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6년 9월호 (통권 706호)

생각이 건축이 될 때
“나는 지쳤어. 너는?” 종이컵 바깥으로 흘러내린 호떡인지, 스러져 내린 아이스크림 봉우리인지 모를 최문규(연세대학교 교수)의 스케치를 봤다. ‘30년 넘게 건축을 해온 선배 건축가의 마음에 이런 순간이 있구나.’ 친밀함인지 안도감인지,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다양한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스케치들과 달리, 최문규의 말과 건축은 명쾌하고 단순하다. 자의적인 비례나 형태보다는 생각을 전달하는 데 집중한다는 최문규는 세상의 익숙한 관행에 의심을 품고 대안을 고민하는 데서 출발해 그것이 명확하게 읽히도록 설계를 다듬어간다. 최문규의 근작을 다루는 「SPACE(공간)」 9월호 프레임은 간단명료한 생각이 ‘사용자를 압도하지 않는’ 간명한 건축으로 드러나기까지 어떤 사고와 과정이 있었는지 되짚어보는 여정이기도 하다.
이토 도요 건축사사무소, 한울건축을 거쳐 1999년부터 가아건축사사무소를 이끌어 왔으며, 오랫동안 교육자로 헌신해온 대학에서 막 퇴임한 최문규는, 다작을 하지 않되 작업마다 인상적인 족적을 남겼다. 그의 건축은 세상에 대한 질문이자 대안이고, 그 대안은 다시 확장된 질문으로 이어지는 사고의 과정을 보여준다. 이번 호에서 소개하는 대구간송미술관(2024), 서울대학교 의학도서관(2024), 박서보미술관(2026) 역시 전작들로부터 질문을 이어받는다.
그는 자신의 첫 번째 공공 건축이기도 한 숭실대학교 학생회관(2013)에서부터 만남의 장소로서 대학 건물을 고민했다. 그러한 생각은 연세대학교 국제캠퍼스 진리관(2013)에서는 캠퍼스 공간으로 확장되었으며, 서울시립대학교 100주년 기념 시민문화교육관(2018)은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대학 건물의 역할로 생각을 넓힌 경우다. 서울대학교 의학도서관에는 이질적인 맥락에 명료하게 대응하면서, 환하게 불을 밝히고 공부하는 학생들의 풍경이 지친 환자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땅의 모양과 역사적 흔적을 살피고 복잡한 삶의 현실을 끌어안는 태도는 세 작업 모두를 관통한다. 특히 대구간송미술관은 대구 사람들에게 중요한 팔공산을 조망할 수 있는 입구부터, 지붕, 외부 공간을 시민들이 언제나 이용할 수 있는 공원의 일부로 계획했다. 땅과 건축 그리고 풍경을 통합하며 권위적 조형성보다는 일상적 공간이 펼쳐지는 공간적 민주주의를 실천한 셈이다.
이러한 태도는 박서보미술관에서도 이어진다. 연희동 주택가의 좁은 도로에서 뒤로 물러서며 공공 가로의 폭을 넓히고 건물의 모서리를 여는 방식으로 동네를 여유롭게 만들었다. 가용 대지가 넓지 않다는 제약 속에서 밀도 있는 평면과 단면으로 해법을 찾았다. 도시의 가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인사동길을 건물 안으로 끌어들인 쌈지길(2004)이나 대지의 단차를 이용해 밀도 높은 도시 가로변에 커다란 ‘틈’을 만들어낸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2015) 등에서부터 이어진다. “쌈지길에 대한 칭찬과 공감이 나를 오랫동안 이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는 그의 말처럼, 도시 속 건축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는 그의 오랜 화두다.
대구간송미술관이 큰 규모에도 불구하고 지형의 단차를 활용하는 전략으로 인해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 건축이라면, 박서보미술관 2층 슬래브에 위에 얹힌 8m 높이의 큐브 전시장은 단순함을 직관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교한 구조와 마감이 동원됐다. 이번 기획을 위해 최문규와 대화를 나눈 배형민(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은 명료함과 간명함, 그것을 공간적으로 구현하는 기율과 규범에 대해 논하며, “건축적 간명함을 구현하기 위한 평면과 단면의 문제를 구조와 디테일의 문제와 연결시키는 모더니즘의 원칙들이 이번 작업들의 핵심”이라고 짚어낸다.
편집장 김정은



「SPACE(공간)」 2026년 9월호 (통권 706호) 목차
008 EDITORIAL
010 NEWS
024 FRAME
모더니스트의 기율: 최문규 + 가아건축사사무소
026 FRAME: ESSAY
지금 여기, 건축으로 질문하기_ 최문규
032 FRAME: PROJECT
대구간송미술관
042 FRAME: PROJECT
서울대학교 의학도서관
050 FRAME: PROJECT
박서보미술관
062 FRAME: DIALOGUE
간명함의 기율_ 최문규 × 배형민
072 PROJECT
포레149 ‐ 데모+건축사사무소
082 PROJECT
영도 복합문화공간, 캐노피 ‐ 건축사사무소 엠오씨
092 PROJECT
ㅅㄱ ‐ 임승모 + 정재헌
100 FOCUS
영은페이퍼 충무로 사옥 ‐ 내러티브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104 EXHIBITION
땅 아래 쓰인 도시의 기록: 인사도시유적전시관 개관_ 김제연
108 RELAY INTERVIEW: I AM AN ARCHITECT
질서를 읽고, 변화를 만드는: 정지영_ 정지영 × 이소운
114 SPACE ACADEMIA
두터운 경계: 서울과 도쿄 저층주거지 접점공간의 제도적 문법_ 남정민, 오동건, 이동훈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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