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6년 8월호 (통권 705호)
관계의 방식
여름의 한가운데. 누군가에게는 방학이나 휴가 시즌이고, 어떤 이에게는 일하기에 무더운 계절이다. 춥거나 더워도, 혹은 명절이어도 잡지는 매달 꼬박꼬박 세상의 빛을 보아야 하기에 편집부 식구들은 마감을 피해 고향으로, 바다 건너 미술관 옆 공원에서 배구를 하러, 혹은 마라톤을 뛰러 타국으로 떠나는 각자의 틈을 마련한다.
지난 6월 핀란드 헬싱키로 이른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이 북구의 도시 하면 무엇이 먼저 그려지는가? 알바 알토의 나라,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이 떠오른다. 오로라, 백야, 끝없이 이어지는 숲과 호수, 그리고 통나무 사우나. 그렇다. 핀란드는 도서관에도 사우나를 넣는 나라다. 도서관 이용률과 국민 독서율이 세계 최고 수준인 핀란드는 강력한 도서관법과 국가적 지원을 바탕으로 도서관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발전시켰다. 핀란드 도서관 정책의 주요한 목표는 ‘이민자를 포함한 모든 도서관 이용자에게 새로운 시대의 지식과 문화를 동등하게 제공하는 것’이며, 지역과 세대 간의 연대를 강화하는 ‘커뮤니티 확대’는 주요 정책적 지향점이다.▼1 2018년 완공되어 2019년 올해의 공공도서관상을 수상한 오디 헬싱키 중앙도서관(이하 오디 도서관)의 초기 계획안에는 사우나가 있었다. 이후 도서관 담당자에 의해 계획안에서 사우나는 빠지게 되었지만, 애초의 목적은 휴식을 취하면서 진지한 주제를 토론하는 핀란드의 전통과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SPACE(공간)」 617호 참고)
휴가 중 오디 도서관을 방문한 나는 몇 시간이나마 현지인처럼 지내보고자 핀란디아홀이 보이는 테라스에 앉아 태블릿을 꺼냈다. 그러나 이내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에게 둘러싸여 슬그머니 짐을 싸들고 실내로 들어와 도서관 구석구석을 어슬렁거렸다. 잘 알려진 오디 도서관의 대표적 이미지는 특별한 물리적 경계 없이 어린이 열람공간부터 일반 열람공간이 이어지는 가운데 물결치는 천장이 펼쳐진 3층 풍경일 것이다. 각 영역이 교차하는 곳에는 카펫 한 장으로 아늑한 라운지 영역을 만들어냈다. 실제로 거대한 공간 안에서 각자의 활동에 몰두하고 있는 군상은 마치 ‘윌리를 찾아라’ 그림처럼 다채로웠고, 적당히 엄숙하고 적당히 활기 넘치는 현대적 도서관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주는 듯했다. 이 도서관의 설계공모 지침은 다목적홀이나 공중사우나, 카페, 레스토랑과 같이 지역주민의 교류와 만남의 장이 될 수 있는 공간 프로그램을 도서관 개관 시간과 상관없이 운영되는 독립된 공공시설로 계획할 것을 주문했다. 공유주방이나 팹랩처럼 근래 한국의 공공시설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지만 로비에 재봉틀 코너를 마련하는 등의 발상은 도서관이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과 활동을 수용하는 지역사회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지 상상하게 한다.
열린 공간의 가능성은 도서관에만 머물지 않는다. 「SPACE」 8월호 프레임에서는 여러 방식으로 지역, 사람, 자연과 관계하는 유현준(홍익대학교)+에이치와이피건축사사무소(전지영)의 작업을 소개한다. 경주 능의 풍경을 품은 오아르미술관, 길게 뻗은 대공간 아래 모두의 거실을 조성한 고창황윤석도서관, 느린 자연의 시간을 감각하게 만드는 성주의 심산문화테마파크, 열린 마당으로 동네를 연결하는 역촌동의 성실교회. 유현준은 타인과의 접점이 줄어드는 오늘날, 공동의 경험을 형성해 공동체를 지속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유형의 도서관, 주민센터, 교회, 미술관이 등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번에 소개하는 네 작업은 모두 공공성이 중요한 건축으로 오랫동안 그의 관심사였던 관계 맺기의 방식을 보여준다. 그것은 멀리 떠나지 않아도, 우리 곁에서 틈을 만드는 방법들이다.
편집장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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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필규·이지연·박찬일, ‘핀란드 도서관 정책의 지향점에 기반한 헬싱키 중앙도서관의 공간프로그램과 공간디자인 방법의 특성에 관한 연구’, 「한국문화공간건축학회논문집」 79, 2022, 15~26쪽.
「SPACE(공간)」 2026년 8월호 (통권 705호) 목차
006 EDITORIAL
008 NEWS
024 FRAME
기준선, 단면, 시퀀스: 유현준 + 에이치와이피건축사사무소
026 FRAME: INTERVIEW
관계의 기준선을 찾아_ 유현준 × 방유경
034 FRAME: PROJECT
오아르미술관
042 FRAME: PROJECT
고창황윤석도서관
050 FRAME: PROJECT
심산문화테마파크
058 FRAME: PROJECT
성실교회
066 FRAME: CRITIQUE
풍경과 시퀀스가 만드는 관계의 미학_ 장용순
074 PROJECT
색동집 ‐ 정이삭 + 에이코랩건축사사무소
084 PROJECT
올드반야드 ‐ 아이디알 건축사사무소
094 PROJECT
브릭스 빌딩 ‐ 건축사사무소 루연
100 PROJECT
연수구 청소년센터 ‐ 오브아키텍쳐 + 세이브종합건축사사무소
112 FOCUS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1동 외벽 리모델링 ‐ 온디자인건축사사무소
116 FOCUS
엠아이디빌딩 ‐ 건축사사무소 엔오에이
120 EXHIBITION
진행형의 건축을 말하다: 〈주름과 덧댐〉_ 김보경
126 RELAY INTERVIEW: I AM AN ARCHITECT
기본을 지키며 균형을 맞추는: 이선민_ 이선민 × 이소운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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