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6년 4월호 (통권 701호)

김태동의 ‘서서울미술관 건립 아카이브 프로젝트 2024‐2026’ CHAPTER. 1(왼쪽)과 신지선의 ‘서서울토피아‐AR 무빙이미지’(오른쪽) 설치 모습. ‘서서울미술관 건립 아카이브 프로젝트 2024‐2026’ CHAPTER. 2는 2부 전시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Bang Yukyung
서울시립 서서울미술관
2026. 3. 12. ~ 7. 12.
서울 최초의 뉴미디어 특화 미술관이자, 서울 서남권에 조성된 첫 공립 미술관인 서울시립 서서울미술관(이하 서서울미술관)이 3월 12일 문을 열었다. 서울시가 2015년 건립계획을 발표한 뒤 10년 만의 일이다. ‘공원 속 미술관’이라는 콘셉트 아래 열린 미술관으로 조성된 서서울미술관은 개관 당일 뜨거운 취재 열기 속에 전시장 곳곳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미술관 1층과 야외 공간에서 진행되는 건립기록전을 비롯해 뉴미디어 특화 미술관에 걸맞은 퍼포먼스와 대형 커미션 작업들이 야외, 지하 공간에서 선보였다. ‘뉴미디어 아트, 지역문화, 접근성’을 중요한 지향점으로 내세운 서서울미술관의 전시와 공간이 이러한 목표에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관계, 공간, 시간의 지층 위에 구축한 전시
건립기록전 〈우리의 시간은 여기서부터〉▼1는 미술관의 건립 과정을 아카이빙하고, 서남권 지역에 새겨진 시간의 서사와 기억을 조명하는 전시다. 전시에는 사진, 영상, 증강현실 등 다양한 매체를 다루는 다섯 작가(팀)가 참여했다. 미술관의 틈새 공간을 활용한 이번 전시는 1층 로비의 좁은 통로 끝에 위치한 ‘스튜디오1’에서 시작해 야외 공간으로 확장된다. 먼저 강렬한 녹색 조명이 비추는 첫 번째 공간은 신지선의 증강현실 작업을 무빙 이미지로 구현한 방이다. 작가는 농촌에서 도심 공업지대로의 개발, 안양천 정비, G밸리 조성, 대규모 아파트 단지 개발 등 변화를 겪었던 서남권 일대의 역사와 이곳에 서식했던 존재들의 기억을 길어 올린다. 5개 연작으로 구성된 ‘서서울피디아’는 급변하는 도시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자리를 지킨 산, 오염된 안양천이 회복된 후 돌아온 물고기, 마을을 지킨 나무 등 생태 환경에 주목하는 한편, 이 동네를 배경으로 존재했을 법한 개인의 서사를 페이크다큐 형태로 재구성해 보여준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어지는 공간에는 김태동과 브이엔알▼2의 사진 작업이 소개되었다. 김태동은 미술관 건물이 구축되는 과정을 시기별로 기록한 사진뿐 아니라, 공사에 참여한 노동자들의 인물 사진을 대형 프레임에 담아 미술관에 축적된 노동의 서사를 동시에 드러낸다. 전시 공간 역시 공사용 가설 구조물로 구획해 현장 감각을 끌어올린 것이 특징이다.
한편 건립기록전은 건물의 외벽, 잔디마당 등 미술관 외부 공간으로 이어진다. 로비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정면의 벽과 하역장 입구 셔터에는 브이엔알의 ‘더 그랜드 투어’ 연작 두 점이 각각 설치됐고, 신지선의 ‘서서울피디아’ 연작은 미술관 내 카페 기둥과 건물 외벽 네 곳에 각각 QR코드를 부착해 현실의 풍경과 오버랩된 이미지를 관람자가 체험하도록 했다. 건립 사진 이미지 데이터에 변형을 가해 발생한 시각적 교란(글리치)을 패턴화한 브이앤알의 작업은 스튜디오1의 유리 벽면에 부착되어, 전시 공간과 주변 풍경을 시각적으로 매개한다. 미술관 잔디마당에 설치된 컨템포로컬의 ‘일루전 사인_안양천’은 도로표지판 형식을 차용해 물길의 흐름과 속도가 도시의 삶과 교차하는 지점을 드러낸다. 치수사업으로 유속이 빨라진 안양천과 상습 정체로 악명이 높은 서부간선도로를 대조함으로써, 우회와 지연의 태도를 통해 느리지만 멀리 나아갈 수 있음을 역설적으로 암시한다.
이처럼 건립기록전은 관람객들이 미술관 곳곳을 탐험하도록 안내한다. 틈새 공간을 활용했다는 기획자의 설명처럼 가장 규모가 작은 1층 스튜디오1, 로비, 건물의 외벽, 하역장 셔터와 같이 중요하다고 인식하지 못했던 공간에서 건물의 안과 밖을 유심히 살피도록 이끄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 즉 관람자가 퍼포머처럼 미술관의 안팎을 돌아다니며 ‘우리가 지금 어떤 서사 위에서 존재’하고 있는지 의식하게 하는 경험은 서서울미술관이 추구하는 뉴미디어 아트의 수행성, 시간성과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한다.

김태동의 건립 아카이브 사진과 브이앤알의 ‘서서울미술관 건립 아카이브 프로젝트 2024‐2026’ 설치 모습 ©Bang Yukyung

브이앤알, ‘더 그랜드 투어-002’, 장소특정적 시트지 설치, 450×540cm, 2026. 미술관 하역장 출입구 셔터에 설치된 이 작업은 미술관 건립 과정에 촬영된 아카이브 이미지 가운데 인물이 촬영된 사진을 10cm 크기의 정사각형 규격으로 모은 작업이다. 가운데 흰색 문양은 금천구 일대에 주둔했던 제3미사일방어여단의 엠블럼을 활용해 표현했다. Image courtesy of Seo-Seoul Museum of Art

김태동과 브이앤알의 ‘서서울미술관 건립 아카이브 프로젝트 2024‐2026’ 설치 모습 ©Bang Yukyung
‘일상의 미술관’이라는 이상과 현실
미술관 안팎을 거닐도록 하는 건립기록전의 특성은 다분히 미술관의 공간적 특징에 대응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서서울미술관은 육군 도하부대가 이전하며 조성된 금나래중앙공원 내에 들어섰다. 대지는 지하철역과 인접해 금천구청, 아파트 단지, 초등학교에 둘러싸여 있어 시민들의 왕래가 활발한 곳으로, 2020년 국제지명 설계공모에서 선정된 더_시스템 랩(대표 김찬중)의 당선안은 ‘일상의 미술관’을 표방했다. 공원의 산책로가 미술관 내부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하겠다는 의도다. 위압감을 줄이기 위해 지상 1층, 지하 2층 규모로 높이를 낮췄고, 산책로의 흐름을 그대로 형상화한 긴 단층 매스는 인근 보행로와 연결되는 다양한 동선들이 관통하는 형태로 설계됐다. 공원을 지나가는 시민들도 창문 너머로 작품을 관람할 수 있도록 1층 하부 전면을 유리로 처리한 것이 특징이다. 개관특별전으로 기획된 퍼포먼스 중 하나인 황수현의 ‘세계’는 이러한 건축적 특성을 십분 활용한다. 지하 1층 전시장에서 진행된 공연의 후반, 산책로에서 내려다보이는 전시장 상부 고창의 가림막이 닫혔다가 열리면서 퍼포머와 관객들이 암흑의 공간에서 현실로 이동하는 듯한 극적인 체험을 연출한 것이다.
전시의 서사와 공간이 현실에서 공명하는 장면들을 확인하는 동시에 어긋나는 지점도 곳곳에서 발견됐다. 앞서 살펴본 건립기념전의 경우, 1층 로비에서 야외 공간으로 이어지는 전시 동선을 따라 관람객이 실제로 이동하려면 여러 어려움을 맞닥뜨리게 된다. 외부 공간에 멀찍이 떨어져 있는 파편적인 작업들을 모두 찾아가기에는 관람 동선이 너무 길고 안내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물론 외부에 전시된 작품에는 통일된 사이니지가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관람객의 시야에 쉽게 들어오지 않고, 주변 보행로와 연결된 통로가 많아 어떤 작품부터 어느 순서대로 찾아가야 하는지 한눈에 파악되지 않는다. 또한 (지하에 넓은 로비 공간이 있지만) 1층 로비가 지나치게 좁고 카페와 이어져 있는 탓에 전시의 시작과 끝을 명확하게 인지할 수 없어 혼란이 가중된다. 전시의 ‘몰입된 경험’을 방해하는 외적 요소들로 인해 건립기념전은 실내 공간(스튜디오1)에 집적된 작품을 제외하면 전체가 하나의 전시로 인식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작품들 사이 연결성이 단절돼 서사가 확장되지 못하면서 ‘작은 전시’로 축소되고 마는 것이다. 도시에서, 공원에서, 미술관에서 길을 잃는 경험은 예기치 못한 발견을 주는 흥미로운 여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발견을 위한 의도된 방황과, 실제로 길을 잃는 경험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공간을 활용하는 전시를 기획할 때 어떤 장치들을 섬세하게 살펴야 하는지 관람객의 입장에서 고민하지 못한 태도가 아쉽게 다가온다.
전시 현장에서 마주한 한계는 서서울미술관이 ‘뉴미디어 아트 특화 미술관’으로 작동할 때 극복해야 할 여러 위험 요소를 시사한다. 무엇보다 뉴미디어 전시의 난해함이 문턱 낮은 ‘대중 친화적인 미술관’이라는 방향과 어떻게 공명할지 의문이 남는다. 서울시립미술관은 보도자료를 통해 자신들의 “소장품 분류 체계에서 뉴미디어는 영상, 음향, 조명 등을 포함하는 예술작품과 퍼포먼스, 무형의 개념미술, 인터넷 아트, 코딩 아트, 소프트웨어 기반 작업 등을 포함한다”고 설명했다. 외부와 단절된 몰입된 경험이 중요한 뉴미디어 작업을 개방적인 전시 공간에서 어떻게 소화할 수 있을지, 시각적으로 개방되어야 할 유리벽이 커튼이나 가림막으로 막히지는 않을지 여러 걱정이 앞선다. 그럼에도 개관 당일, 아이와 어른이 뒤섞여 북적거리던 공원의 풍경과 산책로를 통과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일상의 미술관’이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선을 사로잡는 압도적인 건축물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이 자리에 있던 공원의 일부인 양 반려견과 산책하고 옥상에 올라 숨을 고르는 일상의 배경으로서 말이다. 개관 직후의 어수선함이 아직 남아 있지만 창의적이고 적절한 활용 방식을 통해 일상의 미술관으로 깊게 뿌리내리길 기대해본다.

김태동이 촬영한 서서울미술관 완공 모습. Image courtesy of Seo-Seoul Museum of Art / ©Kim Taedong

컨템포로컬의 ‘일루전 사인_안양천’이 잔디마당에 설치된 모습. 표지판의 반대편에는 “우리는 이곳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법을 배웠다”는 문구가 쓰여 있다. Image courtesy of Seo-Seoul Museum of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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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 공개된 건립기록전은 1부로, 4월 28일부터는 지하 공간까지 확장된 2부 전시가 진행된다. 2부에는 김태동의 건립 아카이브 사진과 함께, 현재 시민 참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무진형제의 ‘태각’이 소개될 예정이다. 서울시립 서서울미술관의 개관특별전은 총 세 가지로, 〈우리의 시간은 여기서부터〉와 〈세마 퍼포먼스: 호흡〉에 이어, 5월 14일 〈서서울의 투명한 │청소년 기계│〉가 개막한다.
2 브이앤알은 김태동과 김천수 2인으로 구성된 콜렉티브로, 현실을 그대로 담아내는 스트레이트 사진과 사진을 해체하고 재조합하는 실험적 작업을 연결한다. 스튜디오1에서는 건립 아카이브 사진 원본 데이터에 변형을 가해 만들어진 색띠와 왜곡(글리치)을 병치한 사진과, 글리치 패턴만 추출해 유리창에 부착한 작업이 김태동의 아카이브 사진과 함께 전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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