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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듈 게임: 파-브릭

강예린 + 건축사사무소 에스오에이

강예린, 이치훈
사진
신경섭(별도표기 외)
자료제공
건축사사무소 에스오에이
진행
윤예림 기자
background

「SPACE(공간)」 2024년 4월호 (통권 677호) 


 

모듈은 시공의 기준이 되는 치수다. 재료의 무게, 생산 방식, 이동과 양중, 구조적 한계 등 조건에 따라 모듈의 숫자는 달라진다. 대개 생산 라인을 통해 만들어진 기성 자재들은 특정 치수를 가지고 있어 그 크기에 맞춰 분할의 치수를 결정한다. 조인트가 없는 파사드, 혹은 캐스팅하거나 용접하는 재료마저도 무한정 길이나 면적을 늘릴 수는 없다. 건축 디자인에서는 늘 이러한 분할과 접합의 이슈가 발생한다. 모듈은 분할과 접합을 다루는 중요한 도구다. 
신사동 근린생활시설 파-브릭(Fa-brick)은 오랜 세월 인류가 사용해온 가장 작은 건축 모듈인 벽돌의 새로운 치장재로서의 가능성을 시도한 프로젝트다. 모르타르를 사용한 습식쌓기와 다르게, 프레임과 고정장치를 활용해 벽돌을 구조체에 거는 방식을 취했다. 벽돌 하나하나가 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이격된 채 매달려 있다. 덕분에 벽돌은 내외부를 단절하는 불투명한 벽이 아닌 빛을 투과시키는 스크린의 역할을 한다. 



(오른쪽) ©texture on texture

분할의 치수
얇은 벽돌을 기본 단위로 건물 전체를 감싼다. 이를 위해 각 입면의 치수에 대해 벽돌(25mm)과 스페이서(10mm)의 조합으로 생기는 공통의 치수를 계산할 필요가 있었다. 스페이서 하나와 벽돌 하나 두께를 더한 치수 35mm, 그리고 스페이서 세 개와 벽돌 하나 두께를 더한 치수 55mm를 기본으로 두고, 두 치수의 최소공배수인 430mm를 최소 모듈로 설정했다. 스페이서가 한 개인 경우와 세 개인 경우로 최소공배수의 모듈을 도출한 것은 벽돌 사이 간격에 차이를 두기 위함이다. 사이 간격이 넓을 경우 내외부로의 시선 및 채광의 유입이 많아진다. 벽돌 사이 간격의 두 가지 다른 치수를 적절히 배열해 전체 입면에서 조밀함의 다양성을 달성하고자 했다. 또한 벽돌을 꿰고 있는 철물과, 철물을 철근콘크리트 외벽에 긴결하는 수직 구조부재 모듈은 1,210mm 간격으로 입면을 세로로 분할한다.
기본 단위인 25mm 두께 벽돌은 77mm 두께의 스페인산 클링커 벽돌의 온장을 두 번 커팅한 것이다. 커팅 과정에서 날 두께만큼 손실되는 치수를 감안하면 커팅된 벽돌의 두께는 25mm로 계산되며, ±1mm 정도의 오차까지 고려하면 결과적으로 24~26mm 범위 내의 벽돌 두께가 얻어진다. 건축에서 1mm는 무시할 수 있는 치수지만 건식 시공 과정에서 이 오차들이 쌓이면 1,210mm 구조 모듈 안에서 최종적으로 1cm 이상의 유격이 발생한다. 이는 역시 접착되지 않고 걸려 있는 벽돌과 스페이서의 조건으로 극복한다. 





제작과 시공 사이
벽돌에는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이자 시공 시 벽돌 사이에 모르타르가 관입되도록 해 강도를 높이기 위한 용도로 약 31mm의 정사각형 구멍이 뚫려 있다. 파-브릭의 입면은 이 구멍을 이용해 벽돌을 연속적으로 꿰는 방식으로 시공했다. 벽돌을 꿰고 있는 아연도 각관은 30×30mm 사이즈의 기성 자재를 활용했다. 시공 과정은 이러하다. 먼저 작업대 위에 벽돌을 열 지어 세운 다음, 길이 1,210mm 각관을 벽돌 구멍에 끼워 넣는다. 그리고 각관에 끼워진 벽돌을 들어올려 하지틀(스테인리스 스틸 플랫 바)에 고정한다. 마지막으로 벽돌 사이사이를 띄워 ㄷ자형의 스페이서를 한 개나 세 개씩 끼워 넣는다.
스페이서는 폴리프로필렌을 형틀에 부어 제작했는데, 30mm 각관에 ‘딸깍’하고 끼워지도록 단면을 설계했다. 스페이서는 하중을 받는다거나 벽돌 간의 접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벽돌의 이격 거리를 균일하게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일련의 작업은 숙련된 조적공의 노련한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고안된 디테일
세워서 걸린 벽돌이 가로로 연속 배치될 경우, 입면의 모서리에서 90도, 40도 등의 각도로 벽돌과 벽돌 면이 만나게 된다. 엄밀히 말하면 벽돌과 벽돌이 만나는 것이 아니라, 벽돌이 걸린 구조용 하지틀이 만나게 된다. 건물의 모서리에서 스테인리스 스틸 바가 만드는 ㄴ자 모양의 틈이 생기는 것이다. 이 모서리에는 벽돌을 걸 수 없다. 벽돌 치장 기술이 발달한 유럽이나, 타일 등의 재료가 다양하게 제작되는 일본의 경우 모서리용 벽돌과 타일이 이형 제품으로 생산되지만 국내에서는 그러한 제품을 찾기가 여의치 않다. 이에 대안으로 찾은 것이 화강석이다. 벽돌과 가장 유사한 색깔과 질감의 사비석을 25mm 두께의 ㄴ자 형상으로 가공해 치장 및 마감했다. 일종의 몰딩과 같은 구실을 하는 것이다.
일조 사선에 의해서 생기는 상부층 경사면의 경우, 구조용 하지틀은 경사각에 맞춰 설치하되 벽돌은 수직으로 세워 결합했다. 그 결과 수평 방향의 배치는 일반적인 입면과 같은 원리로 구성되나, 수직 방향의 배치는 계단 모양으로 완성된다. 경사진 구조용 하지틀이 벽돌 사이에서 예각으로 노출되며 벽돌과 금속의 접합 관계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결과적으로 건물은 세로로 세워진 벽돌 길이의 수평 띠를 두른 형상을 띤다. 띠의 상하 간격은 50, 100, 150, 200mm의 옵션으로 차이를 줬다. 사람 눈높이의 벽돌 간격은 성글게, 슬래브 구간의 벽돌 간격은 조밀하게 해 필요에 따라 시각적 개방감을 조율하고자 했다. 가령 눈높이에서는 150~200mm 간격으로, 슬래브 구간이나 외벽과 면하는 구간은 50~100mm 간격으로 수평 띠의 배치를 계획했다. 모듈 안에서 달라지는 벽돌의 수평·수직 간격은 빛의 투과율을 다양하게 조절한다. 또한 외부에서 내부로의 시선을 차단해 밀집된 주거지역에서 프라이버시를 확보한다.



벽돌, 공예적 변주
벽돌은 아주 작은 재료지만 수십, 수만 장의 벽돌이 한데 모이면 면과 덩어리를 이룬다. 벽돌의 이격 거리, 금속 틀과의 접합 관계의 변주에 따라 같은 재료로 이루어진 다른 모듈의 벽돌 면이 빛을 투과시키는 정도와 원거리에서 인지되는 표면의 질감을 달리하며 다양한 인상을 만들어낸다. 막혀 있어도 바람과 빛이 잘게 부서지며 통과하는 섬유 조직처럼 작은 차이들이 자아내는 시지각적 효과의 다양함이 존재한다. 건물의 이름 그대로 씨실과 날실로 엮인 ‘패브릭’의 효과다.
프로젝트의 주변에는 우리 도시의 제2종 일반주거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많은 벽돌 건물이 들어서 있다. 그 안에서 파-브릭은 같은 옷을 입었지만 약간의 다른 결로 존재한다. 인류가 수천 년 동안 건축에 사용해온 재료지만, 시공 방식을 다르게 함으로써 재료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고자 했다. 시공 방식의 차이는 다름 아닌 재료를 다루는 데 수공예적 성격을 부여한 것에 있다. 복잡한 3D 곡면을 다품종 대량생산할 수 있는 기술이나 건물 전체를 프린팅 해버리는 속도를 거부하고 제작(making)과 시공(constructing) 사이 어디쯤의 건축술을 고민한 결과물이다.


월간 「SPACE(공간)」 677호(2024년 04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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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강예린(서울대학교)+ 건축사사무소 에스오에이(이치훈, 한주희)

설계담당

이정연, 조재민, 임하은

위치

서울시 강남구 논현로159길 40-5

용도

근린생활시설(업무시설, 판매시설)

대지면적

200.2m²

건축면적

119.99m²

연면적

466.11m²

규모

지상 4층, 지하 1층

주차

3대

높이

19m

건폐율

59.94%

용적률

196.87%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외부마감

벽돌, 로이복층유리, 노출콘크리트, 외단열 미장마감

내부마감

노출콘크리트

구조설계

베이스구조기술사사무소

기계설계

주성이엔지

전기설계

청송설계이앤씨

시공

기로건설

설계기간

2020. 7. ~ 2021. 1.

시공기간

2021. 9. ~ 2023. 4.


강예린
강예린은 서울대학교 지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건축을 수학했다. OMA 로테르담과 협동원을 거쳐 이치훈, 정영준과 함께 2010년 건축사사무소 에스오에이(SoA)를 설립했으며, 2019년부터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아르코미술관,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등의 전시에 참여했고, 2017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생산도시〉를 기획했으며, 2023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초청작가로 참여했다.
이치훈
이치훈은 연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2010년 강예린, 정영준과 함께 SoA를 설립했으며 건축의 사회적인 조건에 관한 분석을 통한 다양한 스케일의 구축환경에 대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대카드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2015), 젊은건축가상(2015), 김수근 프리뷰상(2016), 「아키텍처럴 리뷰」가 주관하는 신진건축가상 파이널리스트(2016)에 선정됐으며 코리아디자인어워드(2021), 한국건축역사학회 작품상(2023)을 수상했다.