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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 안 문학 공간: 성동 책마루

사진
노경(별도표기 외)
자료제공
김현준, 김태영
background

시나 구, 동 차원에서 문화를 내걸지 않은 곳을 찾아보기 힘들다. 여가를 즐길 여건이 생기고 자연스레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시민들이 체육과 예술 관련 시설, 행사 등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성동 책마루가 갖는 차별점은 어디에 있을까. 정원오(성동구청장)는 “구청은 공무원의 업무 공간으로 주로 기능해왔지만, 생각을 조금 바꾸어보면 구민의 민원창구이기도 하다”면서 이번 프로젝트의 목표를 “청사를 주민들이 공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건축가 김현준에 따르면 구청 직원이나 민원으로 방문하는 구민이 이번 프로젝트로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고 구청 시설을 자유롭고 직관적으로 이용해야 한다는 등 성동구청의 조건과 요구가 까다로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건축주로서의 태도나 적극성은 놀라울 만큼 뛰어났다. 우선 건축가의 의도와 아이디어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높았고 실행에서도 과감하고 합리적이었다고 한다. 공공이 발주하는 건축 프로젝트에서 촉박한 시간과 부족한 예산, 관행을 고집하는 태도와 불필요하고 과다한 보고 업무 등에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성동구청은 전혀 달랐다는 것이다. 

 

 

 

도너츠와 들어올린 판

실험적 공간구성과 개념에 흥미와 함께 우려가 따르는 것은 건축가가 계획한 대로 이용자가 움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용자의 행태와 동선 등을 면밀히 분석하고 예측해 공간을 기획해야 함은 마땅하지만, 건축가의 다이어그램이 그대로 튀어나와 현실화되는 공간은 없다. 김현준과 김태영은 위치와 관계를 다루는 위상학에 관심을 가지고 일련의 건축 작업을 해오고 있다. 공간의 위상이 건축적 질을 좌우한다는 그들의 설명에 동의하면서도, 각 공간을 7개로 이름한 소개 자료를 받아본 후 인위적인 명명과 분절이 관념에 갇힌 채 실제로는 공간으로 작동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걱정이 생기기도 했다. 이런저런 기대와 걱정을 안고 성동 책마루를 방문했다. 

입구로 들어서면 13.5m의 높은 천장고를 가지는 ‘무지개 아카이브’가 먼저 눈길을 끈다. 기존의 커튼월을 따라 빙 둘러진 책장에서 실제로 책을 꺼내 읽기는 어려우니 책마루 공간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무지개 아카이브는 구멍 1개가 뚫린 도넛의 위상이다. 한글 ㅁ자처럼 가운데가 도려내진 이 매스는 나머지 공간들과 분리된 채 독립된다. 도넛형 위상의 특징대로 순환하고 연속하는 성격을 가지는데, 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성동구 시민들이 기증한 책으로 빼곡히 채워질 ‘아카이브’의 맥락과 통한다. 김현준은 이 공간을 설명하면서 ㅁ자 주택을 예로 들었다. ㅁ자 주택의 중정은 외기와 접하는 외부 공간이지만 사적 성격을 띠고, 동시에 빛과 공기와 소리가 위아래로 통해 쾌적하다. 기존의 아트리움이 과도한 채광 문제를 가지고 있었던 것을 이번에 효과적으로 해결했다.

 

 

극적으로 높은 천장고가 무지개 아카이브의 특징이라면, 이와 반대로 어른이 걷기에 살짝 불편할 정도의 낮은 높이의 공간도 마련했다. 기존 ㄷ자 코어 벽을 따라 설치한 ‘북웨이’다. 장롱이나 책상 밑에 기어들어가곤 하는 어린아이들의 선호를 고려해 낮은 층고의 다락방 같은 공간을 만들었다. 1층 로비의 층고가 4m 정도로 높은 편이었는데, 이를 이용해 1층의 레이어를 분절해서 중층으로 들어올렸다. 벽으로 막거나 문을 달지 않았지만 위상이 달라지면서 다른 공간이 됐다. 폭이 좁고 천장이 낮은 이 북웨이 공간에서 어린이들은, 이미 훌쩍 자라버린 사람들은 할 수 없는 공간적 경험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어른들의 보호와 관찰을 받게 마련인 키 작은 어린이들의 공간을 오히려 어른들보다 높게 들어올려 어른들이 아이들을 올려다보고, 아이들이 어른들 위에 있게 역전시켰다.​

북웨이 아래는 아메리카노 한 잔이 1,500원인 북카페다. 1층의 중앙에 자리하는데 이 주변으로 ‘클라우드 서가’가 마련됐다. 모듈 책장을 벽처럼 이용했으나 완전히 막히지도, 뚫리지도 않은 벽이라 공간의 연결을 방해하지 않은 채 동선을 순환시킨다. 벽 모듈 안에서 아늑함을 느끼며 책을 읽을 수도 있고, 벽을 따라 걸을 수도 있고, 명확히 구획되지 않은 개구부를 통해 나오거나 들어갈 수도 있는 자유로운 위상이다.

성동구청에서 소규모 공연이나 강연을 열 계획인 ‘계단 마당’은 1층 바닥면을 일부 들어올렸다. 이번 공사에 포함되지 않은 구청의 도서관으로 통하는 계단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북웨이와는 다르게 1층과 같은 위상으로 연결되는 공간이다. 

 

 

건축가의 눈과 손길이 닿은 디테일 

이번 프로젝트는 리모델링이었다. 매스를 덜어내거나 끼우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연히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한 데는 세심하게 고른 재료가 큰 역할을 했다. 건축가는 번쩍이는 회색 화강석 타일로 점철된 벽과 바닥을 새로운 재료로 덮기로 결정했다. 안내 카운터와 로비가 따로 없는 관공서 건물에서, 오전과 오후 시간 점유 밀도가 가장 높은 엘리베이터 홀에 로비와 같은 품위를 주고 싶었다. 합리적인 가격의 검은색 MDF 합판을 찾아 벽체에 붙였고 흰색 면조명을 천장에​ 적용했다. 이외에는 기다란 형태의 검은색 조명이 책마루 공간 전반에 쓰였는데, 건축가가 디자인해 발주한 것이다. 북웨이나 클라우드 서가의 천장을 과감하게 노출하고, 무색으로 도장한 자연스런 무늬의 자작합판을 주재료로 썼다. 자작합판은 서가와 천장 루버에 일관적으로 쓰여 235평의 1층 전체 공간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연속된 선형 조명이 이 통일감을 강화해준다. 무지개 아카이브에서는 기존 철골 트러스와 이질감이 없는 흰색 철골을 구조체로 삼았고 자작합판 선반을 켜켜이 설치해 책을 꽂았다. 커튼월을 지지하던 원래의 트러스를 최대한 활용했는데 선반과 책의 무게가 상당해 다우건축구조연구소와 머리를 맞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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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 문화 공간이 얻은 성과 

성동 책마루는 인기에 힘입어 주중, 주말 구분 없이 밤 9시까지 개방한다. 관리가 힘들지 않냐는 물음에 그렇지 않다고 자신 있게 답하는 박봉주(성동구청 행정관리국장)에게 자부심이 느껴졌다. 사설 상업 공간과 다르게 유아를 동반한 가족과 노인의 이용이 빈번하고 그들의 만족도가 높다는 것만으로 구청 유휴 공간의 재생이라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아쉽게 느껴지는 점은 역시 탄탄하지 못한 기획과 정체성의 부재다. 구청 직원이 직접 응모해서 정한 ‘책마루’라는 이름은 나쁘지 않으나 공간으로도 충분히 표현될 수 있는 ‘마루’ 개념이 공간을 이끌고 있지도 않고 또 다른 키워드인 ‘무지개’도 맥을 못 춘 채 혼용되고 있다. 소수의 그룹이 모여 앉을 수 있는 공간인 무지개 라운지는 빨강, 노랑 등 무지개색으로 칠했고 계단 마당도 보라, 초록 등의 색을 입혔는데 이유와 효과가 불분명하다. 책의 큐레이션이 되어 있지 않아 책마루만의 특성을 콘텐츠에서 찾기는 어렵고, 원하는 도서를 찾아보는 일도 쉽지 않다. 그러나 그야말로 유휴 공간이던 구청사의 빈 공간을 짜임새 있게 조직해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공간을 만들었다는 데서 충분히 성공적인 프로젝트다. 특별한 목적 없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게 해달라는 성동구청의 사려 깊은 요구가, 서가라는 적절한 프로그램과  철저하고 세심한 건축가의 손을 만나 좋은 공간을 만들었다. 여러 부류의 사람이 여러 목적으로 이용하는 공간을 벽과 칸으로 나눠버리는 쉽지만 거친 해결책이 아닌, 층과 겹을 나누고 틈을 두고 들어올리고 감싸는 단면적 제안을 통해 공간의 풍요를 성취했다. 우리 주위에 아직 많은 관공서의 공간이 앞으로 참고할 수 있는 모범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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