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6년 7월호 (통권 704호)

지하 2층 작업실 모습. 지하 공간은 난방이 되지 않아 김창열은 항상 난로에 불을 켜는 것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glimworkers
김창열 화가의 집
2026. 5. 29. ~ 8. 23.
앞으로는 능선을 넘어 서울 시내가 굽어 보이고 뒤로는 북한산 형제봉이 손에 닿을 듯 가까이 보이는 곳. 실향민으로 평생 고향을 그리워했던 고 김창열 화백(1929~2021)은 프랑스에서 귀국한 뒤 고향인 평안남도의 자연을 닮은 한적한 동네를 찾아 평창동 언덕에 거처를 마련했다. 김 화백의 요청으로 우규승이 설계를 맡아 1988년 완공된 집은 지상 2층, 지하 2층 규모의 중정형 주택으로, 경사지를 자연스럽게 따르는 배치와 천창 등 자연과 유기적인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우규승의 건축 언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상의 생활공간과 지하 작업실로 영역이 구분된 이 집에서 김 화백은 30여 년 동안 가족과 함께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다.
화가의 삶이 녹아 있던 집의 운명은 2021년 김창열이 작고한 뒤 공공에 넘겨졌다. 종로구가 2022년 주택을 매입하고 2023년 서울시 우수건축자산 등록을 마치면서,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하기 위한 초석이 마련된 것이다. 미술관으로 용도를 전환하기 위한 리모델링은 10년 전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2016)을 설계하며 김 화백과 인연을 맺었던 플랫폼 건축사사무소(최수연, 홍재승)가 맡았다. 김창열의 물방울 작업이 지닌 관념적 의미를 ‘회귀’라는 개념으로 형상화한 이 미술관은 현무암을 떠올리게 하는 짙은 검은색의 노출콘크리트 박스를 3×3 형태로 나란히 배열하고, 관객들이 빛(전시실)과 그림자(회랑)를 오가도록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북측 도로에서 진입하는 김창열 화가의 집 정면. 가족들의 생활공간이던 지상 2층을 철거한 뒤 옛 주택의 경사지붕을 평지붕으로 높이를 낮췄다. ©Hong Jaeseung
시간차를 두고 이어진 주택 리모델링에서 이들은 기존 주제를 공간 전체로 확장했다. 리모델링에 착수하며 지하 작업실은 그대로 유지하되, 긴 세월 거주하며 원안에서 변형된 생활공간은 현재 용도에 맞춰 재형성을 병행했다고 설명했다. ‘동굴 같은 곳에서 내면의 빛에 의지해 작업’하고자 했던 작업실의 경우, 공사 전 전체 공간을 3D로 기록하고 가구 배치부터 서가의 책 배열, 필기구와 스케치북, 화구 하나까지 김 화백이 머물던 상태를 그대로 재현했다.
새롭게 변화된 공간들도 기존 공간의 정서를 해치지 않도록 세심하게 조율됐다. 도로변에서 진입하는 북측 입구는 지상 2층을 철거한 뒤 평지붕으로 바꾸면서 높이를 1.5m 낮춰 방문객을 맞이하는 공간으로 전환됐다. 또한 관람 동선을 새롭게 구성하며 중정과 회랑을 중심으로 ㄷ자형에서 ㅁ자형으로 공간 질서를 재편해 ‘회귀’의 주제를 강조했다. 회랑에 지붕을 추가하고 막혀 있던 복도의 시야를 열어 작업실의 원형 천창이 놓인 중정을 중심으로 공간 흐름과 외부 풍경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했다. 한편, 수영장이 있던 1층 외부 공간은 계단식 정원으로 바꿔 관람 동선의 일부로 편입하고, 조망을 가로막던 지하층 천창의 경사지붕을 평지붕으로 바꾸고 층고를 낮춰 탁 트인 전망을 가지도록 했다.

기존 ㄷ자형에서 ㅁ자형으로 전환된 중정. 가운데 바닥에 보이는 원형 구조물은 지하 1층 작업실에 있던 책상 위로 빛이 떨어지는 기존 천창을 보존한 것이다. ©glimworkers
새단장을 마친 공간에서 진행 중인 개관전 〈김창열, 물방울의 흔적〉은 평창동 작업실에서 이루어진 한지 소재 작업에 주목해 종이를 매개로 한 작가의 작품을 시기별로 조망한다. 197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이어지는 물방울 작업의 변화와 함께 종이를 사용하는 방식의 변화도 살필 수 있다. 이번 전시에는 회화, 판화, 드로잉 등 총 24점이 소개되며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물방울’, ‘회귀’의 밑그림도 전시된다. 미술관은 유족이 기증한 작품 390점을 포함한 소장자료 2,600여 점을 순차적으로 교체하며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주택이자 아틀리에였던 공간을 미술관으로 바꾼 만큼 현장성과 실재성으로 몰입감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공간 구석구석의 활용도를 높여 건물 전체를 관람함으로써 그의 작품과 작업,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감상할 수 있도록 섬세하게 공간을 조직한 점에서 그렇다. 2층 카페 벤치에 앉아 통창 너머로 서울의 풍광을 감상하며 잠시 숨을 돌릴 때, 전시실에 걸린 ‘물방울’ 위 창을 통해 흔들리는 나뭇잎을 볼 때, 어두운 작업실의 책상 위로 천창의 빛이 떨어질 때. 관객들은 한 예술가의 시선을 곳곳에서 조우하며 그의 삶과 작품에 보다 생생하게 다가가게 될 것이다.

자녀들이 사용했던 지상 1층 공간 중 2 전시실 전경. 벽난로의 흔적이 남아 있다. ©glimworkers

지하 2층에 위치한 작업실 전경. 왼편에 보이는 대형 캔버스 작품은 1980년대 중반부터 화면에 천자문을 도입한 ‘회귀’ 시리즈의 일부다. 작업실은 생전에 김창열이 사용하던 모습 그대로 가구, 화구 등을 재현했다. ©glimworkers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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