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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형의 건축을 말하다: 〈주름과 덧댐〉

글
김보경 기자
자료제공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브이에이에이 건축사사무소, 비유에스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진행
김보경 기자

「SPACE(공간)」 2026년 8월호 (통권 705호)

 

비유에스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의 ‘관리가 소홀해진 물받이는 훌륭한 화분이 된다’(2026) 설치 전경 Image courtesy of Clayarch Gimhae Museum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큐빅하우스

2026. 4. 17. ~ 11. 29. 

 

 

점토(clay)와 건축(arch)을 뜻하는 단어를 합해 이름 붙인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이하 클레이아크)이 개관 20주년을 맞았다. 산 넘고 물 건너 도착한 미술관은 한산했다. 평일이기도 했고, 주 전시관인 돔하우스가 작년 11월부터 시작된 리모델링 공사로 문을 닫은 탓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개관 20주년 특별기획전에 세월의 풍파를 맞아 건축물에 새겨지는 ‘주름’과 이러한 시간의 흔적을 돌보는 ‘덧댐’을 주제로 가져온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을 터다. 세라믹 가든을 따라 오르면 20주년 기념 전시 〈주름과 덧댐〉이 열리고 있는 큐빅하우스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번 전시는 20년의 세월을 담은 미술관의 주름을 어떻게 보여주며, 어떻게 덧대고 있을까?​

 

 

 

이윤석의 ‘아마추어 아마추어’(2026, 가운데)와 ‘서산 좋은 집’(2026, 오른쪽 화면) 설치 전경 Image courtesy of Clayarch Gimhae Museum

 

 

사사로운 흔적이 만들어가는 건축

〈주름과 덧댐〉을 기획한 정성규(CAC 공동디렉터)는 건축을 특정 시점에 완성되는 결과물이 아니라, 사용과 유지보수, 환경의 개입이 겹겹이 쌓이며 계속 달라지는 상태로 보자고 제안한다. 그동안 건축에 생기는 틈이나 균열, 흔적은 감추거나 없애야 할 결함으로 여겨왔지만, 그런 변화의 흔적이야말로 물과 공기, 빛이 드나들며 만들어낸 결과이자 건축이 살아 있다는 증거라 말한다. 전시에는 건축가, 도예가, 공간디자이너, 그래픽디자이너, 사운드아티스트 등 다양한 분야의 여섯 작가(팀)가, 이 중 건축가로는 비유에스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공동대표 박지현, 조성학, 이하 비유에스)와 이윤석(브이에이에이 건축사사무소 대표)이 참여했다. 

​사사로운 경험으로부터 건축의 실마리를 찾는 비유에스는 이번 전시에서 여섯 작업을 통해 일반적으로 건축의 부수적 장치, 숨겨야 하는 주름이라 여겨지는 물받이와 선홈통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물의 흐름 조절이 특히 중요한 목구조를 즐겨 사용하는 비유에스에게 빗물받이는 유용한 설비일 뿐 아니라 건축의 다양한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는 중요한 요소다. 일월일지(2022), 이우집(2023), 낮은 공방과 높은 주방의 집(2023), 회현리주택(2023)의 사진과 모형, 스케치는 실제 건축물에서 빗물받이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장면을 보여준다.(「SPACE(공간)」 682호 참고) 이들은 “물이 떨어지는 위치, 흐르는 방향, 그리고 그로 인해 생기는 소리와 풍경들.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비가 오거나 새벽이슬이 모이는 날에는 그런 것들이 조금 또렷하게 보입니다”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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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y of Closing’(2026)으로 시작하는 전시 동선을 지시하는 김유나의 그래픽 작업. 이외에도 미술관 벽, 바닥, 계단 등 곳곳에서 동선을 지시하는 그래픽 작업을 발견할 수 있다. Image courtesy of Clayarch Gimhae Museum

 

김민선의 ‘펼쳐진 돌-문고리’(2026) Image courtesy of Clayarch Gimhae Museum

 

 

2023 서울마루 공공개입 공모 제안작 ‘빗물받이 파빌리온’(2023)은 그늘 하나 없는 옥상 광장인 서울 마루에 빗물받이로 만든 처마/차양 파빌리온이다. 폭염과 폭우가 번갈아 찾아오는 서울의 여름, 비가 그친 뒤 빗물받이에 고인 물이 햇빛을 되비추며 도시의 윤슬을 만들어낼 장면을 상상한 것이다. 

손길이 뜸해진 물받이들에 바람을 타고 날아온 낙엽들이 쌓여 물의 흐름이 더뎌지고, 지붕에 쌓인 흙먼지가 쓸려와 조금씩 쌓이면, 그 사이 씨앗이 싹을 틔우곤 한다. 그러면 물받이는 언뜻 그럴듯한 화분처럼 보인다.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한 설치 작업 ‘관리가 소홀해진 물받이는 훌륭한 화분이 된다’(2026, 이하 ‘관소물화’)는 빈집의 막힌 물받이들에 영감을 받아 화분 겸 루버 기능을 하는 물받이를 제안한다. 처마 바로 밑의 물받이를 제외하고, 그 아래 일정 간격으로 달린 물받이들은 물받이 기능을 하지 않는 가짜 물받이다. 대신 이들은 햇빛을 부드럽게 걸러내고, 때로는 식물이 자리 잡는 작은 화분이 된다.

이윤석은 비디오 작업 ‘서산 좋은 집’(2026)에서 건축가가 설계하지 않은 평범한 집의 생애에 주목했다. 25년간 단독주택에 살다 나이 들며 예전 같지 않아진 신체 변화로 이사를 결심한 한 부부의 이야기를 집을 떠나기 전 마당에서의 마지막 잔칫날과 이삿날, 그리고 부부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담아냈다. 좋은 인테리어 업자를 만나 단독주택을 짓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 입주 초반 열심히 정원을 가꾸던 기억, 직접 뜨개질을 해 피아노 페달에 옷을 입혀준 일 등 사사롭고도 현실적인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인터뷰는 작가의 유튜브 채널 ‘서울은 이상한 도시’의 ‘전세 혹은 월세’ 시리즈, 저서 『즐거운 남의 집』에서 줄곧 보여온 “집에 대한 이야기는 곧 삶에 대한 이야기”라는 태도의 연장선이다. 또한 건축가의 설명이나 도면 없이, 순전히 그 집에 쌓인 기억과 흔적만으로 집의 서사를 재구성한 영상은 건축물이 반복되는 변화와 지속적인 돌봄 속에서 진정한 ‘집’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집은 부서지고 수선되며 물리적으로도,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의 인식 속에서도 계속 자신의 존재감을 넓혀간다.

​설치 작업 ‘아마추어 아마추어’(2026)는 ‘서산 좋은 집’과 짝을 이뤄 이 관점을 협업 수공예 제작 구조로 확장한다. 작품명은 비전문가를 뜻하는 아마추어(amateur)와 골조를 뜻하는 아마추어(armature)의 합성어로 아마추어가 만든 골조 혹은 아마추어 골조라는 의미다. 작가는 ‘서산 좋은 집’의 아내가 집을 돌보기 위해 집안 곳곳에 필요한 것들을 뜨고 꿰고 꼬맨 행위에서 영감을 받아 천을 리본으로 묶고, 비즈를 꿰어 가림막을 만들었다. 리본 묶기, 비즈 공예처럼 반복적인 수작업이 쌓여 하나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이 작업은 건축이 특정한 전문가의 결과가 아니라 다양한 개인의 개입과 협업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점을 드러낸다.

 

 

 

​​(왼쪽)전시의 초입, 복도에 설치된 김민수의 ‘Way of Closing’(2026), (오른쪽)서민우의 ‘물은 관 모양으로 흐르고 새는 자리를 찾았다’(2026) 설치 전경 Images courtesy of Clayarch Gimhae Museum

 

 

주름을 수용하고 덧대며 만들어가는 미술관

서민우의 사운드 및 설치 작업 ‘물은 관 모양으로 흐르고 새는 자리를 찾았다’(2026)와 그래픽 디자이너 김유나의 ‘시간지도’(2026)는 클레이아크와 큐빅하우스에서의 경험을 새롭게 감각하게 만든다. 

서민우의 작업은 전신주의 전선 위에 앉은 새의 장면에서 출발해 선을 전면에 불러낸다. 벽과 천장으로 배선과 배관을 감추고 매끈한 면 중심의 질서를 만들어온 건축의 위계를 뒤집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미술관 뒤 저수지와 미술관 건물, 그리고 그 안을 흐르는 물을 하나의 연속된 시스템, 건축을 숨쉬게 하는 흐름의 매개로 보고, 저수지에서 유입된 물의 흐름과 건물 내부의 배관·전기 설비에서 나는 소리를 채집해 재구성했다. 물의 이동은 소리의 형태로 번역되고, 소리는 다시 선—배관으로 만든 조형—을 따라 분배되며 공간을 재구성한다. 건물이 고정된 구조물이라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흔들며, 건축은 물·소리·공기의 흐름이 끊임없이 순환하며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존재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김유나의 ‘시간지도’는 공간을 통과하는 시간과 경험을 데이터로 변환해 가시화한다. 큐빅하우스 입구에서부터, 전시실, 아트숍에 이르는 동선을 따라 각 공간을 통과하기 위한 걸음 수, 이동 시간, 거리를 수집하고, 이 수치를 시계의 회전 매커니즘으로 변환해 물리적인 장치로 구현했다. 다층의 레이어로 구성된 시계장치는 전시를 관람하며 이동한 순간의 경험을 다시 호출한다.​

공간디자이너 김민수의 ‘Way of Closing’(2026)과 이윤석의 ‘벽돌, 자갈, 샬레’(2026), 도예가 김민선의 ‘펼쳐진 돌-문고리’(2026), 그리고 김유나 작업의 일부는 본래 전시 공간으로 쓰이지 않던 복도와 테라스, 나아가 미술관의 문손잡이와 벽, 안내 표지까지 큐빅하우스 전체를 아우르며 미술관에 덧댐을 실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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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에 진행된 전시 연계 워크숍 현장 모습 ​Images courtesy of Clayarch Gimhae Museum​

 

이윤석의 ‘벽돌, 자갈, 샬레’(2026) ©Various Artists and Architects... 

 

 

김유나가 전시장의 곳곳에 작업한 전시 동선 지시 그래픽을 따라 이동하면 ‘Ways of Closing’부터 마주하게 된다. 이 작업은 천과 와이어, 철로 만든 가림막으로, 매끈한 큐빅하우스의 유휴 공간(복도)과 전시실 입구, 갤러리 6 안쪽 공간에 설치됐다. 부드러운 주름을 덧대어 시선과 햇빛을 부드럽게 조절하는 동시에 정적이던 동선을 길게 우회하도록 만들며 새로운 리듬을 부여한다. 손쉽게 해체할 수 있도록 설치된 이 가림막은 계절 따라 바꿔 다는 커튼처럼, 건축을 돌보는 하나의 가변적인 조건이 된다.

‘펼쳐진 돌-문고리’를 잡고 문을 열면 투명하고 널찍한 원통형 화분이 줄지어 놓인 테라스로 들어설 수 있다. 이윤석의 ‘벽돌, 자갈, 샬레’다. 노후되어 리모델링이 필요했던 기존 목재 데크 테라스를 별도의 습식 공사 없이 가장 일상적이고 경제적인 재료인 벽돌과 자갈을 쌓고, 묶고, 조립해 새로 단장했다. 샬레는 실험실에서 균을 배양하는 데 쓰는 얕은 원통형의 유리그릇 샬레를 연상시키게 만든 플랜터 박스에 붙인 이름이다. 플랜터 박스 샬레 또한 볼트와 플라스틱 등 구하기 쉬운 재료로 만들어졌다. 간단한 재료와 구법으로 조성한 이 야외 공간은 누구나 확장하거나 개입할 수 있는 화분 실험실이 된다. 

〈주름과 덧댐〉은 전시 연계 프로그램을 통해 계속 새로운 경험을 덧대어 가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전시 주제를 소리로 옮긴 음악 공연이 열렸다. 주름과 덧댐을 소리의 조합으로 표현한 드럼과 바이올린 연주였다. 6월에는 이윤석이 진행한 워크숍에서 관람객들이 직접 미니 샬레 화분을 만들어 식물을 심었다. 배양 플레이트 위에서 균들이 번식하듯, 야외 공간의 샬레도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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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SPACE(공간)」 705호(2026년 08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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