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5년 7월호 (통권 692호)
행정의 철학과 관점, 실행력이 경제, 교육, 의료, 문화 등 생활 각 영역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을 어느 때보다 체감하는 요즘이다. 전 세계가 하나의 국가처럼 작동하는 시기에 배타적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는 2017년에 이어 2025년 1월, 대통령으로서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미국의 건축, 도시 역사학자인 에드워드 디멘드버그는 비전문가가 기획한 트럼프 행정부의 건축 정책이 자국 건축계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면서, 연방정부의 공공 건축을 고전 양식으로 일원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행정명령을 강하게 비판한다. 역사와 다양성의 존중, 통합과 연대의 가치가 쉽게 폄훼되고 극단주의로 치닫는 현실 앞에서 세계 건축인들의 지지를 호소하는 그의 목소리는 연대와 저항, 나아가 민주주의와 건축의 관계를 숙고하게 한다. 편집자

미국 국회의사당, 워싱턴 D.C. 소재(1800). Wikimedia Commons / ©Oren Rozen
전 세계가 연결된 오늘날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재당선은 미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에게 하루가 다르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적, 외교적 영향력은 지속적으로 관심을 끌고 있지만, 미국 건축에 미치는 파괴적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캐나다산 목재나 철재, 다른 국가에서 수입한 자재에 대한 관세 부과 정책은 불가피하게 자국 내 건설 비용을 상승시킬 것이며, 화석 연료 의존도를 낮추고 대체에너지의 사용이 증가하고 있는 현 시점에 중국에서 수입한 기술에 의존하는 태양광 및 풍력 발전 같은 청정에너지의 가격도 높아질 것이다. 미국 국채가 불안감을 느끼는 투자자들을 유치하기 위해 더 높은 수익률을 지급함에 따라 이미 높은 금리가 더욱 상승하게 되면, 연이어 부동산 투자 비용과 금리도 높아져 부동산 개발과 주택 소유 기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건설업계에 만연한 불법 체류 노동자 문제는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제한 정책은 노동 비용의 증가를 초래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결과는 미국 건설업의 고객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최초의 부동산 개발자 출신 대통령이 간과한 이런 심각한 사안으로 인해 주택 건설, 특히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 공급은 더욱 둔화될 전망이다.

미국 육군 공병대 본부로 사용 중인 연방센터 남쪽 건물, ZGF 아키텍츠 설계, 워싱턴주 시애틀 소재(2012). Image courtesy of ZGF Architects / ©Benjamin Benschneider
일론 머스크의 정부효율부(DOGE)가 연방 인력을 대폭 감축하면서 연방정부의 부동산 부문 활동도 위축되고 있다. 워싱턴 D.C.에 소재한 전체 기관들이 건물을 비우고 다른 도시로 이전하고 있는데, 표면적으로는 더 저렴한 사무실 공간을 얻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이는 일자리를 줄이고 행정부가 근절하겠다고 공약한—‘딥스테이트권력 카르텔-편집자’를 위해 복무한다고 여겨지는—중앙의 정부 직원들의 물리적 접근성을 박탈하려는 처사다. 토지관리국(BLM)의 경우, 트럼프의 첫 임기 중에 워싱턴 D.C.에서 콜로라도주로 이전하면서 전체 인력의 87%(약 4,900명)가 퇴직하거나 사직했고 그 결과 미국 국토의 8분의 1을 관리하는 주요 기관이 마비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러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미국 연방정부의 건축 부문도 직격탄을 맞았다.
특히 트럼프가 두 차례에 걸쳐 서명한 행정명령은 이제까지 미국의 공공 건축이 발전해온 역사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학계와 실무 건축인과 같은 전문가 집단과의 소통을 거부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연방정부가 의뢰한 많은 건축물은 대형 설계회사들이 쏟아낸 평범한 건축물이었다. 당시 행정에서 변화를 시도한 첫 사례는 1954년 미국 국무부가 에로 사리넨과 발터 그로피우스 같은 저명한 모더니즘 건축가에게 대사관 설계를 의뢰한 것으로, 소프트파워를 강화하는 데 그들의 명성을 활용했다. 자국의 건축 수준을 재고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은 이듬해 ‘미션 1966’ 이니셔티브의 채택으로 이어졌다. 국립공원관리청이 그랜드 캐니언, 에버글레이즈, 요세 미티 등 인기 관광지의 방문객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실행한 이 프로그램에 리처드 노이트라, 안셴 & 앨런과 같은 재능 있는 건축가를 기용하면서, 도시 외곽의 풍경과 지역사회에 현대적 건축물이 들어서게 되고 수준 높은 건축물도 지어지게 되었다.
‘연방정부의 집주인(landlord)’으로 불리는 총무청(GSA한국의 조달청에 해당-편집자)의 건축 정책은 1962년 다니엘 패트릭 모이니핸이 작성한 보고서인 「연방 건축 원칙 지침(Guiding Principles for Federal Architecture)」에 의해 성문화되었다. 모이니핸은 존 F. 캐네디와 린든 존슨 대통령 아래서 노동부 차관을 지낸 인물로 이후 뉴욕주 상원의원으로 활동했다.▼1 그가 작성한 보고서는 미국 연방 건물을 위한 예술 작품을 의뢰하는 것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을 지을 때 미술품 설치를 의무화하는 미술 퍼센트법-편집자—이는 루즈벨트 대통령, 즉 뉴딜 시대의 유산이다—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또한 그가 집대성한 총무청의 건축 정책은 다음과 같이 건축가들의 창의적 자유를 명확하게 옹호한다. “공식적 양식(style)을 적용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건축 전문가가 설계의 흐름을 주도해 정부가 따르도록 해야 하며,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연방정부 건축물의 설계가 과도하게 통일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추가 비용을 기꺼이 지불해야 한다. 필요시 미국 연방정부 건축물을 위한 설계공모를 주최할 수 있으며 중요한 설계 계약을 앞두고 우수한 건축가들의 자문을 구해야 한다.”

오클라호마 시 연방건물, 로스 바니 아키텍츠 설계(2005). Image courtesy of Ross Barney Architects / ©Steven Hall/Hedrich Blessing Photographers
“현대 미국 건축 사상의 정수”에 기반해 총무청이 발주한 건물들은 “미국 정부의 존엄성, 진취성, 활력, 안정성을 시각적으로 드러내야 한다.” 해당 문서에서 주목할 점은 특정 역사나 시대의 건축 양식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건축이란 지속적으로 진화하며 동시대 필요와 문화에 반응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다. 이는 1961년 1월 9일,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매사추세츠 의회에서 행한 연설에서 “페리클레스가 아테네인들에게 던진 도전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취지로 인용한 페리클레스의 말에서 드러난다. “우리는 모방하지 않는다. 우리가 곧 다른 이들의 모범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을 가장 적극적으로 실행에 옮긴 공무원은 1996년부터 2005년까지 총무청의 수석 건축가로 근무한 에드워드 파이너다. 그는 매릴린 팔리와 함께 미국 연방정부 건축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우수 디자인 프로그램’을 공동 창안했다. 그의 지휘 아래 리처드 마이어, 톰 메인, 아키텍토니카, ZGF 아키텍츠, 안톤 프레독, 랄프 존슨, 로리 호킨슨과 톰 스미스-밀러, 해리 콥과 같은 건축가들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미국 연방정부 건축의 품질은 극적으로 향상되었다. 또한 줄리 스노우와 캐롤 로스 바니와 같은 여성 건축가들은 당시 남성 위주였던 집단에 참여해 성별 다양성과 능력주의가 양립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한 건축가가 좋은 작업을 지속적으로 선보이기도 어려운 일인데, 수천 건의 의뢰를 담당하는 정부의 공공 건축 프로그램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건축가들은 ‘우수 디자인 프로그램’의 신념과 전문성을 존중했으며, 내부의 파벌에 따라 수주를 몰아주지 않는다는 점도 신뢰했다. 이런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부동산 개발자로서 밟아온 이력을 돌아보면, 미국 건축계에서 높이 평가받을 만한 건물을 선보이지도 않았고, 일명 ‘OPEC 바로크’라 불리는 금색 간판이 달린 밋밋한 검은 유리 타워로 대표되는 자신의 브랜드를 개발하는 데에도 아무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합리적인 평가다.

보건복지부 본부로 사용 중인 휴버트 험프리 빌딩, 마르셀 브로이어 설계, 워싱턴 D.C. 소재(1977). Wikimedia Commons / ©Ajay Suresh

샌프란시스코 연방빌딩, 모포시스 아키텍츠 설계(2007). Wikimedia Commons / ©HaeB
트럼프가 건축에 대해 가진 관심과 태도는 자신의 첫 임기 중인 2020년 12월 21일에 발표한 ‘아름다운 미국 연방 시민 건축물 촉진(Promoting Beautiful Federal Civic Architecture)’이라는 행정명령에 극명하게 드러난다.▼2 해당 내용은 건축 역사를 상세하게 기술하지만 공식적 정부 문서라하기에는 전무후무할 정도로 오류투성이다. 여기에는 1309년 시에나 헌법과 크리스토퍼 렌에 대한 논의와 함께 브루탈리즘에 대한 비판이 수록됐다. 브루탈리즘은 “20세기 초 모더니즘 운동에서 발전한 건축 양식으로 거대하고 블록 같은 외관, 경직된 기하학적 양식, 대량의 노출콘크리트 사용”으로 특정되는 눈엣가시 같은 대상으로 묘사됐고, 마르셀 브로이어가 1977년에 완공한 워싱턴 D.C. 소재의 미국 보건복지부 본부 건물인 휴버트 험프리 빌딩이 그 사례로 등장했다. 1980년대 후반에 등장한 해체주의 건축은 더한 혹평을 받았다. 해체주의의 “파편화, 무질서, 불연속성, 왜곡, 비틀린 기하학, 불안정한 모습” 등의 경향은 “건축의 전통적인 가치”를 훼손하는 것으로 묘사됐다. 이러한 특성들 자체를 단일한 개념이나 특정 사례로 설명하는 것은 어불성설인데도, 2007년 모포시스가 설계한 샌프란시스코 연방빌딩(옛 낸시 팰로시 연방빌딩)이 대표 사례로 언급됐다. 현재 상황에 균열을 내는 데 목적이 있는 대통령의 행정부라면 해체주의의 이런 파괴적 미학에 가치를 부여해야 하는데 말이다.
이 행정명령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워싱턴의 모든 법원과 기관 건물을 포함해 총무청이 발주하는 5천만 달러(한화 약 600억 원) 이상의 모든 공공건축물은 ‘고대 아테네와 로마’의 고전 건축양식에 따라 설계돼야 한다. “공공 공간을 향상하고 아름답게 하며, 인간의 정신을 고양하고, 미국을 고귀하게 하며, 대중들의 존경을 받는 데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근거다. 본질이나 역사적 정확성보다 양식에만 매몰된 행정명령의 기괴함은 가히 충격적이다. 미국 건국의 주역인 제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이 높이 샀던 그리스·로마 복고주의 건축의 선례가 줄리아 모건의 절충주의 작품과 시카고 마천루 건축의 창시자로 평가받는 다니엘 번햄의 작품과 함께 고전 건축이라는 범주 안에 묶이는 것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행정명령에서 허용된 양식이 하나 더 있다. 아르데코풍 건축이다. 워싱턴 D.C.의 삭막한 정부 건물들이 맨해튼의 활기찬 라디오 시티 뮤직홀을 닮는다고 상상한다면 관심을 끌 수도 있겠지만, 정말 당혹스러운 문제는 따로 있다. 도널드 트럼프는 도대체 어디에서 해체주의를 배운 것일까?
가장 가능성이 있는 인물은 저스틴 슈보우다. 2002년 설립된 국립시민예술협회(NCAS)의 창립자인 그는 본 “행정명령을 선동하고 초안 작성에 관여했다”고 직접 시인한 바 있다.▼3 새 행정부의 건축 고문으로 활동하기 이전, 트럼프 대통령은 그를 워싱턴 D.C.의 건축허가와 도시계획 승인권을 가진 일곱 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예술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조 바이든은 2020년 대선에서 승리한 후 슈보우를 해임하고, 미국 연방정부 건물의 예술작품이 애국적 주제를 전달하고 추상성을 피해야 한다는 트럼프의 행정명령을 뒤집었다.
슈보우는 건축가나 도시계획가로서 훈련을 받지 않았고, (건축·도시 관련) 석사·박사 같은 상위 학위나 학술적 출판물이 없을 뿐 아니라 정치적 직위에 선출된 적도 없다. 오로지 도널드 트럼프와의 친분만으로 총무청과 정부의 건축 관련 업무와 디자인 전반에 혼란과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리를 꿰찬 것이다. 덕분에 그는 예의 주시할 핵심 인물이 됐다. 슈보우는 자신의 웹사이트 게시글, 미디어 출연, 인터뷰, 주류 신문과 출판물에 발표된 기고문에서 1950년대 건축 실무자들이 연방건축을 헤게모니적으로 통제했으며 이는 자신이 집권할 때까지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현재 그는 미국에서 현대건축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 반대하는 인사가 됐다.▼4

미국 연방빌딩 및 법원, HBRA 아키텍츠 설계, 앨라배마 주 터스칼루사 소재(2011). Wikimedia Commons / ©Deutschlandreform
이런 그의 견해에 건축계 역시 크게 반발했다. 2020년 행정명령 초안을 접한 미국건축가협회(AIA)는 “단일 양식 강요에 반대한다”는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고전 건축을 존경하며 이를 실무에 활용하는 건축가를 포함해 1만 1,400명 이상의 회원들이 다원주의를 옹호하고 연방정부의 단일한 건축 양식에 반대하는 온라인 청원에 서명했다.▼5 많은 미국인들에게 고전주의와 신고전주의의 유산은 워싱턴뿐 아니라 남북전쟁 이전의 미국 남부(Antebellum South)—남부 연합의 대농장과 시민 건물,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고전주의의 영향을 크게 받았던 사회—를 떠올리게 한다.
슈바우가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고전주의 건축은 독일의 나치, 노예의 주인들, 민주주의 정신 아래 미국 공화국을 창시한 사람들이 선호하는 양식으로만 한정될 수 없다. 슈바우가 제시하는 건축 형태와 정치, 철학 체계 사이의 엉성한 상관 관계는 건축학개론 수업에서 학생이 제출하는 글 수준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독일의 나치, 이탈리아의 파시즘, 소련의 스탈린주의 등 건축적 다원주의를 포기한 모든 권위주의 정권은 동시에 민주적 제도를 상실하고 공포에 휩싸인 바 있다. 또한 대중이 이를 인식하지 못하도록 환상을 주입하며 실제 역사에 무뎌지게 만들었다.
트럼프의 행정명령은 표면적으로는 “우리가 지향하는 인간상에 부응하는” 건물을 설계하기 위해 일반 대중의 의견을 수렴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실제로는 “예술가, 건축가, 엔지니어, 미술 및 건축 비평가, 예술이나 건축 교수와 강사, 건설업계 종사자 그리고 공공건축의 설계, 시공, 리모델링과 관련한 의사결정으로 경제적 영향을 받는 이익 집단, 업계 협회, 기타 관련 기관에 소속된 사람들”의 참여를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 과학을 부정하는 다수의 트럼프 행정부 관리들과 마찬가지로, 슈보우 역시 자신이 섭렵하지 않은 전문 지식을 경계하면서도, 자신의 웹사이트에서는 스스로를 총무청 고문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올해 1월 20일, 트럼프는 2020년 첫 행정명령보다 분량은 줄었지만, 내용의 본질은 되살린 두 번째 행정명령에 서명했다.▼6 6월 초 현재, 그가 총무청에 60일 이내에 제출을 요청한 지침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미국건축가협회는 중요한 비용 절감 문제를 들어 행정부에 다시 항의했다. 스티븐 T. 에어스(미국건축가협회 이사 대행)는 3월 20일 총무청에 보낸 서신에서 “규범적인 양식의 의무화는 혁신을 억제하고 건축의 다양성을 제한하며 지역사회의 고유한 문화적, 역사적 맥락을 무시하는 처사다. 고전 건축은 미국의 건축 유산에서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고가의 자재, 길어지는 공사 일정, 유지보수 비용의 증가를 가져올 것이며, 이 부담은 궁극적으로 납세자에게 전가된다”고 주장했다.▼7

카운티 법원, 로버트 밀스 설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캠던 소재(1825). Image courtesy of Carol M. Highsmith Archive, Library of Congress, Prints & Photographs Division
트럼프가 연방수사국(FBI) 본부인 브루탈리즘 건축물 존 에드거 후버 빌딩(1975, C.F. 머피 어소시에이츠 설계)에 집착하는 것은 해당 건물이 워싱턴 기관 본부 중 자신의 행정명령에 따라 최초로 재건축될 대상임을 시사한다. 국가 법 집행기관의 새로운 본부 건물을 자신이 재확인한 원칙에 따라 설계하는 것은 도널드 트럼프가 너무도 원하는 상징적 행보일지 모른다. 지난 5월 15일 연방수사국 국장 카시 파텔은 기존 본부 건물을 폐쇄하고 약 1,500명의 직원들이 다른 곳으로 이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건물의 향후 운명은 여전히 불확실한 상태다.
2025년 3월 12일, 「워싱턴 포스트」에 실린 기고문에서 슈보우와 빅토리아 코츠는 에너지부(DOE)가 입주해 있는 제임스 포레스털 빌딩(1969, 커티스 & 데이비스 아키텍츠 설계)의 철거를 주장했다. 코츠는 현재 제2기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지침서 역할을 하는 ‘프로젝트 2025’를 주도한 미국 보수계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의 부회장이다. 이 기고문에서 두 사람은 에너지부를 채굴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재편하고, 해당 기관이 “중국과의 새로운 냉전에 대비한 기술 및 자원 전초기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에너지부와 관련해 태양광이나 풍력과 같은 청정에너지에 대한 언급은 전무하다. 이들의 주장은 브루탈리즘에 대한 비판이 단순히 미학적 취향의 문제를 넘어서, 사실상 기후 위기를 부정하는 공화당의 실제 정책 어젠다를 은폐하기 위한 ‘트로이의 목마’였음을 드러냈다.▼8

에너지부 본부로 사용 중인 제임스 포레스털 빌딩, 커티스 & 데이비스 아키텍츠 설계, 워싱턴 D.C. 소재(1969). Image courtesy of Carol M. Highsmith Archive, Library of Congress, Prints & Photographs Division
트럼프의 행정명령에 따라 설계된 정부 건물의 렌더링이 공개된 사례는 아직까지 단 하나뿐이다. 1963년, 뉴욕시의 주요 철도역이자 맥킴, 미드 & 화이트의 걸작으로 평가받던 펜실베이니아 역(1910)이 철거된 사건은, 모이니핸이 “뉴욕 역사상 최악의 반달리즘 행위”라 칭한,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상처로 남아 있다. 6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이 사건은 미국 도시 건축 재개발의 버뮤다 삼각지대처럼 작동하고 있다. 수많은 디자인 제안이 사라졌으며, 부동산 소유주, 디벨로퍼, 그리고 정부 기관들 사이의 끝없는 갈등은 ‘쥐덫 같은 미로’라 불리는 이 교통 허브의 발전을 계속해서 지연시켜왔다.
트럼프는 가장 최근 이 논쟁에 뛰어든 사람이다. 그는 4월 17일 전국 철도 노선인 암트랙에 대한 연방 소유권을 인용하며 펜실베이니아 역과 그 미래에 대한 통제권을 뉴욕 메트로폴리탄 교통 기관으로부터 갈취했다. 이 와중에 건축가 알렉산드로스 워시번은 비영리 단체 그랜드 펜 커뮤니티 얼라이언스와 함께 원래의 맥킴, 미드 & 화이트의 건물에서 영감을 받은 새로운 계획안의 렌더링을 공개했다. 해당 설계안에는 공원과 연결된 열차 차고지, 그리고 7번가를 따라 늘어선 도리안식 기둥 회랑이 포함되어 있다.▼9 그러나 이 계획안과 관련해, 시민들을 위한 기념비적 건물이 현대의 기술과 요구, 미감, 미학적 사고을 수용해 새롭게 디자인되지 않고 그저 과거의 원형을 단순히 재현하는 시도에 머무른 데 대해 건축 및 디자인계 일각에서 우려를 표하고 있다.▼10
헤지펀드 매니저이자 슈보우의 단체와 보수 성향의 싱크탱크인 클래어몬트 연구소▼11 이사회 멤버인 토머스 클링켄슈타인은 이 설계안의 열렬한 지지자로 떠올랐다.▼12 이처럼 역사적, 도시적 인프라로서 중차대한 의미를 지니는 공공건축물이 표현의 자유보다 애국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민간 인사들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은 우려를 자아낸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슈보우가 이 건물의 건설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백신 개발 프로젝트와 같이 ‘초고속 작전(Operation Warp Speed)’의 패스트 트랙으로 진행하자고 제안한 점이다.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정부효율부가 미국 연방정부 기관들을 졸속으로 해체하려 했던 것에 이어 펜실베이니아 역 재건 프로젝트를 유사한 방식으로 추진하는 것은 신뢰와 성공 가능성에 대한 깊은 회의를 불러일으킨다.
미국 연방정부의 건물에서 근현대건축을 지우려는 슈바우의 기획을 통해, 궁극적으로 우리는 무엇을 잃을 위기에 처해 있는가? 그것은 특정 프로그램의 기능을 충족할 수 있는 공공건물과 그 건물을 향유하는 직원과 시민의 삶의 질이다. 슈보우는 자신의 연이은 저술에서 건물의 용도, 기능, 내부 인테리어 디자인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이탈리아어로) ‘파사디스타(facadista)’, 즉 무엇보다 건물의 겉모습과 스펙터클에만 몰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워싱턴이 박물관의 작품으로 존속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별개로, 그는 도시 형태에는 관심이 없으며 오로지 개별 건물만이 도시를 개선할 수 있다고 믿는다.
트럼프의 측근인 스티브 배넌이 “정치는 문화의 하류에 있다(정치는 문화를 따라간다)”고 말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누가, 그리고 무엇이 미국적인가’를 규정하는 것은 막대한 이해관계가 걸린 일이다. 하지만 이는 사람, 사상, 기술이 국경을 넘어 이동하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하는 건축의 진보와 근본적으로 충돌한다. 이러한 진보적 교류가 전제하는 국제적 전망은 슈보우와 그의 동료들이 장려하는 고전주의, 즉 직업적 전문 지식에서 고립된 채 이념적으로 세척된 대중의 지지를 얻은 ‘위로부터 공포된 단일한 고전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보르나도 리얼티 트러스트 빌딩에 인접한 펜실베이니아 역의 7번가쪽 출입구 렌더링, 알렉산드로스 워시번 설계(2024). Image courtesy of Grand Penn Community Alliance
트럼프 행정부가 지속적으로 자행하는 시도들—의학과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적 이해에 도전하고, 대학을 통제하고, 미국 역사를 다시 쓰고, 불쾌하다고 여겨지는 책을 공공 도서관에서 폐기하며, 초등학교 교육과정을 장악하고, 예술과 인문학 지원을 중단하며, 박물관과 공연예술 기관의 문화정책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볼 때, 건축가들이 앞으로도 외부의 간섭 없이 일할 수 있다고 결론 내릴 만한 어떤 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
좋든 싫든, 20세기의 역사는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하나의 트렌드처럼 자주 국경을 넘어 확산됐음을 보여준다. 만약 슈보우-트럼프의 의제가 성공한다면, 다른 국가의 리더들 역시 미국의 사례를 따라 자국 건축에 대한 통제권을 장악하려는 유혹을 받을지도 모른다. 현재는 미국의 건축가들에 대한 세계 건축인들의 지지가 시급한 상황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근시안적 고립주의는,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위기가 실제로 전 세계 건축가들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칠 위기를 내포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매일 새롭게 변하는 불안정한 정치적 환경에서 섣불리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현 가능한 세 가지 시나리오(또는 이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한 변형)를 점쳐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총무청의 혼란, 증가하는 인력 부족, 무능력이 비용 절감과 결합되어 실제 건물이 거의 지어지지 않는 것이다. 선동적인 아이디어는 결국 공화당 정치 의제의 다른 조항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주의를 분산시키는 연막이었음이 드러날 것이다. 두 번째는 트럼프의 행정명령이 어느 정도 성공해 그리스 신전과 평범한 고전 양식의 건물들이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는 것이다. 건축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제기하는 이의제기는 법정에서 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고,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 이들이 일부 승리를 거두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판결 시점쯤에 상황의 판도는 이미 크게 바뀌어 있을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가장 디스토피아적인 결과로, 나치 용어인 ‘글라이히샬퉁(Gleichschaltung)’, 즉 획일화된 표준화가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경우다. 이는 정부 발주가 아닌 민간 건축물까지 통제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역의 디자인심의위원회는 강제력이 있는 규정들을 제정하거나, 단순히 건축가들이 제출한 도면에 대해 끝없이 사소한 수정을 요구하며 시간을 질질 끄는 방식으로 건축가들을 지치게 만들 수 있다. 그 결과, 개발 주관사 또는 관련 기관들은 논란의 여지가 적은 설계를 선호하게 되고, 건축가들은 생존을 위해 상상력을 억누르고 그런 요구에 맞춘 작품을 내놓게 될 것이다. 행정부에 눈엣가시로 여겨진 건축가는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 도서관을 무보수로 설계하라는 압력을 받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이 시나리오의 최악은 ‘비애국적’으로 여겨지는 양식으로 작업하는 건축가들이 침묵을 강요당하는 것이다. 그 시작은 다양성을 추구하는 건축가들, 태생적으로 미국인이 아니고, 백인이 아니거나, 남성이 아니거나, 이성애자가 아니거나, 기독교인이 아닌 이들이 될 것이다.
트럼프의 분노와 권력 욕망이 아직까지 미치지 않은 지역에서 살거나 작업하는 건축가조차 피할 수 없는 한 가지 명령이 있다. 바로 항상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1935년 싱클레어 루이스의 디스토피아 소설 제목처럼, ‘있을 수 없는 일(It Can’t Happen Here)’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본 논고는 2025년 6월, 독일의 건축매체 「바우벨트(Bauwelt)」에 처음 독일어로 게재됐다. 「SPACE(공간)」에서는 저자가 해당 원고를 요약한 영문 버전을 우리말로 옮겨 수록한다.
1 https://www.gsa.gov/real-estate/design-and-construction/design-excellence-program/guiding-principles-for-federal-architecture
2 https://www.federalregister.gov/documents/2020/12/23/2020-28605/promoting-beautiful-federal-civic-architecture
3 https://www.civicart.org/
4 ‘About - Justin Shubow’, https://shubow.com/about/
5 ‘Immediate Action Needed Contact the White House NOW!’, https://p2a.co/eH3Mx8N
6 ‘Promoting Beautiful Federal Civic Architecture – The White House’, https://www.whitehouse.gov/presidential-actions/2025/01/promoting-beautiful-federal-civic-architecture/
7 https://www.aia.org/about-aia/press/aia-sends-letter-acting-administrator-general-services-administration
8 ‘My Washington Post Op-Ed: the Brutalist Forrestal Building, Headquarters of the Dept. of Energy, Must Be Demolished - Justin Shubow’, https://shubow.com/my-washington-post-op-ed-the-brutalist-forrestal-building-headquarters-of-the-dept-of-energy-must-be-demolished/#:~:text=The%20March%2012%2C%202025%20Washington%20Post%20featured%20an,Energy%20Department.%20By%20Victoria%20Coates%20and%20Justin%20Shubow
9 ‘Classical Architecture and the Future of New York’, https://tomklingenstein.com/classical-architecture-and-the-future-of-new-york/
10 Penn Station redesign gets support from a GOP donor. https://www.archpaper.com/2025/03/amid-political-rumblings-and-a-call-for-more-housing-a-penn-station-redesign-gets-support-from-a-gop-donor-and-revives-the-call-to-move-madison-square-garden/
11 https://www.claremont.org/
12 ‘The Bold Vision to Make Penn Station Great Again’, https://tomklingenstein.com/video/the-bold-vision-to-make-penn-station-great-again/

미국 연방수사국(FBI) 본부로 사용 중인 존 에드거 후버 빌딩, C.F. 머피 어소시에이츠 설계, 워싱턴 D.C. 소재(1975). Wikimedia Commons / ©Ajay Suresh
▲ SPACE, 스페이스, 공간
ⓒ VMSPAC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