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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초읽기작의 저변에 흐르는 것

글
박지윤 기자
진행
박지윤 기자

「SPACE(공간)」 2025년 2월호 (통권 687호) 

 

장식은 숭고하다, 이오니아 링(2023) ‘기념품’ 개념의 연장 작업으로, 반지의 형태는 이오니아와 도리아 기둥 주두를 미니어처로 구현하여, 건축적 장식을 신체 장식(액세서리)으로 재해석한 오브제로 탄생시킨다. 이 작품은 액세서리인 동시에, 아돌프 로스의 선언문 ‘장식과 범죄’에 대한 일종의 ‘말대꾸’이기도 하다. 건물에서 멸균되어버린 ‘장식’이 오히려 인체라는 새로운 무대 위에서 더욱 역동적으로 펼쳐지고 있다는 생각으로 시작됐다. ©HYPERSPANDREL 

 

(찐)그린루프(2023) 한국 옥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료의 물성과 풍경을 모티프로 제안한 서울마루 공공개입 공모작이다. 서울마루가 결국 옥상이라는 점에 주목해, 옥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녹색 우레탄 페인트를 대형 크로마키로 설정함으로써 새로운 공공개입의 가능성을 풍자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HYPERSPANDREL 

 

아주 개인적인 결국 비개인적인

대담을 진행하며 초읽기작의 건축가들이 익히 알던 혹은 단일한 언어로 묶이지 않아 곤혹스러웠다. ‘그들의 이중 코드’, ‘오프(off)된 방식들’, ‘잃어버린 언어를 찾아서’라는 대담의 제목처럼, 그들은 이것과 저것 모두를 포괄하거나 기존의 것에서 비껴가거나 미지의 언어를 채집하고 있다. 각 개인의 건축적 관심사들은 한국-서구, 맥락-기능, 리얼리티-퀄리티, 건축-건축물, 완결성-비완결성, 지역성-개인성, 주류-비주류, 가상, 장식, 집단 기억, 시간, 여성성, 다중성을 경유하지만 사실은 그 어느 것도 아니다. 아돌프 로스, 미스 반 데어 로에, 알도 로시, 엔릭 미랄예스, 안토니 가우디, 리나 보 바르디의 작업(관)과 중첩 혹은 대치되지만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그들에게는 넘칠 만큼 많은 서사들이 존재하고 여기서 그들은 다양, 차이, 개별성을 추구하며 자신에게 적합한 서사를 끌어들이고 재조직한다. 그들이 계속해서 잡히지 않고 어딘가 개인적으로 보이는 이유이자 같은 세대조차도 서로를 어리둥절해하거나 낯설게 느끼는 이유다. 굳이 말하자면 이처럼 개인적인 것이 곧, 그들의 특성일 것이다. 그렇다면 로런 벌랜트가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을 사회정치적 맥락에서의 경험과 정동으로 해석하며 ‘비개인적’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그들의 개인적인 특성 또한 특정한 맥락과 은유를 거쳐 비개인적인 것으로 묶을 수 있을 것이다. 

 

©Midday​

 

미드데이 오피스(2023) 기존 건물이 가진 건축적 아이디어를 인테리어로 끄집어내는 시도를 했던 작업이다. 주요 요소로는 건물의 형태 로직을 차용한 회의 테이블과 건물의 구성적 혼란이 일어나는 위치에서 이를 붙잡아주는 돌 기둥 등이 있다. 

Midday Office (2023) ©Jeong Haewook 

 

속에서부터 탈탈탈 끓어오르는

1990년대는 탈식민주의, 탈근대주의, 페미니즘, 신자유주의, 탈구조주의 등 여러 이론들이 서구로부터 수입된 시기였다. 1990년대 전후에 태어난 그들은 이러한 이론들을 머리로 이해한 세대가 아니라 몸으로 익힌 세대다. 점점 더 글로벌화, 정보화되는 환경에서 그들은 다른 국적, 성정체성을 가진 사람들과 쉬이 소통하고, 세월호, 강남역 사건, 탄핵 시위 등 광장 문화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다. 동시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도널드 트럼프 당선, 가상화폐의 등장을 지나오며 가상 및 현실 시장의 가치 급락과 급등을 목격했다. 그렇기에 아마도 그들은, 절대적인 것이 없다는 것을 안다. 정답도 언제든 오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하위와 상위, 주변부와 중심, 여성과 남성의 위계가 기득권적인 힘에 의해 ‘설정’된 것임을 안다. 서양과 동양의 멀어진 시간을 급급하게 좇아가기보다 그 격차 속에서 고유한 가능성을 찾을 줄 안다. 어떤 것이든 한순간에 자본의 힘에 휩쓸릴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더 이상의 창조는 무리고 창의 또한 능력임을 안다. 끝도 없이 다양한 이론, 서사, 정보를 엮는 것(에디팅)이 하나의 창의라는 것을 안다. 

 

스위스 래티셰 철도 알불라터널 포털 확장(2023) 스위스 알불라터널 철도선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새로운 터널 내부 프로필의 폭이 1m 확장되면 터널의 파사드인 포털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관한 RhB의 건축 지명공모에 건축가 라문 카파울과 함께 참여했다. 터널 포털을 확장할 때 시간의 켜를 담고 있는 포털의 석조와 모르타르를 최대한 보존하는 동시에, 석조 콘솔 부재를 남겨 이 개입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Shin Jaehee 

 

「우먼 라이팅 아키텍처」 여성, 글쓰기, 건축과 맞닿아 있는 텍스트를 다루는 오픈소스로 헬렌 토마스, 에밀리 아파쎄와 함께 하고 있다. 주석이 달린 텍스트 목록을 수집, 게시, 공유하며 여성이 점유하는 사회와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고자 한다. Screenshot from Women Writing Architecture official website 

 

꺾거나 넘거나 샛길로 빠지거나

초읽기작 건축가들은 기존의 서사를 꺾거나 넘거나 샛길로 빠지는 방식 등으로 경유하며 자신 고유의 것으로 맥락화한다. 하이퍼스팬드럴(대표 전재우)은 ‘장식은 죄악’이라는 아돌프 로스의 엄중한 선언을 유쾌하게 전복시키고, 장식과 부산물을 연결지으면서 이를 긍정한다. 스팬드럴(spandrel, 아치를 만드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산물)을 과장(hyper)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사무소명은 그의 지향점을 드러내며, 일례의 작업으로는 이오니아와 도리아 기둥 주두를 미니어처로 구현해 건축적 장식을 신체 장식(액세서리)으로 재해석한 반지가 있다. ‘장식을 구원’한 이 반지는 그가 건축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또한 드러내는데, 그는 건축적 아이디어가 없다면 건축이 아니며 건축적 아이디어가 있다면 무엇이든 건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기에 반지는 하이퍼스팬드럴의 건축이다. 반지에 더해 평면을 새긴 에코백 등은 기념품으로써 하이퍼스팬드럴의 건축인 셈인데 그는 이를 판매하며 건축을 생업으로 이어나가고자 하는 은은한 의지를 드러내고도 있다. 그는 건축주가 아닌 대중을 상대로 설득하며, 건축물이 아닌 건축으로 작업하고 있다. 한편, 광운 인테리어(2024)는 ‘급조’하고 ‘가성비’를 따지는 한국의 시공 현실을 빗댄다.

미드데이(공동대표 오연주, 정해욱)의 건축 세계를 가장 크게 아우르는 것은 가상이다. 그는 가상 디지털 세계의 특성을 해석하기도 하고 사실이 아닌 가상을 지적하기도 한다. 인디펜던트 컴포넌츠(2024)는 하나의 객체가 선택 가능한 윤곽이 되는 디지털 툴의 특성을 인식시키는 작업이며, 전시작 ‘폭발한 모서리(Exploded Corner)’(2024)와 미드데이 오피스(2023)는 건축물의 마감 대부분이 눈속임이라고 지적하며 모서리라는 특정한 경계에 천착한다. 그들은 인디펜던트 컴포넌츠와 미드데이 오피스에서 모서리를 강조하기 위해 볼드한 재료를 쓰는데 이는 각 객체를 별도로 보이도록 의도한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객체를 지향하는 태도는 저 멀리 철학에서 찾자면 그레이엄 하먼에서 들고 온 것이지만, 그들은 현실로 곧장 돌아와 하나의 객체로 된 가구, 조명 등을 ‘이사에도 용이한 것’이라고 건축주에게 설명한다. 이는 건축가의 작업 정신과 현실감각 모두를 획득하는 것이자 철학과 현실 세계 혹은 그 어딘가를 큰 보폭으로 넘나드는 것이다.

제주도에 구축된 건축물은 당위성으로 지역성을 꼽기 마련이다. 돌담하면 흔히 제주가 연상되듯이 육지와 비교하면 확연히 이국적이고, 무언가 풍토적이다. 하지만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에 대한 서양의 사고방식이자 지배 방식이라는 문제 의식이 오래전부터 있어 왔고, 이후 서양의 억압과 동양의 내부 사이 균열 속에서 나름의 길을 찾자는 담론으로 나아가기도 했다. 그런데 다랑쉬 건축사사무소(대표 현승훈)의 태도는 그 어느 논의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의 의식은 서양과 동양, 수도권과 지역의 대치 구조보다는 과정과 결과라는 연결 구조 속에서 발견된다. 현승훈은 계획과 결과의 일치보다 과정에서 발견되고 발생되는 뜻밖의 것들과 대화하는 것을 중시한다. 이 말에 따르면 다랑쉬(2018, 2024~)는 계획에서 결과를 생성한 것이 아니라 과정에서 생성된 것들이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다.

재희 신 MSc Arch ETH SIA(대표 신재희)은 알도 로시의 언어인 집단 기억을 공유하고는 있지만 기하학적인 형태가 아닌 문화재, 오래된 건축물의 논의로 뛰어 들어가 다중 저자를 말한다. 곡물창고가 보이는 농가의 작업실(2024~)은 농가 내 오래된 곡물창고를 보는 감각에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갖는 감각이 더해진 작업이다. 여성성과 관련하여 신재희는 「우먼 라이팅 아키텍처」에서 글쓰는 행위를 언급하기도 했다.

신재희가 여성성을 오래된 공간을 돌보는, 자기만의 방을 적극적으로 찾는, 글쓰는 행위에서 찾았다면 이다미(건축사사무소 플로라앤파우나 대표)는 여성적 관점을 전통적인 건축의 차원까지 끌어들인다. 또한 전재우가 장식을 아돌프 로스에 반항하는 태도로 전유했다면 이다미는 장식을 건축 산업, 현대 및 한국의 사회에 반항하거나 지향하는 태도로 취한다. 장식 단 한 가지 요소에도 산업적인 선에 대한 반항, 개인적인 이미지가 생성되는 시대에 대한 지향, 비인간을 모티프로 한 추상적인 선의 차용, 덧붙여진 것이라는 장식에 대한 통념의 재고, 시공이 어렵지 않은 방식에 대한 고려 등이 응축돼 있다. 그의 장식은 건축, 사회, 시대, 한국을 다층적으로 건드리고 이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긍정과 부정이 얽혀 있으며, 건축적으로는 명확하지 않고 숨어 들어가는 방식으로 그려진다. 자칫 작업의 논리가 없어 보일 수도 있는데, 그 이유는 사실 논리가 넘쳐 흐르듯 많고 다층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두를 읽어내기에는 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기에 동시에 그의 작업이 해석될 여지는 그 어떠한 예술만큼 많다.

마무리하며, 이 글을 작성하고 초읽기작 건축가들을 살펴보면서 깨달은 것을 밝힌다. 그것은 매체의 속성, 한계 혹은 위계와 같은 것으로, 결국 이 특집 또한 하나의 에디팅이라는 것과 초읽기작 또한 ‘선택’됐다는 사실이다.​ 

 

공예와 건축(2016) 공예박물관이라는 프로그램이 산업과 공예의 경계에서 건축의 자율적 장식성, 독립성을 질문하는 듯했다. 구 풍문여자고등학교의 건물군을 재조합하는 조건, 건물군을 둘러싼 새로운 파사드가 각개의 기둥이라는 개별성으로 드러나는 구성이 평소 관심 있는 전체와 부분-열려 있는 전체의 구성을 실험하기에 적합했다. 건물 키를 넘어선지 오래인 학교의 귀신같이 큰 구목을 지나, 크지만 나무보다는 작고 작지만 앞으로 마주하게 될 전시물보다는 큰, 기둥의 위치가 자연에서 쉽게 개연성을 발견해내는 공예의 방향성 위에 놓이도록 했다. 건물이 동물 같은 순간과 식물 같은 순간을 상상하며 플로라앤파우나 활동명을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작업이기도 하다. ©Flora and Fauna

월간 「SPACE(공간)」 687호(2025년 02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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