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6년 6월호 (통권 703호)

울산, 건축가, 정웅식
산이 많고 바다와 접한 도시. 한반도에서 연중 가장 온난한 지역 중 하나로 겨울에도 눈을 보기 힘들다. 국내 최초의 공업도시이자 대표적 산업기지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해, 이곳이 농촌과 어촌을 거느린 도농복합시라는 사실, 자연이 풍부하다는 사실을 타지인은 좀처럼 알아채지 못한다. 오늘날 울산은 여느 지방 도시와 다르지 않은 쇠락을 겪고 있다. 여기에 제조업의 부침이 겹치며, 이 도시만의 고유한 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이 떠받쳐온 글로벌 생산기지에서 젊은이들이 떠나고 있다. 한국 사회의 성공에 대한 암묵적 합의와는 다른 중산층 모델―이른바 ‘노동 계급 중산층’―을 제시해온 도시이지만, ‘화이트칼라’를 목표로 교육받은 다음 세대에게 울산은 사무직 일자리가 부족한 곳, 즉 떠나야 할 곳이다.▼1
하지만 이런 대세와는 다른 선택을 했다는 게 우리가 울산에서 나고 자라 건축을 하는 정웅식(온건축사사무소 대표)을 주목하는 주된 이유는 아니다. 이끌어줄 스승도, 내세울 만한 배경도 없다는데, 범상치 않은 세계를 구축하는 그를 길러낸 울산이라는 도시가 궁금해지는 것이다. 모든 영감은 자연에서 찾는다는 그의 말과 건축을 통해, 건축 안으로 들어온 울산의 자연과 도시의 결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되기 때문이다. 건축가가 발붙인 현실은 어디나 녹록지 않으므로, 그의 터전을 미화할 마음도 없지만 폄훼할 생각도 없다. 정웅식을 주인공으로 하는 6월호 프레임에서는 ‘지역성’이라는 거창한 개념 대신, 그가 건축을 빚어내는 도시적 조건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려 했다. 그 조건이란 원경을 만드는 산과 바다, 건축을 조직하기 위해 빌려온 자연의 체계로부터, 그가 다루는 재료와 물성의 산업적 토대, 그리고 그의 손을 빌려 집을 짓는 사람들까지를 아우른다.
이번 프레임에서는 각기 다른 조건에 놓인 네 채의 ‘집’을 살펴본다. 네 곳의 대지는 이 지역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땅의 유형을 고루 대변한다. 5·3·2, 2·3·5는 부산과 울산을 잇는 도시 근교에 자리 잡은 단독주택이다. 일과 삶이 공존하는 업무주택으로, 기능적 공간은 켜를 통해 분화되고 자연을 통해 통합된다. 정웅식은 자연을 매개 삼아 삶과 일을 조화롭게 엮되, 이 여러 겹의 공간이 지역에 여전히 지어지고 있는 아파트를 대신할 수 있는 주거의 대안이라고 한다. 훗날 문학관으로 변모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던 닫힌집,열린집(「SPACE(공간)」 623호 참고)이 그러했듯, 여러 겹으로 구성된 이 집 역시 지금 당장 미술관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유연함을 갖추고 있다.
산을 성절토해서 만든 대규모 택지개발지에 들어선 겹겹집에서는 투박한 물성을 만들어가는 그의 방식을 다시 볼 수 있다. 택지개발 과정에서 훼손된 자연을 복원하고자 심은 싸리나무를 활용한 노출콘크리트는, 논의 흔적을 건축의 체계로 은유할 뿐만 아니라 볏짚째 건축 안에 심어 넣은 논스페이스(「SPACE」 661호 참고)에서 만큼이나 적나라하고 과감하다.
다른 두 채는 이른바 ‘소비되는 집’으로 쇠퇴하는 어촌마을에서 고향을 지키는 이들이 운영하는 스테이다. 호리굴은 어촌마을 내 상업지역에 자리한다. 대부분 비어 있지만 옛 영화를 증명하듯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고만고만한 건물 사이에서, 거리를 향해 작은 정원을 내밀며 서 있다. 시공비를 아끼기 위해 건물에 직접 먹물을 들였다. 동굴과 같은 내부에는 빛과 어둠이 빚어내는 세련된 드라마가 있다.
도로와 만나는 급경사지, 관광지도 아닌 어촌 외곽의 유휴지에 뜬곡이 있다. 생업을 이어온 고향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건축주를 위해, 경제적 활용이 어려운 땅을 역으로 살려 운영전략까지 제안한 건축 기획의 묘가 돋보인다.
울산 건축가 정웅식은 기획, 브랜딩, 가구, 시공, 조경 등 설계 너머의 영역까지 아우르며 울산에서 가능한 건축의 경계를 넓혀가는 중이다. 그는 모든 설계가 ‘왜 그래야만 하는가?’라는 의문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그 의문과 거침없는 실험은 우리의 타성을 슬그머니 넘어선다. 다시 그가 한 뼘 더 넓혀 놓은 경계를 확인할 날을 기다린다.
편집장 김정은
1 양승훈,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 부키, 2024.
「SPACE(공간)」 2026년 6월호 (통권 703호) 목차
004 EDITORIAL
006 NEWS
024 FRAME
조건을 건축으로 만들어가다: 온건축사사무소
026 FRAME: INTERVIEW
조건을 건축으로 만들어가다_ 정웅식 × 김정은, 박지윤
032 FRAME: PROJECT
호리굴
038 FRAME: PROJECT
겹겹집
044 FRAME: PROJECT
뜬곡
050 FRAME: PROJECT
5·3·2, 2·3·5
058 FRAME: CRITIQUE
형상의 전조들_ 손진
064 PROJECT
바이후 파드르 크루스 마켓 홀 ‐ 레두 아키텍츠
074 PROJECT
의성읍 복합역사문화공간 ‐ 이엠에이건축사사무소
084 PROJECT
춘천 반다비 국민체육센터 ‐ 강예린 + 건축사사무소 에스오에이
094 FOCUS
장유주택 ‐ 엠플레이건축
098 FOCUS
묵2동 장미마을 어르신문화센터 ‐ 온디자인건축사사무소
102 REPORT
크리스티안 케레즈의 주차장이 철거되다_ 이희준
110 REPORT
지금 여기, 민주주의: 남영동 대공분실과 민주화운동기념관_ 김성일, 김영철, 정현아 × 방유경
118 EXHIBITION
정원이 된 조각: 가브리엘 오로즈코 정원_ 신명진
126 RELAY INTERVIEW: I AM AN ARCHITECT
일상의 풍경을 설계하는: 임태형_ 임태형 × 김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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