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6년 6월호 (통권 703호)

2025년 6월 문을 연 민주화운동기념관의 정문 입구. 뒤편으로 M2(옛 남영동 대공분실)가 보인다.
인터뷰 김성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학예연구실장, 김영철 민주화운동기념관 개관전 총감독, 정현아 디아건축사사무소 대표 × 방유경 기자
김수근의 설계로 1977년 완공된 남영동 대공분실은 군사독재 시절 국가 폭력의 상흔을 간직한 상징적 장소다. 대공분실 주변으로 전시장 등 부대시설이 새롭게 건립되며 2025년 6월 민주화운동기념관이 개관했다. 외부와 단절됐던 네거티브 헤리티지가 공공의 장소로 전환되는 과정에 참여한 건축가, 전시 기획자, 운영자 세 주체의 목소리를 통해 민주주의를 기념하는 공간의 조성 과정과 역할, 현재적 의미에 대해 살펴보았다.

김수근이 1976년에 설계에 착수해 1977년 완공된 남영동 대공분실은 5층으로 지어졌다가 1983년 7층으로 증축됐다. ‘국제해양연구소’ 등의 위장 상호로 운영됐으나,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밝혀지며 ‘남영동 대공분실’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가혹 행위가 있었던 5층 조사실은 세장한 비례의 창을 설치해 조사자가 뛰어내리거나 도망치지 못하도록 설계됐다. Image courtesy of Korea Democracy Foundation
방유경: 민주화운동기념관을 남영동 대공분실(이하 대공분실) 일대에 조성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고 들었다. 그사이 어떤 일들이 있었나?
김성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하 사업회)는 대한민국의 민주화운동을 국가 차원에서 기념한다는 취지로 2001년 국회에서 제정된 특별법에 의해 설립된 조직이다. ‘민주화운동기념관의 건립 및 운영’이 사업회의 제1목적사업이었기 때문에 조직 구성 직후 기념관 건립을 추진했다. 부지 선정에 난항을 겪으며 15년 넘게 표류하던 사업은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후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면이 전환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제31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에서 옛 대공분실을 민주인권기념관(현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조성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부지가 확정된 것이다.
방유경: 기념관 조성과 운영을 위해 방대한 사전 조사와 공론화 과정을 거쳤다. 전방위적 의견 수렴을 통해 정리된 방향성은 무엇인가?
김성일: 전시, 교육, 네트워크로 설명할 수 있겠다. 전시를 통해 민주화운동의 역사와 국가가 자행했던 반인권적 폭력의 현장을 보여주고, 교육을 통해 민주화운동의 핵심 가치와 정신을 후대에 계승하는 것이 운영의 중요한 두 축이다. 대한민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에서 해방된 나라 가운데 국민의 힘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발전시킨, 거의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에 이러한 역사를 국제적으로 알리는 기능 또한 요구됐다.
남영동 대공분실 관리권과 소유권이 2018년 12월 경찰청에서 행정안전부로 이관되면서 2019년 10월 (가칭)민주인권기념관 건립사업 설계공모가 진행됐다. 남영동 대공분실을 그대로 보존한 채, 전시 공간을 조성하는 설계공모에서 디아건축사사무소(대표 정현아)의 ‘역사를 마주하는 낮은 시선’이 당선됐다. 단면 투시도에서 나타나듯 지하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DIA Architecture
방유경: 부지가 확정된 후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 이어졌나?
김성일: 역사, 건축, 전시, 민주화운동 참여자 등 전문가 토론회와 시민사회단체 100인 공론화 토론회 등을 진행하는 한편, 고문 실태 조사와 시설 기초조사, 관련자 구술사업 등을 진행했다. 2019년에는 기념관 타당성 및 운영계획 수립 연구용역도 진행했다. 이런 내용을 정리해 2019년에 설계공모를 진행하게 된 것이다. 당시 일부 고문 피해자를 비롯한 시민사회에서 대공분실을 원상태 그대로 남겨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해 보존을 결정했다. 가혹 행위를 하는 동안에도 테니스를 치며 즐거워했던 고문 경찰들의 행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자 지상의 테니스장을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어 이를 공모요강에 일부 반영했다.
정현아: 공모 당시 제공된 자료의 양이 방대했다. 대공분실 자료를 비롯해 건립 과정 논의에 참여한 관계자와 시민단체와의 토론, 협의 내용까지 제공됐다. 사실 처음에는 대공분실과 건축가 김수근에 대한 관심으로 참가신청을 했는데, 자료를 살피고 설계를 진행하면서 ‘고문 피해자들이 이곳에서 어떻게 치유되도록 하는가’가 설계자가 해야 할 일임을 깨달았다. 실제로 대공분실 건물 자체는 설계 범위에서 빠져 있었고, 전시 면적을 충분히 확보하면서 테니스장을 어떻게 활용할지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이 공모가 특별한 부분은 월드트레이드센터나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처럼 현장에 세워지는 기념관이라는 점이다. 대공분실이 지닌 엄숙함과 압도감을 넘어설 수 없기에, 이 현장을 통해 기억하려는 것이 무엇이냐에 초점을 맞춰 설계를 시작했다.
방유경: 당선안인 ‘역사를 마주하는 낮은 시선’은 신축되는 신관(현 M1, 교육동)이 대공분실(현 M2)을 마주 보도록 배치되어 있고, 전체 동선이 점진적으로 하강하는 시퀀스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그에 따라 대부분의 전시 공간이 지하에 위치한다.
정현아: 심의나 자문할 때 보면, 고문 피해자를 비롯한 관계자들과 시민단체에서 현장이 훼손되는 것에 굉장히 민감해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없애면 지워진다’라는 방어기제가 강했기 때문에 테니스장뿐 아니라 담장, 철조망, 경비실 등의 존치를 요구했다. 공모에서 제시한 필요 면적을 충족하려면 큰 건물이 들어설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개입을 최소화하는 방향을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레 지하를 떠올리게 됐다. 테니스장의 흔적을 남겨 외부 공간을 만들고, 그 거리만큼 이격해 ‘과거와 현재가 서로 마주보고 대화한다’는 개념을 제안했다. 또한 전시 공간인 만큼 높은 층고의 대공간이 필요했기에, 부지 전체를 순환하는 전시 동선을 구성하고, 그 마지막에 대공간인 지하 중앙홀에 이르게 했다. 무엇보다 기찻길과 건물로 막혀 폐쇄적인 이곳이 공원처럼 도시 속의 좋은 공공 공간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방유경: 개관전 총감독을 맡은 김영철은 설계공모가 끝나고 전시 기본계획이 수립된 이후 합류했다. 전시, 미디어, 홍보를 총체적으로 지휘하며 어려움은 없었나?
김영철: 전시의 주요 내용과 건축 공간이 확정된 상황이었기에 이를 파악해 콘텐츠화하는 데 집중했다. 무엇보다 대공분실이 지닌 힘이 강력하기 때문에 건물을 잘 보존하고 이곳을 어떻게 경험하도록 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췄다. 그래서 전시 기본계획에 없었던 ‘사운드스케이프’ 개념을 제안했다. 전시 공간을 소리로 디자인하겠다는 의도였다.

교육동에서 바라본 민주화운동기념관 전경. 주변 일대가 개발되면서 고층 건물에 둘러싸인 상황이다. 과거의 공간과 현재의 공간이 구분되도록 재료의 질감과 색을 달리했다.
방유경: 전시의 매체로 소리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김영철: 사업회의 소장 사료 약 90만 건 중 대부분이 편지나 서류, 사진 같은 지류였다. 이러한 콘텐츠로는 대중들의 시선을 오래 잡아두기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민주화운동은 시각적 콘텐츠 못지않게 운동권의 노래나 구호와 같은 청각적 콘텐츠가 중요하다. 어두운 조사실 안에서 피해자들이 느꼈던 공포의 실체 또한 소리였다. 소리를 매개로 대공분실을 현장감 있게 체험하도록 건물 전체에 204개 스피커를 설치했다. 총격 소리, 시위대 소리, 진압 당시 충격음 같은 소리가 위층에서부터 충돌하면서 건물 전체를 울릴 수 있는 입체 음향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방유경: 대공분실의 경우 고문 행위와 현장을 보여주는 방식에도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김영철: 기획 초기부터 여러 전문가들을 만나 전시 콘텐츠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 “고문은 묘사해서도 안 되고 묘사할 수도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라 고문 행위나 상황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 방향으로 기획했다. 하지만 일부 피해자들은 가혹했던 고문 장면을 그대로 전달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전시 공간이 실제 사건이 벌어진 현장인 만큼, 폭력의 자극적 재현보다는 피해자의 감각과 국가 폭력의 구조를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방유경: 대공분실과 달리 신관 전시에서는 또 다른 전략이 필요했을 것 같다. 무엇을 어떻게 보여주고자 했나?
김영철: 전시는 크게 네 가지 영역, 즉 민주화운동이라는 특정 사건에서 출발해 국가 폭력, 민주·인권 과제, 세계의 민주·인권 네트워크로 점차 범위가 넓어지며 교차되도록 구성된다. 최근 국내외 박물관 전시가 공감각적 경험을 중시하고 참여형 전시와 프로그램 쪽으로 다양화되고 있는 만큼, 신관 전시는 건축가의 의도를 고려해 중앙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했다. 이에 벽에 작품을 거는 방식이 아니라 콘텐츠가 가운데로 모이는 풍경을 상상하며 미디어월을 벽에 설치하고 가운데 공간을 비워두었다.
정현아: 나 역시 신관에서는 인터랙티브한 전시를 상상하고 설계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전시라면 사람들이 수동적으로 관람하는 게 아니라 관람객이 전시에 스스로 참여하고 함께 상호작용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를 반영해 지하의 중앙홀은 전시물(또는 무대)과 관람객의 구분이 없게 만드는 것이 초기 개념이었다. 그래서 중앙홀에서는 미디어가 벽이 아닌 바닥이나 관람자를 비추는 것을 기대했는데, 실제로는 벽면에 미디어월이 설치되고 중앙은 가변적 공간으로 남았다.
김영철: 기획 초기에는 중앙홀과 벽면 전체에 영상을 투사하고 가운데 부분에 가변형 무대를 계획했다. 하지만 전시실 바닥이 벽돌로 마감되어 있어 이를 구현하기가 쉽지 않았다. 예산 문제로 무대 설치도 하지 못하게 되면서 아쉬운 대로 중앙홀을 받치고 있는 기둥에 공연용 조명을 설치했다. 민주화운동 현장이 공연처럼 활동성을 띠기 때문에, 이러한 인프라를 잘 활용한다면 뮤지컬이나 연극 같은 형태의 퍼포먼스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지하 1~2층에 걸쳐 있는 M1의 중앙홀이 비워져 있는 모습. M1에서는 미디어월로 구현된 상설전과 특별전이 함께 진행된다. ©Bang Yukyung

M1 지하 1층 미디어월 앞에서 진행된 특별 도슨트 프로그램. Image courtesy of Korea Democracy Foundation
방유경: 특별 도슨트 프로그램이 여기에 적합한 사례인 것 같다.
김성일: 무용을 전공한 퍼포머들이 상설전의 내용을 몸으로 표현하는 공연 형식의 프로그램을 개관 후 1년 동안 선보였다. 신관 지하 1층 미디어월 앞에서 진행됐는데, 특별 도슨트가 시작되면 패널별로 나뉘어 있던 기존의 전시 화면은 꺼지고 민주화운동 역사를 다룬 하나의 화면으로 전환된다.
정현아: 연극과 무용이 합쳐진 형식의 공연이라 신선했다. 개인적으로 지금의 미디어월 앞은 공연하기에 비좁은 느낌이 있다. 중앙홀이나 전시실 입구의 큰 계단, 혹은 현재 관람 동선에서 소외되어 있는 ‘치유의 길’처럼 장소를 옮겨 진행하면 색다른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영철: 전시를 준비하면서 ‘무대와 관객이 격리되면 안 된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공연 상황을 제어할 수 있는 훈련된 퍼포머를 통해 관객이 가만히 앉아 지켜보는 게 아니라 개입하고 참여할 수 있는 방식도 도전해볼 수 있다. 이런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개발해 시도한다면 공간의 취지에도 어울리는 공연이 되지 않을까 싶다.
방유경: 개관 후 1년이 지났다. 사용자이자 운영자로서 느낀 변화나 어려움이 있다면 무엇인가?
김성일: 2024년 12·3비상계엄을 겪었던 관람객들이 관찰자가 아닌 당사자의 시선으로 이곳을 경험한다는 점에서 현격한 차이를 느낀다. 최근 교육부에서도 민주화운동 역사교육을 강화하고 있는데, 국내에서 관련 자료를 가장 체계적으로 정리한 곳이 우리 사업회이다 보니 뿌듯함과 부담감을 함께 느끼고 있다. 그럼에도 관람객의 70~80%가 대공분실의 강렬하고 엄숙한 경험 때문에 상대적으로 신관 전시나 프로그램에 그다지 감흥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는 문제로 고민이 깊다. 고문 행위를 보여주는 붉은 타일방 전시실, 박종철 학생이나 김근태 민청련 의장 등 여러 민주화운동가들이 취조를 받았던 조사실을 보고 나면 관람객들의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역사의 고통과 상처만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품고 환하게 돌아갔으면 하는데, 두 전시 공간 사이에서 단절된 심리적 간극을 전시와 교육을 통해 연결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현재 가장 큰 숙제다.
정현아: 교육 공간에 대한 니즈가 설계 과정에 전달되지 않은 것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현재 교육 프로그램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김성일: 초등학생의 현장학습을 비롯해 중·고등학생 대상의 진로체험 교육, 가족 단위 프로그램, 일반인 대상 강좌 등을 실시하고 있다. 최근 장애인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는데 모형을 만지게 하거나 수화로 진행해 참여자들의 호응이 높은 편이다.
김영철: 그런 프로그램도 중요하지만 이곳에서는 과거가 아닌 현재 이슈를 논의하는 것을 제안하고 싶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국-이란 전쟁처럼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석학들을 초대해 강연이나 토론을 열게 되면 전시 못지않은 임팩트와 파급효과가 있을 것이다.

남영동 대공분실 내부의 원형 계단을 통해 조사자들은 건물 뒤편의 부출입구에서 5층 조사실까지 이동했다. 몇 층에 있는지 인식할 수 없도록 원형으로 설계됐다.

5층 조사실 복도. 문을 열어도 맞은편 조사실이 보이지 않게 입구를 엇갈리게 배치했다.
방유경: 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유일한 국립 시설로, 특정 시점의 사건만이 아니라 민주화운동 역사 전체를 연구하고 전시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느꼈다. 현재 민주화운동 아카이브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
김성일: 1960년 4·19혁명부터 1987년 6·10민주항쟁까지의 사료를 모아 아카이빙하고 있다. 헌법 개정을 통해 대통령직선제가 부활한 1987년을 기준으로 ‘민주화가 제도적으로 정착’되었다고 보기 때문에, 이후 관련 자료를 부분적으로 수집하고는 있지만 전면화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현 정부에서 12·3내란 극복을 위한 시민운동 자료들의 수집 연구 등을 요청한 것을 계기로, 1987년 이후의 시민운동을 연구해 종합적인 분류 기준도 세울 예정이다. 최장집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라는 책 제목처럼 민주화운동이 인권 운동, 성평등 운동, 환경 운동, 장애철폐 운동 등 다양한 기본권 확장 운동으로 분화된 만큼, 이러한 내용을 모두 포괄한 확장성을 갖게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김영철: 지금 설명한 시간적 개념이 현재 전시에도 그대로 적용돼 있다. 신관의 상설전 역시 1960년부터 1987년까지 반독재 투쟁만을 다루고 있고, 1993년 문민정부 수립 이후 기록은 전시 내용에 포함되지 않았다. 전시에서는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민주화로 표현하고 있지만, 민주화는 끝났다고 보더라도 민주주의는 아직 끝나지 않은 현재진행형이지 않나. 이러한 내용을 전시, 교육 등 콘텐츠로 확장해 현재성을 가져가야 한다.
정현아: 그런 의미에서 설계공모 당시 명칭이었던 ‘민주인권기념관’이 ‘민주화운동기념관’보다 더 현재적이고 확장성을 가지는 것 같다. 사업회의 법적 근거를 따르라는 국정감사 지적에 의해 변경된 상황이지만, 현재와 미래 시점까지 품을 수 있도록 이전 명칭을 되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
김성일: 지금 이야기한 주제들을 우리 역시 숙제로 느끼고 있다. 사업회의 목표가 민주화운동을 일상의 민주주의로 어떻게 확장시켜 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민주화운동을 이끈 사람들이 대단히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타인의 아픔을 보고 외면할 수 없었던 마음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이지 않았나.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왜 도청에 남았느냐”는 질문에 “그래야 할 것 같았다”라고 답했던 마음처럼 말이다. 일상의 민주주의 역시 자신을 잘 돌아보고 주변을 살피는 마음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깨닫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김영철: 지금은 형식적, 제도적으로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지만 역으로 우리는 굉장히 통제된 일상을 살고 있다. 그럴수록 개개인의 자율적 판단이 중요해질 것이다. 예상컨대 앞으로 1960~1980년대와 같은 드라마틱한 민주화운동은 다시 없을 거라고 본다. 그럼에도 12·3내란을 계기로 사회적 인식에도 변화가 생겼듯, 자율성에 기반한 민주주의의 이념을 전달할 수 있는 콘텐츠를 개발해나가야 할 것이다.
방유경: 민주화운동기념관의 미래적 의미도 찾아나가야 하는 단계에 와 있는 것 같다. 끝으로 각자 소회를 듣고 싶다.
정현아: 리조트나 호텔 같은 휴양시설을 설계하면 좋은 상상을 계속하기 때문에 마음도 기쁘고 편안한데, 이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끝까지 설계하면서 마음이 계속 무거웠다. 이 공간으로 오래 심적 고통을 받아온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와 지지를 건넬 수 있기를 바란다. 더불어 고층 건물이 들어서며 풍경이 변화하고 있는 용산 일대에서, 시민들이 편하게 찾는 도심 속 공원의 역할을 하는 공공 장소로 활성화되면 좋겠다.
김영철: 과거 민주화운동의 기억뿐 아니라 동시대와 호흡하며 다양한 사건과 이벤트가 벌어지는 다채로운 공간이 되어야 한다. 기념관 안에 숨어 있는 기능이 굉장히 많은데, 이를 차근차근 발견해가면서 시민들과 호흡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김성일: 대화를 나누며 초심으로 돌아가 기념관을 기획했던 과정, 우리가 하는 일의 가치와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시민들이 이곳에서 아픔만이 아니라 사색하고 치유를 경험하기 위한 방법을 더 적극적으로 찾아나갈 생각이다. 의미 있는 고민거리를 안겨준 세 분께 감사드린다.

M1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대형 계단에서 바라본 M2. 현재 5층까지만 전시장으로 사용하고 있고 6~7층은 사무실로 사용 중이다.

M2 정면에서 바라본 교육동과 M1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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