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6년 4월호 (통권 701호)

신도리 워케이션 오피스(2024) 콜라주
건축을 통해 탐구하는 것
건축가는 무엇을 탐구하는가? 이 질문이 항상 내 곁에 있다.
후기인상파 화가 세잔은 수많은 정물화를 통해 그림의 본질을 탐구했다. 빛과 그림자, 투시도법, 구도와 윤곽 등 그림에 담기는 많은 요소 중에서 사물의 존재를 진실하게 표현하기 위해 무엇이 남겨지고 무엇이 생략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내가 건축을 대하는 태도는 이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건축이 구축하는 삶의 형식에 진실해지기 위해 무엇이 남겨지고 무엇이 생략될 수 있는지 탐구한다. 건축의 미니멀리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으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을 지향한다. 그것이 건축가의 일이자 윤리라고 생각한다.
최소한의 디자인이 요구될 때
오피스는 상대적으로 건축가의 개입을 적게 요구하는 건축 유형이다. 공공 건축, 상업건축 등에서는 많은 경우 존재감을 드러내는 건축적 표현이 부각된다면, 오피스는 구획이 확정적이지 않고 변화를 전제로 하기에 보편적이고 중성적인 공간이 주제가 된다. 오피스와 같이 건축가의 개입을 최소로 요구하는 경우, 건축가에게 주어진 진정한 과제가 무엇인지를 보다 명확히 탐구할 수 있다. 건축가에게 최소한으로 주어진 가능성 속에서 어떻게 건축의 윤리와 규율, 그리고 미학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번에 발표하는 오피스들은 각각 다른 대지의 상황과 요구 조건 속에서 설계가 진행되었다. 오피스라는 보편적 특성과 프로젝트마다 주어진 특수한 조건을 대면하면서 어떻게 공간의 ‘질서’를 구축하고, ‘차이’를 생성하는 건축을 만들 수 있는지 살필 수 있는 사례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신도리 워케이션 오피스 스케치
공간의 체계를 구조로 구축하고 형태로 드러내는 일
오피스의 공간 배치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오늘날의 회사는 사업부서와 조직의 구성이 수시로 바뀐다. 하나로 크게 개방된 평면을 갖는 오피스가 많은 이유다. 오피스를 설계하면서 효율적인 평면과 융통성 있는 공간이라는 일반적인 요구를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내부 공간의 구성과 구조의 체계를 일치시키고, 구조의 체계를 외부 형태와 통합하는 방식을 탐구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건축가에 주어진 과제의 첫 단계를 완성할 수 있다.
직스테크놀로지 사옥(2024)과 더네이쳐홀딩스 사옥(2025)은 사무실 공간 내에 기둥이나 벽이 없기에 자유로운 공간 배치가 가능하다. 기둥 없는 내부 공간을 만들기 위해 외벽에서 모든 구조적 부담을 해결했다. 직스테크놀로지 사옥에서는 콘크리트 박스가 구조를 감당하면서 내부에 말끔한 공간을 만들었다. 공중에 띄워진 콘크리트 박스는 지상 레벨의 원기둥과 트레버틴 벽으로 지지되어 필로티 공간을 형성한다.
더네이쳐홀딩스 사옥에서는 노출콘크리트 프레임 구조로 하나의 큰 사무 공간을 만들었다. 가로축으로만 짜인 보 프레임은 내부 공간에 방향성을 부여하고, 횡력에 저항하는 격자 프레임으로 구성된 전면부는 3m 깊이의 표층을 구성한다. 3m 두께로 만들어진 공간의 켜는 다층적인 크기로 분할되며, 일정한 높이로 나누어진 내부 공간과 만나면서 복합적인 관계를 형성한다.
서귀포 삼다빌딩(2024)은 대지 형상으로 인해 넓지만 불규칙한 평면을 갖는다. 불규칙한 공간의 윤곽을 만들기 위해 기둥 프레임 구조와 구조벽을 혼용하여 사용했다. 복합적 구조 방식은 개방적인 커튼월과 폐쇄적인 박판타일 벽의 조합으로 드러난다.
워캉스(work+vacance) 용도인 신도리 워케이션 오피스(2024)는 3×5 모듈의 콘크리트 프레임 속에서 내외부 공간이 전개된다. 구조의 체계와 공간의 체계가 하나로 통합된 단순한 형식이다. 고전 건축의 비례와 구성을 떠올리면서 유리 매스를 콘크리트 프레임과 결합했다.
구체적 형태를 지닌 건축 언어를 통해 내부 공간의 질서를 만들고, 이를 구조적인 체계 속에서 통합하고, 다시 이 질서와 체계를 형태로 드러내는 것은 건축가에게 주어진 고유하고 본질적인 일이다. 건축에 참여하는 모든 주체 중에 이 과업을 해낼 수 있는 이는 오직 건축가뿐이다. 이 작업을 통해 비로소 건축의 서사가 시작되고 미학의 가능성이 열린다.
공간의 질서와 구조의 체계를 바탕으로, 공간 프로그램을 조직하고, 환경과 풍경에 대응하며, 디테일을 더하는 과정을 지나 건축은 비로소 그 모습을 세계에 드러낸다.
더네이쳐홀딩스 사옥(2025) 스케치
다층적 공간 프로그램을 조직하는 일
공간 프로그램을 다룰 때 건축가는 코디네이터의 역할을 하게 된다. 프로그램을 탐구하면서 조직의 운영 방식과 구성원들의 생활방식을 이해하게 된다. 공간의 크기와 기능을 정의하고 그 배치를 결정한다는 것은 ‘공간’이라는 자원을 분류하고 분배한다는 의미다. 분류와 분배는 본질적으로 전문적인 업무인 동시에 정치적인 행위다.
오피스 빌딩이 사무실이라는 단일 기능을 담는 유형이라 하더라도 사용자는 다양한 방식의 공간을 요구한다. 일과 휴식, 작업과 회의 등 여러 행위가 교차하기 때문에 오피스 빌딩은 여느 건물처럼 다층적 프로그램으로 전개되며 다층적 공간의 단면으로 드러난다.
더네이쳐홀딩스 사옥은 다양한 공간적 인터페이스를 갖는다. 1층과 2층의 크게 열린 공간은 기업이 론칭한 패션 브랜드의 쇼케이스이자 전시 공간이다. 3층은 고객과 협력회사 직원들과 만나는 미팅 공간이고, 12층은 패션쇼나 대규모 집회를 개최할 수 있는 전시·집회 공간이다. 14층에는 직원들을 위한 식당과 휴게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직스테크놀로지 사옥은 입구에서 사무실에 이르는 환대의 서사를 입체적으로 구성했다. 필로티 아래에 로비를 겸한 카페를 두어 출근길에 커피를 즐기는 여유를 주었다. 엘리베이터 홀에 두 층으로 열린 시원한 공간을 만들고, 선큰 가든과 연결된 아담한 아트리움을 두었다. 일반인들의 교육을 위해 마련된 지하 공간은 회사와 사회의 인터페이스 공간이다. 옥상은 두 개의 레벨로 구성된 야외 정원으로 만들었다. 소규모 오피스지만 다양한 성격을 지닌 프로그램이 입체적인 방식으로 전개된다.
서귀포 삼다빌딩은 대부분 임대 오피스 공간이기에 불확정적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그럼에도 저층부와 고층부의 역할을 분리했다. 4층까지의 저층부는 아트리움으로 개방된 공간이다. 서귀포의 중심 광장에서 서귀포 시청과 연결되는 보행 동선을 건물 안으로 끌어들이고 중심 공간을 수직적으로 크게 개방하면서 다층적인 공간이 만들어졌다.
워캉스를 위한 신도리 워케이션 오피스의 1층은 거주하는 공간으로, 2층은 일하는 공간으로 계획했다. 거실 남쪽으로 넓고 높은 로지아를 두었고, 사무실과 이어진 테라스에는 아담한 풀(pool)을 두었다.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누릴 수 있다.

직스테크놀로지 사옥(2024) 스케치
주변 환경과 풍경에 반응하는 건축적 장치를 고안하는 일
건축이 특정한 땅에 자리 잡고 그 장소를 에워싼 맥락 속에 놓이는 순간, 건축은 거주의 장소를 넘어 주변 환경과 풍경에 반응하는 장치가 된다. 비와 눈이 많은 지역에는 경사지붕이, 햇빛이 많은 지역에는 깊은 처마가 만들어진다. 광장에 자리 잡은 건물과 막다른 골목에 자리 잡은 건물은 대지에 서는 방식이 달라진다. 어디를 열어야 하는지, 어디를 막아야 하는지, 어떤 재료를 어떤 크기로 만들어야 주변과 잘 어울리는지 판단한다. 주변의 환경, 그리고 풍경과 반응하면서 건축의 포즈(pose, 앉음새)가 만들어지고 표정이 생겨난다.
서귀포 삼다빌딩은 제주도 서귀포시의 1호 광장에 면해 있다. 이 장소가 지닌 중요성 때문에 파사드를 다듬는 데 공을 들였다. 광장을 향한 입면에 깊은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알루미늄 루버를 설치했다. 반복되는 깊은 그림자는 광장에 입체적인 표정을 부여한다. 한편으로는 모서리와 반응하는 2층 높이의 원형 공간을 두어 코너 건물에 맞는 포즈를 갖도록 했다. 서귀포 삼다빌딩의 강렬한 정면성은 한라산에 기대어 태평양을 바라보는 서귀포 1호 광장의 위치에서 비롯되었다.
직스테크놀로지 사옥은 이면도로의 코너에 위치한 오피스로서 골목의 풍경과 반응한다. 이를 위해 매스를 분절하여 길에서는 아담한 건물로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박스를 지상에서 필로티로 들어 올리고, 들어 올린 매스 아래에 생긴 커다란 오프닝을 도로에 내어주어 도시의 풍경과 대화하는 로지아 공간을 만들었다. 벤야민이 “로지아에 도시의 신이 머문다”고 서술한 것을 상기하면서, 비어 있는 여백을 만들고 싶었다.
돌고래가 출몰하는 제주 신도리 해변은 언제나 아름답다. 해안도 좋지만 멀리 오름의 봉우리들도 좋다. 신도리 워케이션 오피스에는 아름다운 풍경을 들이고자 했다. 태풍 피해가 많은 지역이어서 거친 자연과 건물 사이에 적절한 거리가 필요했다. 풍경을 들이면서도 풍경과 거리를 두어야 하는 모순적인 요구를 담아내는 건축 형식을 탐구했다. 거친 해안선, 부드러운 보리밭과 대비되는 단정한 윤곽을 대지 위에 세웠다. 2층 높이의 콘크리트 열주를 돌려 내부와 외부를 매개하는 회랑을 만들었다. 현무암 담장을 쌓아 거친 자연과 대비되는 정돈된 마당을 조성했다. 회랑 기둥 사이로 여섯 폭 병풍처럼 한라산과 오름, 그리고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환경과 풍경에 반응하는 과정을 통해 공간과 구조의 질서는 재구성되어 건축의 포즈를 만들고, 섬세한 디테일이 더해지면서 표정을 지닌 건축이 완성된다.

서귀포 삼다빌딩(2024) 스케치
디테일을 건축에 새기는 일
손글씨로 편지를 쓰듯 건축가는 정성이 담긴 디테일을 건축에 새긴다. 언제나 시간은 부족하고 예산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원하는 만큼 풍부한 디테일을 남기기 어렵다. 디테일이 건축의 수준을 결정한다는 것을 상기하면서, 하나라도 더 의미 있는 상세를 고안하고 구현하려 했다.
서귀포 삼다빌딩을 설계할 때에는 광장을 바라보는 정면의 상세에 집중했다. 서귀포의 밝은 빛을 그림자를 통해 입체적으로 드러내고 싶었다. 격자형 루버로 파사드를 만들었다. 한 층씩 번갈아 가며 루버의 경사 각도를 바꾼 것은 광장 양쪽에서 접근하는 시선을 의식한 것이다. 모서리의 원형 매스에는 두 겹의 메시로 모아레(moiré) 패턴을 만들었다. 빛과 그림자로대비되는 파사드, 모아레 패턴으로 이루어진 코너 매스를 통해 서귀포의 1호 광장은 얼굴과 표정을 갖게 되었다.
더네이쳐홀딩스 사옥 역시 파사드가 중요한 건물이다. 이웃한 필지 사이에 더네이쳐홀딩스 사옥이 놓여 도로에서는 파사드만으로 인식이 되기 때문이다. 콘크리트 프레임으로 구성된 다양한 크기의 오프닝을 만드는 디테일을 구상했다. 콘크리트 격자 내부에 만든 알루미늄 서브 프레임은 보다 작은 스케일을 만들었다. 서브 프레임 내부를 다시 창문과 타일 벽면으로 분할하여, 콘크리트 프레임-알루미늄 프레임-창문-타일 벽면-타일 모듈로 이어지는 구조와 재료의 점진적 위계를 파사드에 담았다. 다층적 스케일에 대응하는 디테일은 단순한 건물의 형태에 풍부한 질감과 음악적 리듬을 담아주었다.직스테크놀로지 사옥에서는 짙은 회색의 현무암을 외벽의 주재료로 사용했다. 석재를 12cm 폭과 1.2m 길이로 켜서 마치 목재 벽과 같은 질감과 스케일로 구성했다. 현무암 매스에 돌출한 발색 스테인리스 디테일은 금속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섬세한 두께와 윤곽으로 처리했다. 돌과 금속으로 만든 섬세한 디테일은 이 건물의 완성도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서귀포 삼다빌딩(2024) 스케치
마땅히 해야 하는 건축가의 일
그간 프레임이라는 형식을 통해 내가 주목하는 몇 가지 주제를 발표했다. ‘표면의 깊이, 공간의 가능성’(「SPACE(공간)」 632호 참고), ‘‘짓기’를 짓다’(「SPACE」 658호 참고)를 통해 ‘건축의 뼈와 살’에 대한 생각을 나누었다. 이번 지면을 통해서는 ‘건축가의 일’에 대해 정리해보았다.
건축가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적어 보니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것들이다. 건축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이고,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다. 공간을 구축하고 구조를 세우고 이를 형태적 질서로 드러내는 것, 다양한 프로그램을 정리하여 공간에 배치하는 것, 환경과 풍경에 반응하는 건축적 장치를 만드는 것, 그리고 그것을 상세 디테일로 풀어내는 것. 이 모든 일은 오랜 세월 건축가들이 추구해오던 일이다. 건축가는 건축가의 일을 통해 신념과 가치를 구현한다. 환경과 노동, 공공성과 환대, 사회적 자산의 분배, 프라이버시와 커뮤니티 등 시대가 당면한 여러 이슈에 대해 건축가는 건축의 언어로 자신과 자신이 속한 사회의 가치를 추구할 수 있다.
‘건축가의 일’을 새삼스럽게 적어본 것은 건축을 처음 시작할 때의 내 마음을 되짚어보고 싶어서다. 이에 더해 건축이 시각적 이미지로 빠르게 소비되고 버려지는 현상, 그리고 그것에 편승하여 건축을 사진 몇 장으로 축소해버리는 허망한 작업에 대해 “아니다, 그렇지 않다”라고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건축가의 일은 사진에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많고, 크고, 깊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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