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모습.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광수, 이장환, 서윤지, 최종인.
한국 중소도시에 대한 건축 담론은 중소도시포럼(「SPACE(공간)」 675호 참고) 이전에 서울건축학교(이하 sa)의 여름 워크숍이 있었다. 현재 당면한 과제를 풀어 나가기에 앞서 과거에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덧 사반세기가 지난 sa 여름 워크숍을 돌아보기 위해 sa의 초기부터 끝까지 튜터로 함께한 건축가 세 분과 차례로 대담을 가졌다. 과거와 지금 중소도시의 패러다임은 어떻게 다른가? 당시 건축가의 시선은 어디를 향해 있었나? sa와 여름 워크숍은 역사 속에 어떤 의미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다양한 물음에 대한 이들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인터뷰 김광수 스튜디오 케이웍스 대표 × 이장환 중소도시포럼 공동대표, 어반오퍼레이션즈 대표, 19기 SPACE 학생기자 최종인, 어주희, 서윤지
PART 1. sa와 여름 워크숍
학생기자: 선생님께서는 sa와 여름 워크숍의 비교적 초기부터 함께 하셨다고 알고 있는데, 참여하시게 된 구체적인 계기가 궁금하다.
김광수: sa의 설립 자체는 내가 유학하던 시기에, 4.3그룹 멤버들 중 일부 건축가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sa의 초기 상황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내가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된 시기는 한국으로 돌아와서 독립적인 작업을 시작하던 1997년 즈음이었던 것 같다. 내 개인 작업이 잡지에 게재가 된 이후, sa 측에서 강의를 한 번 해 달라고 연락이 왔었다. 그게 sa와의 첫 인연이었고, 그 이후로 시간이 좀 지나서 sa 및 여름 워크숍의 튜터 제의가 들어왔다. sa의 튜터를 맡게 되면서 이장환 선생을 학생으로 만났던 것도 기억이 난다.
그중에서 여름 워크숍에 대한 기억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다. 선정된 도시에 내려가서 일주일 정도 숙박을 하면서 학생들과 작업하고, 다른 건축가들과 교류하기도 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다. 특히 순천 워크숍 때는 전체 코디네이터를 맡게 되면서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소중한 추억들을 얻었고, 한국 중소도시의 실정에 대해서도 현장감 있게 많이 배우게 됐다.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그 동안의 내 작업들은 대체로 서울이 아닌 중소도시에서 이루어지는 프로젝트로 진행됐던 것 같다.
학생기자: sa는 당시의 주된 건축 교육과는 차별화된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앞선 두 차례의 인터뷰에서도 sa가 기존 건축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다른 방식을 시도해봤다는 답변을 들었다. 선생님께서는 그때 sa가 추구했던 교육 목표가 그 당시, 혹은 지금의 건축 교육 방식과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듣고 싶다.
김광수: 건축 교육 방식에 있어서 차별화는 확실히 있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는 건축 교육뿐만 아니라 건축, 그리고 한국 사회 자체에 대해서도 상당히 많은 담론들이 오가던 특별한 시기였다. 돌이켜 보면 한국의 벨 에포크 시기와 같았다고 할까. 특히 문화에 대한 개념들이 중요하게 대두되었었고, 건축 교육 또한 그러한 시대적 상황의 영향을 받았다. 이전의 건축은 공학 교육의 영역에 있었는데, 사회 전반 혹은 문화 현상으로써 건축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들이 많이 생겨났다. 특히 4.3그룹의 건축가들이 공학적인 측면이 아니라 보다 인문학적 측면에서 건축 교육에 접근해야 한다는 태도를 지녔던 것 같다.
이렇게 건축계 내에서 모색했던 대안 교육의 방향성에 있어 독일의 바우하우스, 영국의 AA 스쿨 같은 사례가 롤모델이 되지 않았나 싶다. 기존의 설계 수업은 교수님 얼굴 뵐 일도 거의 없었고, 수업을 대학원생 조교가 진행하는 데다 개인 작업 공간도 없는 등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이뤄지곤 했었다. 한국의 현실 내에서 이러한 교육 환경을 개선해보고자 하는 자발적인 움직임이 있었고 그 중에 하나가 sa였다고 본다. 그 외에 민족건축인협의회 같은 곳에서도 스튜디오 방식의 워크숍들을 진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건축 교육관이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경기대학교를 비롯한 건축전문대학원의 설립, 그리고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와 건축학과 5년제 도입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이장환: 선생님께서는 조성룡, 민현식, 정기용, 김인철, 승효상, 이종호, 김영준 등 윗 세대 건축가들과 달리 sa뿐만 아니라 경기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에서도 가르친 경험이 있다. 도시에 대한 관심이 주를 이뤘던 전자와는 달리, 후자는 미국 동부의 영향을 받아 건축의 형식 언어 등에 건축 교육의 중점을 두었던 것 같다. 두 곳 모두에서 가르친 입장에서 그 차이점에 대해 말한다면?
김광수: sa는 도시에 대한 관심도 많았지만, 한국성에 대해서도 많은 논의를 하는 곳이었다고 본다. 특히 김봉렬 선생님께서 여기에 큰 역할을 하셨는데, 여름 워크숍 때도 하루 정도는 김봉렬 선생님 주도로 대상 지역의 전통 건축 답사를 했다. 말하자면 sa는 도시와 더불어 한국성, 전통을 항상 같이 이야기하는 태도를 견지했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경기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은 건축 이론, 내지는 건축 철학과 같은 측면의 담론들을 주로 다뤘다. 그래서 당시 미국에서 성행하던 해체주의 같은 것에 많은 관심을 보였고, 디지털 건축 작업을 진행하는 등 여러모로 sa와는 대비되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이장환: 선생님께서는 당시 sa의 튜터들 중 상당히 젊은 축에 속했다. 내 입장에서는 세대가 분명하게 구분되는 느낌이 들었다. 조성룡, 민현식, 김인철, 승효상, 이종호의 아래 세대인 김영준, 최욱, 최문규, 김승회, 서혜림, 김헌과도 다른 세대 같았다. 세대 차가 커서 건축과 교육에 대한 가치관에서도 선배 세대와 다른 부분이 있었을 것 같은데, 그 부분이 궁금하다.
김광수: 미국 유학 당시 뉴욕이라는 대도시를 경험해 보니 한국, 특히 서울이 너무나 특이한 곳이었음을 깨닫게 됐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가면 서울에 대해서 공부를 좀 더 해봐야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특히 그때는 렘 콜하스의 『정신착란증의 뉴욕』과 같은, 건축의 정신분석학적 측면이 많이 이야기되던 시기였는데, 그런 도시의 병리적 차원을 조사하면서 한국이 더 흥미로워졌던 것도 있는 듯싶다. 귀국 이후에는 조민석 선배와 같이 ‘서울 리서치 그룹’이라는 것을 만들어 서울과 수도권의 대도시화 현상들, 그리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일으키는 심리적, 정신적 변화에 대해 탐구했다. 이러한 부분이 선배 세대와는 다른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준 것 같다. 선배 건축가들은 대부분 그런 대도시화, 상업 공간화에 대해 무척 부정적인 입장이셨다. 그런 것과 대비되는 품격 있는 건축, 또 품격 있는 도시를 만들어야 된다는 지향점이 강했다. 나 또한 그런 대도시화 현상을 마냥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가 있을 터인데 그게 무엇인지 알고 싶었고, 또 그런 것들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과 자양분이 분명 있을 것이라고도 믿었다. 렘 콜하스가 이를 ‘혼잡 이론’이라고 부르며 나름대로 이론화한 것처럼, 나한테도 비슷한 태도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여름 워크숍 때도 중소도시의 변화들에 대해 주로 그런 측면으로 바라봤던 것 같고, 대도시화와 상업화를 부정하며 이를 도외시하고 회고적으로 가는 태도에 대해서는 특히 경계했었다.
학생기자: sa 정규 프로그램과 별도로 진행됐던 여름 워크숍은 어떤 방식으로 운영됐는지 궁금하다. 튜터의 선정과 스튜디오 구성, 그리고 튜터와 학생들 간의 상호작용 등을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김광수: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지금의 건축 대학과 비했을 때, sa 여름 워크숍이 훨씬 귀한 교육 방식이었지 않나 싶다. 학생만 배우는 자리가 아니라, 선생들도 정말 많이 배우는 자리였고, 또 학생과 선생 사이의 상호작용이 왕성하게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이었다. 튜터의 구성은 처음에는 어느 정도 연배가 되시는 분들로 이뤄졌고, 그 이후에 일명 ‘유학 1세대’로 불리는 사람들이 대거 참여하게 됐던 것 같다. 나를 포함해서 서혜림, 최문규, 임재용, 최욱, 김헌 같은 분들이 대표적이다. 학생 모집의 경우 공고를 통해서 했는데, 이 학생들도 기존의 학교에서 느꼈던 갈증이 많았기 때문인지 무척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프로그램 자체는 일주일 숙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1년 단위로 진행됐는데, 3월 즈음에 학생들을 모집해서 튜터별로 분배하고 서울에서 만나며 계속 대상지를 리서치하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한 뒤에 현장으로 가서 일주일간을 머무르며 작업을 하고, 그 이후 시상식과 전시, 도록 제작까지 마치면 12월 즈음이었다. 이 모든 것이 실무 건축가들과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졌다는 것이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그만큼 학생들이 이 활동에 거는 기대가 컸고, 얻어가는 것도 많았으리라 생각한다. 이렇게 1년을 같이 소통해가는 튜터와 학생의 관계는 프로그램이 끝난 이후에도 계속 갔던 것 같다. 그때 열심히 했던 학생들이 지금은 또 다 훌륭한 건축가들이 되어 있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학생기자: 여러 차례 진행된 sa 여름 워크숍을 하나의 일관된 흐름으로 파악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김광수: sa 여름워크숍은 주로 지방의 중소도시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물론 부산이나 서울의 경우도 있었지만 말이다. 2006년에 순천 워크숍에서도 내가 주제로 삼았던 것은 ‘원도심 쇠락’이었다. 당시에 윤웅원 건축가와 같이 스튜디오를 진행했었는데 제목이 ‘빈집 프로젝트’였다. 순천 원도심은 빈집들이 많은 것과 더불어 성곽이 없어진 뒤 남은 성곽길이 존재하는데 그 점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원도심 자체가 하나의 자산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를 순천만과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가 관건이었다. 당시는 순천뿐만 아니라 여러 중소도시에서 신시가지 개발 열풍이 불 때였고, 신시가지로의 인구 집중이 심화되면서 원도심에는 이미 빈집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던 상황이었다. 이렇게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던 원도심에 대해 최초로 이야기한 것이 바로 sa의 건축가들이다. 이들이 그런 토목 중심의 개발 논리에 저항하던 입장이었음을 생각하면, 방치되고 있는 원도심이나 농촌 지역에 관심을 두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sa 여름 워크숍의 일관된 흐름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쇠락해 가는 원도심, 그리고 시간이 누적된 영역을 찾아서 그것을 '생활 근거지'로서 어떻게 살릴 수 있는지 고민하는 작업이었다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장환: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는 대부분의 중소도시에서 신시가지가 조성된 시기다. 순천 워크숍(2006년)보다 앞선 양구 워크숍(2001년)에서 건축가들이 토론한 기록을 보면, 신시가지 개발과 구도심의 관계에 대한 내용이 있다. 많은 중소도시에서 유사한 현상이 일어나다 보니,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건축가들이 오히려 구도심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고 보는 것은 너무 편협한 시각인가? 혹은 좀 더 넓은 관점에서 한국성에 대한 관심으로 보는 게 맞나?
김광수: 둘 다인 것 같다. 일단 4.3그룹 연배의 건축가분들이 자주 쓰는 단어 중의 하나가 ‘땅’이다. 땅의 내력이 그 분들에게 큰 관심이었고, 신시가지는 내력 없고 특질 없는 도시라고 생각한 측면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신시가지는 많은 건축가들에게 관심 밖의 대상이기도 했고, 디벨로퍼나 토호들이 장악하고 있는 영역이었기 때문에, 원도심이 뭔가 개입할 여지가 더 많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무엇 보다 오랜 세월 이어지던 생활 근거지로서의 원도심 그리고 그로부터 형성된 지역성과 역사성 혹은 한국성 등이 사라져가는 상황에 대한 심각한 우려가 원도심에 더욱 많은 관심을 갖게 한 것 같다.
PART 2. 김광수 개인의 생각에 관해서
학생기자: 선생님께서 중소도시에 가졌던 개인적인 생각이 궁금하다.
김광수: 사실 나는 구도심 못지 않게 신도심에 관심이 많았다. 지방 도시에 가면 신시가지의 생활 양식을 무척 많이 살펴봤다. 지방의 아파트 단지가 아무리 수도권 아파트와 동일화된 양식이라 해도 뜯어보면 구체적 라이프스타일이 꽤나 다르다. 길거리에서 고추도 말리고 한다. 그리고 신도심 주민 중에는 원도심에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많다. 두집살이 하는 사람들도 있고. 이런 식의 다른 점들이 무척 흥미로웠다. 원도심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신도시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원도심만 봐서는 해결이 안된다는 걸 많이 느꼈다. 그리고 어느 지역의 쇠락에 대해서 알려면 상업시설을 많이 봐야 한다. 옆 도시에 대형마트가 생기면 거대한 블랙홀 같은 것들이 생긴다. 원도심에 있는 상업 가로가 망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상업시설이나 신도시의 라이프스타일을 함께 보지 않으면 원도심에 대한 해법도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신도시에 관심이 많았던 것이다.
학생기자: sa 여름 워크숍의 포스터를 보면 제목에 ‘한국성’이라는 단어들이 많이 보인다. sa에서 지역성이나 한국성이라는 개념을 어떤 관점으로 다루었는지,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당시 진행하셨던 스튜디오에서 이런 개념들을 어떻게 반영했는지 궁금하다.
김광수: 광범위한 이야기다. 일단 1990년대 당시 여러 담론들이 있었다. 그때 한국에 주요하게 등장했던 담론 중 하나가 케네스 프램튼의 ‘비판적 지역주의’다. 특히 sa 건축가들은 그 이론을 흥미롭게 보았다. 또 하나가 가스통 바슐라르의 『공간의 시학』과 같은 접근이다. 이러한 공간시학적, 현상학적 접근은 특히 우리나라에서 광범위하게 호소력을 가졌던 것 같고 지금도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같다. 비록 지금은 비판성이 소거된 실정이지만 말이다. 나로서는 사실 시학이나 현상학이라는 것이 한국 사회에서는 서정시적 형태에 국한해서 등장하는 것이 무척 의아하기도 했다. 여튼 당시는 혹은 지금도 이러한 지역주의와 서정시학적 접근이 한국성이라는 것의 기저에 놓여있는 것 같았다. 사실 우리만의 자체 담론으로 무얼 만든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1990년대는 이미 서구화가 대단히 진행된 상태이고, 해외 담론들을 수입하는 데 급급한 시기였다. 한쪽에서는 해체주의를 수입하고, 한쪽에서는 비판적 지역주의를 수입하고 있던 실정이었다. 우리만의 유구한 전통 속에 있어 왔던 담론 자체는 와해되어 버린 상황에서, 자체 담론의 필요성을 느꼈었던 시기이고, 그래서 4.3그룹은 한국적 전통의 모더니즘적 수용이라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이것을 지역적으로 변환하려고 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더 아래 세대로서 당시 광법위하게 진행되던 대중문화의 기호론적, 욕망이론적 측면과 신도시의 라이프스타일에도 한국적 성격이 용해되는 것에 관심이 많이 있었기에 신도시를 항상 보며 원도심을 재 정향한다거나 하는 태도를 취했다고 볼 수 있다.
학생기자: 여담이지만, sa 여름 워크숍에 참여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스튜디오 혹은 에피소드가 있는가?
김광수: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순천 워크숍이다. 최소한의 개입을 해서 최대한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상황을 고려하면서 새로 오는 사람들을 어떻게 끌어들일 수 있는가. 이런 고민들이 한참 뒤 한국에서 도시재생이 이슈가 되었을 때에 많은 도움이 됐다. 내가 작업했던 광주시민회관 리모델링이나 철원 DMZ철새평화타운, 부천아트벙커 B39 같은 것들 이 모두 그 시기의 고민을 거쳐 차후 나오게 된 건축적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학생기자: sa 튜터로 여러 번 참여하며 얻은 경험들이 지금 선생님의 건축관이나 개인적인 가치관에 영향을 미친 게 있는지 궁금하다.
김광수: 무척 많은 공부가 됐고, 한국 사회의 실정을 아는 데 있어서 더없이 좋은 시간이었다. 책을 통해 얻는 경험은 손에 잘 잡히지 않지만, 실질적인 현장의 경험을 많이 하면서 ‘생각의 실정성’을 얻었다. 그러면서 건축의 공공성에 관심이 많아졌었고, 그래서 공공 프로젝트를 많이 하게 된 것 같다. 대지를 보면 땅을 이해하고, 땅이 어떤 맥락에 있는지를 좀 더 실정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대체적으로 공공 프로젝트라 하면 제한이 많아 좋은 프로젝트를 하기 힘들다고 한다. 나 같은 경우는 맥락에 대한 감각이 생겼다. 제한이 많은 상황에서도 좋은 프로젝트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자심감이 생긴 것도 같다.
이장환: 그 당시 워크숍 결과물을 살펴보면 선생님 스튜디오는 최종적으로 건물 형태와 관련된 결과물을 도출해야 한다는 강박보다는 리서치 단계에 많은 비중을 두는 태도를 보였던 것 같다. 그때는 도시 현상을 분석하고 원인을 파고드는 연구에 몰두했다면, 지금은 건축가로서 건물을 짓는 데 몰두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사이에 어떤 접점이 있는지 궁금하다.
김광수: 접점이 분명 있는데 어느 부분에 있는지 정말 잘 모르겠다. 리서치를 통해 건축적인 결과물을 인과적으로 혹은 유사과학적으로 도출하는 경우들을 많이 보기도 했고 한 때 유행이기도 했었는데, 나는 이러한 접근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이 태도로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을 별로 보지 못하기도 했다. 인과적 사고가 이미 구체성들을 추상화시키고 인과성 속에 묶어 버리기 때문에 더욱 편협해지고 뻔해지기도 하는 것 같았다. 혹은 리서치가 결과물을 합리화하기 위한 도구로 쓰이는 모습도 많이 보였다. 리서치와 건축설계 사이에는 인식론적 단절과 도약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도약의 결과물은 그 이전의 리서치들을 명쾌하게 설명하지도 못하고, 리서치의 과정들이 그 도약한 결과물들을 명쾌하게 인과관계로 만들어 주지도 않는다. 이 점을 인정하는 게 사실 건축설계에 더욱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워크숍을 할 때는 그 짧은 시간에 애써 리서치의 서사를 동원해 결과물을 만들려고 힘쓰기 보다 그냥 리서치 자체에 더욱 몰두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건축설계 작업을 더욱 하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도 리서치들은 여전히 나의 작업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본다. 건축물이 들어서는 도시의 상황을 이해하는 감이 많이 좋아진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앞서 말한 태도가 리서치의 결과물을 독해하는 방법에 더욱 유연함을 주기 때문인것도 같다. 나는 건축설계를 할 때 리서치를 했더라도 일부러 리서치를 안 한 것처럼 시작하기도 한다.
이장환: 그렇다면 리서치를 아예 하지 않고 바로 건축설계를 하는 것과, 선생님처럼 리서치를 설계와 분리한 후 건축 작업을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나?
김광수: 앞서 말한 것은 리서치를 아예 안 한다라는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처럼' 분리한다는 이야기인데, 선형 인과성으로는 좋은 결과가 안 나오기 때문에 그런 것이고 두 사이의 단절 속에서 마치 유레카 포인트 같은 예기치 않았던 좋은 해법이 나오는 가능성이 크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리서치를 아예 하지 않는다면 그런 유레카 포인트도 없을 것이라고 본다.
이장환: 앞선 답변에서 ‘리서치가 유행이었다는 점과 합리화하기 위한 논리로 이용됐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 당시 리서치는 어떻게 형식화되었나?
김광수: 도시 리서치야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데이터를 기반으로 건축적 결과물에 이르기까지 연속적으로 일련의 서사를 만드는 방식은 MVRDV 같은 네덜란드 건축가들의 영향이 컸다고 본다. 당시 '데이터스케이프'라는 키워드도 나오고 했으니까. 데이터가 지배해 가는 사회이니 나 역시 이들의 접근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 데이터만으로는 추론하지 못하는 그 작업들의 '도약'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게 유사과학적으로 유행이 되다 보니 마치 선형 논리적으로 데이터가 자연스럽게 프로그램과 형태를 도출한다는 식으로 수많은 다이어그램의 나열을 통해 자기 결과물의 합리적 근거를 제시하는 모습이 종종 있었다. 이는 특히 사업 획 단계에서 건축적 예시로서 많이 보여지기도 했다.
이장환: 리서치와 관련해서 더 묻고 싶다. 시대가 변화하면 건축가는 바뀐 시대상을 읽어야 하는 때가 다시 도래하는 것 아닐까? 그래서 리서치가 건축사에서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것이 아닐까? 이를 한때의 유행으로 바라봐야 할 문제일까? 선생님의 생각이 궁금하다.
김광수: 앞서 말했지만 나는 리서치 자체를 문제시하는 것이 아니고 리서치와 건축설계 간의 관계, 태도를 문제시했던 것이다. 나 또한 시대가 바뀌는 것에 많은 관심이 있고 예의 주시하고 있다. 그에 따라 리서치의 관점과 방법론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인구 감소 시대임에도 여전한 성장 중심의 태도가 달라져야 할 것이고 실재와 무관한 디지털 이미지의 압도적인 우위에서 이루어지는 도시건축적 맥락의 변화 등 새롭게 주목하고 이해되어야 하는 부분이 많다.

PART 3. sa 이후의 상황에 관해서
이장환: sa워크숍 이후 나타난 흥미로운 현상은 건축가들이 기획과 컨설팅 쪽으로 나가는 경향이 생긴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때의 기획과 컨설팅은 지역성과 투어리즘이 결합되면서 본래 건축가들이 지역성에 대해 가졌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김광수: 나는 지금이 과거의 가치가 전도된 시대라고 생각한다. 지역성이 옛날에 좋은 가치였다고 해서 지금도 좋은 가치일 수는 없다. 오히려 좋은 가치를 떠나서 나쁜 가치까지 되는 상황. 가치의 전도를 많이 느꼈다. 지역성이라는 담론을 발판으로 지역은 이제 지나치게 투어리즘화되고 상업화되었다. 뿐만 아니라 지역 토착화되었고 이 경향은 더욱 심화되는 것 같다.
학생기자: 여름 워크숍에서 논의됐던 중소도시 담론들이 실제 중소도시의 현실에 영향을 끼쳤는지 궁금하다. 건축, 사회, 문화적 측면에서 sa 여름 워크숍이 어떤 성과를 거뒀는가?
김광수: 실제 영향을 많이 끼친 곳도 있고 아닌 곳도 있는 것 같다. 그 지역의 군수가 적극적이면 영향을 많이 끼치게 되고, 군수가 일회성 이벤트로 삼아버리면 영향을 덜 끼치게 되었다. 나의 경험을 말하자면, 순천 워크숍 때는 내가 코디네이터를 하며 일을 좀 크게 벌였었다. 건축가뿐만 아니라 각계 각층의 사람들을 다 불렀다. 법학, 경제학, 그래픽 디자인, 사진작가, 조각가 등과 건축가를 매칭해 진행했었고 흥미로운 작업들이 많이 나왔는데, 이는 사실 워크숍 이전에 정기용 선생님, 이종호 선생님, 이진욱 소장과 내가 순천시로부터 연구 용역을 맡아서 '순천 문화도시 기본계획'이라는 연구를 진행했었기에 순천시가 sa 워크숍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보였고, 연구 용역을 기반으로 sa 워크숍도 좀 내실 있게 기획되고 진행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때 제기했던 순천의 여러 이슈와 해법들이 아직까지도 순천시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다. 당시 처음으로 '슬로우시티 순천'을 제시하면서 원도심의 성곽 터를 중심으로 한 점진적 변모 등을 제안했다. 이때 순천만의 가치에 목소리를 높였는데 문제도 많이 보이지만 큰 틀에서는 아직까지도 그 방향성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당시 '느림의 도시 순천'이라는 워크숍의 과정과 결과를 보여주는 책자를 발간하기도 했었다.
학생기자: sa 이후 어느덧 4반세기 가까운 시간이 흘러가고 있는데, 당시 sa에서 이야기했던 중소도시의 건축과 도시 구조 등의 상황과 지금 중소도시포럼의 활동을 비교했을 때 어떤 차이가 보이는지?
김광수: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중소도시를 다시 가보곤 한다. 옛날에 워크숍을 진행했던 순천 같은 곳도 2년 전인가에 한번 방문했다. 요새 많이 느끼는 것은 지방 도시들이 점점 똑같아진다는 것이다. 그 당시 지방 도시들은 확실하게 고유의 라이프스타일이 존재했다. 사람들 말하는 것도 다르고, 옷 입는 것도 조금씩 다르고, 먹는 것도 달랐는데 어느 시점부터 똑같아지기 시작했다. 마치 용산에 경리단길이 생기면 경주에는 황리단길이 생기는 식으로. 이렇게 생긴 경리단길 형제들이 전국에 몇 개인지 모르겠다. (웃음) 그리고 이제 지방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파트에 산다. 그것도 일상의 동질화에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이처럼 일상과 추구하는 가치 같은 것들도 거역할 수 없을 만큼 동질화 됐다는 것을 많이 느끼고, 아파트나 경리단길 같은 젠트리파이 된 지역이 아닌 곳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쇠퇴하고 있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이장환: 강경 워크숍(2000년)의 시놉시스를 보면, 당시 강경에는 그래도 젊은 사람들이 제법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아파트 논리'나 '복개 논리'처럼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욕망이 읽힌다. 당시에는 거주민들이 젊었기 때문에 그런 욕망이 존재했지만, 지금의 중소도시는 그런 욕망조차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 같다.
김광수: 지방 도시들이 소진된 상태이며 수도권은 과포화되었다. 그렇기에 더욱더 수도권의 인구는 ‘탈도시’에 대한 욕망으로 이어지게 된다. 한 때 일었던 제주 열풍이 한국 내 탈도시의 욕망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제주도 건축사들의 요청으로 조재원 소장, 구승회 소장과 함께 1년 정도 ‘제주현상’이라는 연구 작업을 한 적 있다. 그때가 제주 열풍이 한창 불던 시기였던지라 즐겁게 했다. 올레길이 생기고, 렌트카 사업이 생겨나고, 내비게이션이 발전하고 저가 항공이 만들어지는 등의 시기와 탈도시의 욕망이 딱 맞물린 거다. 제주도가 우리나라 최남단 섬이라는 사실이 주는 어떤 동경심이 존재한다. 그리고 서울을 떠나 한국의 제일 먼 곳으로 간다는 사실이 무의식적인 동인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이 시점부터 제주 한달 살기와 같은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유행이 등장했다. 정주와 유목이 구분되지 않는 모호한 경계의 지역에서 살아보려는 태도가 생겼고 펜션과는 또 다른 거주의 개념이 등장한 것이다. 탈도시를 추구하며 지방으로 내려오는 사람과 자기 집을 리모델링해 렌트로 내놓는 지방 사람들, 이 사이에 발생하는 관계인구 상황이나 접점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된다. 일본 같은 경우는 후쿠시마 사태 이후로 건축과 도시를 보는 시각 자체에 심대한 변화가 일어났다고 한다. 우치다 다쓰루나 미즈노 가즈오 같은 사람은 지금 일본의 사회를 성장이나 쇠퇴가 아니라 성숙의 시기로 보며 로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시각은 요즘의 사회가 이미 물적 자원이 풍족한데 서로 불필요하게 비교 경쟁을 하면서 사람들이 낙담에 빠진다는 거다. 하지만 성숙의 시기라는 것은 비교할 필요가 없는 사회다. 본인이 추구하는 가치를 찾아가는 것, 그것이 성숙기에 접어든 사회에서 사람들이 가져야 할 태도라고한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성숙한 삶을 위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많은 논의들이 나누어지고 있다. 그런 고민과 태도들이 우리나라에도 나와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제 정말 성장 담론 이후의 한국 사회 도시 담론을 잘 찾아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이장환: 우리나라에도 ‘로컬’이라는 이름 아래 여러 사업이 벌어지고 있다.
김광수: 유행에 따라 획일화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경리단길을 그만 만들고, 진짜 지역 사람과 관계인구의 일상을 기반으로, 사람을 흡수할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하다. ‘도시재생’ 이후 지방을 가보면, 결국 서울 사람들이 지방에서 똑같은 일을 벌이고 있는 모습을 본다. 지방의 도시 지향 욕망과 대도시의 탈도시 욕망. 이 두 차원이 생활이라는 측면에서 만나는 접점에 집중해야 한다고 본다. 이를 통해 서로 심폐 소생하는 관계가 될 수 있다. 그 접점을 살리기 위해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이장환: 동의한다. 얼마 전 중소도시 구도심 재생사업 관련 마스터플랜들을 조사해 본 적이 있다. 전국적으로 비슷한 사람들이 비슷한 결과물을 만드는 것 같다. 로컬이라는 이름 아래 획일화된 주장을 하다니.
김광수: 그러다 보니 더 동질화가 되는 거고 재미도 없어진다. 만약 2010년대 중반, 그러니까 문재인 정부가 도시재생에 관해 이야기할 때 sa 여름 워크숍을 했다면 시너지가 엄청났을 것 같다. 지방에서도 환영받고 적극적인 활동도 가능했을 것이다. 정작 여름 워크숍을 실제로 진행했던 때는 현실화하기에는 사회적 공감대가 부족했고 여전히 성장 담론만 지배적이었으니 시기적으로 이른 감이 있었다. 당시 잠잘 데도 없어서 초등학교를 빌려 스티로폼 깔고 바닥에서 자고 그랬다.
PART 4. 그리고 지금, 중소도시포럼
학생기자: sa 여름 워크숍 당시 학생으로 참여했던 이장환 소장님이 2021년부터 중소도시포럼이라는 이름으로 현재 중소도시의 상황과 변화에 대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선생님의 시선에서 현재 중소도시 담론이 그 당시 여름 워크숍에서 다루었던 담론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
이장환: 간단히 설명을 덧붙이자면, 중소도시포럼에서는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중소도시에 미치는 농도의 옅어짐 현상, 도시 중간중간에 빈 곳이 생기는 천공현상, 건물 노화에 대응하는 덧대기 현상 등에 관심을 두고 있다. 최근 20년 사이에 이러한 현상들이 급격하게 늘어난 것 같다. 그런데 2006년 순천 워크숍 당시 김광수 스튜디오에서 빈집 현상을 이야기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김광수: 그렇다. ‘느림의 도시 순천’이라는 주제로 각 스튜디오를 진행했다. 윤웅원 소장님과 ‘빈집 프로젝트’를 같이 했다. 당시에도 원도심에는 비어 있는 집들로 인해 곳곳에 구멍이 있었다. 마을이 통째로 빈 곳들도 존재했다. 이것을 도시적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마을 단위로 비어 있는 곳에 집중했다. 그곳에서 같은 관심사나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 10~15채 정도의 주거 공간을 리모델링 하는 것이다. 일종의 소규모 마을 공동체 같은 것이다. 옛날에는 기존에 살고 있는 마을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문화가 워낙 확고했기 때문에 건축가가 개입해서 마을 단위로 무언가 새로운 일을 벌이는 것이 어려웠다. 그러나 전부 비어 있다면 오히려 마을 단위로 무언가를 제안하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보곤 한다.
요즘 지방에서는 시나 군 단위에서 일부러 예산을 할당하면서까지 방문객을 늘이려고 노력하지 않나. 그런데 이런 식으로 도시 단위에서 제시하는 해법이 지방 중소도시에게 현실적으로 유효한 방식인지에 대한 회의가 든다. 도시가 아니라 열 가구, 세 가구 등처럼 가구 단위로 접근하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을까 한다. 이전 질문에서 답변했듯 탈도시의 욕망과 지방 도시의 생존 욕망이 하나의 접점으로 작용하는 방법으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옛날 중소도시 또한 이미 쇠락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덧대기 건축이나 천공현상과 같은 장면들이 그 때도 많이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지방에도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라이프스타일이 많이 있었고 이들은 단층 세컨드 하우스에 대한 욕망이 이미 있어서, 지방 신시가지에 살면서도 원도심에 집 한 채씩을 더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이 경우 원도심의 집은 잘 팔리지 않기 때문에 그냥 계속 가지고 있다 보니 조금씩 수리를 한다. 여기서 우리가 모르는 재밌는 상황들이 많이 생긴다. 예를 들면 어떤 지역은 창호 프레임을 담당하는 아저씨가 집집마다 똑같은 아크릴을 쓴다. 그러면 그 지역 일대는 전부 같은 색깔의 아크릴로 덧대지는 거다. 실제로 이런 상황들을 들여다보면 그 지역의 네트워크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 예상하지 못한 재밌는 부분들이 많이 발견된다. 주류의 건축 담론에서 이야기되지 않는 건축 행위와 생산방식이 마구 생겨나기 때문이다. 지금 시점에 다시 중소도시에 직접 들어가서 리서치를 진행한다면 거리감을 두고 조사할 때는 알 수 없었던 흥미로운 상황들이 많이 있을 것 같다.
이장환: 지역 창호 프레임 아저씨의 역할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요즘은 지붕공사 업체가 그 역할을 대신하는 것 같다. 그런 맥락에서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중소도시의 건축들 사이에 어떤 형태적 연결점이 생긴다. 그것이 지역의 특성이나 문화와 연관될 수 있을까?
김광수: 연관될 수 있다고 본다. 지역의 특성이나 문화를 너무 오랜 시간의 스펙트럼으로 만 보는 전통주의 관점에서는 이러한 것을 지역의 특성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겠지만, 이러한 부분이 나는 과거뿐 아니라 현재 그리고 미래 지향적 관점에서 꽤나 실효성을 갖는 지역의 특성이자 문화라고 본다. 개인적으로 나의 작업에서도 그런 맥락의 영향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홍천의 오괴헌(2024)에서는 처마 담장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오괴헌에서는 처마가 벽과 만나 구조체가 되는가 하면 담장이 확장되어 실내의 외벽으로 쓰이기도 하고, 건물의 외벽 자체가 담장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구성은 지방 도시를 많이 다니는 나에게 익숙한 것이다. 지방 도시에 가면 건물에 항상 처마가 있고, 담장이 있고, 그 담장이 이어져 내벽이 되는 식의 어휘가 존재한다. 오괴헌의 경우 조선의 반가(班家) 건축에서 보이는 구성과 민가에서 보이는 덧대기 건축의 흔적을 혼합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사실 지금의 도시설계 지침이나 지구단위계획을 보면 ‘조화’라는 이름하에 많은 조건을 요구한다. 그런데 그게 진짜 조화인지 모르겠다. 강압적으로 정체성과 조화를 강요한다. 사용해야 하는 재료도 이미 정해져 있다. 어떤 곳은 지붕의 마감재까지 지정한다. 어쨌건 지침과 계획은 따를 수밖에 없고, 불법으로 집을 지을 수는 없으니 나는 ‘부조화의 조화를 해보겠다 하며 부여의 ㅂ집(2016)을 설계하기도 했었다. 이 집과 저 집이 엇박으로 만나는 것 같은 시도를 해 보았었다. 엇박자로도 하나의 훌륭한 음악을 만들 수 있는 것 아닌 가. 지역에만 살다 보면 오히려 지역의 특질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전통주의적 관점으로만 지역의 정체성을 규정하려 하는데, 지역도 제 3의 시선에게 자기 지역을 묻는 다거나 현재성에 집중해서 다시 바라보는 태도가 많이 필요한 것 같다.
학생기자: 마지막으로 현재 중소도시들이 마주한 도시‧건축적 과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 건축인들이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듣고 싶다.
김광수: 소멸되어 가는 도시를 어떤 태도로 바라볼 것인가? 중소도시 자체가 가지는 태도도 중요하지만, 조금 더 거국적 차원에서 다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무조건 살리려고 하기보다는 어떻게 보면 비워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거다. 또는 어딘가를 비우되 다른 어딘가에 집중하는 식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이런 논의가 제대로 된 적은 있나 모르겠다.
이장환: 그런 논의가 우리나라에서 아직 활발한 것 같지는 않다.
김광수: 아무래도 그렇다. 대부분의 중소도시에서 자체적인 심포지엄이나 포럼 같은 것을 열어도 결국 ‘무조건 다 살려야 된다’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정치적 구도를 떠나서 진짜 중소도시를 걱정하는 마음과 우리나라 전체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중소도시를 어떻게 다루는 게 좋을 것인지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이 있으면 좋겠다. 무엇이 답일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분명한 점은 옛날의 영광을 되찾을 순 없다는 거다. 서울조차도 불가능하다. 사라져가는 것은 있기 마련이고, 어쩌면 사라질 것들은 빨리 사라지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을 잘 가늠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이장환: 선도적 건축을 통해 중소도시를 바꾸려는 시도도 있다. 이런 방식이 현지 주민에게 좋은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건축을 많이 신축해도 인구는 늘지 않았다. 건축만으로 도시를 바꾸는 방법론이 갖는 한계 아닐까? 얼마 전 지역 공공건축가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지금과 같이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급격한 시대에 선도적 건축만으로 도시를 다루는 것이 아직까지 유효한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 뭔가 다른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김광수: 지자체에서 도시재생의 일환으로 건물을 신축하는 경우들이 있다. 그 측면에서는 영주시가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신축을 지향하는 것 자체에 대한 고민이 있다. 과연 우리가 계속 신축할 수 있을까? 경제적으로도 힘들거니와, 이미 건물이 많은데 굳이 신축을 하기보다는 있는 것을 잘 쓰자는 태도가 중요할 수 있다. 대부분의 도시재생 이슈는 그런 태도의 일환이었다. 폐산업시설, 유휴시설 재활용 같은 사업들이 다 그런 맥락이다. 농가 주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있는 것을 어떻게 재편성해서 잘 쓸 것이냐가 여전히 중요하다. 어쩌면 지금의 총괄건축가는 예전 방식과 다르게 접근해야 되지 않을까. 인구가 계속 늘어날 것도 아니고, 신축의 수요가 많아질 것도 아닌데, 그렇다면 건축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물음을 던졌을 때 있는 것을 잘 쓰는 방향으로 가는 게 좋을 것이다. 도로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도로가 차가 다니는 것 이외의 다른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도로가 너무 많다. 그리고 불필요할 정도로 너무 넓다.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도 하루에 차가 한두 대 지나갈까 말까 하는 도로도 많다. 그런 도로에서는 차들이 엄청난 속도로 다니고, 고령자 분들이 길을 건너다 사고가 나는 경우가 많아진다. 현재 상황은 인구는 계속 줄어들고, 인프라는 과잉의 상태인 것이다. 이 과잉을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논의가 많이 생겨야 한다.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어떻게 재의미화 할 수 있는지,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없애야 할지 등의 문제들 말이다. 어느 시점부터 건축가들이 만나서 치열하게 도시와 건축을 이야기는 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전부 뿔뿔이 흩어지고 고립됐다. 그런데 요새 들어 도시와 건축 이야기를 하는 시대가 다시 시작된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많이 든다. 왜냐하면 보통 일이 없을 때 도시와 건축의 이야기를 많이 하고,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나. (웃음) 사실 페이퍼 아키텍트라는 개념도 그런 시대에 나온 거다. 1970년대 석유 파동 때 일이 없으니 건축가들이 책을 쓰고 그림을 그리다가 도시에 대한 입장이나 건축 작품들이 탄생했다. 렘 콜하스, 자하 하디드, 피터 아이젠만 등 웬만한 건축가들도 전부 페이퍼 아키텍트였다. 그 과정들이 모여 건축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지금이 그러한 시작인 것 같아서 앞으로가 궁금해진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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