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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놀이센터

김광수
사진
신경섭
자료제공
스튜디오 케이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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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공간, 잠수함처럼 떠오르다

 

1970년대에 지어졌던 연세대학교 앞의 지하보도는 나로서는 많은 기억이 묻혀 있는 곳이다. 거기서 대학 생활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그 근방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나뿐만 아니라 아주 많은 이들이 이곳을 드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잊어버렸을 것이다. 나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유인즉슨 버스 중앙차로제가 실시되면서 지상에는 많은 횡단보도들이 설치되었고 굳이 어두컴컴한 지하보도로 내려갈 이유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길을 건너갈 때 반갑게 눈에 들어오던 네 개의 지하보도 출입구도 언제부터인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기만 했다. 연세대학교의 아산공학관 부출입구가 지하보도 출입구 바로 앞에 생기고 버스중앙차로의 횡단보도가 근방에 생기면서 지상 보행자들과 지하보도의 출입구가 충돌하는 형국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길 건너 서측의 출입구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서측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남쪽(신촌가는 경로)으로 내려오다 보면 이 지하보도의 출입구들로 인해 인도가 갑자기 좁아지면서 앞에서 오는 사람들과 신경전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함께 작업했던 김효영(김효영 건축사사무소 대표)과 나에게는 지침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은 사항이었던 지상부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가 더 큰 골칫거리였다. 그리고 6.4m의 좁은 지하보도 통로 중앙에 존재하는 열세 개의 커다란 원형 기둥도 만만치 않은 장애물이었다. 또한 잊혀버린 이 지하 공간의 존재를 어떻게 잘 드러내서 새롭게 활성화시킬 수 있을지도 중요한 고민거리였다.

여러 고심 끝에 도로 양쪽에 각기 두 개씩 존재하는 출입구를 하나로 통합해버리는 게 더 낫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두 개의 출입구 사이에 존재하는 지상의 데드스페이스를 절개해버려 하나로 합치고 북측의 출입구 계단 폭을 반으로 줄여 보행자 흐름을 원활하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이러한 방법은 지하의 존재를 더욱 잘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일 뿐만 아니라 지상보행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지하로 이어주는 방법이기도 했다. 이로 인해 아산공학관 부출입구와의 대면 관계에서도 많은 여유 공간과 자연스러운 흐름이 확보되었다. 지하의 환기나 채광 면에서도 좋은 방법이었다. 

 

두 개의 출입구 사이에 존재하는 지상의 데드스페이스를 절개해 하나로 합치고 북측의 출입구 계단폭을 반으로 줄여 보행자 흐름을 원활하게 했다.

 

그리고 공극으로 형성된 벽돌 벽은 하나의 배경이자 오브제다. 행인들을 위한 배경인 동시에 오브제가 되는 것,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일단 눈에 들어오면 관심을 끌 수 있도록 우리는 잠수함을 떠올리며 작업했다. 그리고 잠수함의 프로파일을 닮은 공극의 벽돌 벽은 땅속으로 이어진다. 잠수하려는, 혹은 떠오르려는 잠수함의 모습을 상상했다.

기존의 지하보도 내부는 원형의 커다란 기둥이 있는 박스형 터널이었다. 터널 폭이 6.4m였고, 가운데에 직경 60cm의 기둥이 3.9m 간격으로 열세 개나 있었으니 공간을 사용하는 데 장애가 되었다. 게다가 다목적 소공연장까지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이곳이 과거에는 토목구조물이었음을 차라리 솔직하게 고백하거나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내벽면의 타일과 테라조 타일 바닥의 소재도 그대로 유지하고 싶었지만 결로 등의 심각한 단열 문제로 인해 벽돌로 중공벽을 쌓을 수밖에 없었던 아쉬움이 남는다.

기존 박스형 터널에 공간의 흐름과 연속성을 부여하는 듯한 아치 같은 인테리어 요소를 넣었다. 그런데 사실 이 아치는 연속성보다는 찌그러지거나 절단되면서 생기는 여분 공간 혹은 과잉의 감각을 위해 쓰게 된 측면이 강하다. 이 좁은 박스터널에 아치를 삽입하는 것은 다소 무리수일 수 있는데 조금 무리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이것이 무리인지 아닌지는 잘 판단되지 않는다. 시공 과정에서 시공사는 찌그러져야 할 부분을 펴기도 하고, 완만한 곡선이어야 할 부분을 각이 지게 처리하는 등 그 뉘앙스가 뒤죽박죽이 되어 나로서도 잘 검증이 안 된다. 게다가 이 시설은 두 개의 운영주체(창작놀이센터와 창업지원센터)가 함께 쓰는 곳인데 설계 납품 막바지에 공간이 분리되어야 한다고 해서 통로와 창업지원센터 사이에 유리벽이 설치되고 우회 통로이어야 할 곳에 창고가 생기는 등 미로와 같은 애초의 동선 개념이 급감했다. 이 모든 상황을 미리 감안하지 못했으니 무리수를 둔 것이 맞을 수도 있겠다. 예전에 광주시민회관을 설계하며 감리 아닌 감리(법적 지위와 대가가 없는 자원봉사 감리)를 할 때 시공사 및 발주처와 싸우는 과정에서 시공사의 자의적 해석과 먼저 저지르기식 시공이 나름 감동을 준 경우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덜 싸워서 문제인 것인지 그냥 더 초연해지는 게 좋은 것인지조차도 모르는 미궁에 빠진 느낌이 준공 후에 들었다. 

 

기존의 지하보도 내부는 원형의 커다란 기둥이 있는 박스형 터널이었다. 기둥은 솔직하게 드러내고, 공간의 흐름과 연속성을 부여하는 듯한 아치 같은 인테리어 요소를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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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수
스튜디오 케이웍스 대표이며 집담공간 커튼홀을 공동 운영하고 있다. 연세대학교와 예일대학교 건축대학원을 졸업했다. 여러 장르의 전문가 및 대중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뉴미디어로 인한 사회성, 도시건축 환경의 변화를 주목하며 다양한 건축 작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방들의 가출’이라는 주제로 한국 사회의 아파트와 방 문화 현상을 조사 전시한 바 있으며(2004 베니스건축비엔날레), 핀란드 국립미술관(2007), 아트선재센터(2012), 오스트리아 국립미술관(2013), 독일 에데스 건축갤러리(2014), 문화역서울284(2012, 2016) 등에도 초대되어 전시를 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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