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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관계의 기준선을 찾아 | 유현준 + 에이치와이피건축사사무소

자료제공
에이치와이피건축사사무소
진행
방유경 기자

「SPACE(공간)」 2026년 8월호 (통권 705호) 

 

 

 

 

인터뷰 유현준 홍익대학교 교수 × 방유경 「SPACE」 기자 

 

 

공공성과 공공 건축 

방유경(방): 2020년, 2024년에 이어 어느덧 세 번째 프레임이다. 이번에 수록된 근작 중 두 가지는 공공 건축이고, 나머지 작업 또한 공공성이 중요한 화두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팬데믹을 통과하면서 언택트에서 컨택트로 사회의 경험치도 확대됐는데 공공성의 의미, 공공 건축의 역할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유현준(유): 오늘날 업무나 휴식 같은 현대인들의 일상 대부분이 온라인 공간에서 이뤄지고 있다. 각자 유튜브나 OTT를 개별적으로 시청하면서 타인과의 접점이 줄어들고 쌍방 커뮤니케이션이 사라지는 추세다. 그러다 보니 역으로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물리적 스킨십, 공동의 경험이 훨씬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에서도 사회의 분열을 막고 공동체가 지속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공공 건축은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문제를 기본 전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나는 성공적인 사회라면 새로운 공공 건축의 프로그램을 자발적으로 생성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대 그리스 원형극장처럼 이전 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공간 유형을 통해 아테네라는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민주주의가 꽃핀 것처럼 말이다. 현재 우리가 만드는 대부분의 공공 건축은 근대 사회의 등장 이후 만들어진 유형과 프로그램들인데, 이런 지점에서 분명 한계가 있다고 느낀다. 새로운 유형의 도서관, 주민센터, 교회, 미술관이 등장해야 한다. 

 

 

 

오아르미술관 단면 다이어그램

 

오아르미술관 프로세스 다이어그램 

 

 

방: 그사이 작업하는 프로세스나 태도, 관점에서는 변화가 있었다고 느낀 점은 없었나? 

유: 딱히 달라진 건 없는 것 같다. 우리는 문제를 정의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면 디자인이 완성되는 프로세스로 작업한다. 다만 시대마다 환경이나 조건이 바뀌니 문제가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앞서 사회의 변화에 맞춰 프로그램도 바뀌어야 한다고 했는데, 고창황윤석도서관(이하 고창도서관)이 그런 사례다. 과거의 도서관이 책이 빼곡하게 채워진 정보 중심의 엄숙하고 조용한 공간이었다면, 현대의 도서관은 ‘도시의 거실’로서의 기능이 중요하다고 봤다. 옛날이라면 책의 보관과 관리를 고려해 햇빛의 유입을 줄이고 책을 더 많이 보관할 수 있게 디자인했겠지만, 고창도서관에서는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했기 때문에 입면 전체를 유리로 마감해 탁 트인 시야를 확보하고, 안과 밖이 잘 통하는 대공간으로 계획했다. 

 

방: 사진으로만 볼 때는 의도대로 작동할지 조금 의심하기도 했는데, 직접 가서 보니 사람들로 북적여서 살짝 놀랐다. (웃음) 

유: 고창도서관은 처음부터 외지인들이 가족 단위로 방문할 거라 생각해 시각적으로 열린 대공간으로 조성했다. 유아들은 부모와 1층 안쪽의 유아 공간에서 같이 앉아 책을 읽고, 그보다 큰 아이들은 2층으로 연결된 계단 구석에서 만화책을 보는 식이다. 서로 쳐다볼 수는 있지만 영역을 구분하기 위해 책장 역할을 하는 긴 대각선 벽을 제안했고. 이번 답사 때 보니 뒷마당과 연계해 청소년 열람실로 계획했던 2층에서 노트북을 가져와 공부하거나 업무를 보는 사람들이 많더라. 상대적으로 천장고가 낮아 집중이 더 잘 되는 것이 이유일 텐데, 사용자들이 자신에게 맞는 공간을 찾아 자리를 잡고 영역이 은연중에 나뉘어 있어 설계자 입장에서도 흥미로웠다. 

 

 

 

고창황윤석도서관 프로세스 다이어그램 

 

 

지역과 랜드마크

방: 고창도서관과 함께 설계공모를 통해 완공된 작업으로 성주의 심산문화테마파크(이하 심산파크)가 있다. 두 작업 모두 지자체의 요청으로 지어진 대규모 공공시설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랜드마크’로 기획됐는데 이를 어떻게 해석했나? 

유: 랜드마크에 대해 건축가들이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지만, 발주처의 요구를 수용하는 입장에 선다면 다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광역 교통이 발전할수록 인구가 수도권에 쏠리는 중앙 집중 현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사람들을 대도시 바깥으로 끌어당길 수 있는 어트랙터로서 건축을 랜드마크라고 생각했다. 건축을 매개로 사람들이 찾아오게 만들려면 대도시와는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하는 것이 핵심인데, 내가 찾은 답은 저층형 건물이었다. 지역의 장점이 여유로운 땅과 자연인데, 저층형으로 만들면 수직으로 적층된 고밀 도시와는 다른 공간을 경험할 수 있지 않나. 고창도서관에서도 “저런 데서 책 읽고 싶다”는 생각을 유도하려고 했다. 여기에 더해 흔히 접할 수 없는 대규모 목구조를 적용하면 확실히 차별화될 거라고 보았다. 개인적으로 운이 좋았다고 느낀 건 부지 주변에 경사지붕을 가진 주택 단지가 있어 동네와 잘 어울린다는 점이다. 기둥 간격도 일부러 인근 모듈러 주택의 모듈 간격과 맞췄는데, 그래서인지 도서관 안에서 주변을 바라볼 때 이질감이 없다. 휴스턴 주택가에 위치한 렌조 피아노의 더 메닐 콜렉션 미술관처럼 거대한 건물이지만 섹터를 나눠 주변 주택가와 모듈이 비슷해 보이는 장면도 떠오르고. 실제로 지역의 어느 주무관이 블로그에서 ‘건물만 좋은 게 아니라 건물 때문에 주변 마을이 살아난 것 같다’며 이런 도서관을 지어야겠다고 언급한 내용을 보았는데, 지역의 변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니 더 의미가 있더라. 결국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담을 수 있다면 규모와 상관없이 랜드마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방: 심산파크는 제안 당시 체류형 테마파크의 개념, 즉 대지 동측에 숙박시설을 배치한 뒤 서측 입구에서 동측 숙소까지 이동하는 동선을 긴 선형 매스(브리지)로 만들고, 중간에 커뮤니티 시설인 정방형 매스를 경사지에 끼워 수직적으로 연계하는 것이 공간구성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별동으로 계획했던 숙박시설이 남쪽 언덕의 단일동 숙소로 바뀌면서 브리지를 건너갈 명분이 사라지게 됐다. 

유: 공공에서 자주 벌어지는 일이지만 사실 아쉽긴 하다. 선형 공간의 이동성이 다소 약화됐지만 브리지 끝 전망대에 대형 조각이나 설치 작품을 두어 움직임을 유도하거나, 200m 길이의 공간을 도서관이나 독특한 테마의 전시 공간으로 활용한다면 세상에 없던 다른 유형의 건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성주군과 이에 대해 상의하고 있다. 

 

 

 

유현준의 학부 시절 졸업설계, 아날로그 vs 디지털(1991)의 모형 사진 

 

유현준의 학부 시절 졸업설계, 아날로그 vs 디지털(1991)의 모형 사진 

 

 

기준선과 시퀀스 

방: 답사 중에 “우리는 설계를 할 때 레퍼런스 라인, 기준선을 먼저 그려 놓고 시작한다”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고창도서관, 심산파크 외에도 성실교회나 신안군 플랫폼에서도 보면 기준선을 설정한 뒤, 이 공간 안에서 시퀀스를 기반으로 단면적 변화를 유도하는 태도가 반복적으로 읽히더라. 서명(사인)할 때 보면 수평선을 긋고 위아래로 수직적 변화가 있는 스케치 같은 형태로 하길래, 아마도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수평성과 동적인 단면의 공간감이 이루는 조화에 천착하고 있다고 봐도 될까? 

유: 예상치 못한 지적인데, 내가 이런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새롭게 발견해준 것 같다. (웃음) 생각해보니 대학교 4학년 때 압구정동에 박물관, 공연장, 도서관 세 가지가 함께 들어가 있는 커뮤니티 센터를 설계한 적이 있다. 박스로 된 공간들 중간에 보이드를 이상하게 뚫어 내부 공간이 복잡하게 얽혀 시선이 서로 교차되도록 했다. 그런데 어딘가 복잡하기만 하고 설계가 풀리지 않다가 발전시켜가는 과정에서 좁고 긴 수공간을 가로지르는 길, 즉 레퍼런스 레벨을 하나 만들었더니 문제가 해소되더라. 방문객이 수공간 위 일직선의 길을 따라 걷기만 해도 주변으로 변화하는 공간의 단면을 다이내믹하게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고딕 성당 안을 걸을 때 일자로 걷지만 볼트 형태와 스테인드글라스의 그림자가 바뀌면서 변화와 리듬감이 생기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고 보니 꽤 오래전부터 단순한 직선 운동을 하는 시선에서 건축의 변화를 느끼게 하는 데 관심을 가진 것 같다. 도심에서는 주변의 복잡한 콘텍스트가 변화의 요인이 된다면, 심산파크에서는 높낮이를 가진 산이 콘텍스트로 바뀌는 거다. 건물의 다양성이었다가 자연의 다양성으로, 주변의 다양성은 바뀌지만 나는 기준점이 되는 공간을 만들려고 하는 것 같다. 

 

 

 

심산문화테마파크 초기 프로세스 다이어그램 

 

 

방: 그런 의미에서 단면적 시퀀스가 중요한 관점으로 읽힌다. 건축가는 이동하면서 어떤 장면들이 펼쳐질지, 어떤 액티비티가 일어날지 계속 상상하지 않나. 답사 중에 “디테일을 추구하기보다는 공간 안에서의 경험이 어떻게 변할지 더 많이 고려한다”고 했던 말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관계를 도식화해 매스 배치나 동선 다이어그램을 작업할 것이고. 지속적으로 관계와 공간을 강조하는 이런 태도는 완결된 조형을 향해 가는 게 아니라 기하학을 도구로 다룰 뿐, 최종 목적지로 보지 않는 것 같다. 

유: 그런 걸 잘 보여주는 게 성실교회다. 예산 부족으로 마감, 디테일, 장식적 요소를 다 걷어내면서 오히려 우리가 추구하는 다양성의 본질이 더 잘 드러났다. 

 

방: 거칠게 마감된 콘크리트 계단, 농촌에서 볼 법한 파란 지붕과 부패한 나무 마감의 끝단이 드러난 창고 같은 건물, 과한 장식과 거친 마감이 콜라주된 듯한 양옥 주택이 차분하게 신축된 교회의 예배당, 교육관과 앙상블처럼 어우러져 도심에서 보기 힘든 목가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유: 학생 시절 고민했던 생각의 흔적들이 현재 작업에서 발견된다는 게 흥미롭다. 학부 졸업설계 때 언덕을 뚫고 가는 콘크리트 박스를 만들었는데, 심산파크에서도 그런 언어가 드러난 것 같고. 성실교회도 사무동은 작은 방들이 쭉 나열된 공간에서도 가운데 실을 유리로 만들어서 안쪽 사무실에서 마당까지 보게 했는데, 이렇게 시선이 연결되는 것도 육면체에 개구부를 내는 방식에 따라 공간의 다양성을 추구했던 졸업설계와도 이어지는 것 같다. 사람들이 사고하는 방식이라는 게 약간 세련되어질 수는 있을지언정 잘 변하지 않는 것 같다. 나의 경우 다양성을 담아내고자 하는 것이고. 일종의 사고 패턴인데 MIT에는 셰이프 그래머(Shape Grammar)라는, 개인의 사고패턴을 인공지능으로 연결시키는 학문이 있다. 특정 건축가가 디자인을 발전시켜나가는 특정한 설계 패턴, 즉 문법을 찾아내는 거다. 업력이 쌓이다 보면 그런 패턴도 자연스럽게 분석될 만큼 개인마다의 방향성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성실교회 프로세스 다이어그램 

 

 

관계 설정의 도구들

방: 건축적 사고를 발전시켜 나가는 툴이 무엇이냐에 따라 설계도 달라질 텐데, 어떤 매체로 스터디하나? 

유: 우리 사무실의 프레젠테이션에서 최종적으로 가장 중요한 게 투시도다. 마지막 순간까지 각도, 위치를 섬세하게 지정하고 업데이트한다. 대학을 다닐 때도 나는 투시도 숫자가 제일 많은 학생이었다. 설계에 캐드가 도입된 이후부터프레젠테이션할 때 투시도만 15장씩 제작했고, MIT에 다닐 때도 모형을 1:100으로 크게 제작해 캠 카메라를 모형 안으로 집어넣어 촬영했다. 단면적 변화가 어떻게 시뮬레이션 되는지를 스터디하기 위해서다. 영화감독과도 비슷한데, 내가 전달하려는 미장센이 있지 않겠나? 그래서 투시도 작업이 디자인의 마지막 단계까지 가고, 요즘은 그걸 연결해서 동영상을 제작하고 있다. 

 

방: 건축가들이 관성적으로 그리는 드로잉도 사실 건축교육 시스템 안에서 체득되는 표현의 결과물이겠지만 보자르의 에스키스와 파르티에 뿌리를 둔, 굉장히 응축된 내적 언어로 전수되는 것이지 않나. 앞서 어떤 기준선을 잡고 시작한다고 말할 때 노트 위에 수평선 하나를 그리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는데, 실제 초기 스케치나 드로잉은 어떻게 작업하는가? 

유: 스케치할 때 실선보다 점선으로 그린 화살표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관계를 표현하는 표식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성실교회 마당을 그릴 때 건물의 외곽선보다 예배당에서 마당을 바라보는 시선, 교육관에서 마당 쪽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각각 점선으로 표시해 시각적 관계도 같은 걸 그리는 거다. 나머지의 벽과 기둥은 점선 화살표를 만들기 위한 보조적 장치일 뿐, 그게 목적은 아니다. 

 

방: 선적 접근이나, 플랫폼에 대한 인식이 추상적 조형이나 공간으로 연결되지는 않는 것 같다. 모더니스트들이 사람으로 붐비는 공간을 상상하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현대 라이프스타일로 넘어와서는 모더니즘의 시적인 추상이 아니라 사람들로 북적이는 전혀 다른 정동을 떠올리게 되는 것 같고. 

유: 그 지점에서 다른 건축가들과 우리의 관점이 다른 것 같다. 디테일이나 공간의 추상성을 높이는 데 관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세심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건축 자체보다 그 안에 담긴 사람에 시선이 가기 때문이다. MIT 시절에 썼던 논문에도 ‘공간은 정보’라고 이야기하면서, 정보가 세 가지로 나뉘는데 그중 하나로 액티비티를 꼽았다. 어떠한 행위가 일어나느냐가 건축을 정의하는 데 1/3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니 스케치에서도 실선보다 점선이 더 중요해지는 거고. 그래서 최근 도면이나 사진에는 사람을 넣는 쪽으로 작업해 실제 쓰임의 다양성을 보여주려고 한다.  

 

 

 

유현준의 학부 시절 졸업설계, 아날로그 vs 디지털의 참고 이미지 

 

유현준의 학부 시절 설계작업, 압구정동 커뮤니티 센터(1991)의 엑소노메트릭 

 

 

매체와 표현

방: 유튜브 영상에 설계를 도출해나가는 과정이 명확하게 드러나다 보니 사전 공부를 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됐다. 출판, 방송, 유튜브 채널 등 대중적 활동을 지속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유: 가장 큰 이유는 내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축가는 자기 표현의 욕구가 강한 사람들인데, 건축주가 찾아오기 전까지 혼자 아무 일도 시작할 수 없지 않나. 나 역시 30~40대에 설계할 기회를 얻기 어려워 출판을 통해 이를 해소했다. 실제 글을 쓰면서 생각이 많이 정리되기도 했고. 물론 대학에서 강의했던 경험이 바탕이 됐을 것이다. 이런 것들이 쌓여 유튜브 채널까지 이어지게 됐다. 방송이 아닌 개인 채널이다 보니 내가 편집권을 가지고 있어서 제약이나 왜곡 없이 발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방: 대중과 소통이 잘 된다는 말에는 전문적인 내용을 일반인들의 언어로 잘 번역하고 도식화한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매체나 대상에 따라 설명에도 차이를 두는가? 

유: 내가 하고 싶은 주제의 이야기를 할 뿐 타깃을 고려하지는 않았다. 주변에서 간결하고 쉽게 설명한다고 많이들 이야기하는데,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내가 건축 책을 안 읽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심지어 건축가들의 작품 설명도 잘 읽지 않고, 건축가들과 잘 교류하지도 않는다. (웃음) 그들만의 리그가 되면 갈라파고스 군도처럼 고립되지 않겠나. 일각에서 전문가답지 않다고 비판하기도 하는데, 사실 분석이나 해석의 차이를 오히려 칭찬으로 받아들이는 편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에 함몰되지 않고 건축가로서 창의적인 사고를 전개하려면 논리 비약이 발생할 수도 있다. 건축은 물리학처럼 정답이 있는 게 아니기에, 허점이 있더라도 나의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건축이 예술에 가깝다고 본다. 우리 사회의 풍토 때문인지, 지금의 건축가들은 직관에 따른 선택과 판단의 과정을 드러내는 걸 두려워하는데 좀 자유로워지면 좋겠다. 들뢰즈를 인용하는 피터 아이젠만보다 누구도 인용하지 않고 ‘너는 무엇이 되고 싶냐’고 벽돌과 대화한 루이스 칸을 더 존경하는 이유다. (웃음) 

 

방: 시선과 관계를 우선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건축을 설명하는 언어와 표현 매체의 선택도 작업과 결부해 생각할 수 있겠다. 스케치, 평면, 단면, 사진, 영상, 글 등 표현 매체에 따라 사고하는 방식도 영향을 받지 않나. 현재 건축교육이 건축의 내적 자율성을 추구하는 작가주의 건축가들을 양성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고, 우리 역시 모더니즘적 사고 체계 안에서 기율을 형성하는 도면, 드로잉과 같은 도구를 통해 사고하도록 훈련받았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고 사회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에이치와이피건축사사무소가 추구하는 방향은 그 테두리에서 조금 벗어난 쪽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일종의 커뮤니케이터라고 볼 수 있는데, 그래픽 툴과 영상, 개인 미디어가 보편화된 시대의 건축가상이라고 할까. 건축계 내부만이 아니라 그 바깥을 향해 열린 언어로 소통하는 것에 여러 가능성이 잠재할 수 있으리라고도 본다. BIG를 떠올리게 하는 단순화된 도식으로 설명되는 프로세스, 동시대와 호흡하며 건축가의 고민과 지향점을 지속적으로 발신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말이다. 그러한 힘이 지역에서 설계공모를 통해 경쟁할 때도 심사위원뿐 아니라 발주처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이 될 수도 있을 테고. 건축을 설명하는 언어의 변화 뒤에는분명 그것에 호응하는 사회의 니즈가 있을 테니 말이다. 

 

 

 

 

월간 「SPACE(공간)」 705호(2026년 08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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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
유현준은 홍익대학교 교수이자 미국 건축사(AIA, NCARB)로, 전지영과 함께 에이치와이피건축사사무소를 이끌고 있다. 하버드대학교 디자인대학원,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연세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리차드 마이어 앤드 파트너스 아키텍츠에서 실무를 했다. 시카고 아테나에움 아키텍처 어워즈, 독일 디자인 어워드, 젊은건축가상, 김수근건축상 프리뷰상, 대한민국공간문화대상 대통령상 등 국내외 다수의 수상 경력이 있으며, 다양한 책과 방송을 통해 건축으로 세상을 조망한다고 해서 ‘인문건축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유튜브 채널 ‘셜록현준’은 현재 145만 명의 구독자를 가지고 있다.
전지영
전지영은 에이치와이피건축사사무소의 대표이자 대한민국 건축사다.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건축설계분야 석사학위를 받았고, 창조건축과 미국 로스앤젤레스 기반의 모포시스에서 실무 경험을 통해 전문적 기반을 다졌다. 2018년부터 에이치와이피건축사사무소에서 유현준과 함께 작업하고 있다. 대규모 문화·복합시설부터 소규모 종교 및 주거 건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규모와 프로그램을 아우르는 폭넓은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는 건축·도시·조경·문화가 교차하는 지점을 탐구하며 사무소의 설계 철학을 깊이 있게 확장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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