험하셨네요. 

 

배형민: 2012년 〈Common Pavilions〉 프로젝트로 개막식을 포함해 베니스를 여러 차례 갔고 한국관 전시도 보게 됐어요. 그때 커미셔너와 작가 선정, 전시의 수준 등 논란이 많아서 2014년부터는 커미셔너 선정이 공모제로 바뀌게 됐죠. 2008년부터는 팬데믹 때문에 못 본 2021년 전시만 제외하고 2023년까지 한국관 전시를 다 본 셈이에요. 이 시기는 제가 직접 관여한 전시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짚으면서 베니스비엔날레 전반에 대해서도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2014년 한국관 

 

​

2014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외부 전경 

 

 

〈Crow’s Eye View: The Korean Peninsula(한반도 오감도)〉

방유경: 2014년 한국관에서 본격적으로 큐레이터로 활약하셨는데요. 그해 한국관에 처음 도입된 주제 공모 과정은 어떻게 진행됐는지 궁금해요. 

 

배형민: 나는 2014년에 커미셔너 선정과 직결된 관계에 있었어요. 후보였던 김영준 팀과 조민석 팀에서 모두 나한테 큐레이터를 맡아 달라고 요청해서 두 팀에 다 포함돼 있었거든요. 각 팀 기획에도 참여했고요. 그때 승효상 선생이 심사위원장이었는데, 내 기억에 김영준 선생이 최종 발표장에 안 나타났어요. 대신 팀원이었던 염상훈(현 연세대학교 교수)이 발표했죠. 자연스럽게 조민석 팀으로 구도가 기울었어요. 물론 조민석 팀의 주제가 너무 매력적이기도 했고요. 선정 토론 과정에서 북한 건축을 다루는 주제의 실현가능성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한국관으로서 적절한 주제냐는 말도 있었고요. 당시 총감독이었던 렘 콜하스가 ‘Fundamentals(근본)’를 전체 주제로 제시하면서 국가관에 ‘Absorbing Modernity(모더니티의 수용)’란 주제로 전시하도록 요청했잖아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을 근대의 출발로 보고 100년이 지난 시점에 ‘역사적인 주제’를 던진 거죠. 총감독이 국가관까지 주제를 정해준 게 처음이었는데, 렘 정도의 영향력 있는 인물이 제시하니까 모든 국가관에서 진지하게 대응을 했어요. 2014년만의 독특한 상황이었죠. 국가관을 의식하면서 총감독이 지휘하는 상황이니 커미셔너 선정도 전략적으로 생각해야 되잖아요. 렘 콜하스의 수하에서 성장한 건축가들이 전 세계에 퍼져 있는데, 공교롭게도 김영준과 조민석 둘 다 OMA 출신이에요. 오로지 주제만 가지고 논리적으로 따져보더라도, 남북 분단이 한반도 근대의 핵심적인 상황이니까 조민석 팀의 안이 설득력 있었던 거죠. 황금사자상 수상 이후 개인적으로 다른 전시들을 복기하고 자평해 봤는데, 다른 국가관들은 너무 회고적이었어요. 역사적인 주제를 다루는데 현재성이 부족했던 거지요. 관심은 가지만 다 지나간 옛날이야기처럼 다가왔어요. 그런데 남북한 건축은 굉장히 불확실한 미래를 생각하게 하지요. 남북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현재와 미래 사이에서 긴장감이 흐르는 전시였어요. 그래서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새롭게 다가오는, 전시의 효과도 특별했습니다. 

 

방유경: 커미셔너로서 조민석 소장의 역량에 대해 어떻게 느끼셨어요? 

 

배형민: 조민석 소장과는 2011년에 광주디자인비엔날레 때 둘 다 큐레이터로 같이 일했던 경험이 있어요. 당시 승효상과 아이웨이웨이가 총감독이었고 내가 수석... (하략)

 

_

1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에데스 갤러리에서 승효상의 초청 건축전이 〈Culturescape: Works in Korean Modernity(컬처스케이프)〉란 제목으로 2005년 9월 23일부터 11월 3일까지 열렸다. 승효상과의 직전 인터뷰에 따르면, 당초 개인전으로 초대를 받았지만 전시실 두 곳을 마련해 한 곳에서는 승효상의 개인 작업을, 다른 전시실에서는 파주출판도시에 지어진 한국 건축가들의 작업을 패널과 모형으로 소개하는 방식으로 전시가 꾸려졌다고 한다. 전시 오프닝에는 플로리안 베이겔, 조성룡, 한국문화예술진흥원(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사 등이 참석했다. 당시 모습은 에데스 갤러리의 온라인 아카이브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aedes-arc.de/cms/aedes/de/programm?id=19037536 

2 “김종신: 2007년 영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친구가 인터뷰 촬영을 좀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누구 인터뷰인지도 모르고 일단 갔는데 서울시립대학교 배형민 교수님이 열화당 이기웅 대표님을 인터뷰하는 현장이었죠. 단순 촬영 아르바이트로 갔는데 너무 재미있었고, 배 교수님과 같이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저는 영국의 골드스미스 칼리지에서 영화연출 석사를 했고, 와이프가 케임브리지 건축대학원에서 건축영상을 공부했어요” 말씀드리니 사실 지금 베니스비엔날레에 전시될 영상을 작업하는 건데 같이해볼 생각이 있냐고 물으셨어요. 그래서 정다운 감독이 합류하게 됐죠. 저는 건축의 ‘ㄱ’자도 몰랐을 때예요. 그때만 해도 15년 후에 저희가 파주 출판도시를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만들 줄은 생각도 못 했죠.” 「SPACE(공간)」의 온라인 매거진(VMSPACE)에 게재된 인터뷰 내용 중 발췌. 출처: 오주연, 김종신, 정다운, ‘기린그림, 도시의 삶을 기록하다: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 「VMSPACE」, https://vmspace.com/ report/report_view.html?base_seq=MjE0MA, 2024년 12월 17일 접근. 

3 해당 책은 2010년 3월 기문당에서 『파주출판도시 컬처스케이프』란 제목으로 국영문이 병기되어 발행됐다. 승효상이 ‘엮은이’로 표기된 이 책에는 전시 주제글 등 비엔날레와 관련된 내용은 별도로 수록되지 않았다. 책 전반부는 출판인을 대표하여 이기웅(열화당 대표)의 발간사와 승효상의 글(‘파주출판도시, 그 문화풍경을 만든 이들’), 플로리안 베이겔과 필립 크리스토의 글(‘파주 랜드스케이프 스크립트’)과 함께 ‘파주출판도시 건축설계지침’이 실렸다. 전체 470쪽 가운데 370쪽이 유형별 건축물의 개요, 도면, 사진 등을 정리한 자료로 구성됐으며, 책 후반에 배형민의 크리틱 ‘파주출판도시의 낯선 경계’가 함께 실렸다. 해당 글에는 출판인조합과 건축가들이 맺은 비공식적이고 상징적인 협약인 ‘위대한 계약’ 전문이 수록됐다. 

4 “김승덕이 커미셔너를 맡고, 김수자를 작가로 선정했다. 김승덕과 김수자는 일찍이 한국을 떠나 미국과 프랑스 등을 거점으로 삼아 활동하며, 국제 미술계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베니스비엔날레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인류학적이고 문학적인 개념을 한국관이라는 실내 건축 환경에 잘 대입해 성공적으로 연출했다. 《호흡: 보따리》라는 전시 제목으로 한국관의 건물을 보따리 개념으로 상정해, 자연과 실내 공간이 나눠지는 건물 외부를 반투명 필름으로 덮었다. 김수자는 지난 30여 년 동안 천착해 온 보따리 개념을 비물질적인 소재를 이용해 건물 전체로 확장시켰다. 한국관의 건축물을 있는 그대로 충실히 시각적으로 표면화한 반면, 반투명한 필름은 건물 외벽의 유리를 보따리 개념으로 전체적으로 애워싸서 시시각각 빛의 강도에 따라 자연의 신비스런 빛의 경험을 하게 한다. 빛의 변화를 경험하는 한국관의 빈 공간은 작가의 숨소리로 이루어진 사운드 퍼포먼스 〈The Weaving Factory(2004-2013)〉으로 채워진다. 무반향실에서 재현된 〈호흡: 정전〉은 현대 도시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완벽한 어둠과 적막은 인간 존재의 가장 원초적인 생명의 시작과 끝, 즉 죽음에 대해 잠시 생각하게 한다. 특히 이 무반향실은 관람에 있어 현실적 제약으로 관객 1~3명이 들어가서 1~2분 정도만 머무를 수 있었다. 관객이 공간을 경험함으로써 빈 공간 이 작업으로 기능하게 되는 곳이었다. 비어 있으면서도 꽉 찬, 안과 밖을 향해 무한히 확장하는 개별 작품이라기보다는 공간 전체가 하나의 작품으로서 즉 관객이 직접 몸으로 느껴야하는 체험의 공간이다.” 베니스비엔날레 미술전 30주년 아카이빙북의 2013 베니스비엔날레 국제미술전 한국관 전시 〈호흡: 보따리〉 요약글 중에서 발췌. 출처: 호경윤 편저, ‘X - 2013’, 『마지막 국가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4, 203쪽. 

월간 「SPACE(공간)」 690호(2025년 05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 VMSPAC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배형민
배형민은 역사가이자 비평가이며 큐레이터이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표 저서로 MIT 프레스에서 출간한 『The Portfolio and the Diagram』(2002)과 『한국건축 개념사전』(2013, 공저) 등이 있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초대 총감독과 제5차 광주폴리 총감독을 지냈다. 2008년, 2014년 한국관 큐레이터로, 2012년 주제전시 〈Common Pavilions〉에 작가로 베니스비엔날레에 참여했고 2014년에 최고 영예의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최근의 연구와 큐레이팅 작업은 기후변화에 집중하고 있으며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기획했던 〈기후미술관〉(2021)은 지속 가능한 전시 디자인으로 레드 닷 디자인어워드 본상을 수상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