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6년 4월호 (통권 701호)
오늘의 건축가
‘오늘의 건축가’는 다양한 소재와 방식으로 저마다의 건축을 모색하는 젊은 건축가를 만나기 위해 기획됐다. 그들은 무엇을 좋아하고, 탐색하고, 고민하고 있을까? 또 다양한 지역의 건축가들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고 있을까? 「SPACE(공간)」는 젊은 건축가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기보다는 각자의 개별적인 특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강소도시 아이디어 공모전 2022(강소도시의 테크놀로지)의 일환으로 만든 에너지 이동 시나리오와 지하 수송 경로 지도(포항)
인터뷰 신동우 건축집단 건축사사무소 부소장 × 김혜린 기자
건축적 호기심의 여정
김혜린(김): 2013년 울산대학교를 졸업하고, 네덜란드 델프트 공과대학교(이하 델프트 공대)로 유학을 갔어요. 왜 하필 네덜란드였나요?
신동우(신): 서유럽 하면 떠오르는 유명 건축사사무소들이 있지만, 그 때문에 네덜란드에 가고자 했던 건 아니에요. 학부 시절 디자인을 위한 분석에 대해서는 호기심이 있었지만 비야케 잉겔스 그룹(BIG)이나 MVRDV와 같은 사무소의 작업으로 대표되는 도식적인 설명과 표현 방식에는 작은 반발심이 있었죠. 제가 한국에서 교육받았을 당시 학교의 분위기가 디자인 리서치를 강조하는 분위기였고, 이런 분석을 못하면 건축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이게 만약 모든 건축의 형태나 로직을 결정하는 방법이라면 나는 이런 방식으로 건축을 하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가 배운 건축교육이 전부인지를 알고 싶었죠. 유학을 결심한 이후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을 찾다 보니, 마침 델프트공대의 석사과정에 방법론과 분석이라는 세부 전공이 있는 거예요. 확신은 없었지만, 그곳에 가면 제 생각의 줄기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죠. 결과적으로는 건축과 공공건물(Architecture and Public Building)이라는 다른 전공을 선택했지만요. 재미있는 건 그곳에 저와 유사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거예요. 다이어그램은 효율이나 객관성을 중시한 나머지 현상이나 사물을 단순화하거나 전형화하는 부분이 있잖아요. 그런데 사실 모든 일들이 단순하게 설명되지는 않고, 인과관계가 확실하지도 않고, 그 이면에는 굉장히 복잡한 문제들이 있죠. 우리가 좀 더 다른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극복하려면 어떤 분석과 재현의 도구를 사용해야 할지를 중점적으로 배웠어요. 그 대안 중 하나가 제가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매핑이고요.
김: 네덜란드에서의 건축교육은 어땠나요?
신: 네덜란드라기보다 제가 다닌 학교의 특징인 것 같은데, 2008년도에 화재로 인해 건축학부 건물이 다 타버린 사건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그 이후로 안전관리상의 문제로 밤 10시가 넘으면 학교가 문을 닫았어요. 우리나라도 그렇고, 미국도 그렇고 밤새 불 켜진 건물이 건축계의 문화를 상징하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델프트 공대는 밤 10시가 되면 청소하시는 분들이 나가라고 무언의 압박을 주시는 거죠. 자동적으로 시간 관리를 굉장히 잘 하게 됐어요. 저는 원래 올빼미형 인간인데,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자전거 타고 학교 가서 과제하고 10시에 돌아오는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그것도 괜찮더라고요. (웃음) 또 건축모형이나 드로잉도 스튜디오에 두지 않고 가지고 다녀야 해서 학교가 깨끗했죠.

『강소도시연구 2023』, 신동우와 최정우가 3등으로 선정된 강소도시 아이디어 공모전 2022의 연구가 담겨있다.
김: 졸업 후 판 동언-코스휘흐(VDK)에서 잠시 실무를 하시기도 했죠.
신: 졸업 후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 국제설계공모에 VDK가 지명초청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곤 VDK에 바로 메일을 보냈어요. 나는 한국 사람이고, 네덜란드에서 공공 건축을 공부했다고 이야기하며, 이 프로젝트를 꼭 해보고 싶다고 했죠. 바로 면접을 보러 오라고 답장이 오더라고요. 면접을 보고 난 뒤에 바로 다음주부터 출근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연락이 와서 일하게 됐죠. VDK는 한국의 실무 환경과는 조금 달랐어요. 지금은 업무 시간이 더 줄었다고 들었는데, 당시 주5일 40시간을 근무했어요. 그러니까 쉴 시간도 없이 정말 분 단위로 시간을 관리해야 하는 거죠. 좋았던 점은 권한을 굉장히 많이 줬다는 거예요. 서울에서 실무 경험이 있긴 했지만, 학교를 막 졸업한 직원에게 프로젝트를 맡겼다는 점이 특이했죠.
김: 계속 네덜란드에서 일할 생각은 없었는지 궁금해요.
신: 네덜란드에서 공부를 더 하거나 거주하고 싶긴 했지만, 그곳에서 건축 일을 하며 사는 건 잘 안 그려지더라고요. 또 당시 네덜란드에 제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만한 저와 유사한 사고로 작업을 하는 사무소도 없었고요. 만약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2001)을 설계했을 당시의 스튜디오 리베스킨트와 유사한 작업을 하는 사무소가 네덜란드에 있었다면 갔을 것 같아요. (웃음) 그런데 이미 그런 작업을 할 수도 없고, 시대도 달라서 아쉬워요.

신동우

인터뷰가 진행된 울산대학교 건축관
따로 또 같이
김: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이후 지금까지의 궤적을 설명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신: 2018년 말에 한국에 들어왔는데, 프리랜서로 다양한 사무소와 협업하며, 의뢰가 들어오는 건축 작업들을 했어요. 그러다 코로나바이러스-19 감염증으로 인해 록다운이 됐는데, 제가 내향형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비대면으로 프리랜서 일을 하며, 동시에 네덜란드 스튜디오 튜터와 메일을 주고받으며 박사 과정 제안서를 쓰기 위한 준비를 하며 지냈죠. 그런데 어느 날 은사님이신 유명희 교수님께 연락이 왔어요. 울산대학교 건축학전공의 스튜디오 크리틱을 충원해야 하는데, 한번 지원해보라고요. 이런저런 서류를 준비해서 지원했고, 1학년 기초 설계 강의를 시작하게 됐죠. 이후 같은 대학교 후배인 이은호 대표가 개소한 건축집단 건축사사무소에 부소장으로 합류하게 됐고요.
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럽게 흘러왔다고 볼 수 있겠네요. 현재 부소장으로 있는 건축집단 건축사사무소는 어떤 곳인가요?
신: 일반적인 건축사사무소와는 조금 달라요. 보통 사무소는 하나의 공간에 모여 함께 일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잖아요. 그런데 이은호 대표는 건축 작업은 꼭 같은 공간에 모여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사무소의 인원들로만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이나 타 지역의 사무소들과도 협업을 하고 싶어 했죠. 그래서 사무소 이름도 건축집단 건축사사무소라고 지었다고 들었어요. 또 사무소의 문화 중 하나가 불필요한 야근을 하지 않는 거예요. 디자인을 하면 보통 여러 옵션을 만들잖아요. 보통 제출 일주일, 이주일 남겨두고 디자인을 갈아엎는 경우들도 있는데, 저희는 그런 경우를 정말 싫어해요. 하나의 안에 대해서 충분히 생각을 하고, 그 안에 대한 다양한 변수를 고려하죠. 한번 방향이 정해지면 절대 돌아가지 않아요. 이은호 대표와 처음 작업하며 이런 프로세스가 좋을 것 같다고 제가 이야기를 꺼냈었어요. 델프트 공대에서 공부했을 때의 영향인 것 같은데 그곳에서는 여러 가지 안을 만든다고 좋게 평가하지 않았거든요. 오히려 네 생각이나 주관은 뭐냐고 묻죠. 이은호 대표도 동의해 이걸 사무소 문화로 만들자고 했어요. 직원들에게 반응이 좋아요. (웃음) 불필요한 야근이 없으니까요.

건축시작의 대담 진행 장면 ©Tae Gunhee

건축시작 대담 포스터 ©The Beginning of Architecture
김: 2024년부터 울산의 젊은 건축가 7명이 모인 그룹 건축시작의 1기 멤버▼1로도 활동하셨죠?
신: 현재 각자의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지만 모두 같은 학부 출신이에요. 보통 울산은 놀거리도 없고 재미없는 도시라는 인식이 있잖아요.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타지에서 활동하던 울산 출신의 젊은 건축가들이 다시 울산으로 돌아오기 시작했어요. 저희를 가르치셨던 교수님들 입장에서도 그 이유가 쉽게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었던 것 같아요. ‘왜 다시 울산으로 온 걸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하루는 당시 건축가협회의 부회장을 맡고 있던 유명희 교수님이 저희 모두를 따로 방문하시고 제안을 하셨어요. 젊은 건축가들끼리 토론하고 대화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하셨죠. 저희 모두 겁이 없기도 하고, 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흔쾌히 수락했죠. 울산 소재의 건축사나 학생 모두 참여할 수 있는 형태로 한 달에 한 번 각자 발제를 하고 토론을 진행했어요.
김: 그룹 내에서 어떤 토론과 이야기들이 오갔는지 궁금해요.
신: 5년제 건축교육에 대한 생각이나, 설계공모전 문화, 건설 경기, 건축 영화와 서적, 건축사의 역할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만큼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해요. 저 같은 경우는 매핑과 디자인 리서치를 소개하는 자리를 만들었고요. 다들 건축 붐이 한창일 때 교육을 받은 세대라서 야망도 있고, 욕심도 있죠. 경제성만으로 건축을 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기 때문에 한계 안에서 어떻게 하면 내 건축을 조금 더 신념이나 철학에 맞게끔 구축할까 하는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미당선작인 신정동 희망주택(2022) 엑소노메트릭 ©Archicolony

신정동 희망주택 렌더링 이미지 ©Archicolony
연구와 실천의 경계에서
김: 최근에는 매핑을 통해 도시 공간을 읽고 해석하는 작업에 주력하고 있어요. 이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인 울산대학교 설계 스튜디오에서도 가르치고요.
신: 예비공간조사 시 객관적인 정보들의 수집만으로는 동시대 건조 환경을 충분히 파악하기 어려워요. 도시의 기저에 있는 사회 문화적 또는 사회 정치적 맥락들을 고려해서 오늘날의 도시 공간을 조사해야 하죠. 그 도구가 매핑인거고요. 때때로 건축엔 이 공간은 이렇게 만들어져야 한다는 고정된 생각이 존재하는데, 변화하는 사회문화와 시대상 그리고 사람들의 인식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죠. 건축가는 건축의 규정된 생각 혹은 이미 고착된 정보들의 관계를 충실히 따르기보다, 수집한 정보들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하고 의미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봐요. 그런 도구로써의 매핑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요.
김: 학교 분들과 협업도 많이 하시죠. 울산대학교 최정우 교수님과 함께한 강소도시 아이디어 공모전 2022(강소도시의 테크놀로지)에서 3위를 수상하셨고요.
신: 최정우 교수님과 지금은 졸업한 학생 연구원과 셋이서 진행한 프로젝트인데, 지속 가능한 강소도시의 모습을 제안하는 공모였어요. 울산과 경주, 포항 세 도시를 연결해서 지방소멸에 대응하려고 했죠. 그 연결의 매개체는 세 도시에서 문제가 되는 작동하지 않는 역과 폐철도 노선이었고요. 또 2029년부터 울산에 수소 트램이 운행될 예정이기 때문에 수소의 흐름도 고려했어요. 세 도시가 서로 다른 정체성을 지니고 있지만, 이 매개체로 인해 물자가 수송되고, 인프라가 형성되는 것을 의도했죠. 노선 자체가 도시가 되는 선형의 도시를 제안한 거죠. 여기에 제가 말하는 매핑 방식이 활용됐는데, 2차원 공간의 재현뿐만 아니라 텍스트를 쓰는 것부터 사진을 수집하고 가공하는 프로세스 전체를 매핑으로 정의해요.
김: 사무소에서는 공공 건축 공모에 주력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실제 공공 건축 설계 시 매핑을 활용하기도 하나요?
신: 사실 제가 이야기하는 매핑을 국내 공공기관 공모전에서 활용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우선 공모 기간이 굉장히 짧아요. 사무소가 각 공모에 순발력 있게 대응해야 하죠. 물론 매핑을 하지 않더라도 조사와 자료 수집을 많이 하긴 해요. 연도별로 달라지는 도시 공간 구조를 놓고 거기에다 텍스트라든지 이미지를 겹치는 방식을 활용하기도 하죠. 비록 떨어지긴 했지만, 2023년에 창원 시립상복공원 제3봉안당 공모전을 준비할 때는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방문해서 다양한 화장터와 납골당을 답사하며 사례조사를 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런 리서치를 하더라도 설계설명서에 이러한 분석을 담아낼 수 있는 자리가 없어요. 발표 시간도 굉장히 촉박하고요. 아직까지 한국의 공공 공모전 풍토와 매핑이라는 방식이 어울리는 것 같지는 않아요. 하지만 앞으로 국제공모전이나 민간 영역 작업에서 이런 방식을 시도하는 걸 기대하고 있어요.

해외 답사 중 촬영한 에두아르두 소투 드 모라의 위치트 크레마토리움(2011) ©Dongwoo Shin

『강소도시연구 2023』
김: 청년들을 위한 주거 유형을 모색하는 건축공모전에도 다수 참가했어요.
신: 신정동 청년희망주택(2022)의 경우 제가 본격적으로 사무소에 합류하기 전 이은호 대표와 함께했던 작업이에요. 둘 다 지방 출신이다 보니 서울에 연고가 없어서 실무를 했을 때 여기저기 주거를 옮겨다녔던 기억이 있었죠. 저 같은 경우는 유학을 가서도 그랬고요. 유학 시절에 마주한 네덜란드의 청년주거가 괜찮은 모델 같았어요. 저렴한 가격대에 여러 가지 뷰를 선택할 수 있고, 예산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유닛 타입도 다양했죠. 이런 형식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외부 조건에 따라 조형 개념을 획득하는 과정을 다이어그램으로 설명하려 들기보다 공공주택의 구성과 내부 질서가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전달하길 원했죠. 부분으로서의 유닛들이 조립되어 전체를 구성하는 것이 중요했어요. 공동체를 디자인하는 거죠. 부분이 전체를 구성해나가는 형태 발생 과정 자체에 동시대의 사회 문화적·사회 정치적 맥락을 잘 반영하려 했죠. 그래야 건물이 사회적 의미를 가질 수 있으니까요. 간과했던 건 신정동 청년희망주택의 경우 테라스형 정원이 외부 입면을 따라 사선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사선제한이 문제되지 않는 상황에서 사선을 가지게 된 입면이 심사위원분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태화동 청년희망주택(2023)에도 여러 유닛의 유형들을 활용한 안을 내놓았는데 떨어졌죠. 이후 사무소 사람들끼리 모여서 설계설명서를 펼쳐놓고, 일종의 자아비판을 하며 스터디를 했어요. (웃음) 꼭 이런 유형이 아니더라도 다음에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다듬어볼 수 있지 않을까, 가능성을 찾으면서요. 건축이 꼭 실재하는 건축물인 것만은 아니잖아요. 이 프로젝트에서 못 다한 이야기를 다른 프로젝트에서 해볼 수도 있는 거고요.

신동우
김: 건축가로서 이루고 싶은 꿈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신: 실현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우리나라 남부 지방이나 울산에 기존 건축학 교육인증 제도를 따르지 않는 비제도권 건축학교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AA 스쿨도 그렇게 시작한 거잖아요. 학석사를 전제 조건으로, 학교만 다니는 게 아니라 사무실과 협약을 맺어서 절반은 협약된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 거죠. 기존의 건축학 인증제도를 벗어나 졸업장이 곧 라이센스가 되면 좋을 것 같아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어요. 그 사람들이 나중에 제 동료가 될 테니까요.
김: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요.
신: 올해부터 늦지 않은 시기에 독립해서 개인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단순히 일을 하는 것을 넘어서 이제는 제가 스튜디오에서 강조하는 것들을 본격적으로 작업에 적용해보고 싶어요. 협업의 장점도 있지만, 내 생각만 앞세울 수는 없으니 타협을 하는 부분들이 생기잖아요. 날카로웠던 생각이 뭉툭해지기도 하고요. 그런 부분 없이 제가 생각했던 것들을 제대로 만들어보고 싶어요. 캐릭터가 강하게요. 신동우 스튜디오 이렇게 이름을 지을까 생각 중이에요. (웃음) 또 기회가 되면 제3세계나 체제나 이념이 달라지는 곳들, 혹은 우리나라보다 더 심각한 빈부격차가 발생하거나 사회적 문제를 안고 있는 장소들에 건축적 개입을 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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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건축시작 1기 멤버로는 이은호, 신동우(건축집단 건축사사무소 대표, 부소장), 권서영(수평건축사사무소 대표), 최락준(라키텍쳐 건축사사무소 대표), 신영섭(에스플랜 건축사사무소 대표), 정승교(브릭치즈 건축사사무소 대표), 박영교(웨이브 건축사사무소 대표)가 있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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