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6년 8월호 (통권 705호)
오늘의 건축가
‘오늘의 건축가’는 다양한 소재와 방식으로 저마다의 건축을 모색하는 젊은 건축가를 만나기 위해 기획됐다. 그들은 무엇을 좋아하고, 탐색하고, 고민하고 있을까? 또 다양한 지역의 건축가들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고 있을까? 「SPACE(공간)」는 젊은 건축가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기보다는 각자의 개별적인 특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제주 별장 리모델링 모형
인터뷰 이선민 동그라미세모네모 건축사사무소 대표 × 이소운 기자
제주에 나타났어요
이소운: 사무소 이름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어요. 이렇게 귀여운 이름은 잘 없잖아요. ‘원삼각형사각형’이라고 했으면 전혀 다른 느낌이었을 것 같은데요. (웃음)
이선민: 감사합니다. 사실 사무소를 개소할 때 제일 고민을 많이 했던 게 이름이에요. 내가 하는 사무소니까 나의 정체성도 어느 정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렇다고 나를 너무 전면에 내세우고 싶지는 않은 거에요. 그래서 제 이름을 이루는 각각의 글자를 도형으로 바꿔봤어요. 말씀주신 것처럼 ‘원삼사’도 생각했는데, 그건 아무래도 좀 이상하더라고요. (웃음) 길더라도 동그라미세모네모로 해야겠다 했죠.
이소운: 사무소가 생각보다 관광객이 오가는 대로변에 있더라고요.
이선민: 저는 연고도 없는 제주에 온 거잖아요. 귤밭 있는 조용한 곳도 좋지만, 그러면 아무도 찾지 않을 것 같았어요. (웃음)
이소운: 서핑은 제주에 내려와서 시작한 건가요?
이선민: 서핑은 7년 전쯤 입문했어요. 서울에서 회사를 다닐 때도 양양을 오가며 취미로 즐기던 활동이에요. 그것도 중문에 사무소를 낸 이유 중 하나예요. 중문색달해수욕장이 유명한 서핑 스폿이거든요.

제주 별장 리모델링(2026). 복도에서 중정 너머로 본 증축부 입면. ©studiofacet
이소운: 태어난 곳도 서울이고, 학업과 실무도 서울에서만 하셨죠. 명지대학교를 졸업한 뒤 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이하 정림)와 솔토지빈건축사사무소(이하 솔토)에 다니다가 제주로 오게 된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이선민: 서울에서 일하는 동안 건강 문제가 있었어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늘 앞서는 사람인데, 체력이 그걸 못 따라갔던 것 같아요. 정림을 다닐 때도 그렇고 솔토를 다닐 때도 그렇고, 건강 문제 때문에 중간중간 휴직을 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조금 쉬었다가 다시 복귀를 해도 그게 계속 반복되는 거에요. 그러다 큰 수술을 권유받은 것을 계기로, 자연이 많은 곳에 가서 쉬엄쉬엄 해보자고 결정하게 됐어요. 가족들이 제주를 너무 좋아하기도 해서, 원가족이 함께 내려왔어요.
이소운: 이주와 개소가 거의 동시에 일어난 셈인데요. 원래 제주에서 사무소를 열고 싶은 생각이 있으셨나요?
이선민: 사실 개소할 생각은 없었어요. 제주에 내려와서 거의 3개월간 입사할 곳을 찾았는데, 제가 연차가 있다 보니 구직이 쉽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이왕 겪을 거면 젊을 때 버텨보자는 생각으로 독립한 거에요. 막상 마음먹고 보니 완전한 백지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겠더라고요.
이소운: 계획된 독립은 아니었군요. 제주 건축계 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은 어땠나요? 제주가 외지인에게 다소 폐쇄적인 사회라는 인식도 있잖아요.
이선민: 제가 여기서 태어나고 활동하던 사람이 아니다 보니까 기존 커뮤니티 안에 들어가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그렇다고 그분들이 아예 마음을 안 내주시는 건 아니에요. 제주건축사회에서 진행하는 제주건축문화제 위원으로 3년 넘게 활동하면서 지역사회에 있는 건축가분들을 많이 알게 됐어요. 그러면서 하나씩 벽을 허물어 나갔던 기간이 있었죠.
이선민

(왼쪽)동그라미세모네모 건축사사무소 내부, (오른쪽)제주에서 행복한 집(2025) 중목구조 모형
개인의 집과 모두의 집
이소운: 개소 후 첫 준공작이 제주에서 행복한 집(2025)이에요. 단순해 보이는 박공지붕의 단면이 곡선 구간을 통과하며 내외부 컨디션이 계속해서 달라진다는 점이 재미있어요. 어떻게 이런 모양의 집이 나온 건가요?
이선민: 건축주 부부가 처음 찾아왔을 때 이미 설계도가 있었어요. 막상 지으려고 하니 이건 아니다 싶으셨나 봐요. 정사각형에 가까운 주택이었는데, “나는 네모 집은 싫다” 하셨죠. 그래서 네모만 아닌 다른 대안들을 여러 개 생각하다가, ㄱ자로 배치했던 안에서 모서리 부분을 굴렸어요. 대지가 다각형으로 구부러진 형태였기도 하고, 너무 폐쇄적이지 않은 집이었으면 했거든요. 주변으로 뷰를 최대한 열어주려 했어요.
이소운: 전체가 중목구조에요. 솔토에서의 실무 경험과 관련이 있나요?
이선민: 솔토에서 목구조를 처음 접했죠. 저는 연차가 어느 정도 있어서 연면적이 큰 프로젝트들을 주로 했기 때문에 100% 목구조 프로젝트를 경험해보지는 못했어요. 그래도 후배들이 하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고, 소장님이 하시는 말씀을 계속 듣다 보니, 막상 제가 시작했을 때 아주 낯설진 않았던 것 같아요.
이소운: 올해 제주 별장 리모델링 프로젝트도 완공됐어요. 개소 이후 자연스럽게 주택 의뢰를 많이 받으시는 것 같아요. 건축주를 만나면 처음에 어떤 것들을 물어보나요?
이선민: 이전에 다녔던 곳들에서는 한 번도 주택을 해 본 적이 없었어요. 막상 경험해보니 규모가 작을 뿐이지 해결해야 하는 것들은 훨씬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질문이 중요해지더라고요. 이전의 삶은 어땠는지, 어떤 유형의 집에서 살았는지, 제주에 와서는 왜 주택을 짓고 싶은지, 혹은 왜 주택에서 살고 싶은지를 여쭤봐요. 1차 요구를 파악한 다음에는 건축주의 라이프스타일을 파악하려고 노력해요.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시간대에 어떤 풍경을 어느 창을 통해 보고 싶은지 같은 것도 구체적으로 여쭤봐야 해요.

제주에서 행복한 집 ©studiofacet

제주에서 행복한 집 ©studiofacet
이소운: 설계공모에도 꾸준히 참여하셨어요. 쉬엄쉬엄 하기 위해 제주에 오셨다고 하셨는데, 언제 쉬셨나 싶을 정도로 바쁘게 지내셨더라고요.
이선민: 사무실 운영을 위해서라기보다, 공공건축을 정말 하고 싶어서요. 건축가가 누릴 수 있는 좋은 활동 중 하나라고 생각하거든요. 아시다시피 공공건축은 당선되지 않으면 기회가 없잖아요. 그래서 계속 도전하는 거고, 그 감각을 놓치고 싶지 않아요. 사무소를 개소하고 스스로에게 약속한 것 중 하나가 상반기, 하반기에 공공건축 하나씩은 꼭 하자는 것이었어요. 해마다 두 개 이상은 도전했던 것 같아요. 제주 공모만 나가는 이유는, 제가 개소하고 활동하고 있는 지역에서 공공건축의 첫 깃발을 꽂고 싶은 욕심이 여전히 있기 때문이에요. 요즘은 공공건축에 도전하는 분들이 모두 너무 잘하기 때문에 더 치열하게 해야 기회가 오겠지만요.
이소운: 민간 프로젝트와 비교했을 때 소장님이 공공건축을 대하는 태도는 어떻게 다른가요?
이선민: 최대한 개인적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공공건축은 내가 개인적으로 느꼈던 경험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봐요. 다수를 위한 건물이다 보니 어느 한 일반인에 특정해서는 안 되죠. 예를 들어 학교는 어린이들이 대상이지만 교사도 같이 쓰고, 학부모도 오는 공간이잖아요. 개소 이후 계속 만나고 있는 주택 프로젝트와는 완전히 다른 영역에 서서 프로젝트를 바라봐야 해요.

제주 별장 리모델링 ©studiofacet
제주 별장 리모델링 ©studiofacet
차분히 단단하게
이소운: 소장님은 동그라미, 세모, 네모가 공간을 이루는 기본 도형인 것처럼 기본에 충실한 건축을 지향하신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실제 설계 과정에서 기본을 지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이선민: 건축은 호흡이 워낙 길잖아요. 과정에서 기본 혹은 본질을 놓치기 시작하면 협력사에게서든, 행정을 처리하는 주무관에게서든, 시공사에게서든 너무 많이 휘둘리게 되는 것을 봤어요. 제가 계획설계부터 실시설계까지 열심히 그린 도면들이 그대로 완공되는 것을 보기 위해서는 그걸 지키는 게 너무 중요해요. 그래서 도면을 그리거나 모델링을 하거나 건축주들과 협의할 때, 어떤 역경이 와도 이것 하나만은 정말 포기하지 않고 지키겠다는 것을 세우고 작업하는 편이에요. 예산이나 일정 문제 때문에 협의하고 타협해야 하는 단계가 오더라도, 기본이 뭉개져서 완전히 다른 형태가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거죠.
이소운: 프로젝트마다 그 기준은 다르겠고요.
이선민: 각각 다 달라요. 제주에서 행복한 집의 경우에는 곡선 부분이었어요. 사실 저는 정치수와 네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그 프로젝트가 저에게 특별하면서도 힘들었어요. 도면에서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게 정치수가 아닌 건데, 곡선 구간에서는 다 소수점으로 떨어져요. 그것을 현장에서도 작업이 가능하게끔 정리해서 도면에 나타내는 일이 어려웠고, 그래서 더 중요했어요. 제주 별장 리모델링의 경우에는 목구조 부분이 가장 중요했어요. 중목구조는 경량목구조와 다르게 치수 싸움인데, 정확도가 떨어지면 현장에서 계속 오류가 생기거든요. 그런데 리모델링이다 보니 기존 건축물이 가진 치수가 건축물대장과도 달랐어요. 그래서 중목구조를 흐트러짐 없이 가져가는 것이 기준이었죠.

제주 별장 리모델링 내부 ©studiofacet

제주 별장 리모델링 내부 ©studiofacet
이소운: 2021년에 개소해서 이제 6년 차예요. 지금은 어디쯤 와 있다고 생각하세요?
이선민: 길게 할 거니까, 그렇게 봤을 때 저는 정말 아직 초입에 있는 것 같아요. 단순히 5년, 6년 시간만 흐른 것이지, 건축적으로 크게 성장했다고 보지는 않아요. 아직은 제 색깔을 크게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제가 좋아하는 목구조는 계속하고 싶기 때문에 그 방향성은 지켜나가고 싶어요.
이소운: 처음 제주에 오게 된 계기가 건강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었잖아요. 건축가로 지속 가능하게 살아가기 위한 방향에 대해서도 생각을 많이 해보셨을 것 같아요.
이선민: 결국 이선민의 삶과, 동그라미세모네모 건축사사무소의 일을 균형있게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그게 무너졌을 때 나를 파괴하는 힘을 이미 겪어서 알고 있거든요. 제주에 내려와서는 이 균형을 어느 정도 찾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자주 서핑을 하면서 해소한다거나, 자연환경이 훌륭한 곳이 많으니 차에 캠핑 의자를 싣고 다니다가 길 가다 좋은 풍경이 있으면 꺼내서 멍하니 앉아 있기도 해요. 그렇게 생각을 비우고 몸이 힘들었던 것을 벗어버릴 때, 다시 건축 쪽으로 힘을 얻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 균형을 잘 맞추는 게 앞으로도 중요하고, 제가 해나가는 건축보다 더 잘하고 싶은 일이기도 해요. 사실 예측하셨다시피 서울에서의 업무 시간과 크게 다르지는 않아요. (웃음) 아무래도 혼자 일하다 보니까요. 그래도 강도에 있어서는 조금 내려놓은 측면이 있어요.
이소운: 균형을 맞추기 위한 소장님의 루틴이 궁금해요.
이선민: 겨울을 제외하면 아침에 운동을 하고 출근해요. 서핑 시즌에는 새벽 5시 반쯤 입수해서 두 시간 정도 파도를 타고 출근하고, 저녁에도 물때가 맞으면 퇴근 후에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일을 하기도 해요. 야근은 여전히 많지만, 중간에라도 운동이나 서핑으로 한 번 끊어주려고 합니다. 주말 출근은 정말 싫어하고요. (웃음)

이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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