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6년 7월호 (통권 704호)
의미의 귀환, 메덩골정원과 페소 본 에릭사우센
철학자 니체에서 영감을 받아 출발한 양평 메덩골정원 내 현대정원이 공개되었다. 건축, 예술,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인문학 정원을 지향하는 메덩골정원은 건축가와 조경가들이 참여해 점차 그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지난해 9월 한국정원이 문을 열었고, 올해 6월 개장한 현대정원에는 페소 본 에릭사우센(공동대표 마우리시오 페소, 소피아 본 에릭사우센)의 위버하우스(레스토랑 및 야외극장)와 여러 파빌리온이 자리한다. 앙상블 스튜디오(공동대표 안톤 가르시아 아브릴, 데보라 메사)가 설계한 디오니소스(방문자 센터)는 현재 시공 중이다.
「SPACE(공간)」 7월호는 메덩골정원에서 페소 본 에릭사우센의 파빌리온들을 살펴보는 프레임을 준비했다. 문화와 자연 사이, 그 경계에 존재해온 정원의 원형적 의미를 떠올린다면, 예술을 통해 건축적 의미를 탐구해온 이들의 파빌리온 작업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장소에 인문학을 끌어들이려는 시도가 늘 기대에 부응해온 것은 아니었기에 자연과 철학적으로 대화하는 건축가로 평가받는 페소 본 에릭사우센의 이번 작업은 남다르게 읽힌다.
밀도 높은 이 현대정원은 조경가 기욤 고스 드 고르의 마스터플랜이 기반이 되었으며, 정원 초입의 분수 작업 이데아(POND)를 의뢰받으며 합류한 페소 본 에릭사우센은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은 위버하우스(REST)와 일곱 개의 파빌리온, 이를 잇는 길(PATH), 레지던시(PAIR), 화장실(BATH)까지 순차적으로, 때로는 동시다발적으로 계획했다. 각 파빌리온은 길로 연결되어 있으나 그 관계는 느슨하고, 개별적인 질서에 집중한다. 여기에는 회화로만 존재하는 자드(JARD)도 포함된다. 이 풍경화에는 두 건축가가 생활하며 작업하고 있는 칠레 남부, 안데스산맥 기슭의 농장에서 서식하는 약 5천 송이 꽃들이 가득 차 있다. 현대정원의 서곡처럼 보이는 이 회화는 “아메리카에서 한국으로 이어지는 상상의 여정”으로 읽을 수 있다. 페소 본 에릭사우센에게 사고의 도구인 그림은 물리적 실체를 갖는 건축만큼이나 중요하기에, 회화와 드로잉은 이번 프레임 지면에서 그에 걸맞은 자리를 확보했다.
그들의 작업에서 눈에 띄는 것은 원형, 사각형, 삼각형 등 명확한 기하학적 형태다. 인터뷰에서 두 건축가는 그들의 설계가 기하학에서 출발한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작업은 기둥, 바닥, 벽과 같은 기본적인 건축 요소가 단순한 기하학적 도형으로 형상화되어 장엄한 체험을 만들어낸다. 생텍쥐페리의 고전 『어린 왕자』에 대한 해석인 여정(JEUX)을 보자. “어떤 직접적 형상도 피한다”는 이들의 설명과는 달리, 그들의 작업은 무언가를 연상시킨다. 움푹 파인 형상은, 보이지 않는 점선을 그리며 완전한 구의 형상, 그리고 붉은 대리석은 사막을 떠올리게 한다. 현상학적 경험은 형이상학적 이야기로 수렴된다. 여섯 개의 원이 반복되며 만들어진 미로(NIET)는 “단 하나의 목적지도, 단 하나의 정답도 갖지 않는 연속적이고 유기적이며 생동하는 과정을 암시”하며 ‘아모르파티(amor fati )’라는 니체의 언어를 경유한다.
백진(서울대학교 교수)은 의미를 잠식당한 ‘생산의 시대(age of production)’에 페소 본 에릭사우센의 작업이 건축의 근원적 언어이자 인간의 신체에 담긴 우주적 비례인 기하학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고 말한다. “이들의 기하학은 현대건축이 제거해온 지면과의 긴장감, 습하고 그늘진 하부, 중력의 감각, 그리고 하늘로 솟아오르는 부유감을 다시 호출한다. 풍토와 풍화를 용인하며 꼿꼿이 서 있다. 세계로부터 독립된 객체가 아니라 대지와의 교감 속에서 ‘의미’를 획득한다.” 그리하여 이들의 ‘의미가 깃든 기하학’은 우리의 원초적 감각을 깨우며 인간 실존을 질문하는 흔치 않은 기회를 건넨다.
편집장 김정은
「SPACE(공간)」 2026년 7월호 (통권 704호) 목차
006 EDITORIAL
008 NEWS
020 FRAME
메덩골정원에 세워진 질서와 관계: 페소 본 에릭사우센
022 FRAME: INTERVIEW
자기-참조적 건축_ 마우리시오 페소, 소피아 본 에릭사우센 × 김정은, 박지윤
026 FRAME: PROJECT
자드, 영원, 이데아, 배스, 페어, 위버하우스, 미로, 대웅전, 여정, 자유, 거북선, 선비의 갓
072 FRAME: CRITIQUE
정향(定向)의 기하학_ 백진
076 PROJECT
문선재(文善齋) ‐ 염상훈 + 최선용
086 PROJECT
아라오월 주택 ‐ 리을도랑건축사사무소
096 FOCUS
메덩골정원 직원 숙소 ‐ 심플렉스 건축사사무소
100 ARCHITECT
우연성과 타자성을 품는 근원적 구조: GNWA_ GNWA × 김보경
114 REPORT
도시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공간: 배민라이더스쿨_ 김수영, 김철영 × 방유경
122 EXHIBITION
김창열 화가의 집 개관: 〈김창열, 물방울의 흔적〉_ 방유경
126 RELAY INTERVIEW: I AM AN ARCHITECT
민간 건축의 레시피: 유대우_ 유대우 × 이소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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