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다시 태어나게 할 것인가
주변과 위화감 없이 세월을 담는 건물. 충신성곽마을 앵커시설 설계공모 당시 설정한 설계 방향이었다. 레벨이 각기 다른 세 건물을 하나로 엮는 이 프로젝트에서, 프로그램과 동선을 해결하면서 ‘기존 건물의 외형을 유지하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은 과제였다.
이 건축물은 서울시 공공건축가를 대상으로 한 지명설계공모에서 당선된 작품이다. 인접한 세 필지(충신동 1-165, 1-166, 1-167번지)의 주택을 리모델링해 이 지역의 앵커시설로 활용하겠다는 서울시의 계획하에 시작됐다. 2년여의 짧지 않은 설계 과정 동안 서울연극협회가 운영자로 선정돼 대학로 연극인들의 문화예술 활동거점으로 쓰임새가 정해졌다. 그 뒤 예술인 게스트하우스, 연극인 공연 사무실, 지역 주민 커뮤니티 공간으로 구성된 ‘충신 연극공유센터’로 최종 결정됐다.
충신동은 아랫마을과 윗마을이 다른 행보를 보여왔다. 윗마을은 광복 이후 ‘판자촌’이라는 무허가 정착지가 형성된 곳이다. 1960년대 양성화 지구로 지정됐는데, 기존 건물들은 철거되기보다 대개 2~3층의 규모로 개량됐다. 오늘날 성곽 아래 낙산 깃대봉 인근의 경사지, 50년 이상 된 낡고 허름한 건물들, 두 명이 나란히 걷기도 어려운 좁은 골목길을 걷다 보면 유럽의 성곽도시가 떠오른다. 낙산 성곽에서 보이는 서울타워와 풍광은 유명한 볼거리가 됐다.
강렬했던 첫인상
충신동 1-165번지를 처음 찾았을 때 작은 집이 주는 답답함보다는, ㄷ자 집의 중정 마당으로 떨어지는 빛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중정 마당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외부 계단에 비를 막기 위해 얹은 지붕의 틈으로 내리비치는 햇빛이었다. 계단 아래에는 지하 공간이 있었다. 물이 가득 차 있어 우물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충신동 1-166번지에는 1962년 필지가 분할됐을 때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ㅡ자 평면의 목조 간이한옥이 1층에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조적조 슬래브 건물(1978년 증축)이 절묘하게 올라가 앉았다. 도로 후면의 막다른 골목에서 건물 2층으로 진입해 1층으로 내려가는 구조가 매우 특이했다.
충신동 1-167번지에는 윗마을의 랜드마크인 ‘만물슈퍼’가 있었다. 1층은 서측 4m 도로에 접하고, 복도를 따라 양쪽에 쪽방들이 있는 2층은 동쪽 계단 위 좁은 골목에서 진입하는 구조였다.
세 필지의 건물에는 공통적인 건축형태가 있었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사다리 수준으로 가팔랐다. 화장실은 공용으로 외부에 있었으며, 임대 목적으로 하나의 주택을 여러 개의 쪽방으로 쪼개 놓았다. 쪽방들은 현관 겸 주방을 거쳐 방으로 들어가고, 주방 위에는 방을 통해서 들어갈 수 있는 다락이 있었다.
공사 전 ©admobe architect
아홉 개의 레벨
리모델링으로 모습이 달라지면서 주변과 괴리감이 생기지 않도록, 건물 외형과 외장 재료를 최소한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예전에 마당이었던 자리를 패널로 덮어 실내처럼 쓰던 만물슈퍼의 공간은 기존 규모를 유지했다. 건물 전면의 붉은 벽돌도 그대로 두었다. 새로 쌓은 1층 외벽은 주변 건축물과 비슷한 재료를 사용하고, 창문의 디테일을 공통되게 사용해 하나의 건물임을 명확히 했다.
2층 ㄱ자 복도의 물갈기 마감과 금속 난간은 칠만 다시 했다. 과거의 흔적들을 그대로 남겨두었으며, 중정 마당은 투명한 유리지붕을 덮어 밝은 공간을 유지하면서 실내가 되도록 했다.
각각의 지형을 따라 앉은 세 건물들은 서로 반 층씩 단차가 났다. 새로운 프로그램의 수용, 유기적 공간 사용 등을 위해 건물들의 연결이 필요했다. 중정 마당을 중심으로 건물들을 관통하는 통로를 만들고 이를 계단으로 연결했다. 서로 다른 건물들을 연결시킴으로써 신축이었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아홉 개의 레벨을 지닌 풍요로운 공간으로 거듭났다. 1-165번지 1층 사무 공간은 1-166번지 1층 간이주방 및 관리 사무실과 중정 마당에서 연결된다. 1-165번지 2층 중정 마당과 1-167번지 북카페 공간도 통로로 연결해 오피스 공간이 부족할 경우를 대비했다.
도로와 접하는, 옛 만물슈퍼 자리는 열린 공간으로 계획했다. 마을 행사나 이벤트가 열릴 수 있는 장소로 무대 공간을 만들었다. 건물 뒤쪽 골목에서 바로 2층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별도의 출입구도 만들었다. 그 결과 2층의 북카페를 거치지 않고도 화장실을 이용하거나 옥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 다시 말해 옥상을 마을 사람들이 상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전망이 좋은 옥상에는 1-165번지와 1-167번지의 높이 차를 이용해 스탠드를 조성했고 외부 싱크대를 두어 공연이나 마을 파티, 영화 상영 때 요긴하게 쓸 수 있도록 했다. 마을 사람들이 옥상으로 올라와 텃밭 상자를 가꾸고 쉴 수 있도록 의자를 두고 전망대를 만들었다.
건물이 완공된 뒤, 개관을 기념해 만물슈퍼가 있던 자리에서 연극 공연이 한바탕 벌어졌다. 누군가 “오래된 건물은 스스로 말을 한다”고 했다. 이는 건축물이 사람들의 사연을 담아내고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된 건물들을 되살려 씀으로써 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 만물슈퍼가 그래왔던 것처럼 충신 연극공유센터는 중요한 소통창구가 되어 마을 사람들과 연극인, 충신동 윗마을과 아랫마을, 한양도성 성곽마을을 이어주는 또 하나의 다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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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충신동 1-165, 1-166, 1-167
근린생활시설(주민공동 이용시설)
220.2m2
179.99m2
293.22m2
지상 2층
8.41m
81.9%
133.2%
조적조, 철골조
적벽돌, 우레탄 페인트, 수성 페인트, 열처리 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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