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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으로 채워지는 순천의 원도심: 순천부읍성남문터광장

이소우건축사사무소 + 스튜디오 MADe

임동우
사진
박영채
자료제공
이소우건축사사무소
진행
박지윤 기자
background

​​「SPACE(공간)」 2023년 8월호 (통권 669호) 

 

 

 

전국 지방 중소도시의 원도심들이 시름을 앓고 있다. 사실 1, 2년 된 현상은 아니다. 언젠가부터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도시재생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이나 수도권보다 각 지역의 중소도시에서 더 많은 프로젝트가 기획되고 또 실행됐다. 쇠퇴하는 원도심에 기획되는 공공 프로젝트의 유형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공공의 자본을 이용해 앵커시설로서 문화시설이나 공공청사를 계획하거나, 정주 인구를 늘리기 위해 주거시설을 계획하거나, 혹은 드물기는 하지만 민간자본과 연계해 업무나 상업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우리나라 도시에서 종종 보이는 유형은 ‘역사 복원’으로서의 도시재생이다. 우리나라의 도시화 역사가 대부분 일제강점기에 진행됐으니 일제강점기 이전 조선시대의 흔적을 찾아 회복하는 것은 공공 프로젝트가 내세울 수 있는 좋은 명분이기는 하다. 큰 관점에서 역사 복원으로 이해할 수 있는 순천부읍성남문터광장(이하 남문터광장) 또한 순천의 원도심을 활성화하기 위해 7년여 전 ‘순천예술광장’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국제공모 당선작이며, 이제 막 순천의 원도심을 변화시키기 시작한 프로젝트다. 구 승주군 청사에 인접해 계획된 남문터광장 일대는 승주군이 1995년도에 순천시에 편입되면서 자연스레 쇠퇴하기 시작한 지역이며, 남문터광장은 새로운 방식으로 원도심의 도시 조직을 수술한다. 

 

 

 

 

새로운 도시 공간이 갖는 숙제 

남문터광장은 우리나라 도시에서 흔히 찾기 힘든 유형으로, 두드러지는 특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옥천이라는 도심 하천에 면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선큰형 광장이라는 것이다. 공모 단계에서부터 준공에 이르기까지 여러 계획의 변화 가운데에서 이 프로젝트가 유지하고자 했던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는 광장과 주변 원도심 조직 간의 연결이었다. 옥천에 면해 존재하는 이 광장은, 홍수 수위 때문에 단 차 없는 진입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긴 했지만 옥천에서 바로 진입이 가능하도록 하면서도, 상부 레벨은 중앙시장과 주변의 도시 레벨을 유지하며 보행과 차량의 이동을 존중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광장 레벨에서 한 레벨 더 내려가면 1990년부터 지역 상권의 중심이었던 지하상가와 바로 연결된다. 결국 원도심의 파편적인 건물 조직을 해체하고 새롭게 들어서는 이 광장의 가장 큰 숙제는 아마도 인공장기를 주변의 혈관과 착오 없이 연결해 마치 원래부터 사용되던 장기인 것마냥 무덤덤하게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데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남문터광장은 이미 훌륭한 인공장기의 역할을 하고 있다. 앞서 역사의 복원에 대해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순천부 읍성 터에 자리 잡은 남문터광장은 자칫 다른 의미의 광장이 됐을 수도 있다. 읍성이나 천은 예로부터 경계를 구분 짓는 요소지 연결하는 요소는 아니다. 일제강점기 때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읍성의 경계가 허물어졌기 때문에, 역사의 복원이라는 방점을 어디에 찍느냐에 따라 광장의 성격은 상극으로 달라질 수 있다. 남문터광장의 계획안으로서의 완성도는 그 방점을 역사적인 한 시점에 찍은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찍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읍성 터였고 또 실제로 읍성의 유적들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읍성을 형태적으로나 개념적으로 복원하는 방식의 광장이 아닌, 자연환경은 물론 순천 시민의 정주환경의 모든 역사들이 축적되어온 주변의 도시 조직과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도시 공간을 제안함으로써, 남문터광장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또 하나의 레이어를 순천 원도심에 얹은 것이다. 이는 순천부 읍성의 남문 연자루를 재해석한 파빌리온 신연자루의 모습에도 투영되어 있다. 과거의 모습을 해석해 복원하는 것이 아닌 단순히 ‘루’의 기능, 즉 땅으로부터는 띄어져 있어 루의 하부로 드나들 수 있고, 위로 가서는 전망이 가능한 쉼터라는 지극히 기능적인 해석만 남긴 신연자루를 보면 이 프로젝트가 어떠한 방식으로 원도심을 이해하는지 볼 수 있다. 소멸해가는 원도심에 대한 측은지심이 아니라, 다시 활성화될 수 있는 원도심의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읽힌다. 

 

물리적 공간의 경험 

남문터광장의 두 번째 특징인 선큰광장이라는 형식은 앞서 언급한 신연자루의 존재와 무관하지 않다. 카밀로 지테는 『예술적 원칙에 따른 도시설계』(1889)에서 광장의 ‘둘러쌈(enclosure)’에 대해 강조했다. 이는 폴 주커가 정리한 광장의 유형 중 ‘닫힌 광장(closed square)’과도 일맥상통한다. 남문터광장은 두 가지 방향에서 이 둘러싸인 경험의 광장 공간을 제안한다. 하나는 광장의 세 면에 위치한 두 개의 파빌리온과 구 승주군 청사이고, 다른 하나는 선큰이라는 형식과 주변의 회랑이다. 사실 공모 지침에는 구 승주군 청사가 철거되는 것으로 나왔기 때문에, 공모 당시 안에는 신연자루를 포함한 두 개의 파빌리온이 마주 보고 있는 형상이었다. 하지만 구 승주군 청사의 존치가 결정되면서 현재의 배치를 갖게 됐고, 개인적으로는 이 배치가 주는 안정감이 분명 존재한다고 본다. 이소우건축사사무소가 제안했던 구 승주군 청사의 새로운 입면이 적용되지 않은 부분은 아쉽다. 구 승주군 청사의 새로운 입면이 시공됐다면, 시민들은 세 방향에서 광장을 향해 얼굴을 보여주고 있는 세 개의 입면을 경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남문터광장은 옥천에서 바로 진입이 가능하도록 레벨을 설정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선큰형 광장이 됐다. 광장 주변의 회랑, 상부의 파빌리온, 구 승주군 청사는 광장 레벨에서 보았을 때 둘러싸이는 경험을 주는 전경의 요소가 되어주고 있다. 중앙시장 및 주변의 도시 조직은 마찬가지로 후경에서 이 둘러싸인 경험을 물리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광장 레벨에서는 자칫 위압적으로 보일 수 있는 파빌리온이나 구 승주군 청사의 스케일은 회랑의 수평적 요소가 잡아주고 있으며, 회랑과 파빌리온은 같은 리듬의 모듈로서 상호 간의 연계성을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광장’이라고 명명되어 있는 수많은 공간을 떠올려보면, 사실 건물의 여집합으로 존재하는 외부 공간인 경우가 많다. 특히 여러 공공시설의 외부 공간에서 언급되는 광장은 그야말로 넓은 마당의 개념에 가깝다. 광장 문화가 존재하지 않았던 한국의 도시 조직에서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겠고, 또 그렇기 때문에 도시 조직을 연구할 때 사용하는 놀리-맵(nolli-map)이나 피겨/그라운드(figure/ground)의 방법론으로는 한국의 도시 조직을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 때가 많은 것이다. 광장은 주변의 건물들과 더불어 존재-비움(presence-absence)의 관계 속에 있어야 그 가치가 생기는 것인데, 많은 경우 비움이 영역으로만 있고 존재에 의해 규정되지 않다 보니, 우리 광장에서의 경험이 아주 유쾌하지는 않다. 그런데 남문터광장은 (건폐율 차원에서 보자면) 밀도 있는 원도심 조직에서 일정 부분을 덜어낸 도시 공간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존재-비움의 관계가 형성됐고, 또 이를 선큰화해 그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했다. 

 

 

 

도시의 시간 

남문터광장이 기본적으로 좋은 물리적 공간을 순천의 원도심에 제공한 것은 맞으나, 이 광장이 좋은 광장이고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광장이냐는 또 다른 질문이다. 모든 공공 공간이 그렇지만 시민들의 자연스러운 개입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지금처럼 공공에서 다양한 행사를 주최해 순간적으로 사용빈도와 방문객을 늘릴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남문터광장이 갖는 궁극의 가능성은 아닐 것이다. 남문터광장에는 크지는 않지만 옥천과 연결되는 레벨에 다양한 실내 공간들이 존재한다. 주변으로는 원도심에서 가장 활력 있는 중앙시장과 지하상가가 있다. 또한 옥천은 순천의 동천과 이어지고 더 나아가서는 자전거로 20분 내에 이어지는 순천만이 존재한다. 남문터광장 주변의 인프라를 활용한 남문터광장 공간 계획에 따라 인근 원도심이 변하고, 나아가서는 원도심이 변했기 때문에 다시 남문터광장이 활성화가 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도시의 시간은 긴 세월 동안 유연하게 시민들의 요구와 도시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공간을 요구하지, 어느 한순간 반짝이는 건축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남문터광장은 도시의 시간으로 기다려줘야 하는 프로젝트다. 인공장기의 수술은 잘 끝났다. 이제는 이것이 내 몸에 잘 안착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시간을 기다려줄 차례다. (글 임동우 / 진행 박지윤 기자) 

 

 

월간 「SPACE(공간)」 8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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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이소우건축사사무소(김현수, 안영주) + 스튜디오 MADe(마두수단 찰라사니)

설계담당

강상철, 임재훈, 김혜진, 이주은, 박승진, 이다경, 마리오 갈리아나 리라, 마리오 야네

위치

전라남도 순천시 영동 5-4

용도

문화 및 집회시설, 근린생활시설

대지면적

9,526.86㎡

건축면적

458.08㎡

연면적

8,373.8㎡

규모

지상 2층, 지하 3층

주차

164대

높이

8.35m

건폐율

4.51%

용적률

5.28%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철골조

외부마감

화강석 판석, 노출콘크리트

내부마감

화강석 판석, 석고보드 위 페인트

구조설계

(주)엔알씨구조기술사사무소

기계,전기설계

(주)하나기연

설계기간

2016. 9 ~ 2018. 5

시공기간

2018. 8 ~ 2021. 1

공사비

190억 원

건축주

순천시


김현수, 안영주
김현수와 안영주는 이소우건축사사무소의 공동대표다. ‘이소우’는 ‘Eu sou arquiteto(나는 건축가다)’라는 포르투갈
말에서 왔다. 매우, 훌륭한 등의 수식어가 필요하지 않은, 건축가로서 건축을 할 수 있는 동안 건축가가 해야 할 일을
하겠다는 의미다. 나아가 한 명의 건축가는 다양한 분야 및 다양한 방식의 협업을 통해 ‘건축가들’로 확장될 수 있다.
마두수단 찰라사니
마두수단 찰라사니는 스튜디오 MADe의 창립자이자 대표며, 인도와 스페인에 사무소를 두고 있다. 2007년
자신의 스튜디오를 설립하기 전, 인도의 다양한 사무실에서 일하며 유럽의 유명한 국제 회사들과 협업했다. 그는
하버드대학교 디자인대학원에서 건축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스튜디오 MADe는 일반적으로 공공 영역에서의
설계공모 작업에 중점을 두며, 이를 통해 사회적 관심사의 변화에 대응하고 맥락과 사람들의 집단기억과 공감을
바탕으로 성장하고 변화하는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임동우
임동우는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원 교수이자 프라우드 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다. 2013년 뉴욕건축가연맹 젊은건축가상을 수상했으며, 2017년 〈평양전-평양살림〉 총감독과 2019년 서울건축도시비엔날레 도시전 큐레이터를 역임했다. 대표작으로는 순천시 신청사, 수헌정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AD」 ‘Production Urbanism’, 『A Language of Contemporary Architecture: An Index of Topology and Typology』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