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적 공간의 자리잡기
법규와의 대화, 그리고 디자인
오래전 한 오스트리아 건축가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 사람들에게 부산 영화의 전당의 설계자로 알려져 있는 울프 프릭스(쿱 힙멜브라우 대표)의 건물이 오스트리아 빈에 세워질 때마다 건축법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한번은 도시의 맥락을 중요시 여기고 과격한 형태를 금지하고 있는 오스트리아의 건축법규를 피해가기 위해 울프 프릭스는 물탱크를 사용해 뾰족한 형태를 구사했는데, 그 후 건축의 부속 설비도 강한 형태를 지닐 수 없도록 건축법이 바뀌었다고 한다.
여유로운 대지가 주어지지 않는 한, 우리는 건축법에 의해 규정된 볼륨 안에서 작업을 할 수밖에 없다. 건축법규와의 대화를 통해, 그 한계 속에서 건축가의 디자인은 완성된다. 다이어그램에서 알 수 있듯 건축가 김이홍은 이상적인 육면체 형태에서 매스를 도려내는 방식으로 계획했고, 실제 건축의 구축에서도 이 도려냄이 드러나도록 다른 요소들을 최소화했다. 흔한 건물들이 설계 과정에서 법규와 디자인이 대치되면서 결과적으로 디자인의 손실이나 결손이 나타나는 반면, 김이홍의 ‘단’은 좁은 대지의 불리함, 필로티 주차, 그리고 경사 대지의 어려움을 디자인에 자연스럽게 일체화해 부드럽고 유연하게 풀어낸다. 이런 이상적 직육면체 볼륨에서 제거하는 방식 자체가 법규 및 기타 제한 요소에 대응하는 디자인 전략이 된다면, 그 후 이슈는 이런 조직이 건축의 공간적 경험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다.
첫 번째는 그리 크지 않고 태생적으로 적층이 반복되어야 하는 건축 유형에서 최대한 획득되는 공간의 내러티브다. 대지에 접한 경사도로의 조건과 대지의 오른쪽에서 받는 일조권 조항을 건축가는 받아들여, 정면 기준 대지의 왼쪽에서 3분의 2층을 오르고, 다시 1층 외부 홀과 데크를 통해 동선을 옮겨 일조권이 적용되는 대지의 오른쪽 경계를 따라 계단을 계획하여 3층까지의 여정을 만든다. 추후 1, 2층의 별도 사용을 고려하여 디자인된 이 외부 홀은 상층 사옥으로의 흐름을 고려한 계획이지만, 일반 근린생활 건물에 적용 가능한 프로토타입으로서도 상당히 유효한 방식이다. 이는 가장 중요한 외부 공간이 해당 층의 사용자에 의해서만 점유되는 것이 아니라, 전 층 사용자들의 자연스러운 접촉을 유도한다는 면에서 긍정적이다. 물론 해당 층이 상업적 용도로 사용되어 사람이 모이게 되면 상호작용은 더 강력해질 것이다. 두 번째는 이 상승의 과정에 수반되는 공간의 다양한 열림이다. 도로에서 진입할 때 높은 층고와 외부 홀의 보이드, 3층 데크로의 시야 열림, 수벽으로 닫히는 시선, 1층에서 2, 3층으로 이어지는 깊은 공간감, 3층에 닿아 데크에 이르면 다시 자신이 거쳐온 공간을 돌아볼 수 있는 고전적 공간의 수법까지, 공간을 경험하고자 마음을 먹은 이들에게 상당한 감흥을 준다. 직접 연결되지는 않지만 3~4층, 4~5층의 내부 계단으로 공간의 상승은 완성된다. 위 두 가지의 경험이 합쳐져 외부 계단은 전체 층을 엮는 고리가 된다. 이는 코어의 해체라고 불리기도 하는, 일본이나 한국의 건축가들이 작은 스케일의 건축물에 적용한 주제와도 맞닿아 있다. 하지만 당시 외부 계단의 연결이 길과의 연속성을 강조하고 있다면, 단에서는 내부 프로그램의 수용을 위한 동선과 내외부의 다양한 관계에 더 주목하고 있다.

건축가는 좁은 대지의 불리함, 필로티 주차, 그리고 경사 대지의 어려움을 디자인에 자연스럽게 일체화해 부드럽고 유연하게 풀어낸다.
문맥 수용 방식
다이어그램에서 또 한 가지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이 볼륨의 조작이 이루어지는 직육면체 하부에 주차장을 포함한 베이스가 있는데,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베이스는 실제 시공에서도 노출콘크리트가 쓰인 유일한 부분으로, 건축물의 상부와 확연히 구분된다. 이는 주변과 밀접하게 관계 맺는 지상에 맞닿아 있는 부분으로 매끈한 마감보다는 실제 그대로의 노출콘크리트 마감이 주변의 노후한 주택들과 잘 어우러져 단이 지역에 녹아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일견 보도에서 오르는 계단과 1층 데크는 이미 존재한 것으로, 여기에 새 건물이 얹어진 느낌까지 든다. 또한 건물의 네 면 중 정면에만 타일마감을 적용하고, 타 대지와 인접하는 장축 방향의 면들은 스터코 마감으로 처리한 것도 주변의 텍스처를 고려했을 것으로 보인다. 김이홍의 전작 코너스톤 1-532 (「SPACE(공간)」 577호 참조)에서도 보이는 이 구성 방식은 상부에서는 순수한 조형으로서의 ‘이상적 형태’를 취하고, 하부에서는 대지 조건에 대응한 ‘현실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이분법적 구성으로 해석된다. 어떤 면에서 고전건축의 포디움 구성과도 유사하다고 볼 수 있지만, 그보다는 조각가 브랑쿠시의 매끈한 본조각과 거친 베이스의 관계와 더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이 구성은 두 건축물의 계획에서 모두 중요한 모티브이지만, 코너스톤에서 문맥을 암시하는 정도로만 적용되었다면, 단에서는 그 관계가 훨씬 더 또렷해져 전체 계획을 지배한다는 차이가 있다. 건축은 법규와의 상호작용 전에 미감과 중요한 교류를 하고 있다.
형태, 매스, 정수
이런 이분법적 구성에서는 두 요소 간의 특징을 대비하기 마련이다. 현실과의 조화를 요건으로 삼는 베이스 부분은 형태적으로 열려 있는 형식을 가지고, 이상적 형태 부분은 이와 대비되면서 폐쇄적인 성격을 가진다. 따라서 이런 구성에서 상부 입면은 외부와의 시각적인 상호 소통이 내재적으로 ‘부족하도록’ 계획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구성 자체에 포함된 조건인 외부와의 상호작용의 부족함을 비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오히려 이 프로젝트를 보면서 느끼게 된 것은 필자를 포함한 일부 건축계가 가지고 있는 선호의 존재다. 매스의 매력적인 묵직함을 강조하는, 따라서 개구부가 자연스럽게 줄어드는 방식은 대부분의 건축가들이 통상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런 폐쇄성이 없었다면 비평의 대상으로 고려되지 않았을 테니 우리가 ‘건축스러운 건축’에 대해 어떤 미감을 가지고 있는지 드러난다.
건축에 의미를 두고 있는 건축가가 정수를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법규가 지금의 건축을 만들 듯이 건축의 정수가 다음 건축 그리고 법규의 변화까지도 만들어낸다. 그러나 입면의 폐쇄성, 극도의 내향성을 추구하는 사례를 우리는 오랫동안 고가 브랜드 건축물에서 많이 접해왔다. 이런 조형 방식의 새로움이 사라진 지금, 우리의 입장이 어디서부터 출발하는지에 대해 다시 고민이 필요하다.
건축가 김이홍은 상당히 여유롭다. 디테일이나 시공의 불완전성에 대한 관용이 필자와 같은 강박적인 사람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인터뷰하면서 느꼈다. 하나의 작업에서 끝장을 보려 하지 않는 여유, 그래서 더 긴 호흡을 하며 지치지 않는 건축가의 성격이 다음 작업을 기다리게 한다. 그리하여 미래 그의 작업에서 지금 제기되는 생각들의 해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진행 박세미 기자>


‘단’을 오르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공간의 다양한 열림은 공간을 경험하는 이들에게 상당한 감흥을 준다.

공간의 상승 내러티브는 3 ~ 4층, 4 ~ 5층의 내부계단으로 완성된다.

1, 2층의 별도 사용을 고려하여 디자인된 외부 홀은 상층 사옥으로의 흐름을 고려한 계획이지만, 일반 근린생활 건물에 적용 가능한 프로토타입으로서도 유효한 방식이다.

건축가는 이상적인 육면체 형태에서 매스를 도려내는 방식으로 계획을 했고, 이 도려냄이 드러나도록 다른 요소들을 최소화했다.

‘단’의 구성은 순수한 조형으로서 ‘이상적 형태’를 취하는 상부와 대지 조건에 대응해 ‘현실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하부로 나눠진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 VMSPAC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이홍(홍익대학교)
김이홍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2가 1-137
제2종 근린생활시설(업무시설, 물류시설)
311.1m2
156.69m2
835.52m2
지상 5층, 지하 1층
5대
16.86m
50.37%
195.97%
철근콘크리트조
타일, 스터코, 노출콘크리트
석고보드+도색
모아구조기술사사무소
케이에스엔지니어링
(주)이각건설
지아이이기술사사무소
2016.8. ~ 2017. 3.
2017. 6. ~ 2018. 5.
(주)314호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