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6년 5월호 (통권 702호)
여느 젊은 건축가들과 마찬가지로 아지트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공동대표 서자민, 허근일)의 초기 작업 상당수는 리노베이션 작업이었다. 한국에는 급속한 도시화가 남긴, 이제는 낡아 수리가 필요한 건물들이 도처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주거지에 위치한 공장형 건물을 고친 등촌동 묵해 리노베이션과 건축가 김헌의 볼텍스를 대상으로 한 삼청동 묵해 리노베이션을 다룬다. 화려한 증축은 없다. 하지만 아지트스튜디오는 이 건물들을 마주하며 묻는다. 우리는 이것을 왜, 어떻게 남겨야 하는가? 그리고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등대 삼아 작은 개입 안에서도 시간의 켜를 읽고, 건물이 지어진 경위를 해석하며, 지금 이 도시의 단면을 건축으로 번역해내려 한다. 김기준(고려대학교 교수)과 아지트스튜디오가 만나 두 작업과 그 기저에 깔린 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편집자

등촌동 묵해 리노베이션[2025, 설계 – 아지트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서자민, 허근일), 시공 – 제이종합건설(현장소장 정장수)]
1970~1980년대 조성된 저층 주거지에 2000년대 지어진 철골조 공장 건물을 로스터리 카페 및 골동품 갤러리로 개조한 작업이다. 기존 마감재를 단 하나도 제거하지 않은 채, 새로 개입한 부분만을 색과 재질로 구분하여 시간의 경계를 가시화했다. 내부 철골구조를 드러냈고, 의도된 치수로 재단한 화강석 바닥으로 공간의 기준을 만들었다. 직접 제작한 가구는 화강석 바닥이 만든 그리드에 맞게 배치됐다. 외부에서는 메탈패브릭 파사드를 덧붙여 철골 건물의 물성을 밖으로 끌어냈다.
인터뷰 서자민, 허근일 아지트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 × 김기준 고려대학교 교수
조건 혹은 의무로서의 리노베이션
김기준(김): 아지트스튜디오건축사사무소(이하 아지트스튜디오)에게 리노베이션은 선택이었나 혹은 주어진 조건이었나?
서자민(서): 프로젝트마다 다르다. 클라이언트가 법적 상황이나 가능한 건축 행위의 범위를 정확하게 모른 채 찾아오면 대지와 기존 건물의 상태에 대한 검토를 바탕으로 논의하고 진행한다. 클라이언트가 확실한 이유를 가지고 리노베이션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방향 설정에 꽤 많은 시간을 들이고 여러 가능성을 고심한 후 결정한다. 독립 후 으레 작은 리노베이션부터 맡아 어떻게든 의미 있는 작업으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되는데, 이를 넘어 이제 리노베이션은 현시대 건축가들에게 중요한 숙제고 관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허근일(허): 사실 현재 신축 프로젝트를 더 많이 진행 하고 있다. 하지만 리노베이션 작업을 모아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던 이유는, 지금 건축가들이 리노베이션에 대한 논의나 담론을 확장하지 않으면 앞 시대의 건물들은 또다시 그저 없애야 하는 대상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우리가 넓혀가고 싶은 이야기는 구축 건물에 대한 시대나 도시적 해석에 더하여 이것을 어떻게 고쳐야 할지에 대한 구축적 방식이나 프로세스를 포함한다.
김: 대학에서 배운 건축과 실무에서 처음 마주한 건축 사이의 간극은 어떤 것이었나? 특히 내가 다니던 때(1999~2005)만 해도 학교에서 리노베이션에 관해 배우지 않았다. 학교에서 리노베이션을 배웠다면 어떻게 배웠고, 실무에서 마주한 리노베이션은 어떻게 달랐나?
허: 교과과정(2003~2011)에 리노베이션은 없었고, 항상 신축을 전제로 배웠다. 유물 보존의 개념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 아지트스튜디오의 방식과는 다르긴 하지만, 첫 리노베이션 프로젝트에서는 신축이 되는지 여부를 먼저 검토했던 기억이 난다. 신축이 안 되는 땅이니 리노베이션을 해야 하는데, 증개축도 안 되는 심각한 상황이어서 대수선을 했다.
서: 비슷한 시기에 학교를 다녔지만(2005~2011), 학부 4학년 스튜디오에서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를 했다. 구 서울역사를 리노베이션 하는 과제였고, 나는 파리 오르세 미술관 리노베이션을 레퍼런스로 스터디했다. 졸업 설계도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로 진행했다는 게 지금 생각났다. (웃음) 낙원상가 리노베이션이었다. 다만, 학교에서 진행하는 리노베이션은 항상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지닌 중요한 건물들을 대상으로 했다. 반면, 지금 아지트스튜디오의 리노베이션 대상은 ‘이것을 남길 것인가?’, ‘왜 남겨야 하는가?’, ‘무엇을 남길 것인가?’부터 질문해야 했다. 이런 가치판단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고, 논의해본 적도 없는 문제였다.

등촌동 묵해 리노베이션(2025)
김: 2021년부터 1년간 스위스에 머물며 경험했겠지만, 확실히 유럽에서는 리노베이션의 대상이 대체로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가진 건물이고, 수백 년 된 도시 조직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다. 반면 한국에서 건축가가 마주하는 리노베이션 대상은 대부분 급속한 도시화 시기에 빠르게 지어진, 30~50년 연식의 건물들이고, 경제적 혹은 합리적인 이유로 리노베이션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의 모든 면을 서구 세계에 견줄 필요는 없겠지만, 이 근본적인 차이가 리노베이션 작업에 대한 어떠한 고유한 태도를 만들어내는가?
허: 스위스의 란카테(Rancate)라는 시골 마을에서 지냈다. 베를린이나 취리히와 달리 란카테는 도시계획적 질서보다 필요에 따라 형성된 흔적이 강하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유럽 건축이 보통 논리와 체계가 앞선다는 인상을 주는 것과 달리, 그곳에서는 각 건물이 왜 그렇게 만들어졌는지가 직관적으로 드러나며, 건물마다 고유한 이야기와 시간이 느껴졌다. 이러한 감각은 특정 지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1970~1980년대의 ‘건축가 없는 건축’ 역시 경제적·사회적 조건 속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고, 그 시대의 선택과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따라서 리노베이션에서 중요한 것은 형태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건물이 만들어진 이유와 축적된 흔적을 읽어내고 이를 현재의 맥락 속에서 어떻게 드러낼지 고민하는 일이라고 본다.
서: 스위스에서 많은 경험을 하긴 했지만, 아지트스튜디오의 리노베이션은 학교는 물론 외국에서 본 것에 기반한 작업이 아니다. 우리만의 시각을 가지고 이 땅을,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에 대해 들여다보고, 이를 작업에 끌어오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리노베이션이야말로 도시의 단면을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한국에서 리노베이션이 경제적인 논리에 의한 요구일지언정, 건축가로서 당면한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당연하다. 수백 년의 세월을 담은 역사적 건물이 아니고서야 사회나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 건물이다. 그러한 변화 속에서 건축가가 그저 건물을 재사용하기 위해 고치는 것을 넘어 어떤 미학적·건축적 의미를 만들 것인가가 우리의 숙제라고 생각한다.

등촌동 묵해 리노베이션(2025)
개입의 기준과 태도
김: 2023년 젊은건축가상 수상 당시 ‘못생김의 미학’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때 말한 못생김은 완성된 건물의 못생김도 받아들이겠다는 태도였는데, 이번 답사에서는 리노베이션의 대상으로 마주한 건물의 못생김에 대해 이야기했다. 건축가가 작업으로 만나는 대상이 아름다움이 아닐 때, 그 ‘못생김’을 어떻게 다루고 소화하는가? 기존 건물에 대한 ‘존중’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설계에 반영되는가?
허: 수상 당시 서자민 소장이 언급한 못생김은 못생겨도 상관없다는 마음을 가지고 건축을 대해야 건축의 본질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용기였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못생김이라는 단어를 우리의 태도라고 던져놓고 보니, 이 단어에 대해 계속 고민하게 되고, 이 개념을 발전시키게 됐다. 건축가의 역할 중 하나가 기준을 만드는 거라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예쁨과 못생김을 판단하는 보편적인 기준이 있을 거다. 하지만 건축가로서 이 보편 기준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못생김의 혹은 예쁨의 범위를 넓혀보려 한다. 특히 리노베이션 작업에서 그런 시도를 적극적으로 하는 편이다.
서: 리노베이션뿐 아니라 우리가 진행하는 새로운 계획들도 예쁜 것을 만들고자 하는 과정과는 다르다. 더 견고하고 근본적인 질문이나 의도가 있어야 끝까지 끌고 갈 수 있다. 물론 우리가 추구하는 건축적 아름다움이 있지만, 못생긴 것도 마주할 수 있는 용감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거다. 그리고 리노베이션 대상 건물들은 정말로 못생겼다. 건축가는 결코 감상자가 아니라 이 건물을 가지고 작업을 만들어내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오래된 것에서 오는 낭만적 감성이나 노스탤지어를 배제하고 기존 건물을 바라보면 꽤나 골치가 아프다. 심각한 구조적 문제가 있기도 하고, 이 시대의 건축적 도구나 어휘에서 너무 벗어나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아름다움과는 먼 결과물도 도시를 구성해온 요소들이고, 우리의 모습이다. 못생김을 가능성으로 들여다보는 태도가 존중일 수도 있겠고, 계획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김: 기존 건물들과 처음 마주할 때 어떤 감정이 드는지 궁금하다. 남길 것과 바꿀 것을 결정하는 기준과도 연관될 것 같다.
서: 지난 시대의 요소들을 직접적으로 남겨 병치하는, ‘이건 이전 시대의 것이니 곧 의미가 있다’는 방식으로 작업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보다 우리의 해석에 의한 남김과 새로움, 차이에 대해 고민한다. 콘크리트 도서관(2020)도 보면, 외형적 특성이었던 가짜 기와지붕이나 벽면의 붉은 타일은 모두 없어졌지만, 새로운 구조가 기존 구조를 강조하고 유지한다. 그 당시 땅을 쓰던 방식과 평면 구성 방식을 남긴 거다. 프로젝트 재해석(2021)에서는 새로운 코어를 붉은 콘크리트로 만들었는데, 건물이 지어진 시간을 구분하고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아카이브 매스(2022)에서는 건물이라면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에 다시 주목했다. 창, 대문, 담장 같은 것이다. 필요에 의해 만든 것들에서 어떤 DNA를 찾아낼까, 혹은 부여할까 고민하는 과정이었다.
허: 확실히 남기고자 하는 것이 재료적 특성은 아닌 것 같다. 1960~1970년대에는 시멘트 벽돌을, 그다음에는 적벽돌이나 벽돌 타일을 사용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쓸 수 있는 자재였기 때문이다. 또 1980년대 건물에서 반원형 평면 구성이 자주 보이는 이유는 당시 반원형 부분이 면적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당시 주로 사용한 재료나 구축 방식, 평면 구성을 지금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당시 어떤 필요에 의해 이러한 것을 만들었는가라는 내러티브야말로 미학적인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 이를 남기려 한다.
여기서 2025 정림학생건축상 주제였던 ‘고고학자와 발명가’라는 표현을 빌려보려 한다. 기존 건물의 내러티브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고고학자의 시선으로 가설을 세운다. 우리나라의 경우 도시 건축에 관한 기록이 잘 남아 있지 않다 보니, 100% 사실이 아닌 가설이다. 정확한 기록은 없어도 위성사진은 있는 경우가 많다. 해당 지역의 위성사진을 보면 5년 단위로 변화가 보인다. ‘이 부분은 왜 지워졌을까?’, ‘구조가 이런 과정을 거쳐서 이렇게 된 거구나’ 하며 이야기를 만든다. 이러한 건축가들의 가설이 많아지면, 서울이 더욱 미학적인 도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의 혼잡한 맥락 속에 여러 가지 미학적 관점이 공존하는 것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등촌동 묵해 리노베이션(2025)
김: 콘크리트 도서관에서 기존 연와조를 콘크리트로 감싸는 적극적 구조 개입을 했고, 프로젝트 재해석에서는 새로운 붉은 콘크리트 코어를 관통시켰다. 반면 등촌동 묵해 리노베이션(이하 등촌동 묵해)에서는 기존 마감을 한 개도 제거하지 않는 최소 개입을 택했다. 개입의 깊이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건물의 상태인가, 예산인가, 아니면 건축가의 의지인가?
허: 기본적으로 리노베이션에서 얼마나 개입할지 혹은 철거를 하고 신축을 할지 판단하는 데 있어서 예산은 아주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당연히 창작자의 의지가 개입의 깊이를 결정한다. 건물의 상태나 예산은 항상 좋지 않았으니 말이다. (웃음)
서: 맞다. 창작자로서의 건축가 입장에서의 좀 더 말을 보태자면, 리노베이션 작업에서 도시적 해석도 중요하지만, 아지트스튜디오는 건축가의 창작물로서 작업을 내놓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 초기작들을 보면, 적은 예산과 악조건에서도 더 치열하게 우리가 생각하는 건축적 의미들을 담았다. 콘크리트 도서관은 습식 공법으로 기초부터 다시 새 구조를 세우는 작업을 하기 위해 정말 고군분투했다. 물론 건축가의 욕망이 앞서, 필요한 개입을 하지 않는다거나, 억지로 과도하게 개입하지는 않는다. 전문가로서 리노베이션 대상에 대해 정확히 진단하는 것은 기본이다. 리노베이션 작업은 매번 항상 기존 건축물에 대한 새로운 관찰과 우리가 건축가로서 시도하고자 하는 것들이 결합된 채 진행된다.
또, 최근에 든 생각은 최소한의 개입 혹은 신중한 개입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있는 반면, 오히려 최대한의 개입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부재하다는 것이다. 기존 건물에 큰 변화를 줘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기준과 태도를 가지고 대응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김: 아지트스튜디오는 스스로 생각하는 건축의 본질이나 작업의 기준을 정해두고 작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아지트스튜디오에게 ‘본질’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허: 건축을 결과보다 과정으로 보며, 구축 방식과 내러티브가 만나는 지점에 주목한다. 건축, 구조, 토목, 설비 같은 것들이 각각 조율되는 과정에서 왜 이 방식을 선택할지에 대한 기준이 형성되고, 이후 작업은 하나의 논리를 따라 빠르게 진행된다. 도면을 그리는 일도 복잡한 선택의 연속이라기보다는, 이미 정리된 논리를 따라가는 과정에 가까워진다. 이때 건축의 본질은 다양한 조건이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되어 더 이상 덜어내거나 추가할 것이 없는 상태, 즉 명확한 이유와 질서를 만드는 데 있다고 본다.
서: 결국 우리가 이 프로젝트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왜 할 것인가라는 의도 설정이 가장 중요하다. 아지트스튜디오는 늘 계획 단계에서 우리의 의도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내부적으로 무엇을 왜 할 것인지 공감대가 형성되고, 그것이 정확해질수록 허근일 소장이 말한 건축, 구조, 기계설비로까지 이어지는 이 모든 복잡한 과정이 건축으로 흡수되면서 굉장히 명확하게 진행된다. 클라이언트든 현장 관계자든 우리 스스로든 항상 자신감 있게 설득할 수 있다. 무엇을 왜 할지가 확실해지면서 건축이라는 방대하고 복잡한 프로세스가 명쾌해지는 경험에 희열을 느낀다.

등촌동 묵해 리노베이션(2025)
등촌동 묵해 리노베이션
김: 한국의 소규모 리노베이션 현장에서는 비허가권 범위 안에서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등촌동에서도 30평 미만, 파사드 미변경이라는 조건으로 대수선 허가 없이 진행했다. 이러한 법규적 조건이 설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자유를 확장하는가, 아니면 제약하는가?
허: 제약은 계획을 발전시키는 데 아주 중요한 조건이 된다. 제약 조건이 자유를 주는 건 아니지만, 건축가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 조건을 정리하는 일이고, 오히려 조건을 확실히 정해두면 이야기를 한 방향으로 잘 집중시킬 수 있기도 해 제약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서: 나의 경우는 조금 다른데, 물론 결정한 범위와 조건 안에서 전략과 에너지를 발휘하려고 하겠고 행정 절차가 없다는 업무상의 편리함이 있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건축적 시도를 더 해볼 수 있거나 가능성을 더 많이 열어두고 접근할 수 있는 범위를 자유롭다고 느끼는 편이다.
김: 등촌동 묵해에서는 기존 마감을 하나도 제거하지 않고, 새로 공사한 부분만 색과 재질로 구분하는 방식을 취했다. 지난 답사에서 등촌동 묵해 건물 주변의 다양한 건물들도 머지않아 리노베이션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러한 건물들을 리노베이션할 때의 건축적 어휘와 조형적 방향성은 어떠해야 한다고 보나?
서: 등촌동 묵해가 위치한 거리는 1970~1980년대에 지어진 나지막한 주택 건물들이 들어서며 조성됐다. 우리가 다루는 기존 건물은 이후 2000년대에 일반 공장식 철골조로 지어진 2세대 건물이고, 우리가 이를 리노베이션하며 3세대 건물이 됐다.
허: 개인적으로 뜯어내지 않은 무언가에 덧칠을 하는 행위가 이상하게 느껴진다. 개념적으로 다른, 바뀐 무언가가 다른 구법으로 새로 붙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스위스 란카테에서 새로운 구법을 사용하거나 색을 다르게 적용해서 새로운 부분을 덧붙인 아주 오래된 건물들을 보며 익숙해진 것 같다. ‘필요는 항상 미학적’이라는 생각이 여기서도 이어진다. 예전에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미학을 건드리지 않고, 우리의 필요에 맞게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미학적이라는 생각이다. 또 내가 이 건물의 볼 장을 다 봐버리지 않고, 지금 필요한 만큼만 고치고 다음을 위해 남겨둔다면, 이런 방식의 패치워크가 4세대 혹은 그 이후까지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등촌동 묵해 리노베이션(2025)
김: 철제 파사드는 어떻게 나온 건가?
허: 건축가로서 무언가 개입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발’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기존 건물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철제 파사드로 건물을 감싸는 방식을 선택했다. 다만 공사비 등의 현실적 이유로 범위를 일부 축소했는데, 이 요소가 전체 내러티브의 핵심이라기보다 조율 가능한 부분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에서 금속 파사드와 계획된 금속가구들은 제작 금속공정인데, 이는 포스코도 있고 현장 용접공이 많은 한국의 맥락이었기에 가능했던 부분이다.
서: 사실 그 파사드에 대해 우리끼리 왈가왈부가 있었다. 기존 건물은 철골조였고, 내부에서 일부러 이를 가리지 않고 드러냈다. 어떤 구조든 구조는 본질에 닿아 있다, 혹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메탈패브릭으로 만든 금속 파사드는 철골 건물의 감각과 물성을 밖으로 끌고 나온다. 기존 아지트스튜디오의 작업들은 습식 구법을 사용한 덩어리를 말하는 구축적 성향이 있고, 때문에 나는 늘 파사드만 따로 만지는 데 불편함이 있었다. 건식 골조로부터 건식 파사드를 만드는 이 프로젝트에서 그 불편함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김: 이전에 인테리어를 하며 사선으로 잘랐던 매스를 다시 복원하는 과정에서 기능적으로도 캐노피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그 필요를 예산 안에서 좀 더 밀고 나간 거라고 해석했다. 소우 후지모토가 무사시노 미술대학 도서관에서 돌아가는 책장을 천장까지 끌어올린 것처럼 말이다. 책장이 필요하긴 했겠지만, 거기까지 필요하진 않았을 거다. (웃음)
허: 어느 건축가든 여러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건축가의 의지가 많이 들어가기도 하고, 힘을 좀 빼는 경우도 있다. 아직 아지트스튜디오는 힘을 뺄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등촌동 묵해 리노베이션(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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