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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가능한 건축

글
나은중, 유소래
사진
노경
자료제공
네임리스 건축
진행
박세미
background

네임리스 건축이 말하는 13가지 단어들 

 

근본적

한 그루의 나무가 있다. 그 나무가 시들어 있다면 눈에 보이는 가지와 나뭇잎을 속아내 치유할 수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땅속에 거름을 주고 그곳에서 원인을 찾아보는 것이 근본적인 방법일 수 있다. 근본적이라는 단어는 라틴어 ‘radicalis’ 에서 유래된 뿌리의(of roots) 혹은 뿌리로부터(from roots)의 어원을 가지고 있다. 시든 나뭇잎이 아닌 뿌리로부터의 치유는 병든 나무를 근본적으로 건강하게 한다. 일상에 대한 접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삶의 장소를 구축하고 치유하는 건축가의 행위는 주변의 소소한 것들에 대한 애정과 더불어 때로는 보이지 않는 뿌리를 찾는 기본적이고 근본적 행위들에서 시작될 수 있다. 근본에 대한 관심은 종종 삶과 이격된 모습으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그 안에 내재된 힘을 통해 전체를 바라보게 하며, 작은 일상에서부터 공공의 가치까지 전체의 단단함을 만드는 바탕이다.​ 

 

건축-행위

건축-행위를 위해서는 건물이 딛고 있는 땅뿐만 아니라 건물의 프로그램, 기능, 그리고 재료 등 건축을 둘러싼 요소들과의 상호작용을 필요로 한다. 특히 익숙한 시설, 용도, 재료를 마주했을 때 그것이 가지고 있는 전형성에 대해 의심하고 다시 고민하는 지점에서 건축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건축-행위는 단순히 만드는 행위가 아닌 익숙한 것들을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는 태도로부터 시작된다.​ 

 

자연적 그리고 인공적

‘자연적’ 그리고 ‘인공적’ 사이에는 몇 가지 예측하기 힘든 가능성들이 존재한다.

‘자연적’ 그리고 ‘인공적’은 서로를 구축한다.

‘자연적’ 그리고 ‘인공적’은 서로를 성립한다.

‘자연적’ 그리고 ‘인공적’은 서로를 정의한다.

‘자연적’ 그리고 ‘인공적’은 서로에 의존한다.

‘자연적’ 그리고 ‘인공적’은 서로를 따른다.

 

액체 돌

현대사회에서 인공의 물질 중 가장 많은 양이 생산되며 소비되는 콘크리트는 돌가루, 자갈, 모래, 물의 혼합물이 특정 온도와 압력에 반응하여 응고되는, 다시 말해 자연의 돌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은 성분과 생성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유일한 차이는 자연의 돌은 의도되지 않은 상태로 자연에서 발견되지만, 콘크리트는 의도된 형상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액체 상태의 유동성을 지닌 콘크리트의 가능성을 함축한다. 콘크리트는 액체의 돌이다.​ 

 

파괴-구축

건축은 그 자신의 패러다임으로서 오랜 시간 동안 자연에 의존해왔다. 건축가들이 자연의 복제와 변형 그리고 해석을 통하여 공간을 구체화하는 시도가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설사 디자인의 척도로 자연을 고려하지 않을지라도 건축 그 자신의 존재는 땅의 점유를 통해 자연에 의지하게 된다. 동시에 구축을 위한 건축의 속성은 자연에 대한 파괴적 힘을 가진다. 나무는 잘려나가고, 산등성이는 평평하게 개간되며, 대지는 기초를 만들기 위해 파헤쳐진다. 건축에 내재된 파괴-구축이라는 상호적 관점은 우리에게 새로운 인식의 체계를 요구한다.​ 

 

덜 만듦

덜 만들어진 기운은 무언가 부정확하고, 섬세하지 않고 투박하며, 때로는 오류로 비춰질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완벽한 가치보다 세상과의 관계에 더 포용적이며, 자연과 관계 맺기를 꺼리지 않고 무엇보다 사람과 함께 숨 쉬며 살아가기에 적합하다. 덜 만듦은 불완전한 세상 안에서 더 많은 관계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 덜 만든 건축은 자연스럽다.

단순함

단순함은 무언가 과하지 않아서 쉽게 관계 맺을 수 있는 상태이다. 이는 외부 세상과의 최소화된 관계로 인해 분석되고 해석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수용될 수 있음을 뜻한다. 우리 앞에 놓인 복잡하고 종잡을 수 없는 세상의 이야기 앞에서 단순함이란 그 적음을 드러내며 세상에 신선함을 던져줄 수 있다.

 

부조화

두 개의 장소가 있다. 첫 번째는 시간의 켜를 가늠하기 힘들 만큼 얼룩진 콘크리트 옹벽과 온갖 쓰레기와 돌덩어리가 뒤엉켜 있다. 그곳은 공사 현장, 다리 밑, 어쩌면 더 이상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인공의 장소, 즉 폐허가 된 어디쯤을 상징하고 있다. 두 번째 장소는 상부를 가로지르는 흰 격자구조와 이를 지지하는 흰색의 수직 기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기둥과 격자구조로 공간의 용도와 목적을 특정할 수 없지만 물성을 지우는 흰색의 순수함과 구조적 질서를 통해 완결성을 드러내는 신전과 같은 기념비적 장면을 만든다. 만일 이 두 장소의 배타적 경험이 하나의 공간으로 함축되어 있으면 어떨지 상상해본다. 생성과 소멸이 공존하는 이 낯선 장면은 그 차이가 만드는 다름의 속성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자연의 또 다른 풍경처럼 풍요롭게 느껴진다.

 

공간의 냄새

냄새는 경험론적인 감각이다. 좋고 나쁘고 이상한 냄새는 선험적인 것이 아니라 경험에 기초하며, 체득한 지식이 부재한 상황에서 냄새의 실체를 판단하기 어렵다. 이는 다른 감각과 비교해 편협하고 배타적인 감각이지만 때로는 매우 다층적인 경험을 유도한다. 공간의 냄새는 기억과 경험 그리고 인지 작용을 통해 느껴지는 장소의 총체적인 분위기이다.

 

경계

경계에는 늘 긴장감이 존재한다. 자연과 건축, 안과 밖, 벽과 바닥, 철과 목재, 거침과 부드러움, 어둠과 밝음. 이들 사이 경계가 지닌 공통점은 서로 다름으로 인해 발생하는 긴장감이며, 건축행위의 많은 부분이 이 상호적인 힘의 균형을 조율하는 일이다. 경계의 느슨함은 서로의 여유로움을 드러내며, 단단한 긴장감은 부딪힘을 통해 서로의 가능성을 극대화한다.​ 

 

집

집은 가장 원시적인 장소이다. 집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자연의 영역과 거주의 영역이 구분되지 않는다. 동굴 안, 나무그늘 혹은 구릉 사이의 작은 골짜기에서 주거 공간은 본래 만들어졌다기보다는 발견되었을 것이다. 그곳은 비와 바람을 피하는 안식처이며, 가족구성원 간 즐거움을 공유하고, 동시에 삶의 고단함을 내려놓는 장소이다.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집의 근원은 변하지 않는다. 집은 가장 기본적이며 근본적인 장소이다.

 

우연

건축은 우연성에 기반한다. 외부로부터의 힘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 예측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예측한다 해도 이에 대응할 초월적 권한을 갖지 않은 한 대처하기 어렵다. 이것은 구조화된 질서라기보다는 구조화될 수 없는 세상의 불완전성과 불예측성에 기인한다.

 

불완전함

완전함과 불완전함 사이에는 작은 차이가 존재한다. 완벽한 원은 주변으로부터 독립되어 순수한 자기완결성을 지닌다. 그러나 흐트러진 원은 완결성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주변과의 호흡을 통해 충만함을 드러낸다. 이는 기본을 바탕으로 한 변화될 수 있는 상대적 가치의 유무이다.

이미 존재하는 단단한 것들을 기반으로 하지만, 과거의 모든 것들이 재해석되고 재발견될 수 있다는 믿음은 새로운 관계의 틈새를 바라보게 한다. 그곳에는 자연적-인공적, 무거운-가벼운, 단단한-약한, 영구적-일시적, 단순한-복잡한 등의 상호적이며 불완전한 가능성들이 존재한다. 건축의 불완전함은 또 다른 가능성으로 다가온다.​ <진행 박세미 기자>

 

B 갤러리  

 

녹음의 집

​

아홉칸 집 

 

D 파빌리온 

 

미래 고고학 

 

아치 ― 1개의 방, 150개의 빛 

 

각 프로젝트의 내용은 아래의 연관 게시물을 확인해주세요. 또한 도면, 비평 등 더욱 자세한 내용을 SPACE 2018년 3월호 지면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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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임리스 건축
서울과 뉴욕을 중심으로 한 아이디어 기반의 설계사무소이다. 나은중과 유소래는 각각 홍익대학교와 고려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U.C. 버클리 건축대학원을 같은 해 졸업하였다. 2010년 뉴욕에서 네임리스 건축을 개소한 후 서울로 사무실을 확장하였으며, 예측불허한 세상 안에 단순함의 구축을 통해 건축과 도시 그리고 문화적 사회현상을 탐구하고 있다. 일상에서의 근본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단단한 건축 유형을 만드는 동시에 공공적 파빌리온을 통해 건축의 유동성을 실험하고 있다. 뉴욕현대미술관(MoMA), 뉴욕건축센터, 파슨스 더 뉴스쿨,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 등에서 건축 작업을 선보였다. AIA뉴욕건축가협회상, 미국건축연맹 젊은건축가상, 미국건축가협회 뉴프랙티스뉴욕(AIA NPNY), 김수근건축상 프리뷰상을 수상하였고, 미국건축지 「아키텍처럴 레코드」로부터 세계건축을 선도할 10대 건축가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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