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문장의 프롬프트만으로 완성 단계에 가까운 이미지를 생성하는 AI의 등장은 건축학도들에게 ‘표현의 해방’이자 동시에 ‘이미지의 함정’으로 다가온다. 이는 단순히 표현 수단이 늘어난 문제가 아니라, 설계를 사고하고 배우는 방식 자체에 변화를 요구하는 징후다. 논리와 태도를 형성해 나가는 학생 설계실은 이러한 변화가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공간이다.
프롬프트를 통해 누구나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환경은 설계 과정의 문턱을 낮추는 한편, 이미지가 사고의 과정을 대체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낳고 있다. 급속도로 발전하는 인공지능 기술 속에서 설계실의 학생들은 이러한 변화들을 어떻게 체감하고 있을까? SPACE 학생 기자팀은 생성형 AI의 등장 이후 변화한 설계실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학생들이 인공지능 사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듣기 위해 건축학을 전공하는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학생들의 이야기는 서술형 설문조사를 통해 수집되었으며, 2학년부터 5학년까지 다양한 학년의 국내외 대학생 11명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설문에서는 사용 중인 AI 모델과 설계 과정에서 AI를 활용하는 단계, 체감하는 장단점, 그리고 AI를 ‘나만의 설계’로 녹여내기 위해 사용하는 방식 등을 질문했다. 이 가운데 일부 학생들은 직접 생성한 AI 이미지와 함께 추가적인 질의에도 응하며 보다 구체적인 경험을 공유했다.
설계실의 구성원들은 AI를 사용하여 어떻게 나의 창작물을 잘 구현해낼 수 있을지 고민하는 동시에, 이전과는 달라진 설계실의 질문들이 이후 건축가가 수행할 역할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마주하고 있다. 이번 기사는 학생들의 AI 사용의 현주소를 통해, 앞으로 변화해 나갈 건축의 자리에 대해 탐색한다.
글 20기 SPACE 학생기자 전서영, 정민섭, 조성원
AI 이후, 설계실의 새로운 가능성
과거 설계실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한 전제 조건 중 하나는 라이노(Rhino), 스케치업(SketchUp), 브이레이(V-Ray), 엔스케이프(Enscape), 포토샵(Photoshop), 일러스트레이터(Illustrator) 등 수많은 툴을 얼마나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느냐였다. 머릿속에 명확한 개념과 아이디어가 있어도 이를 시각적으로 구현하고 설득력 있게 표현하지 못한다면, 그 아이디어는 온전히 평가받기 어려웠다. 툴 학습에 어려움을 느끼는 학생들에게 설계실은 자연스럽게 높은 장벽으로 작용했으며, 결과물의 인상이 평가를 좌우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그러나 AI 도구의 확산은 이 진입장벽을 눈에 띄게 낮추고 있다. 현재 설계실의 AI 활용은 그 기술적 메커니즘과 설계 개입 방식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는 자연어 기반 LLM(Chat GPT, Gemini 등)이다. 이들은 설계자의 추상적인 아이디어를 논리적인 언어로 정리하고, 대지 분석이나 법규 검토와 같은 기초 자료를 빠르게 구조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설계 초기 단계에서 사고를 정리하고 방향을 설정하는 논리적 보조 장치로 기능한다.
둘째는 독립형 생성형 AI(Nano Banana, Midjourney 등)이다. 러프한 스케치나 텍스트 입력만으로 공간의 분위기를 즉각 시각화하며, 설계자의 의도가 반영된 맞춤형 이미지를 생성한다. 또한 생성된 이미지를 부분적으로 수정·보완할 수 있어, 새로운 이미지 제작부터 기존 결과물의 고도화까지 폭넓은 활용이 가능하다.
셋째는 워크플로우 통합형 AI이다. 이는 기존 3D 모델링 환경과 AI를 직접 연결하는 방식으로, D5 Render처럼 프로그램 내부에 AI 기능을 탑재해 조경이나 HDRI를 자동 설정하는 경우와, Veras처럼 플러그인 형태로 모델 데이터를 실시간 시각화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단순한 이미지 생성을 넘어, 설계 데이터에 기반해 결과물의 완성도를 높여 준다.

좌상단의 스케치를 기반으로 생성형 AI도구 나노바나나를 이용해 만든 다양한 공간 이미지(©조성원)
이러한 AI 도구들이 실제로 설계실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학생들은 AI를 단순한 이미지 생성기가 아닌 ‘시각적 전략 도구’로 인식하고 있었다. 특히 시각화 단계에서의 변화는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① 논리적 파트너로서의 AI
AI가 설계실에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설계자의 사고 과정을 체계화하고 검증하는 방식에 있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학생들은 AI를 단순한 도구를 넘어, 자신의 논리를 다듬고 확장해 나가는 ‘공동 사고자’이자 ‘비판적 동료’로 정의하고 있었다.
"주제에 대한 컨셉이나 구상 단계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마구 적어낸 후 AI에게 정리를 맡기면, 내가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를 정확히 이해해 논리적으로 구성해 준다. AI를 일을 같이 하는 동료라고 생각하고 있다."
"내 주장이 지나치게 편향되거나 비약적인 부분은 없는지 AI에게 끊임없이 오류를 찾아내라고 요구한다. 이를 통해 설계의 핵심 주제를 더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
이처럼 AI는 설계 논리의 공백을 메우며 개념 단계에서의 불확실성을 줄여준다. 학생들은 자신의 설계가 가진 건축적 가치와 타당성을 먼저 탐색하며, 자신만의 건축적 언어를 구축한다.
② 작업의 단축과 표현의 고도화
투시도나 모델링과 같은 결과물을 생성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던 과정은 AI를 통해 빠르게 압축될 수 있다. 주변 사이트의 표현이나 최종 이미지의 분위기와 퀄리티를 효율적으로 확보함으로써, 시각화에 투입되던 노동 집약적인 시간을 줄이고 설계자는 공간의 본질적인 논리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역사적 부지(Historic Site)처럼 데이터가 부족하거나 직접 모델링하기 매우 까다로운 사이트 환경을 AI를 통해 사실적인 배경으로 구현한다. 이를 통해 사이트를 모델링하는 물리적 시간을 줄여 설계 논리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아예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하기보다, 본인이 직접 만든 모델링 기반 위에 D5 렌더의 기능을 사용하여 분위기를 설정하고 최종 퀄리티를 보정하는 방식으로 완성도를 높인다.”
이처럼 학생들은 여러 AI 도구를 상황에 맞게 선택해 활용하며 작업 효율을 극대화한다. 이는 결과물의 질이 특정 툴에 대한 숙련도로 결정되던 과거의 문법에서 벗어나, AI를 어떻게 선택하고 조합하느냐가 설계의 핵심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③ 시각적 소통의 효율화
AI는 설계 내용을 타인에게 전달하고 설득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설계자 스스로 아이디어의 갈피를 잡는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고도화된 시각 자료는 설계자와 관찰자 사이의 정보 격차를 줄이는 강력한 매개체인 동시에, 설계자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던 추상적인 감각을 현실적인 이미지로 견인하는 역할을 한다.
“AI가 생성한 분위기와 디테일한 이미지는 설계 크리틱 시 교수님이나 타인에게 자신의 설계 의도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이해시키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데이터 센터와 같이 기존에 정립된 미학이 부족한 새로운 건축 유형을 설계할 때, AI를 통해 해당 유형에 어울리는 이미지를 생성하여 디자인의 방향성을 잡는 기준점으로 활용한다.”
이처럼 AI는 타인에게는 내 개념을 직관적으로 전달하고 나 스스로에게는 설계의 방향성을 명확히 하는 나침반이 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시각적 소통의 효율화는 설계실 전체의 작업 수준을 높이며, 아이디어와 구현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핵심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결국 건축 학도들이 마주한 AI 시대의 본질은 ‘표현의 자동화’가 아니라 사고의 확장에 있다. 툴의 숙련도가 아이디어의 가치를 가로막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AI가 제시하는 수많은 시각적 대안 속에서 최선의 가치를 선택하고 정교하게 다듬어 나가는 과정은, 역설적으로 건축가의 가장 고유한 능력인 '선택과 판단'의 가치를 다시금 설계의 전면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생성형 AI를 통해 도출한 설계 렌더링 이미지(©설문 응답 학생)
AI라는 이름의 지름길, 길을 잃어버린 설계실
과거 설계실에서 학생들이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핵심 과정으로 사이트에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해석하고 수없이 많은 고민 끝에 본인만의 논리를 구축하는 사고의 과정이 있었다. 명확한 정답이 없는 설계안을 붙잡고 동료들과 토론하거나, 널리 알려진 건축물에서부터 시골의 자그만 건축물까지 많은 레퍼런스를 직접 분석하며 대안을 찾아가는 시간은 설계자로서 관점을 정립하는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비록 시각화 툴에 익숙하지 않아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속도는 더딜 지 몰라도, 그 지루한 과정 속에서 학생들은 공간의 본질을 스스로 체득하며 논리를 견고히 쌓아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AI 도구의 확산은 이러한 성숙의 시간을 극단적으로 단축하고 있다. AI가 정보를 처리하고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특정한 기술적 기제가 설계자의 인지 과정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첫째는 통계적 확률 기반의 환각현상(Haluucination)이다. AI는 사실 관계를 넘어서서 단어 간의 통계적 확률에 기반하여 가장 그럴듯한 답을 내놓는다. 이로 인해 설계자는 AI가 제시하는 매끄러운 문장에 매료되어 비판적으로 검증할 기회를 잃을 수 있다.
둘째는 추론 과정의 불투명성인 블랙박스(Black Box)현상이다. 결과가 도출되는 논리적 경로를 알 수 없는 AI의 특성은 설계자가 정보를 직접 선별하며 쌓던 지식의 밀도를 급격하게 낮춘다. 학생들은 근거를 알 수 없는 요약본에 의존하여 설계 논리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점차 멀어진다.
셋째는 인간 피드백 강화학습(RLHF)에 의한 아첨(Sycophancy) 현상이다. 사용자에게 만족감을 주도록 설계된 AI의 알고리즘은 설계자의 오류를 지적하기보다 화려한 미사여구로 포장하여 확증 편향에 가두기 쉽다. 이는 즉각적인 보상에만 반응하게 만들어, 창의적인 생각을 알고리즘의 예측 범위 안으로 규격화한다.
전범위적으로 문제되고 있는 위와 같은 기술적 결함은 단순히 시스템의 성능 문제를 넘어, 설계자의 심리적 기제와 결합하여 더 깊은 부작용을 낳는다. 설문조사에서 학생들은 AI를 강력한 파트너로서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깊은 위기감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적 기제가 실제 설계실 현장에서 학생들의 창작 방식과 인지 감각을 어떻게 왜곡하고 있는지 들여다볼 차례다.

AI 도구와의 대화만을 통해서 고도화된 분위기를 연출한 결과물 (©설문 응답 학생)
① 사유의 생략과 가짜 확신의 위험
AI는 학생이 대지의 물리적 조건이나 프로그램의 복합성을 충분히 고민하기도 전에 그럴듯한 건축적 개념과 완성된 공간 이미지를 먼저 제시한다. 이는 단계적인 매스의 발전과정이나 평면적 논리 구성을 통째로 생략하게 만든다. 특히 AI가 도출한 분위기와 수식어에 매료되어 학생은 자신의 설계가 지닌 구조적 결함 혹은 기능적 모순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한 채, AI의 제안에 논리를 끼워 맞추는 주객전도의 상황에 빠지게 된다. 결과적으로 AI의 아이디어로 설계 방향이 이미 결정된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방대한 데이터를 가진 AI는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기도 전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라고 알려준다. 사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AI가 그럴듯한 개념을 알려주기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라고 착각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속으로는 스스로 생각하기 위한 시간을 가져야지 하면서도 편리함 때문에 어느덧 AI 페이지를 키고 프롬프트를 작성하고 있었다. 흔히 도파민이라고 불리는 것에 취해 스스로 사고하는 과정이 점점 없어지는 것이다.”
위의 답변과 같이 창작자가 스스로 고민하기보다 즉각적인 보상을 주는 AI 시스템에 의존하게 되면서, 비판적 사고의 근육은 점차 퇴화하고 기술이 만든 확증 편향의 굴레에 갇히게 된다.
② 체득되지 않는 지식과 과정의 소멸
설계과정은 단순히 결과물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시도하고 무너지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며 대안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한 개인의 논리가 몸에 체득되는 과정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AI는 물리적 시간을 극단적으로 단축하며 편리성을 제공하지만 창작자가 고된 노동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감각과 지식을 앗아간다.
“컨텍스트를 일일이 모델링하면서 그 컨텍스트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데, 그걸 놓칠 수 있다는 피드백을 받은 적이 있다.”
“인간보다 몇 백배 똑똑한 AI와 대화하며 토론하기보다 답변을 수용하는 방식으로 바뀌어 친구와 설계 개념에 대해 대화하는 풍경은 사라졌으며, 사이트를 한 번도 가지 않은 친구가 교수님에게 사이트 분석을 잘했다고 칭찬을 받는 상황이 벌어진다.”
“직접 수많은 레퍼런스를 분석하는 것보다 시간은 덜 들지만, 오히려 그 과정이 없으니 생각의 폭은 좁아지는 것 같다.”
“직접 도서관과 인터넷을 뒤져가며 정보를 걸러서 수집할 때는 번거롭더라도 그 과정에서 쌓이는 잡지식들이 많은 느낌인데, 요즘엔 ai가 필요한 정보만 뽑아서 요약해주는 일을 하도 잘해주니 귀찮은 일을 잘 안하게 됩니다.”
이처럼 직접 부딪히며 얻는 감각과 지식의 밀도가 낮아지면서, 학생들은 완벽한 것 같지만 정작 본인은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한 설계를 내놓게 될 가능성이 있다.
③ 시각적 망상에 의한 설계 논리의 오염
학생들이 사이트 분석, 아이디어 구축 등 작업이 충분하지 않은 설계 초기 단계에서 AI가 만들어낸 이미지를 접하게 되는 순간, 학생들은 논리가 결여된 시각적 망상에 매몰 될 수 있고, 자신의 설계를 완벽히 통제할 능력을 점차 상실할 수 있다.
“고퀄리티의 이미지를 보면 모든 것이 좋아 보이면서 이것이 내 것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겪고 나니 AI에게 이미지의 사용은 원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직접 함으로써 얻는 고됨의 과정이 나의 것으로 체득이 된다고 생각한다.”
“아직 설계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AI가 만들어낸 이미지를 본 순간 거기에 매몰될 것이란 생각이 들어 사용을 피하려고 한다. 이미지를 보면 그걸 다시 ‘나만의 논리나 설계’로 소화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AI의 결과물은 물리적 실현 가능성이나 구조적 논리가 결여된 ‘시각적 망상’인 경우가 많다. 이를 다시 아날로그적인 방식(스케치, 물리 모델)으로 분해하여 재조립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AI로 인해 겉으로 멋진 결과물을 먼저 확인하고 과정을 억지로 끼워 맞추는 역순의 설계 방식이 이루어진다면 건축가가 생각해야 할 공간의 구축 논리를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는다.
결국 AI가 제공하는 즉각적인 결과물은 건축학도들에게서 고뇌의 시간을 앗아감으로써, 건축가의 가장 본질적인 책무인 공간에 대한 책임감을 약화시킨다. 편리함에 기대어 사유의 단계를 건너뛰는 순간, 자신이 제안한 공간의 구축 원리와 그 안에 담긴 삶의 형식을 온전히 장악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비판적 성찰이 생략된 채 AI가 제안한 유혹에 매몰되는 것은 건축가가 지켜내야 할 논리적 주체성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따라서 AI 시대의 건축학도들은 기술이 주는 효율에 안주하기 보다,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설계자의 단단한 관점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AI 기술이 질문하는 오늘날 건축가의 역할
AI는 설계를 위한 자료 수집, 아이디어 도출, 최종 이미지 생성의 과정에서 누구나 손쉽게 사용하게 되었다. 학생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보았을 때, AI는 시각적 논리를 구축하는 데 도움을 주는 파트너이기도 하지만, 설계 과정에서 사유의 기회를 앗아간다는 치명적인 방해물이 될 수도 있다. AI는 방지턱 없이 빠른 속도로 설계실에 스며들고 있지만, 기술과 상생하는 방법과 태도에 대해서는 아직 그 방향이 확실하지 못하다. AI는 도면을 그리고 수정하던 작업들에 소요되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건축가가 가진 고유한 사유의 역량을 녹슬게 하고 있을 수도 있다. AI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FOMO(Fear of. Missing Out)와 AI에 대한 경계심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건축학도들에게 앞으로 다가올 세상에서의 건축가의 역할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다.
앞으로 건축가의 역할은 AI에게 언어로 지시를 내리는 디렉터(Director)가 될 수도 있다. 이미지를 만드는 생성형 AI는 수많은 이미지와 텍스트의 샘플을 학습하며, 둘의 패턴을 분석하여 결과를 도출해내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이는 인간이 이미지를 학습하는 방식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영국 건축가이자 플로리다 국제대학교(Florida International University) 교수 닐 리치(Neil Leach)는 AI를 외계적 지능(Alien Intelligence)으로 분류하며 AI를 인간의 지성과 완전히 다른 논리로 작동하는 지성체로 본다. 마찬가지로 뉴욕 공과대학교(New York Institute of Technology)의 건축학과 교수 마티아스 델 캄포(Mattias del Campo)는 AI는 인간에게 새로운 사고방식의 기회를 열며, 앞으로의 창작은 한 사람의 머릿속이 아닌 AI와 인간이 주고받는 상호작용의 흐름 속에서 발생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들과 유사한 의견을 공유하는 전문가들은 건축가는 언어로서 설계를 디자인하고 최종 이미지를 조율해 내는 지휘자의 역할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암시한다.
한편, AI가 설계 과정 전번에 결합하게 되면, 건축가가 창조할 수 있는 재료와 맥락을 바탕으로 한 설계의 미학을 저해할 수도 있다. 케네스 프램턴(Kenneth Frampton)은 이미 1983년에 비판적 지역론(Critical Regionalism)을 주장하며, 획일화되고 아름다운 시노그래피(scenography)를 위한 건축을 경계하고, 지역적 맥락을 바탕으로 재료의 결합방식과 구조적 논리에 기반한 구축술(tectonics)과 질감을 통해 몸으로 느끼는 촉각적 경험을 중요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론은 이를 바탕으로 한 알바로 시자(Alvaro Sizar), 마리오 보타(Mario Botta)와 같은 수많은 거장을 탄생시켰다. AI는 오직 수학적인 데이터로만 설계에 포함된 요소들을 분석하면서 기존의 건축가가 발휘할 수 있었던 건축적 경험의 틈 사이를 세밀하게 읽어낼 수 있는 역량을 약화시킬 수 있다. 예일대학교 필립 번스타인(Philip Bernstein)의 이야기를 빌리면, AI 사용은 사람의 경험을 바탕으로 구현할 수 있는 건축이 제공하는 구체적인 경험의 질이 설계 결과물에서 소외될 위험이 있다.
이렇게 설계안의 전체에 대한 결정을 담당하는 디렉터(Director)와 구체적인 건축적 경험을 조각하는 창작가(Creator)의 자리에서, 앞으로의 건축가는 어떤 역할을 핵심적으로 맡게 될까?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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