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5년 2월호 (통권 687호)

스위스 칸톤 베른에 위치한 비-자헨 마을에서 태어난 농부 베어너 뮬레는 아내 엘리자벳과 함께 1850년대 지어진 농가 주택에 살며 낙농업을 하고 있다. 이 농가 주택은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1705년에 지어진 곡물창고가 보이는 집이다. 곡물창고는 수확한 곡물과 중요한 문서, 옷감 등을 보관하는 장소로 농부에게는 보물창고와 같았다. 만일의 화재에 대비해 바람의 반대 방향 쪽에 분리되어 일정한 거리를 두고 농가의 작은 미니어처 형태로 지어졌지만, 동시에 도둑을 대비해 집 안에서 잘 보이는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다. 2024년 6월부터 이 곡물창고에 관한 애정으로 산책과 관찰, 글쓰기, 실측, 리서치를 하면서 꽤나 오랜 시간을 보냈다. 글쓰기, 드로잉, 리서치를 발전시키고 완성할 수 있는 작업실로서의 공간이 필요했고, 거대한 지붕으로 만들어진 농가에서 남는 공간을 찾기 시작했다. 뮬레 부부와 커피를 마시고, 인터뷰를 하고, 저녁을 먹으면서 작은 공간을 임대하고 싶은 마음을 넌지시 내비쳤다. 주차 공간 위 농기구를 보관하는 창고가 가장 마음에 들었지만 쓰임이 있다는 거절과 동시에 아주 작은 손님방을 자주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해 그 방을 계약하게 됐다. 스위스연방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이 농가는 큰 변화가 있는 증축과 같은 경우에는 반드시 건축허가와 더불어 문화재 공무원과 접촉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을 피하는 방식에 관해 서로 동의했다.

스위스연방 문화재보존 아카이브에서 기록된 주변 마을의 곡물창고 자료를 찾고, 곡물창고와 농가 주택을 실측하고 도면을 그리기 시작했다. 또한 창고 파사드의 꽃과 나비 문양의 형태와 배치된 모양새를 드로잉하고 그 관계를 분석했다. 여러 시간의 레이어로 만들어진 이 토속건축에 나는 다중 저자 중 한 명으로서 역사 흐름의 연속과 진화에 아주 작은 한 뼘을 보태고 싶었다. 기존 농가가 가진 조금은 키치한 목재 마감을 모두 존중하기로 결정한 동시에 기존 건물이 가진 색 팔레트에서 공간을 기품 있게 보일 수 있도록 주된 색과 보조 색들을 결정했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어 집중한 부분은 목가구, 텍스틸, 조명 등이었다. 이 서사의 시작인 곡물창고는 아쉽게도 지붕에 가려져 작업실 공간에서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곡물창고의 파사드에서 탐구한 꽃과 나비 문양을 공간에 배치했다. 몇 가지 숨겨진 레퍼런스는 내 고향 대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은진 송씨 종갓집의 쌍청당이 개인의 주거 공간에 단청을 칠한 이야기,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리나 보 바르디의 집 거실처럼 취향을 보여줄 작업실 등이며 대안적 방식으로 스네이킹(snaking)하는 것이 목표이다. 곡물창고를 예찬하는 나의 글은 곧 스위스 바젤 문화예술잡지 「For(포)」에 실린다.
초읽기작 건축가 연보
신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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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대전 출생
2005. 한밭도서관에서 건축가 황두진의 책을 읽고 그의 개인 홈페이지에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고 사회적인 일에 관심이 있습니다. 저는 건축을 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남기고 장문의 답을 받음
2008.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 건축학전공 5년제 공부 시작
2007. ~ 2010. 서울 잠원동 보리정사에서 생활
2015. 1. 서울대학교 졸업식에 참여하지 않고 독일 베를린으로 떠남
2016. 3. ~ 8. 팻콜에서 베를린공과대학교의 리노베이션 실시설계에 인턴으로 합류: 세계대전 이후 베를린에 남은 가장 오래된 철근콘크리트조 건물로 와플 파사드의 보수와 리노베이션 진행
2016. 9. 취리히 연방공과대학교(이하 ETH)에서 건축 공부 시작: 1년간 안드레아 데플라쩨스의 스튜디오와 강의를 들음, 두 학기 프로젝트 모두 6점/6점을 받아 ETH 연간 전시에 참여
2018. 9. ~ 12. ETH에서의 첫 카루소 스튜디오: 리나 보 바르디가 레퍼런스
2019. 여름 포겔레 문화박물관(Vögele Kultur Zentrum) 전시
2020. 2. ~ 5. 멘드리지오 건축학교에서 퀸투스 밀러 설계 스튜디오: 아날로그 건축에 관한 이해, 알도 로시라는 공통의 뿌리를 가진 스위스 건축가들이 동일한 레퍼런스를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건축화한 부분에 흥미를 느낌
2020. 9. ~ 12. 두 번째 카루소 스튜디오: 아프리카 가나 출신 아티스트 엘 아나추이가 레퍼런스, 당시 ETH에서 거의 등장하지 않았던 재사용 개념 탐구
2021. 3. 카루소 세인존 아키텍츠 입사: 목구조와 자연석을 사용한 오피스의 파사드와 입구, 계단, 외부 공간의 설계 담당, 친환경과 관련해 기존 구축 어휘가 새로운 재료와 구법에서도 진화되는 과정의 경험
2021. 여름 「우먼 라이팅 아키텍처」에 여집합, 김현진, 차학경, 정다운, 천병옥에 관한 글을 씀
2021. 12. ~ 2022. 2. 카루소 세인존 아키텍츠에서 ‘루체른 새 극장’ 첫 번째 단계 공모전 실행 업무 담당: 중요한 결정과 일의 분배, 인턴 관리 경험, 여성의 리더십에 관한 생각
2022. 3. ~ 5. 독립 건축가로서의 첫 작업으로 바젤의 갤러리 리노베이션 설계
2022. 8. 「우먼 라이팅 아키텍처」 에디터팀 합류
2022. 8. 카루소 세인존 아키텍츠 퇴사와 동시에 카루소 스튜디오에서 디플로마 시작
2022. 9. 벨기에 건축가 얀 데 빌더가 운영한 푸카패스:인디펜던스(Furkapass:Independence) 레지던시에 참여: 최초의 소설은 일본의 『겐지모노가타리』라는 주제로 영문, 불문, 국문으로 번역된 유가오 챕터를 읽으면서 언어, 번역, 드로잉, 구름, 산세에 관해 탐구
2022. 8. ~ 12. ETH에서 아담 카루소에 지도받은 디플로마가 테오 호츠상에 노미네이션. 카루소 세인존에서 참여했던 루체른 새 극장 공모전이 디플로마 발표 전날 스위스 공영방송에 소개됨
2023. 봄 「우먼 라이팅 아키텍처」 에디터로 승진
2023. 5. 카파울 & 블루멘탈 아키텍츠 입사: 피터 줌터, 지온 A. 카미나다, 발레리오 올지아티 활동 무대인 그리종으로 이사, 올지아티의 아버지인 루돌프 올지아티가 설계한 집에 살기 시작; 알프스와 로망스어 등 조금은 다른 문화와 삶의 시작. 일란츠 시청 리노베이션 합류
2023. 여름 스위스 그리종 향토보존협회(Bündner Heimatschutz) 가입
2023. 10. ~ 12. 건축가 라문 카파울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알프호른 터널 포털 작업에 엔지니어 유르그 콘체트(Jürg Conzett)의 기본 구상을 바탕으로 새로운 철도라인 콘셉트 제안
2024. 5. 카파울 & 블루멘탈 아키텍츠 퇴사: 기념비를 둘러싸 형성되는 작업인 장크트갈렌시 상트 피덴을 마지막으로 수행
2024. 스위스 취리히와 그리종에서 건축과 글쓰기 병행, 독립사무실 개소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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