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2023년 5월호 (통권 666호)
현상 1. 방문의 목적이 되는
현상 2. 지역과 사람을 잇는
현상 3. 경험을 직조하는
카페가 어느덧 우리 일상에 깊이 자리 잡았다. 도심과 외곽을 막론하고 체험에 방점을 둔 카페들이 늘어가는 가운데, 동네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하며 내실을 다지는 카페도 있다. 편한 옷차림으로 산책하다 들러 가벼운 담소를 나눌 수 있는가 하면, 조금 더 오래 머물며 책을 읽을 수도 있다. 그러다가 어느 낮에는 벼룩시장이 되기도 하고, 어떤 밤에는 낭독회가 열린다. 비일상이 아닌 일상의 장소에서 카페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10여 년간 북카페를 기획하고 운영해온 염현숙(카페꼼마 대표)과 풍년빌라와 여인숙의 1층 카페를 기획한 임태병(문도호제 대표)을 만나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도심 속 카페를 살펴보았다.
인터뷰 임태병 문도호제 대표 × 김지아 기자
느슨한 관계가 일어나는 공간: 풍년빌라, 여인숙 카페
김지아(김): 홍대 카페 문화의 시초이자 원형과도 다름없는 비하인드(2001)를 기획하고 운영했다. 이곳은 식음을 위한 공간을 넘어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문화 공간이었다고 알고 있다.
임태병(임): 2001년에 비하인드가 처음 생겼는데, 당시 카페는 커뮤니티 공간이라기보다 대부분 낮은 파티션이 있거나 개별 부스로 구획돼 손님들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 위주였다. 비하인드 형식의 카페는 아마 처음이었을 텐데, 애초에 카페로 계획된 공간은 아니다. 각자 일을 하던 지인들이 음악을 좋아해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음악을 듣고 이야기를 나눌 공간이 필요했다. 교회 시청각실이나 와인 바를 빌리는 등 시설을 전전하다 보니 대여섯 평 정도 되는 장소를 얻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렇게 홍대 인근에 공간을 마련했는데 음악 듣는 시간 외에는 비워두기가 아까웠다. 그래서 겁도 없이 커피라도 팔자, 해서 카페를 시작했다가 일이 커졌다. (웃음) 파티션으로 구분되던 다른 카페들과 달리 중앙에 8인용 테이블을 가져다 두었다. 음악을 듣고 이야기하기 편한 구조였기 때문인데, 막연히 손님들도 이 테이블에 적응해주길 바랐다. 처음에는 한 명이 테이블에 앉아 있으면 다른 자리가 비어 있어도 아무도 앉지 않았다. 그런데 손님들이 점점 찾아들면서 테이블이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당시 홍대에는 뮤지션이나 건축, 미술 전공 학생들, 프리랜서 디자이너와 작가들이 많이 살았다. 출퇴근 시간이 비교적 자유로운 사람들이 낮에 작업할 공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대부분 원룸에 살았으니 공간이 마땅치 않았을 거다. 그렇게 하나둘 비하인드에 와서 글을 쓰고 인터뷰도 하고 작업도 하다 보니, 절반 정도의 손님이 아침에 눈 뜨면 일하러 오는 장소가 됐다. 누가 약속하지 않아도 여기에 어떤 사람이 있다는 걸 자연스레 알게 되니 대화를 나누는 커뮤니티가 형성되기도 했다. 그 무렵만 해도 셰어하우스나 공유 주거의 개념이 없다시피 했는데, 한동안은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공동 거실 같은 곳이 아니었을까 싶다.
김: 풍년빌라(2019)는 비하인드에서 맺은 인연이 모여 지은 공동체 주택이다. 1층에 위치한 카페는 공동체 주택의 특수한 조건에서 비롯됐다. 10년간의 장기 점유 이후 활용할 수 있는 자본을 만들기 위해 거주자들이 공동투자하고 직접 운영하는 카페를 마련했다.
임: 풍년빌라는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집을 지어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단순히 세 가구가 돈을 모아 집을 짓는 방법도 있지만, 새로운 방식을 택했다. 땅을 찾고 건물이 완공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들어가 살면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세입자가 해결하는 조건으로 비용을 투자할 집주인을 찾아 나섰다. 일반적으로 건물을 지어 세입자를 찾는 방식과 반대되는 과정이다. 다행히 김은희 작가와 장항준 감독이 투자자로 나섰다. 김은희 작가는 생활이 어려웠던 보조 작가 시절을 떠올려, 후배 작가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주거를 마련해주고자 하는 생각을 줄곧 해온 터였다. 말하자면 풍년빌라가 테스트베드인 셈이다. 풍년빌라의 거주자들은 10년 계약으로 살고 있는데, 세 가구가 건물을 짓기까지 많은 투입을 했으니 최소 10년은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점유를 연장할 수도 있지만, 10년 이후의 시점을 고려해 대안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수익을 낼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고민한 끝에 1층에 카페를 마련했다. 규모가 작은 공간으로 큰 수익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지내는 동안 월세 부담이라도 덜고자 하는 생각이었다. 일종의 경제적인 버퍼를 마련한 셈이다.
김: 임대를 줄 수도 있었을 텐데, 거주자가 직접 운영한 이유는 무엇인가?
임: 두 방안을 모두 고려했다. 거주자인 우리가 직접 운영해도 되고, 임차인에게 운영을 맡겨 임대료를 받는 방법도 있다. 처음에는 우리가 직접 운영했다. 모두 비하인드에서 맺은 인연이기에 카페를 운영하는 일에 어려움이 없었다. 무엇보다 우리가 사는 공간이니 거주자의 커뮤니티 공간으로도 활용할 수 있겠다 싶었다. 2019년 12월에 ‘스낵바 매점’이라는 이름으로 카페를 오픈했는데, 바로 다음 달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가 확산돼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인스타그램으로 홍보를 열심히 해 근처에 있는 이웃들이 들렀지만, 2년간의 코로나 시기와 맞물려 운영을 지속할 수 있을지 판단이 어려웠다. 고민 끝에 작년부터는 우리의 뜻을 잘 이해할 수 있는 팀을 찾아 임대를 주었다.
김: 스낵바 매점은 어떤 콘셉트의 공간이었나?
임: 규모가 협소하기도 하고 인근에 불광천이 있어 처음부터 앉아서 마시는 공간을 계획하지는 않았다. 산책하는 동네 주민이나 불광천을 찾는 이들이 오면가면 들러 커피를 마시거나 테이크아웃 해가는 패턴을 떠올렸다. 외부에 벤치를 두어 날씨 좋은 날에는 마당처럼 앉아 있을 수 있게도 만들었다. 코로나가 심하지 않은 시기에는 그런대로 잘 활용됐다. 인스타그램을 보고 찾아오는 손님 반, 동네에서 호기심으로 찾아오는 손님 반이었다.
김: 현재 1층 카페는 어떻게 활용되고 있나?
임: ‘비키초키크로키’라는 카페가 들어왔다. 실크스크린 공방 에토프의 디자이너가 운영한다. 개인 작업은 따로 하고 있는 친구라 카페가 본업은 아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만 카페를 연다. 본업이 따로 있으니 거기서 수익을 내고, 사흘 정도만 카페의 형식을 띤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셈이다. 현재 들어온 지 1년이 넘었는데 원활하게 운영되고 있다. 카페를 기본으로 팝업 행사를 종종 진행한다. 여름이면 쇼콜라띠에와 협업한 시그니처 빙수를 선보이고, 파티시에를 초청해 특별한 디저트를 맛볼 기회를 제공한다. 겨울을 제외하고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팝업을 진행한다. 다음 주에는 벼룩시장을 열기로 했다. 그쪽 네트워크와 풍년빌라 식구들이 모여 물건을 내놓고, 떡볶이도 만들 계획이다. (웃음) 재밌는 건 팝업할 때 가 보면 특정하게 누군가를 초대하는 게 아님에도 평소에 들르던 손님이나 지인들이 방문해 자연스레 커뮤니티가 형성된다는 거다. 이런 모습은 예전의 비하인드를 연상시켜 흥미롭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김: 풍년빌라 인근에 유사한 형식으로 지은 다세대주택 여인숙(2020) 1층에도 카페가 자리한다. 유사한 콘셉트로 계획된 공간인가?
임: 풍년빌라가 테스트베드였다면, 여인숙은 두 번째 지점인 셈이다. 김은희 작가가 후배 작가들에게 실제로 저렴한 값에 임대를 내어주는 다세대주택으로 계획됐다. 3층부터 5층까지는 작가들이 살고, 1층에는 카페, 2층에는 사무실과 스테이가 자리한다. 카페와 스테이를 마련한 건 풍년빌라에서와 마찬가지로 수익을 낼 수 있는 프로그램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김: 현재 1층에 들어선 카페는 ‘담대하게 커피워크’다. 단출한 공간이지만 커피를 마시기 좋은 동네 카페로 자리매김한 듯하다.
임: 처음에 무슨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동네에 마땅한 빵집이 없어 베이커리를 떠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베이킹을 하기에는 공간이 아무래도 협소했다. 공간을 꾸릴 방안을 모색하던 차에 담대하게 커피워크의 사장이 이곳에 방문했다. 역시 비하인드 매니저 출신으로, 바리스타 사이에서는 제법 유명하다. 1층이 비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본인이 카페를 운영해보겠다고 했다. 운영한 지 이제 3년 정도 됐는데 은평구에서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하는 젊은 사람들은 웬만하면 이곳을 찾는다. 무엇보다 커피 맛이 보장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 한국 사회에서 카페는 다양한 형태로 진화 중이다. 문도호제가 기획하고 운영해온 카페는 커뮤니티에 방점을 두고 있다. 커뮤니티로서 카페의 가능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임: 커뮤니티와 지속가능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소위 핫하고 힙한 공간을 만들어 단기에 어떤 결과를 기대하기보다, 예측 가능한 상황 안에서 가능한 오래 움직일 수 있는 구조와 방법을 찾는 게 개인적으로 더 잘 맞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관점에서 가장 이상적인 카페의 형태가 무엇일까 생각했을 때, 열 평 남짓한 공간으로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아도 된다. 다만 그 공간에 본인의 퍼스낼리티와 아이덴티티를 가진 주인이 있으면 된다. 집에 있다가 슬리퍼를 신고 가면 적절한 금액과 퀄리티의 커피를 마실 수 있고, 주인과도 느슨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카페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지향점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전개해왔는데, 사실 한국 사회에서 카페는 이와는 무관하게 흘러가고 있다. 대형 카페가 가진 사회문화적, 건축적 가능성이 분명 있을 거다. 하지만 그 본질이 부동산이라는 사실은 지울 수 없다. 다양한 형식의 카페가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점점 양극화되어 가는 듯하다. 그런 점에서 10년 전이나 20년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과도기라고 본다.
김: 최근 흥미롭게 본 카페가 있나?
임: 스타벅스가 흥미롭다. 한국 사회에서 완전히 동네 카페가 돼버리지 않았나. 이 동네에도 최근에 스타벅스가 생겼는데, 거기 가면 동네 사람들을 다 만난다. (웃음) 물론 작은 카페들이 저마다의 개성으로 각자의 영역을 확보하겠지만, 개인이나 소규모 자본이 아닌 스타벅스가 그 영향력을 발휘해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에서는 동네마다 우유 배달이나 신문 배달을 하는 곳이 있었다. 지금은 점점 없어지고 있는 추세인데, 그 일을 하던 사람들이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살펴보니 동네 네트워크를 활용해 플랫폼화하는 방식을 택한 거다. 어디에 누가 사는지 알고 있으니, 우유나 신문 배달이 아닌 요리, 청소 등으로 영역을 확장해 다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구조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스타벅스가 출장 서비스를 제공하지는 않지만 동네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장소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다른 서비스와 연계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김: 한 인터뷰에서 “건축가는 지극히 사적인 공간을 지을 때에도 공공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건물이 지어지는 순간 그 자체로 하나의 환경이 되기 때문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사적 공간인 카페 역시 공공성을 담보한다. 카페를 설계할 때 고려해야 할 지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임: 한국 사회에서 카페는 광장 역할을 한다. 광장의 핵심은 여러 사람이 모여 다양한 행위를 하고, 커뮤니티가 일어날 수 있는 장소라는 데 있다. 유럽과 도시 구조가 다른 일본이나 한국에는 광장이 없는데, 일본은 공공건물이 아니더라도 가로의 작은 공간을 중요하게 생각해 집 앞에 벤치를 놓는다거나, 식물을 잘 가꾼다거나 하는 식의 제스처를 취한다. 이런 것들이 모여 광장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대체재가 된다. 한국은 그런 문화가 없으니 그 역할을 카페가 대신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후의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미세먼지와 춥고 더운 극단적인 날씨 등의 영향으로 사람들이 야외 광장이나 공원이 아닌 실내로 모여드는 것도 분명한 현상이다. 즉 공공성의 작은 영역들이 한국화된 형식으로 나타난 게 카페다. 무료로 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상업 공간이기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커피 한잔 값으로 공간을 점유할 수 있다. 그만큼의 공공성을 확보해준다는 게 개인적인 목표다. 건축가들이 카페를 설계할 때 한국 사회에서 카페의 공적 역할을 염두에 둔다면,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월간 「SPACE(공간)」 666호(2023년 5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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